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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상도 아들이 퇴직금으로 50억 원을 받은 것에1심 형사재판에서 무죄 판결 난 것이 하도 어이가 없어서 주변의 젊은 사람들에게 어떤 생각이 드는지 물어보았더니 ‘허탈하다, 해 봤자구나, 짜증 난다’가 공통 답변으로 돌아왔다. 특히 ‘해 봤자구나’, 그 말은 내가 220쪽의 판결문을 읽게 하고 이 글을 쓰게 만든 바늘이 되었다. ‘해 봤자구나’는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뭘 한다고 해서 뭔 소용이 있겠어’라는 뜻이고 ‘싫어하는 것을 더 하는 것이 노력’이라는 나의 메시지를 쓰레기통에 처 박는 것이기 때문이다.
기울어진 운동장은 요즘 세대만 느끼는 것이 아니라 나도 어렸을 때 심하게 느꼈던 것이다.
고교 시절, 흡연하는 학생은 퇴학을 당하거나 전학을 갔는데 부잣집 애들은 슬그머니 넘어갔다. 그리고 성적이 나처럼 안 좋았던 급우가 의대에 들어간 적이 있다. 알고 보니 아버지가 그 대학의 의대 교수였고 교직원 자녀는 특별가산 점수를 받는다는 것이었다. 학교 영어 선생의 고액 개인과외를 받던 부잣집 급우들의 성적이 빠르게 올라가는 중에 누군가 그 급우들이 갖고 있던 예상문제집을 몰래 훔쳐서 공개하였는데 시험 문제와 거의 동일하여 학교 전체가 난리가 난 적도 있었다. 나는 군대는 반드시 가야 하는 것으로 알았는데 돈 있고 빽 있는 녀석들은 안 갈 수도 있었다. 군대에서조차 돈 있고 빽 있는 애들은 이른바 관심사병이라는 명단에 들어가 특별 관리되고 있었다. 빽 있는 애들은 정부가 인사권을 쥐고 있는 직장에 쑥쑥 들어가는 것도 보았다.
이게 다 내가 10대,20대 초에 보았던 것들이기에 나 역시 “18, 해 봤자구나” 했고 벌레처럼 살면서 “세상 좆같네” 하며 세상에 분노하기만 했다. 세상에 대한 그 분노를 내가 알기에 이 글을 쓰는 것이지만 너희를 따듯하게 위로하기 위함은 아니고, 계란으로 바위치기일지는 몰라도 기울어진 운동장을 1미리라도 바로잡으려는 소망으로 쓰는 것이다.
이 글은 내 추측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 재판의 논점 사항들(정치후원금, 변호사 선임비, 공직자 자녀 채용, 거액 퇴직금)을 이미 직접 경험하고 실행한 바 있었기에 그 경험을 바탕으로 쓰는 것이다.
판결문을 요약하면 곽상도가 국회의원 선거 기간 중에 받았던 5천만 원은 변호사비가 아니라 공직선거법 위반의 정치 자금으로 판결이 나서 유죄를 받았다. 그러나 화천대유에 아들이 취업한 과정은 정상적인 취업이며 아들이 받은 퇴직금 50억 원은 곽상도에게 공여한 뇌물로 보기 어렵다고 해서 무죄를 받았다.
