이케다 다이사쿠(池田大作) 선생님 스피치
전국대표회의회 (2006.6.27) - 화광신문 제693호(2006.7.14)
우리는 '사제의 길'을 나아간다!
행복하고 승리하는 광채의 길을!
"재회는 인생에서 언제라도 유쾌한 일이다."
이것은 중국 대지도자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의 말씀입니다.
나는 오늘 (6월 27일) 전국대표협의회 여러분과 이렇게 건강한 모습으로 재회할 수 있어서 기쁩니다.
정말로 고맙습니다.
도다 선생님은 곁에서 싸우는 리더에게 엄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본진의 간부의 사명은 일본 그리고 전 세계를 향한 광선유포의 원동력이다.
광포를 위해 뛰어다니는 회원을 위해 노고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또 본진에 있는 간부는 전 회원을 지탱하고, 전 회원의 모범이 돼 모든 법전(法戰)을 승리, 승리로 결정짓는 힘 있는 지도자의 모임이어야 한다."
도다 선생님은 이렇게도 말씀하셨습니다.
"본진의 리더는 회원에게 진력하는 첨병이다.
모든 책임을 지고 광선유포의 인재와 조직을 수호하고, 발전시키는 사명있는 사람이다.
현명하고 힘 있는 모범적인 존재로서 뽑힌 광선유포의 투사다."
거듭 선생님은 외쳤습니다.
"본진에 있는 리더는 회원을 위해, 학회를 위해, 영법구주를 위해 불석신명의 실상을 보여야 한다.
이 황금의 혼을 지닌 사신홍법의 지도자여야 한다."
모든 것은 리더 여러분으로 결정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도다 선생님이 하신 유언 같은 지도를 그대로 전해 드립니다.
이탈리아에 '도다 조세이 정원'
나카지마 이탈리아 SGI이사장에게서 연락이 왔는데, 지난 6월 17일 르네상스 시대의 모습이 남아있는 역사와 전통의 거리 체르탈도 시(市)에서 '도다 조세이 정원'을 성대하게 개원했습니다.
이날 행사에서는 도다 선생님이 좋아하신 '동지의 노래'도 연주했습니다.
이 정원은 시의 역 앞에에 있습니다.
꽃과 신록에 감싸이고, 분수와 조각을 설치한, 시민들이 휴식할 수 있는 광장입니다.
정원 내에 설치한 명판에는 도다 선생님의 업적과 말(言)을 새겼습니다.
개막식에 참석한 칸피노티 시장은 다음과 같이 힘차게 개원을 선언했습니다.
"우리 시는 2000년에 이케다 SGI 회장을 '명예시민'으로 맞은 이래, 이탈리아 SGI와 더불어 문화 * 교육을 추진했습니다."
"우리 시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다니는 장소를 '도다 조세이 정원'이라고 명명하고, 인간주의 철학을 끊임없이 생각하는 정원으로서 지금 살아있는 우리를 위해 그리고 미래의 세대를 위해 개원합니다"라고.
이탈리아에는 초대 회장 이름을 새긴 '마키구치 쓰네사부로 평화공원'과 '마키구치 쓰네사부로 거리'가 있습니다.
또 시장도 언급하셨지만, 지금까지 나는 체르탈도 시를 비롯해, 이탈리아에서 '43개'의 명예시민' 칭호를 삼가 받았습니다.
모두 '좋은 시민'으로서 신뢰와 공헌하는 활동을 전개한 이탈리아SGI 벗 덕분입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9백 년 역사를 자랑하는 세계 최고의 종합대학 이탈리아 볼로냐대학교가 SGI회장에게 '박사'의 증거인 '닥터링'을 증정했다. 또 이탈리아 최고 훈장 중 하나인 '정부명예 공로훈장'을 문학 * 예술 등이 분야에서 이탈리아를 위한 공로, 사회적인 박애와 인도적인 활동 등을 기려 수여했다.)
이탈리아SGI는 청년부도 훌륭하게 육성했습니다.
현재 이탈리아 SGI 청년부장을 맡은 다미코 가네다 씨는 소카여자단기대학 출신입니다.
저 나라에도 이 나라에도 '창가의 정원'에서 훈도를 받은 인재가 빛을 발하는 시대에 들어섰습니다.
정말로 기쁩니다! 후배 육성이 중요합니다.
광선유포도 영법구주도 요컨대 '사람'으로 결정됩니다.
'새로운 인재'가 배출되는가 어떤가입니다.
거만하게 굴거나 제멋대로 행동하며 후배가 성장하는 것을 억압하는 듯한 선배는 안 됩니다.
후배가 자유롭게 활약할 수 있는 무대를 준비해 주는 것이 선배의 역할입니다.
도다 선생님은 자주 말씀하셨습니다.
"국내외 모두 한창 격동기지만, 지금이야말로 청년 여러분이 공부해야 할 때다.
무대는 내가 만들어 두겠다. 새로운 평화의 전사가 돼, 그 무대에서 활약하도록"이라고.
나도 도다 선생님가 같은 마음으로 청년을 위해, 후배를 위해 어려움에 온몸을 부딪치며 하나하나 손을 쓰며 길을 열었습니다.