1.나도 국회의원에게 정치자금(단어의 이미지가 부정적이어서인지 공식 명칭이 정치후원금으로 바뀌었으나 여전히 정치자금이라고도 부른다)을 2번 준 적이 있다. 한 번은30여 년 전이고 한 번은 10여 년 전이다. 30여 년 전에는 법인이 정치 자금으로 최대 1억3천만 원까지도 줄 수 있었고 비용 처리도 가능하였기에 사업장 주소의 지역구 의원에게 몇 천만 원 계좌이체로 보냈다. 주변 어른들이 국회의원하고 가깝게 지내는 게 좋다는 말을 하도 하기에 준 것이었다. 그랬더니 보좌관이 전화하여 만나게 되었고, 그 의원은 딸을 데리고 나왔다. 딸이 비서였는데(국회의원 비서 월급은 세금에서 나간다) 나는 취직 부탁을 하는 것으로 오해했었다. 밥만 먹고 헤어졌고 그것으로 끝이었다. 내 사업 규모가 작아서였는지는 몰라도 주변 어른들 말과는 달리 국회의원 안다고 해서 도움이 될 만한 것은 전혀 없었고 도움을 청할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또 한 번은 10여 년 전 고교 동창 중 국회의원이 한 명 있었는데 동창회에서 우리 기수에서 유일한 국회의원이니10만 원씩 후원금을 보내자는 운동 비슷한 것이 있어서 500만 원을 계좌이체하였더니 대번에 보좌관에게서 감사 전화가 왔다. 사실 나는 그 의원 친구에게 안부 전화도 한 적 없고 어쩌다 동창 모임에서 보아도 인사조차 안 했었다. 그런데도 왜 그렇게 많이 하였느냐고? 동창자녀의 결혼식에는 거의 가지 않는데 10만 원이나 20만 원을 부조하면 나중에 부자가 겨우 이것뿐이냐고 욕을 먹는다(직원 결혼식에도 가지 않는다. 내가 가서 네 말대로 ‘자리를 빛내주고’ 50만 원을 부조할까? 아니면 안 가고 ‘100만 원을 부조할까? 물으면 모두 다 100만 원 쪽을 택한다). 어쨌든 공개적인 모금에서는 내가 내는 액수가 제일 클 것으로 동창들이 기대하므로 그 기대에 어느 정도는 맞춰줘야 했기에 그렇게 되었다.
[정치후원금은 현재 개인만 줄 수 있고 법인은 줄 수 없다. 500만 원을 주면 83만 5천 원을 세액 공제받는다( 10만 원까지는 전액 세액 공제이므로 소득이 있는 후원자는 한 푼도 손해 보지 않으며, 10만 원을 초과하는 490만 원은 15% 인 73만5천 원을 세액 공제 받는다). 곽상도가 후원금을 받았던 2017년 당시 최고소득세율(소득세+지방세) 44%에 해당하는 사람(과세표준 5억 이상) 이 500만 원 후원을 안 한 경우라면 본래 44%인 220만 원을 세금으로 내야 하지만 후원을 하면 세금에서 73만 5천 원을 깎아주고 136만 5천 원은 세금으로 내야 한다. 결국 후원금 5백만 원을 준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 그 금액은 5백만 원이 아니라 636만 5천 원이 된다. 그러므로 나처럼 졸지에 낸 경우가 아닌 이상, 정치후원금 500만 원은 아무나 낼 금액이 아닌 것이다.
그럴 리는 전혀 없겠지만 굳이 ‘개인적 사심은 전혀 없고 오로지 국가와 민족을 위한 순수한 마음으로 후원하고자 한다면’ 정치인들의 출판 기념회 참석이 더 싸게 들 것이다. 대필작가가 쓴,자기 자랑하는 책이 대부분이지만 법인의 문화 접대비로 구입하면 비용처리도 가능하다. 나는 초대장은 여러 번 받았으나 단 한 번도 가지 않았다.]
곽상도의 경우 아들이 입사한 뒤, 화천대유 이성문 대표로부터 정치후원금을 2016년과 2019년에 각 500만 원, 2017년에는 남욱 변호사와 정영학 회계사로부터 각 500만 원, 남욱의 아내한테도 500만 원을 받았다. 아내 명의까지 사용한 것은 정치후원금법(한 사람이 1년간 국회의원 1인에게 최대 500만 원 후원할 수 있다) 에 걸리지 않으려는 ‘쪼개기 후원’이 분명한 것 아닌가? 세법에서는 증여와 관련하여 부부를 일심동체로 보는데 어째서 정치후원금법에서는 부부 각각의 정치 후원금을 별개로 보아야 하는지 영문을 모르겠다. 어쨌든 왜 그렇게 후원금을 주었을까? ‘개인적 사심은 전혀 없고 오로지 국가와 민족을 위한 순수한 마음으로’? 농담하냐? 화천대유에서 방패막이 보험에 가입하는 마음이었겠지.
2. 곽상도는 이른바 수원 지검 형사 사건에서 조사를 받던 남욱을 몇 차례 만나 구두로 법률 상담을 해주었다. 그 때문에 곽상도는 추후 국회의원 선거운동 중에 남욱으로부터 받은 5천만 원은 정치자금이 아니라 변호사비라고 계속 주장하였는데 이것을 살펴보자. 남욱 부터가 변호사였지만 이미 그 당시 3개의 법무법인과 4명의 변호사를 선임한 상황이었다(변호사조차 자신이 형사 사건 피의자가 되면 그렇게 많은 변호사들을 선임한다는 것을 나도 처음 알았다. 이게 뭘 의미하는 것일까?).