여하튼 해외는 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승리해, 훌륭하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특히 다음 세대를 짊어질 후계 인재가 잇달아 성장하고 있습니다.
이 점에서는 해외가 일본보다 앞서 있습니다.
"일본도 지지 마라!"라는 격려의 의미도 담아, 앞으로도 해외 벗의 활약을 차례차례 소개하겠습니다.
희망의 빛 발하는 '새로운 별'을!
6*30 '대학부 결성기념일', 축하합니다! 대학부는 내년에 결성 50주년을 맞습니다.
오늘은 전국, 각 방면 남자대학부장, 여자대학부장이 건강하게 참석했습니다.
미래는 모두 여러분의 것입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인도 독립의 아버지 마하트마 간디는 말했습니다.
"학생들이 사회변혁의 기준이지만, 기준이 되기 위해서는 학생들이 올바른 태도를 지녀야 한다."
그렇습니다. 또 간디는 이렇게도 말했습니다.
"학생들을 늠름하게 그리고 지조(志操) 견고하게 키우기 위해서라면 나는 어떤 노력도 아끼지 않겠다."
싸우는 청년의 중심에는 늘 학생이 있었습니다. 학생이야말로 시대 변혁의 선구자입니다.
청년부, 특히 대학부를 더한층 성장시키는 것이 '미래에 승리'하는 원천입니다.
새로운 인재를 찾는 것은 희망의 빛을 발하는 '새로운 별'을 찾는 것입니다.
도다 선생님은 엄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러한 악랄한 시대에 광선유포를 하려니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의 종교변혁은 대단한 신심(信心)과 용기와 지혜가 없으면, 도저히 수행할 수 없는 대위업입니다."
여기에 지용(智勇)을 겸비한 대학부의 중대한 사명이 있습니다.
청년을, 학생을 모두 힘있는 '최고의 지도자'로 육성하고자 합니다.
민중을 위해,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사심 없는 마음으로 싸울 수 있는 진정한 리더를 만들고자 합니다.
지금 내 마음은 그것으로 가득합니다.
(현재 세계 각지 대학과 학술기관에서 SGI회장 사상과 행동에 관한 연구를 추진한다.
중국 베이징대학교 일본연구센터에 '이케다 다이사쿠 연구회'가 설립됐으며 아르헨티나, 덴마크, 인도, 타이완 등에 '13개'에 이르는 연구기관이 탄생했다.
세계 학생등 사이에도 '이케다사상'에 관심이 매우 높다. 중국 신장웨이우얼자치구 이리사범학원에서는 SGI회장 저서를 읽은 감동의 소리가 이 학원 홈페이지에 다음과 같이 올라 있다.
"이케다 씨의 책이야말로 인생을 괴로워하는 청년에게 가장 어울린다"
"이케다 씨의 책은 모두 독자와 나는 '대화'로 일관해,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알기쉽게 가르쳐 준다"
"나는 이케다 씨의 책이 정말 좋다"
"이케다 씨의 책은 고난 속에서만 인격이 연마된다고 우리들을 격려해 준다"
"이케다 씨의 책은 고난 속에서만 인격이 연마된다고 우리들을 격려해 준다."
"이케다 씨의 책에는 위대한 인격의 힘이 있고 커다란 사상이 있으며 지혜가 빛난다.")
도다 선생님은 우리 청년에게 강하게 외치셨습니다.
"청년이여, 높고 큰 이상에 살아라! 불꽃이 돼 나아가라!"
광선유포만큼 위대한 이상은 없습니다. 이 광선유포를 향해 우리 청년들은 '모두가 도다 조세이다'라는 자각으로 싸웠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광포의 모든 책임을 지고 행동했습니다.
그러므로 승리했습니다. 무슨 일을 해도 성공했습니다.
'누군가 하겠지'라는 무책임한 자세로는 아무것도 만들 수 없습니다.
'내가 광선유포한다'는 강한 일념을 지녀야 합니다.
역직이나 위치가 아닙니다. "마음만이 중요"(어서 1192쪽)합니다.
광선유포를 지향하는 '신심'강한 사람이야말로 생명의 '최고 위(位)'를 지닌 사람입니다.
도다 선생님은 스승 마키구치 초대 회장을 올바르게 섬겼습니다.
마키구치 선생님에게 목숨을 바쳐 감옥까지 따라 가셨습니다.
마키구치 선생님과 도다 선생님의 마음은 하나었습니다.
거기에 진정한 사제불이(師弟不二)가 있습니다.
스승을 소중히 한 사람은 영원히 번영합니다.
반대로 대은이 있는 스승을 배신하고 괴롭히는 망은의 무리는 반드시 파멸합니다. 그것이 불법(佛法)의 엄한 법칙입니다.
'반드시 필요한 사람'이 되라!
청년부 여러분은 모두 지금 있는 곳에서 '반드시 필요한 사람'이 되기 바랍니다.
나날의 발심, 나날의 도전입니다.
'오늘 하루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명확히 해서 의욕을 갖고 헌신적으로 활동하며 자기답게 빛났으면 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나는 야간학교에 다니면서 낮 시간에는 니시신바시에 있는 쇼분도라는 작은 인쇄회사에서 일했습니다.
직장 분위기는 매우 가족적이어서 공장 이사 때에도 모두가 협력했습니다.
쇠망치와 못으로 새 공장 짓는 일을 도와 드린 때도 그립게 떠오릅니다.
그 회사 주인은 내가 하는 일을 전면적으로 신뢰해 주셨습니다.
가능한 한 오랫동안, 자기 회사에서 일했으면 하고 기대하신 것 같은데, 병약한 나는 그곳을 퇴사할 수밖에 없어서 우리 집에서 가까운 가마타공업회 사무원 서기로 일하게 됐습니다.
거기서도 좋은 선배와 동료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1년 3개월 후, 도다 선생님 회사에 들어가게 돼 가마타공업회를 퇴직했습니다.
상사와 동료가 "꼭 그만두어야 하는가"라고 이별을 아쉬워하며 정성 어린 송별회를 열어 준 일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없어서는 안 되는 사람' '반드시 있었으면 하는 사람'이 돼야 합니다.
이것이 마키구치 선생님의 가르침이었습니다.
청년부 여러분은 설령 눈에 띄지 않아도 신뢰가 두터운 인생을 살았으면 합니다.
지금 이곳(창가문화회관 내에 있는 광선회관)에 장식된 사진 '길'은 1991년 6월 27일 영국 윈저성을 방문했을 때, 내가 촬영했습니다.
윈저성은 엘리자베스 여왕이 주말 등에 체류하는 거성(居城: 거주하는 성)으로도 유명합니다.
나는 이제까지 영국 앤 왕녀, 찰스 황태자와 회견했습니다. 잊을 수 없는 추억입니다.
15년 전인 1991년은 종문이 도리에 어긋나게 학회를 공격한 이듬해입니다.
나는 질투에 미친 사종문(邪宗門)의 음모를 타파하고 새로운 세계광포의 길을 열고자 일어섰습니다.
일본은 좁습니다. 추한 질투와 데마가 횡행할 뿐입니다.
그런 것은 유연히 내려다보고 세계를 무대로 싸우자! 바로 이것이 내 다짐이었습니다.
비열하게도 학회를 배신하고 광선유포를 방해하려는 무리도 있었습니다.
그런 인간들이 지금 깊은 후회에 잠겨 불쌍한 말로(末路)를 걷고 있는 사실은 여러분이 잘 아시는 바와 같습니다.
나는 도다 선생님의 제자로서 오직 홀로 선생님의 모든 지도를 내 몸에 새겼습니다.
선생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일평생, 네가 제3대 회장이다. 내 정신을 이어 받은 단 한 사람의 내 제자다."
사제불이(師弟不二)라면 아무것도 두렵지 않습니다. 나는 홀로 초연히 싸웠습니다.
철저히 분투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승리했습니다.
지금 나는 더욱더 앞날의 앞날을 생각하고 나중에 이어질 젊은 여러분을 위해 길을 개척하고 있습니다.
손을 쓰고 있습니다. '청년을 위해서' 바로 이것이 진짜 지도자입니다.
이러한 삼 대 지도자가 있었기에 비로소 창가학회(創價學會)는 세계적으로 발전했습니다.
이 '길'이라는 사진에 대해서는 노벨 평화상을 받은 아프리카 '환경의 어머니' 마타이 박사도 상찬 했습니다.
(박사는 지난해 2월 SGI회장과 회견했을 때, SGI회장이 촬영한 사진집을 보면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이 윈저성의 '길' 사진입니다. '최고의 행복'으로 이어지는 길입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마타이 박사를 비롯해 지금까지 전 세계 평화지도자를 만났습니다.
모두 국제창가학회(SGI) 활동에 깊이 공감하고 칭찬하셨습니다.
내가 세계 여러 대학 등 학술기관에서 받은 '명예박사' '명예교수' 등은 현재 1백97개. 모두 여러분을 대표해서 받은 영예이자 SGI가 추진하는 평화 * 문화 * 교육 운동에 보내는 상찬의 증거입니다.
그것은 전쟁 중이던 1943년 6월 27일, 63년 전 오늘이었습니다.
당시 군부정부는 국가신도를 중심으로 사상 통제를 강화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마키구치 선생님은 정부 정책을 비판하며 활발한 절복과 홍교를 전개하셨습니다.
군부권력의 탄압을 두려워한 종문은 이날, 도다 선생님과 마키구치 선생님을 본산으로 불러들였습니다.
그리고 법주 닛쿄(日恭)가 참석한 자리에서 학회가 '신사호부(神社護符)'를 받도록 강요했습니다.
마키구치 선생님은 일언지하에 거부하셨습니다.
"승복할 수 없습니다. 신사호부는 절대로 받지 않겠습니다."
도다 선생님은 훗날 내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마키구치 선생님의 용기있는 이 한 마디가 학회의 명운을 갈라놓아 학회를 순난(殉難)의 길로, 사신홍법(死身弘法)이라는 대성인 문하의 영예로운 정도(正道)로 이끌었다. 학회가 없었으면 대성인 정신은 단절됐을 것이다."