그런 상태에서 위임 계약도 없이 남욱에게 대화로만 법률 상담을 해 준 변호사는 곽상도와 최재경이었다. 곽상도처럼 민정수석을 하였던 전관 출신 변호사 최재경은 남욱이 나중에 무혐의 처분을 받은 이후 김만배를 통해1억 원을 전달하자 터무니없다고 수령을 거절하였다. 당연하지 않은가. 몇 차례 몇 마디 상담해주었다고 거액의 변호사비를 주거나 받는다면 정말 웃기는 일 아닌가?
하지만 곽상도는 소송 서류조차 작성한 적도 없는데 몇 차례 만나 상담해 준대가로 5천만 원을 받은 것이므로 변호사비이지 정치자금이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판결문에서도 “곽상도의 경력을 고려하더라도 법률 상담에 대한 대가라는 5,천만 원은 지나치게 과다하여 사회 통념상 정당한 변호사 보수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그렇다면 곽상도가 주장한 근거는 도대체 뭘까? 웬 놈의 변호사비가 그렇게나 비쌀까?
////아래 부분은 2023년 4월4일 조선일보 세이노의 가르침 컬럼에서 사용된 부분인데 세이노의 가르침 책에서 이미 나오는 내용이 일부 사용되었다.///
민사소송에서의 변호사비(선임비 혹은 수임료라고도 한다)는 소가가 얼마냐, 사건이 얼마나 복잡하냐 등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100만 원 이하도 있지만 일반적인 개인 간 다툼은300만~500만 원 선이고 성공 사례비가 별도로 붙는다. 변호사는 판결보다는 조정이나 합의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다. 조정이나 화해는 원고와 피고가 구두로 협의해 결정하는 것으로, 조정위원이 하는 역할은 미미한 경우도 있지만 가까운 사람들끼리의 분쟁에서는 빛을 발하기도 한다. 따라서 수임 계약을 할 때 승소가 아니라 조정이나 합의에 의해 소송이 끝나면 성공 사례비는 없거나 할인받는 조건으로 진행하길 추천한다. 보통 상담료는 사무장이 아닌 변호사와 직접 해도 30분 정도에 5만~10만 원이고 선임하면 이미 낸 상담료는 선임비에서 차감해 준다. 여러 법률 플랫폼을 이용하는 것도 권한다.
[2005년에 등장한 로마켓(LawMarket)이라는 플랫폼에서는 변호사 개개인의 신상 정보, 지난 10년간의 승소율, 전문성 지수, 인맥 지수 등 다양한정보를 제공하였다. 당시 상당히 인기가 많았으나 변호사들이 난리를 치면서 민사소송 및 형사고소로 이어졌고 결국 폐쇄되었다. 인맥 지수는 재판부 판사와 고등학교 ㆍ대학교 ㆍ사법연수원 등을 같이 나온 변호사를 찾아주는 것이었고 승소율은 각 변호사가 맡았던 소송에서 승소한 경우가 몇 번이나 있었는지를 한눈에 보여주었다.]
민사소송은 ‘네가 옳으냐 내가 옳으냐’ 하는 변호사들끼리의 다툼이라고 볼 수 있지만 형사소송은 변호사가 판검사를 상대로 하는 소송이며 사건 내용에 따라 보수가 크게 달라진다. 직설적으로 말하면, 변호사 입장에서 적은 시간에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사건은 민사소송이 아니라 형사소송이다. (내가 낸 세금 등을 돌려 달라는 식의 행정소송은 소가(訴價)에 좌우된다.) 피고인이 교도소에 들어갈지, 들어가면 얼마나 오래 갇힐지가 달려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재력 있는 피고인은 돈보따리를 수억이건 수십억이건 기꺼이 풀려고 한다. 급한 마음에 판검사 고위직에 있다가 최근에 나온(이른바 전관 출신) 변호사도 선택하게 된다.