마키구치 선생님은 정말 위대한 분이었습니다.
마키구치 선생님 그리고 도다 선생님의 목숨을 바친 투쟁이 있었기에 비로소 오늘날과 같은 학회가 발전했습니다.
아시아를 비롯해 세계 사람들이 학회를 깊이 신뢰하고 있습니다.
성훈에는 "스승은 또한 사도를 닫고 정도로 향하게 하는 등의 은혜가 깊다"(어서 435쪽, 통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위대한 스승이 있어야만 제자는 정의와 행복의 올바른 길을 걸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스승과 제자의 길'이야말로 인간으로서 가장 올바른 길입니다.
또 '스승에게 보은하는 길'이야말로 인간으로서 가장 뜻깊은 길입니다.
타이 라디오에서 '청춘대화'를 낭독
타이의 옛 도읍 치앙마이에 있는 명문국립메조대학교가 내게 명예 학위를 수여하겠다고 결정했습니다.
이 메조대학교는 라디오방송국을 운영하며 약 2년 전부터 내 저서와 사상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매주 방송하고 있습니다.
프로그램 제목은 '인생에 가치창조'. 1시간 동안 진행하는 프로그램으로 노래 '바닷가에서' 멜로디로 시작합니다.
기획과 진행은 타이SGI 청년부가 담당하며 지금까지 '청춘대화' 내용 등을 낭독 혹은 대화 형태로 소개했습니다.
프로그램 횟수로 벌써 1백 회에 이른다고 합니다.
반향이 커서 메조대학교 테프 총장도 "이토록 훌륭한 프로그램이 될 줄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나도 매번 듣습니다"라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프로그램 제작에 진력하시는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감사 말씀드립니다.
타이에서는 푸마폰 국왕이 올해 재위 60주년을 맞으셨습니다.
나도 국왕을 세차례 만났는데 그때를 잊을 수 없습니다.
영광스럽게도 일개 민간인인 나를 위해 긴 시간을 할애하셔서 타이와 일본의 문화교류 등에 관해 대화를 나눴습니다.
앞으로도 나는 문화 * 교육 교류 등으로 일본과 타이의 우호 발전에 공헌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광선유포의 본진을 지키는 리더 여러분은 늘 상쾌한 언행으로 회원에게 기쁨과 확신을 드리는 존재이기 바랍니다.
예를 들어 좌담회와 같은 회합에는 모두가 결의에 불타 전진할 수 있는, 그러한 희망 넘치는 이야기를 했으면 합니다.
입을 다물고 불쾌한 표정으로 지위가 높은 사람인 양하며 이야기도 재미없고 시시해서는 리더로서 실격입니다.
또 회합이 끝난 후에는 모두를 웃는 얼굴로 배웅하는 등 어디까지나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히 하는 지도자이기 바랍니다.
(이 자리에서 이전에 간사이 회원이 보낸 편지 내용을 소개했다. 1956년 젊은 이케다 SGI 회장이 좌담회에 참석했을 때 추억을 엮은 것이다.
"당시 '오사카투쟁' 때였습니다. 이케다 선생님이 오신 좌담회를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선생님은> 젊은 무사처럼 혼자 회합장소에 오셨습니다. 어서(御書) 한 권을 들고 계셨습니다."
"<이케다 선생님은> 체험담을 들으면 일어선 채 온몸으로 칭찬했습니다.
질문을 하면 어서를 펼치면서 하나하나 정중하게, 명확하게 답변하셨습니다.
때로는 농담으로 모두를 웃기셨습니다. 즐겁고 기뻐서 저희들은 눈물을 닦으면서 웃었습니다.
10명 이상 참석한 신래자도 좌담회가 끝날 무렵에는 모두 입회를 결심했습니다.
이러한 활기차고 명랑한 좌담회가 제 인생의 원점입니다.")
상쾌한 목소리로
또, 리더는 언제나 생기발랄하게 빛나는 존재였으면 합니다.
리더가 어두운 얼굴을 하고 있으면 다른 사람마저 모두 힘이 빠집니다. 예를 들어 길에서 회원 여러분을 만나면 상쾌하게 말을 건네야 합니다.
"언제나 고생이 많으십니다"라며 고개 숙여 인사하고 감사의 마음을 전해야 합니다.
성훈에는 "교주석존(敎主釋尊)의 출세(出世)의 본회(本懷)는 사람의 행동에 있었소이다" (어서 1174쪽)라고 있습니다.
'저 사람은 훌륭하구나' '친절하구나' '멋지구나'.
모두에게 그렇게 존경받는 리더이기 바랍니다.
도다 선생님은 이러한 '행동'이 중요하다고 항상 엄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리더가 진지하고 현명하며 지혜가 있어 두터운 신뢰를 받는 존재면 회원은 모두 용기백배합니다.
아무쪼록 이전에 없던 승리를 위해 전국, 세계 회원을 위해 높은 긍지를 갖고 자신의 책임을 완수하기 바랍니다! 부탁합니다!
얼마 전, 소카대학교 법과대학 원 헨리 고다 교수가 천재 에디슨이 발명, 제작한 축음기 (1913년 에디슨사제)를 보내주셨습니다.
고다 교수는 미일지적재산권문제 권위자며 미국에서 변호사로 활약했습니다.
에디슨의 발명품 수집가로도 알려졌습니다.
현재 축음기는 민음음악박물관(도쿄 시나노마치)에서 소중하게 전시 중입니다.
교수는 축음기와 함께 자신의 저서 '천재 에디슨의 비밀-어머니가 가르친 7가지 규율'을 보내주셨습니다.
그 중에세 에디슨의 격언을 몇 가지 소개하고자 합니다.
"일은 내게 즐거움이다. 의무라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정말그렇습니다. 인간은 이런 기개가 있어야만 위대한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최대 결함은 금방 체념하는 것이다. 성공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다시 한번 도전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인내입니다. 결코 단념하지 않는 집념입니다.
마지막 승리는 그 사람에게서 빛납니다. 그리고 에디슨은 말했습니다.
"근육과 마찬가지로 두뇌는 단련할수록 강해진다."
참으로 배우는 일에 한계는 없습니다. 어리석으면 광선유포를 지휘할 수 없습니다.
리더는 항상 배우고 일을 소홀히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삼국지' 영웅 제갈공명도 지도자가 피해야 할 '팔악(八惡)'의 하나로 "지혜가 부족하다.
그래서는 미지의 사태에 대비할 수 없다"라는 점을 들었다고 전해집니다.
국가 악에 맞서는 싸움
올해도 스승과 제자의 혼을 새기는 7월이 돌아옵니다.
영원히 '창가(創價) 사제(師弟)'가 받은 순난(殉難)의 역사를 널리 빛납니다.
잘아시는 바와 같이 정법정의(正法正義)를 내걸고 국가 악(惡)에 맞서 끝까지 싸운 마키구치 선생님과 도다 선생님은 1943년 7월 6일에 체포됐습니다.
마키구치 선생님은 1944년 11월 18일에 옥사하시고, 도다 선생님은 1945년 7월 3일에 출옥하셨습니다.
법화경을 수지하고 행하는 사람은 반드시 박해를 받습니다.
'악구매리' 당하고 '유다원질'의 난을 받습니다.
이것이 법화경에서 설한 방정식이며 광선유포를 달성하려는 사람에게는, 이를테면 '숙명'입니다.
이 경문 그대로 마키구치 선생님도, 도다 선생님도 탄압을 받고 투옥됐습니다.
제3대인 나도 수많은 질투를 받았습니다.
함정에 빠트리고자 아무런 근거도 없이 조작된 이야기를 얼마나 많이 쓰고 박해했는지 모릅니다.
광선유포를 전진시켰기 때문에 나도 두 분 선생님과 마찬가지로 권력의 박해를 받고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바로 '오사카사건'입니다. 그러나 법화경의 눈으로 보면, 그 일들은 오히려 명예로운 일입니다.
가장 올바르게 광선유포를 이루고 있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오사카사건'은 1957년 참의원 선거 오사카지방구 보궐선구에서 일부 회원 중 공직선거법 위반자가 나옴에 따라 같은 해 7월 3일, 지원책임지던 SGI회장을 부당하게 체포한 사건이다.
사건의 배경에는 급속하게 발전하는 학회에 대한 당국의 경계심이 있었던 것 같다. 오사카지방법원 재판에서 검찰 측은 일련의 위반 중, 아케다 SGI회장이 호별방문을 지시했다는 주장을 전개했다.
그러나 공판을 통해 검찰 측의 주장은 무너졌다.
'금고 10개월'을 구형했지만, 1962년 1월 25일 다카가 이사오 재판장이 SGI회장에게 무죄판결을 내렸다.
처음부터 사실무근의 무고한 죄였고 당연한 공정한 판결이었다.
월간지 '우시오'연재 중인 '평화와 문화의 큰성 이케다다이사쿠의 발자취'에 따르면, 다나카 재판장은 훗날 주위에 "이케다 SGI회장은 다른 사람과 다르다. 빛이 난다. 이 사람은 장래 굉장한 사람이 될 것이다"라고 그 인상을 이야기했다.
또 공판 담당 검찰관도 판결 직후, 이케다 SGI회장에게 "이런 결과가 나올 줄 알았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오늘은 마키구치 선생님, 도다 선생님의 유덕을 우러러 받들며 두 분이 어떤 경위로 체포되었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하고자 합니다.
마키구치 선생님은 1943년 7월 2일, 회원 두 사람을 데리고 이즈 시모다로 절복하러 가셨습니다.
2일, 3일, 4일 이렇게 날마다 절복을 하러 좌담회에 참석하셨습니다.
5일에도 현 시모다시(市) 스자키에 가셨습니다.
동행한 벗의 아버지를 절복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6일 아침, 스자키에서 특별고등경찰 두 명이 동행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시모다서(暑) 4.7km 되는 길을 걸어가셔서 체포당했습니다.