즉 돈 주는 사람은 “저 사람이 선후배 인맥을 통하여 내 사건 관련 검사에게 압력을 넣거나 판사에게 영향력을 발휘하여 내게 유리한 결과를 만들 수도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에 사회 통념을 무시하는 거액을 제시하는 것이다. 절대로 저 사람이 다른 변호사들보다 더 똑똑하다거나 유능하다거나 해서 돈을 주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런 심리에 동승하여 전관 출신 중 일부는 자기 파워를 은연중 과시하며 때로는 맨입으로도 세금계산서 없이 거액을 받아낸다. 전관예우 기대감에 피의자들이 지갑을 여니까,전직 대법관이나 검사장 출신이 변호사 개업 후 몇 개월 만에 수십억 원을 버는 일도 흔하다. 내가 개인적으로 아는 변호사 중 한 명은 부장검사 출신인데 나이 예순에 70억원 정도의 재산을 갖고 있었고 세금은 별로 내지 않았다. 하지만 때로는 피의자가 거의 속아서 크게 바가지를 쓴 것으로 보이는 경우도 종종 보인다.
실제로 2018년 10월 대법원이 발표한 ‘전관예우 실태조사 및 근절방안 마련을 위한 연구 보고서’에 의하면 법조 관련 종사자 1391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검사는42.9%, 변호사는 75.8%가 전관예우를 인정했다. 판사들조차23.2%가 전관 변호사 특혜가 존재한다고 답했다. 검사의 15.9%는 전관 변호사가 개입되면 기소와 불기소 여부가 바뀐다고 했다. 판사의 13.3%는 형사재판의 결론을 바꿀 수 있다고 답했다.
왜 그럴까? 같이 일하던 선후배 관계니까 그렇다. 때문에 판검사직 퇴임 1년 미만의 변호사의 수임료가 가장 비싼데 퇴임 전 같이 일했던 판검사들이 소송을 대부분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퇴임 1년 이상이 되면 수임료가 떨어지는데 매년 인사이동과 함께 새로운 퇴임자가 나올 뿐만 아니라, 같이 일했던 판검사들이 다른 곳으로 갔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판검사가 선후배 관계라고 해서 비싼 돈 주고 선임을 하였더니 재판 중에 그 선후배 판검사가 다른 판검사로 교체되는 경우도 자주 있다.
전관예우 관행을 없애고자(또는 없애려고 하는 것처럼 보이고 싶어서) 2011년에 변호사법 제31조 제3항에서 판검사 출신 변호사는 퇴직 이전 1년 이상 근무한 곳에서의 사건을 1년간 수임할 수 없도록 명시하였지만 그것을 어겨도 형사 처벌 벌칙은 없는 허수아비 법일 뿐이며 그것마저도 빠져나가는 수법이 있는데 생략한다. 어쨌든 전관예우 관행을 현실성 있게 차단하고자 변호사법에서 수임 제한 기간 1년을 2년으로 늘리고 변호인 선임계 제출없이 하는 ‘몰래 변론’에 대해서는 형사처벌하자는 개정안이 2016년에 발의되기도 하였으나 언론의 주목도 크게 받지 못한 채 시간을 끌다가 폐기되었다. 2021년에도 수임 제한 기간 1년을 최대 3년으로 늘리고 ‘몰래 변론’을 형사처벌 하자는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한 후 국회에 제출까지 되었으나(조선일보 2021.06.30) 마찬가지로 폐기되었다.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초록은 동색(同色) 이어서 그렇지 않을까?