몹시 더운 계절에다 선생님은 고령의 몸이었습니다. 얼마나 피곤하셨을지 모릅니다.
순교 60주년을 맞은 2004년 1월, 이 마키구치 선생님이 연행된 길가에는 '시모다 마키구치기념화관'을 개관했고, 부지 내에는 '마키구치 쓰네사부로 선생님 법난 송덕비'를 세웠습니다.
선생님을 체포한 용의는 '치안유지법 위반'과 '불경죄'였습니다.
이미 체포하기 전부터 탄압의 미수가 뻗쳤습니다.
1942년 5월에는 기관지 '가치창조'가 폐간될 위기에 처했습니다.
좌담회 등도 1941년경부터 특별고등검찰에게 감시받았습니다.
1943년 5월에는 마키구치 선생님이 약 1주일 간 도쿄 나카노서(暑)에 유치돼 '신사호부(神社護符)' 문제로 문초를 받았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마키구치 선생님은 먼 길을 절복하러 가셔서 좌담회에 참석하셨습니다.
체포당하는 그 순간까지 광선유포를 위해 온몸을 다 바치셨습니다.
도다 선생님도 같은 7월 6일 아침 똑같은 두 가지 죄명으로 도쿄 시로가네다이의 자택에서 체포당해 다카나와서(暑)에 유치되셨습니다.
한편, 마키구치 선생님은 이튿날인 7일에 시모다서에게 경찰청으로 이송됐습니다.
체포 당시, 메지로의 마키구치 선생님 자택을 비롯해 창가학회 본부와 시습학관도 가택수색을 했으며, 어서(御書)와 마키구치 선생님 저서 등을 압수했습니다.
결국 이듬해까지 체포된 인원은 21명을 헤아렸습니다.
그 중에서 오로지 도다 선생님 혼자 마키구치 선생님과 함께 법난을 참고 견디며 옥사한 스승의 유지를 계승해 스승의 원수를 갚고자 일어섰습니다.
'사제' '사제'라고 입으로 말하는 것은 간단합니다.
그러나 마키구치 선생님을 생각하는 도다 선생님의 심경은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습니다.
나는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도다 선생님이 마키구치 선생님을 섬긴 것과 조금도 다름없는 결의로 도다 선생님을 섬겼습니다.
두 분의 투쟁을 우러러 받들며 세계에 선양했습니다. 유족 분들도 성심 성의껏 지켜드렸습니다.
창가학회(創價學會) 삼 대에 불법 정신이 맥동합니다.
'사제불이(師弟不二)'가 있습니다.
나는 이보다 더 존귀한 인간관계는 없다고 확신합니다.
체포된 지 2개월 후인 9월, 경찰청 특별고등과 문초실에서 마키구치 선생님과 도다 선생님은 함께였습니다.
도다 선생님은 마키구치 선생님의 7회기 법요에서, 특별고등경찰이 마키구치 선생님에게 크게 소리쳤을 당시의 분함을 술회하셨습니다.
(가족이 차입한 물품 중에 면도칼이 있어 마키구치 선생님이 그것을 반가운 얼굴로 집어 들자 특별고등형사가 큰 소리로 "마키구치, 너는 뭘 들고 있지. 이곳이 어디라고 감히 칼날을 만진단 말이야"하고 소리쳤다.
도다 제2대 회장은 법요에서 "마키구치 선생님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그 면도칼을 내려놓으셨습니다.
몸은 나라 법을 따르지만 마음은 따르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은 창가학회 회장이셨습니다. 그때 그 분한 마음을 이루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라고 그 심정을 토로했다.)
그리고 같은 9월, 마키구치 선생님은 경시청에서 스가모 도쿄구치소로 이송됐습니다. 그곳은 다디미 석 장짜리 독방이었습니다. 이송 도중 경시청 내에서 도다 선생님은 마키구치 선생님과 마주쳤습니다.
"선생님, 몸조심하세요."
도다 선생님이 말씀을 건네자 마키구치 선생님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셨습니다.
이것이 두 분의 마지막 만남이 됐습니다.
그 이후 도쿄구치소에서 사상(思想) 검사가 마키구치 선생님을 본격적으로 문초하기 시작했습니다.
'특고월보'(1943년 7월호)는 체포 이유가 된 마키구치 선생님의 언행을 이렇게 썼습니다.
"회장 마키구치를 중심으로 한 관계자들의 사상과 신앙은 다소 불손하며 불온하다."
"'법화경과 니치렌을 비방하면 반드시 벌을 받는다' '이세신궁 등을 참배할 필요가 없다'는 식으로 불손한 설법을 유포했다."
국가신도를 온 국민에게 강요한 전시하에서 얼마나 용기 있는 발언이었는지 모릅니다.
마키구치 선생님은 가혹한 심문에도 주장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교도관을 절복하고 끊임없이 어서를 배독하셨습니다. 참으로 위대한 '창가의 아버지'셨습니다.