그렇다면 현직에 남아있는 그 똑똑한 판검사들 중 일부는 아무리 선후배 사이였다 할지라도 어째서 이미 퇴직한 사람들의 변론에 귀를 기울이는 것일까? 그 퇴직자의 현재가 자신의 미래 모습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양심을 모두 던져버리는 경우는 정말 드물다는 것이 내 믿음이다.즉 아무리 전관 출신 변호사를 선임하였다 할지라도 그 효과가 발휘되려면 법적으로 근거가 있어야 하고 근거만 있으면 굳이 비싸기만 한(사무장들이 턱없이 비싸게 부르는 경우가 많다) 전관 출신에 의지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내 주변의 일반인들부터가 형사 사건에 휘말리면 여전히 전관 출신이 더 낫다고 믿고 내게 그런 변호사를 찾아 달라고 한다. 어쩌겠냐. )
[갖가지 소송을 수십번 해 본 나는 변호사의 이력보다는 사실관계를 더 중시한다. 약 15년 전 서울청 조사 4국(주로 재벌기업 담당)은 내가 경영하는 사업장을 세무사찰(비정기 세무조사) 한 뒤 그 사업장이 있던 도시 시청에 70억 원 상당의 부동산 실명법 위반으로 통보하였다. 시청에서는 그 통보에 따라 경영인이었던 나를 경찰서에 고발하였다. 그래서 소환장을 받고 불려 가 조사를 받은 후 ‘증거불충분’ 결정을 받았으나 시청에서 검찰에 재고발하여 지방검찰에서 또 조사를 받았는데 ‘혐의없음(범죄 인정 안됨)’으로 나왔다 . 하지만 시청에서 항고하여 서울고등검찰청에서 또 조사를 받았고 결과는 ‘항고 기각’ 이었다. 그러자 시청에서 대검찰청에 재항고하였는데 대검찰청에서는 이 사건 관련된 행정 소송(부동산 실명법 위반 과징금부과 취소 청구소송) 1심에서 내가 그 당시 절반만 승소하였기에 수상하다고 다시 사건을 지방검찰로 넘겼다. 그래서 또 지방검찰에 가서 조사를 받았는데 ‘혐의없음(증거불충분). 이번에는 시청에서 더 이상 액션을 취하지 않아서 ‘혐의없음’으로 확정되었다. 이게 약 2년 반 정도 걸렸다. 그동안 내가 전관 변호사를 고용했을까? 아니다. 내가 직접 사실관계만 집중적으로 서류에 작성하고 설명했다. 왜 시청에서는 그렇게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을까? 다른 일로 인하여(내 책 523쪽 참고) 내가 미운털이 박혀 있었기 때문이다.]
유명 대형 로펌들은 어떨까? 10여년 전 그냥 가볍게 알던 어느 주한 외국 대사 한 명이 갑자기 친한 척하며 나를 대사관저에 저녁 식사 초대를 하였다. 식사 후 웬 서류 보따리를 내놓았는데 건물 매매 건이었다. 대사관에서 사용하려고 부동산을 200억 가까운 돈을 주고 매입했는데, 소유권 등기가 안 된다는 것이었다.
서류를 보니 국내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대형 로펌이 계약 초기 단계부터 진행하고 있었다. 부동산은 6년전 부부가 매수하면서 메입등기를 하는 동시에 명의를 신탁회사로 돌려 놓았고, 신탁회사 동의 하에 대출을 받았으나 등기부에서는 그 대출 내역이 나오지 않았다. 이런 경우 소유권 명의자인 신탁회사가 매매계약의 매도자로 나오거나 당사자로 참여했어야 하는데 정작 계약서에는 매도인 부부 2인, 매수인 대사관만 나와 있었다. 즉 등기명의를 갖고 있는 신탁회사를 무시하고 매도인과 매수인이 자기들끼리 돈을 주고 받는 형태였다.
물론 매도인(부부)이 매수인(대사관)으로부터 돈을 받아 신탁해지에 필요한 비용을 신탁회사에 주고 등기명의를 대사관으로 넘기는 것이 동시이행으로 명시되어 있긴 했다. 하지만 매수자가 돈을 갖고 매도인을 쫓아다니며 확인하지 않는 이상 이행의무가 잘 지켜졌는지는 나중에야 알게 된다.
결국 매도인 부부는 잔금까지 모두 다 받고 신탁 말소도 전혀 하지 않은 채 미국으로 도망쳤다. 내 조언은 대사관에서 사용하는 부동산은 치외법권이므로 계속 점유 가능하다는 점과 매매 계약서를 잘못 작성한 대형 로펌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하고 검찰에 그 부부를 고소하는 것 등이었다.대사관은 이 문제를 풀기까지 4년 정도 걸렸다.
대형 로펌이라고 해서 무조건 신뢰하지 말고, 담당 변호사 개인의 경험과 역량을 확인해야 한다.(신탁명의 부동산을 매입할 때는 신탁원부를 가까운 등기소에 가서 발급받아 그 내용을 확인하여라. 인터넷으로 발급대행하여 주는 업체도 있다)
수십번의 소송 경험자로서 내가 들려주고 싶은 조언은 이렇다.
어떤 소송이건 간에 정확한 사실 관계 파악이 우선이다. 변호사를 찾아가기 전에 먼저 사실 관계부터 정리해서 꼼꼼하게 글로 적어놓고 반대 입장에 서서 살펴봐야 한다. 절대로 입으로만 설명하려고 하면 안 된다. 그래야 논리를 제대로 전개시킬 수 있다. 물론 당신 스스로가 먼저 양심상 떳떳하여야 할 것이다.
3. 곽상도는 변호사비를 얼마나 받았을까. 2012년 미래저축은행의 김찬경 전 회장이 중국으로 밀항하려다가 체포되었을 때 변호사도 곽상도인데 보도에 의하면 당시 수임료 5억원을 받았고 김찬경은 1심에서 징역 9년형을 받았다. 김찬경이 5억이나 지급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검찰이 불과 3년 전인 2009년에 서정기와 이 모 씨가 불법 자금으로 경기도의 한 농장을 사들인 것을 조사할 때 곽상도가 선임계도 내지 않은 채 변론을 하였고 결국 검찰의 불법 자금 조사가 중지되었다는 사실을 누군가 전해주었기에 곽상도에게 희망을 걸고 그러지 않았을까?
서 씨 일당 사기범들의 불법 자금 땅 매입 조사 당시 곽상도는 검찰에 가서 땅 매입 자금이 불법 자금이 아니라고 해명하여 주었고, 변호사비로 서 씨에게 6600만 원, 이씨에게 2천만 원을 받았다(TV조선 2016년6월28일 8시 뉴스). 그 사기범들은 2014년3월이 되어서야 1조8000억 원대의 금융사기로 구속되었으나 그에 앞서 그 땅에 곽상도 명의로 채권최고액 1억6700만원이 근저당까지 설정되어 있었던 것도(시사IN 2014년6월9일) 사기범들이 곽상도를 방패막이로 기대하며 땅을 담보로 주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2013년3월 곽상도가 박근혜 정부의 초대민정수석이 되자 근저당 설정은 해지되었으나 5개월 후 민정수석에서 경질된 후 다시 1000만 원을 받고 서 씨의 변호를 맡았다. 그때까지 그가 받았음이 드러난 합계 9600만 원의 이른바 ‘변호사 비’는 세무신고를 하지 않았음도 시사IN과 곽상도의 소송에서 드러나기도 했다(그 소송에서 곽상도는 패소했다).
이러한 사례들은 모두 끗발 있는 전관 출신 변호사의 경우 돈 보따리를 싸 들고 가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임을 보여주는데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마음에 그러는 것일 뿐, 그 효과가 발휘되려면 법적으로 근거가 있어야 하고 근거만 있으면 굳이 비싸기만 한( 사무장들이 턱없이 비싸게 부르는 경우가 많다) 전관 출신에 의지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내 주변의 일반인들부터가 형사사건에 휘말리면 여전히 전관 출신이 더 낫다고 믿고 내게 그런 변호사를 찾아달라고 한다. 어쩌겠냐.)
어쨌든 곽상도는 국회의원 후보가 되기 전부터 액수도 말하지 않은 채 남욱의 변호사 선임비를 달라고 요구했다. 그가 선거 운동하던 중 남욱이 현금 5만 원권 100매 묶음 10뭉치를 쇼핑백에 담아 전달할 때는 “정치 자금으로 받으면 안 되는 것 아니냐, 정치 자금으로 받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였다고 했다. 남욱은 “변호사 비용”이라고 말하며 전달하였고 정치 자금 얘기는 들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고 했다.
고액현금거래 보고제도에 따라 그 당시 5천만 원을 현금화하려면 3일은 은행에 가거나 금액을 2천 미만으로 쪼개서 각기 다른 은행 세 군데에서 인출하여야 했다.
(지금은 1일 1은행별 1천만 원으로 인출 금액 제한이 있지만 여전히 고액현금거래 보고제도를 피하고자 건설사를 통해 회계장부에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거액의 현금을 만드는 수법이 있다. 건설사는 일당을 준다는 핑계로 몇 억이라도 은행에서 현금으로 찾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수법을 국세청에서는 잘 모르는 것 같은데 건설사 계좌에서 수표 입금과 현금인출액, 1 일당 인건비 총액 등을 정리 후 비교만 하여도 검은돈의 흔적을 잡아낼 수 있지 않을까?)