'특고월보'(1943년 12월분)에는 마키구치 선생님의 공소장이 게재돼 있습니다. 주된 공소 이유로서, 체포할 때까지 약 2년 동안에 '매월 약 1회, 간부회를 개최' '4회에 걸쳐 총회를 개최' '약 2백40여 회 좌담회를 개최' '지방지도 10회' 등을 시행한 사상이 열거돼 있습니다. '특고월보'가 선사(先師)의 위대함을 엄연히 증명하고 있습니다.
권력을 두려워한 비열한 행동
그러면 두 선생님이 광선유포를 위해 목숨을 걸고 국가 권력에 맞서 싸우는 동안, 종문은 어떤 행동을 취했는가.
종문은 당치 않게도 마키구치 선생님, 도다 선생님이 체포된 7월, 두 선생님을 '등산정지' '말사(末寺) 참예 금지' 처분. 더욱이 마키구치 선생님을 '신도 제명' 처리했습니다.
같은 7월에 종문 승려가 마키구치 선생님이 안 계시는 댁을 찾아가 가족으로 하여금 마키구치 선생님에게 퇴전을 권유하도록 요청했으나 거절 당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종문에 누가 될까 봐 두려워한 비열한 행동이었습니다.
종문은 전쟁 중에 신사호부 용인 등, 하고 싶은 대로 방법(謗法)을 되풀이한 끝에 1945년 6월 17일, 대석사에 화재를 일으켰습니다.
신사호부를 모신 서원을 비롯해 주요 건물이 소실되고 그 당시 법주 닛쿄는 미처 도망가지 못하고 불에 타서 죽었습니다.
이 시기에 종문에는 광선유포의 '신심의 혈맥'이 단절돼 있었습니다.
오로지 창가학회에만 엄연히 흐르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다시금 도다 선생님 지도 말씀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나는 보잘것없는 사람입니다만 광선유포에 써 주십시요'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인간이 돼라."
선생님이 청년에게 자주 하신 말씀입니다.
후계 청년들이 평생 겸허한 마음을 잊지 않도록 가르쳐 주셨습니다.
'제자가 살아야 할 자세'를 제시해 주셨습니다.
구도심을 잃고 만심에 빠지면 곧바로 인간의 타락이 시작됩니다.
이를 가르쳐 주시는 스승의 존재가 정말 감사할 따름입니다.
"후회 없는 싸움이란 사전(事前)의 작전에 달렸다. 앞으로 먼 장래에 걸친 광선유포의 법전(法戰)도 이 원리를 잊어서는 안 된다."
이처럼 선생님은 '작전'의 중요함을 역설해 마지않았습니다. '잘 생각해라, 머리를 써라,
주도면밀하게 준비하라'라고. 대부분의 승부는 적전 단계에서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귀찮아서 준비를 소홀히 하거나 작전을 경시하는 것은 패배의 인(因)을 만드는 격입니다.
일체가 리더의 책임입니다.
또한 도다 선생님은 외교를 하지 못하는 인간은 깊이 신뢰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특히 청년에게, 외부와 격전을 벌이는 싸움 속에서 비로소 인간의 본바탕이 연마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선생님 가르침대로 선생님 슬하에서 모든 외교전의 진두에 서서 싸웠습니다.
이어서 여성에 대한 도다 선생님 지도입니다.
"여성은 늘 용감하게 철저히 일하는 생명력을 지니세요." "젊음이란 생명력에서 샘솟는 법이다."
나이는 젊어도 늙었다는 느낌을 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몇 살이든 젊디 젊게 빛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차이는 생명력에 있습니다.
특히 여자부 여러분에게 다음과 같은 선생님 말씀을 드릴까 합니다.
"여성의 행복은 청춘 시절에는 결정되지 않는다.
청춘 시절은 평생에 걸친 행복 토대를 구축하는 단련의 시절이다."
선생님은 여자부가 한 사람도 남김없이 행복해지기를 바라셨습니다.
아무리 외면을 꾸며도 진실한 행복은 얻을 수 없습니다.
묘법(妙法)을 근본으로 해야 비로소 무너지지 않는 절대적 행복 기반을 구축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한 신행학(信行學) 실천입니다.
"신행학에 힘써서 자신의 생명에 반석같은 복운을 쌓아야 합니다"라고 선생님은 엄하고도 따뜻하게 여자부를 격려하셨습니다.
"누구든 고생하면 비굴해지는데 그래서는 안 된다.
아무리 고생을 해도 언제까지나 늘 구김살 없이 해야 한다." 이 말씀도 여자부에게 주신 지도였습니다.
인생에는 고뇌가 따르는 법입니다. 고뇌없는 인생은 있을 수 없습니다.
더군다나 깊은 사명에 사는 여러분은 온갖 장벽에 부딪치는 경우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코 져서는 안 됩니다. 묘법을 수지한 여성이 행복해지는 것은 절대 틀림없습니다.
가장 고생한 사람이 가장 행복해집니다. 그것이 묘법입니다. 단련 없이 강한 인간으로는 될 수 없습니다.
"엄한 말을 듣고 또, 엄하게 주의를 들으며 시간이 지나면 어떠한 사람도 좋게 된다"라고 선생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도다 선생님은 청년이 사회에서 살아가는 자세에 관해 "각 직장에서 기쁜 마음으로 사는 것이다.