변호사 비용이라면 송금해주거나 수표로 주면 되는데 왜 굳이 어렵게 현금을 만들어 들고 갔을까? 변호사 비용으로 주는 게 아니니까, 흔적이 남으면 안 되니까 그런 것임은 누구라도 알지 않을까? 결국 남욱도 법률 기술자이므로 면피하려면 변호사 비용으로 준 것으로 말하여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곽상도도 법률 기술자이므로 면피하고자 정치 자금이 아니라고 말하여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 아닐까?
그 돈이 변호사 비용이 아니라는 것은 세금계산서가 발행된 적도 없다는 사실에서도 나타난다. 아쉬운 것은 정치자금법 제45조에서 나오는 벌칙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곽상도에게 내려진 판결은 고작 8백만 원의 벌금 및 5천만 원의 추징금이었다(법을 만드는 것은 국회의원들이고 정치자금법은 자기들을 옥죄는 법이므로 당연히 벌칙을 가볍게 만드는 쪽으로 입법화하지 않았을까 의심이 간다. 입법자들과 직접적으로 관련되는 모든 법에서의 벌칙은 스위스의 선택적 국민투표와 유사한 제도를 통해 국민이 견제하는 제도가 생겨나기를 꿈꿔 본다.)
4. 지구가 돈다는 지동설을 주장하였던 갈릴레이 갈릴레오는 종교재판을 받았을 때 재판정에서는 지구를 중심으로 천체가 돌아간다는 천동설을 받아들였지만, 재판이 끝난 후에는 혼잣말로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하였다는 이야기가 있다. 누군가 지어낸 것이라고는 하지만 지식인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나는 이야기 아닐까? 현실에서 갈릴레오처럼 당신이 어제까지는 A라고 주장하던 것을 오늘은 재판정에서 A가 아니라 B라고 말해야 한다면 스스로 자기 자신의 신념이나 가치관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2008년 1월, 그 전년에 신설된 대구지검 서부지청은 신설 후 처리한 2만 2천621건의 기소사건에서 단 한 건의 무죄도 선고되지 않았음을 보도자료로 배포하면서 “적극적이고 치밀한 수사, 영상녹화와 전화 진술 녹음을 적극 활용한 수사 등으로 수사의 신뢰성을 높인 데 따른 것”이라고 지청장이 말했는데 그가 곽상도였다. 그는 20년 이상 검사 생활을한 뒤 변호사 생활 몇 년 하고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을 6개월 정도 한 후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장으로 있다가 국회의원으로 활동한 사람이다. 하지만 판결문에서 곽상도를 살펴보면 그는 어제까지는 A를 A라고 하였으나 오늘은 B라고 말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물론 나도 안다. 곽상도처럼 검사 생활을 오래하다가 변호사로 전업한 사람 중 일부는 처음부터 변호사로 개업하였거나 판사 생활 후 변호사가 된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어제까지는 죄를 파헤쳤으나 직업상 오늘은 정반대로 죄를 덮어주고 감춰주어야 한다는 것을.
지금은 이미 돌아가신 검사장 출신의 변호사(내 책 280쪽 에서 사기를 당한 후 묫자리를 보러 다니셨다는 분)와 어느 날 갑자기 만났을 때 들었던 이야기: “내가 천벌을 받은 것 같아. 검사로 수십 년 일할 때는 죄지은 자들이 벌 받게 하려고 열심히 밤을 새운 적도 많았는데 변호사로는 내가 한 게 뭔지 아나? 죄지은 놈들이 벌받지 않게 하려고 열심히 감춰주고 축소하고 발뺌하게 한 것들뿐이었어. 그러니 내가 사기당한 것은 결국 천벌 아니겠어? 돈독에 빠진 거였어. “그때 그분의 눈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곽상도처럼 의뢰인의 죄를 변호해주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행동에 대해 설명하여야 하는 경우는 어떨까? 내 눈에 보이는 것은 자신의 죄를 “열심히 감추거나 축소하거나 발뺌하는” 모습들뿐이고 검사 시절의 가치관은 스스로 쓰레기통으로 던진 듯 보였다. 이런 경우 너무나 큰 심리적 갈등으로 술을 마시거나 불면증에 시달리며 극단적 선택을 생각할 수도 있다고 믿었는데… 50억 퇴직금 관련하여 판결문을 살펴보니 아무래도 내가 인간의 실체를 알려면 세상을 좀 더 살아봐야 할 듯싶다. (부가세법 및 소득세법 위반이 빈번히 나오므로 국세청은 부과제척기간을 따져 추징하기를 바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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