청년은 자신의 사명에 사는 일이 중요하다"라고 호소하셨습니다.
그리고 "인생은 착실하게 살아라! 허영을 위해 살지 마라. 진실하게 살아라!
강한 인내를 갖고 살아라!"라고 격려하셨습니다.
또, "필사적으로 임하지 않는 좁은 근성은 타인이 좋아하지 않는다."라는 말씀도 잊을 수 없습니다.
자신의 경우만 생각하는 교활한 인간, 이기주의 인간은 모두가 싫어합니다.
리더를 타인이 좋아하지 않게 되면 그 리더는 끝장입니다. 광포의 리더는 공평해야 합니다.
자기 자신의 이익과 손해를 언제나 염두에 두는 그런 인간은 타인을 공평하게 볼 수 없습니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는 깊은 신심에 철저를 기해야 합니다.
"'조직의 눈'만이 아니라, 늘 '신심의 눈'으로 타인을 보아야 한다.
특히 역직은 높이 않아도 신심을 정말 진지하고 성실하게 하는 분이 계신다.
그분들을 존경하고 진심으로 칭찬하며 격려하고 지키는 마음이 자기 신심의 증거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간부 여러분은 도다 선생님의 지도 말씀을 명심하기 바랍니다.
'불제자가 불법을 파괴한다'
끝으로 성훈을 배독하고자 합니다.
"외도(外道). 악인은 여래의 정법(正法)을 파괴할 수 없다. 반드시 부처의 제자들이 불법을 파괴한다.
사자신중(師子身中)의 충(蟲)이 사자의 몸을 먹는다란 이것이다." (어서957쪽, 통해)
외부의 적이 아닙니다. 내부에서 불법을 파괴한다는 성훈입니다.
동료 중에서 반역의 무리가 나타납니다. 이것이 방정식입니다.
동지를 배신하는 비열한 행위는 영원히 용서하면 안 됩니다.
불법이 얼마나 '은혜'를 중시하는가.
어서(御書)에는 "이승(二乘)은 부모, 사장(師匠), 국주, 주군, 일체중생, 부처 등에 대한 보은이 모두 결여돼 있다. 그러므로 일념도 이승의 마음을 일으키는 것은 십악(十惡)이나 오역죄를 범하기보다도 더한 것이다." (어서 435쪽, 통해)
이승의 마음이란 이타(利他)를 잊고 자신의 이익에 집착하는 마음입니다.
그러므로 십악이나 오역죄를 범하기보다도, 성불의 길을 막아버립니다.
명성, 학력, 권력, 지위를 가진 인간은 망은의 마음에 빠지기 쉽습니다. 망은의 인간은 예외 없이 고뇌의 늪에 빠집니다. 그 말로(末路)는 비참합니다. 나는 지금까지 그런 많은 인간을 봤지만, 틀림없이 대성인 말씀대로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법에서는 부지은(不知恩), 망은을 엄하게 훈계합니다.
니치렌 대성인은 어떤 어려움에도 뒤돌아보지 않고, 오히려 나라와 백성의 행복을 생각하며 올바른 길을 위정자에게 제시했습니다.
그런데 당시의 권력자는 그 정의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는 커녕 대악인과 결탁해 목숨에 미치는 박해로 보답했습니다.
이것에 대해 대성인은 "'대악인을 채용하는 대죄'와 '정법의 대선인을 치욕하는 대죄'라는 두 가지의 악이 나란히 이 나라에 출현했다" (어서 357쪽, 통해)라고 말씀하시고, 그러므로 "전대미문(前代未聞)의 대사(大事)"(어서 357쪽)가 이 나라에 일어났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정법의 대선인'을 어떻게 대우하는가에 따라 그 사회의 미래는 결정됩니다.
대성인은 '남에게 식(食)을 베푸는 공덕'을 "힘을 주는 일로 인간계, 천상계에 태어나 위덕을 갖춘사람이 되고, 많은 사람들이 주위에 모인다"(어서 1237쪽, 통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밤낮으로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심어주는 격려를 하러 열심히 뛰어다니며, '사는 힘'을 불어넣는 여러분의 공덕도 매우 큽니다.
생생세세, 많은 사람이 주위에 모이는 각계의 리더가 될 것은 틀림없습니다.
끝맺음으로 프랑스 문호 로맹로랑의 명작 중 한 구절을 빌려 우리의 결의를 나타내고자 합니다.
"나는 오로지 승리로서 내 길을 열고 있다"
우리도 이런 마음으로 나아갑시다!
승리해 '길'을 엽시다! 학회를 위해 끝까지 승리합시다!
나는 앞으로도 계속 여러분을 위해 반석 같은 광포의 기반을 갖추겠습니다.
그것은 내가 후배에게 주는 선물입니다.
그를 위해 지금 착실하게 준비하고 있다고 말씀드리며, 스피치를 마치겠습니다.
2006.6.27
- 화광신문 제693호(2006.7.14)
※ 본 게시물은 교학모임 회원(SGI 회원)의 교학연찬, 개인지도, 회합시 지도 등을 위하여 게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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