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람사르 총회 방문지, 1억 4천만 년 전의 생태계, 생태계의 고문서. 모두 경남 창녕의 우포늪을 일컫는 말이다. 평상시 수심 1~2m의 얕은 습지대인 우포는 160여종의 조류와 28종의 어류를 포함해 1천여 종의 생물이 살고 있다.
우리는 불과 100년 전 건축물을 보고 ‘근현대문화유산’이라고 부른다. 또한 천 년 전 유적을 보며 ‘보물’이란 칭호를 아끼지 않는다. 그렇다면 1억 4천만 년 전의 생태계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우포늪은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 경남 창녕의 우포늪은 1997년 생태계 특별보호구역으로 지정됐고 1998년에는 국제습지조약에서 보존습지로 지정했다. 또한 지난 2008년 이곳에서 람사르 총회가 열리면서 한반도에 있는 생태계의 보물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우포늪에서 새들이 무리지어 날고 있다. |이다일기자
우포늪의 새벽
우포늪은 사진작가들의 출사지로도 유명하다. 물안개가 낀 우포늪에 조각배가 떠가는 모습의 사진작품은 우리가 주변에서 자주 접한다. 새벽풍경을 놓치지 않기 위해 아직은 어둑어둑한 시간 우포로 향했다. 입구 안내판에서 일출을 볼 수 있다고 표시된 지점으로 걸어가자 이미 몇몇 사진작가들이 삼각대를 걸쳐놓고 해가 뜨기를 기다린다. 새들도 아직은 잠에서 깨지 않았는지 고요하다. 동이 트자 희뿌연 안개 속에서 우포의 모습이 드러난다. 사진작가들은 연신 셔터를 눌러대고 날갯짓을 하는 오리들과 풀벌레소리가 살아나기 시작했다.
우포늪의 동쪽, 3.1km의 대대제방의 직선 길은 안개로 끝이 보이지 않는다. 자전거를 타고 안개 속으로 들어간 마을 주민은 금세 모습을 감췄다. 일출을 보고 났으니 이제 방향을 바꿔 서쪽으로 향했다. 해를 등지고 산책로 옆에 피어난 꽃을 보며 목포제방을 향해 길을 걸었다. 초가을의 새벽이라 춥기보단 선선하다는 표현이 적당하다. 밤새 뿜어져 나왔을 산소와 탁 트인 우포의 경치는 가슴속까지 맑게 해준다. 산책로 가까이 물가에도 오리가족이 자맥질을 하고 있다. 방해하지 않으려 조용조용 걸어도 눈치 빠른 녀석들은 금세 푸드덕하며 날아간다.
길가에선 소리 없는 생태계의 전쟁이 계속된다. |이다일기자
1억4천만 년 전 생태계가 그대로
이동네 사람들은 우포를 ‘소벌’이라 불렀다. 우포 북쪽에 있는 우항산(일명, 소목산)을 하늘에서 보면 마치 소의 목처럼 생겨서 소가 목을 내밀고 우포늪의 물을 마시는 모양이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1.8km의 제1탐방로를 따라 천천히 걸어보니 한걸음 마다 곤충과 새들 그리고 식물의 경치가 다르게 느껴진다. ‘관찰대’의 작은 구멍으로 늪을 바라봤다. 새들의 안방을 훔쳐보는 듯 자연모습이 그대로 눈에 들어온다.
우포를 한눈에 바라보려면 전망대를 올라가는 것이 좋다. 입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계단 길로 약 100m를 올라가면 나무의 키를 훌쩍 넘긴 높이에서 우포를 바라볼 수 있다. 해가 조금 더 높이 떠오르자 멀리서 새들이 무리지어 날고 풀벌레소리가 들리며 조금씩 파릇하게 변해간다. 이곳이 1억 4천만 년 전의 생태계 모습을 아직도 갖고 있단 얘기가 허투로 들리지 않는 이유가 바로 이런 풍경에 있었다. 실제로 우포늪이 속한 창녕군 유어면 세진리에는 공룡발자국화석이 발견됐다. 이뿐만이 아니라 오랜 시간 생명체가 태어나고 죽어간 늪의 바닥은 두터운 부식층을 형성해 ‘살아있는 자연사 박물관’이라 불린다.
걷기 좋은 습지, 기능도 다양해
소벌이라 불리는 우포, 나무벌 목포, 모래펄 사지포 그리고 쪽지벌까지 우포늪은 4개의 지역으로 구분된다. 각기 다른 늪 마다 2~4km의 탐방로가 마련돼 있다. 게다가 주변엔 1000여종의 생명체가 살아 숨 쉬고 있으니 이곳을 걷다보면 마치 자연과 한 몸이 된 느낌을 받는다. 제주의 올레길이 넓고 푸른 바다를 보며 걸을 수 있다면 우포의 길은 아기자기한 생명체와 호흡을 같이하며 걸을 수 있는 길이다. 길옆에선 거미줄에 걸린 잠자리가 필사의 탈출을 시도하고 있고 귀여운 새끼오리들은 어미를 따라 먹이사냥에 나섰다. 우포가 혼자 걸어도 외롭지 않은 이유는 바로 다양한 생명체들과 함께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주차장 바로 앞에 있는 생태관에서 볼 수 있는 습지의 기능은 참으로 다양하다. 수생식물, 어류, 조류를 비롯해 수많은 생명체의 서식처가 되고 이것은 그대로 인간이 식량을 얻을 수 있는 자원이다. 또한 습지가 머금은 물은 홍수를 예방하고 지구 온난화 예방에도 효과가 있다. 게다가 차곡차곡 쌓인 생태계의 모습은 우리가 살고 있는 생태계 연구를 위한 훌륭한 교재가 된다. 람사르 협약이 아니더라도 이 땅의 습지를 지켜야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경향닷컴 이다일기자 crodail@khan.co.kr>
가는 길/ 철도를 이용하면 동대구역이나 밀양역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창녕으로 가야한다. 시외버스 터미널에서는 도보 3분 거리인 영신버스터미널로 이동해 유어 또는 적교방면 버스를 타고 회룡에서 하차해 30분정도 걸으면 우포늪 입구에 도착한다. 승용차로 갈 경우는 대구와 마산을 잇는 중부내륙고속도로 창녕I.C에서 나와 우회전해서 회룡마을 입구까지 약 5.8km를 간 후 우포늪 표지판을 따라 약 2km를 들어가면 된다.
우포늪 사이버생태공원 http://www.upo.or.kr
우포늪 생태관 지난 2008년 완공된 우포늪 생태관은 습지의 이해를 돕기 위해 구성됐다. 우포늪의 조류, 어류 등 다양한 습지 생물의 기록과 함께 생태환경 이해를 위한 전시물들이 놓여있다. 우포늪을 방문하기 전에 미리 한번 둘러본다면 우포늪에서 보다 많은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다일기자)
습지생활 조형물 우포늪생태관 앞에 마련된 조형물이다. 우포늪은 깊이가 불과 1~2m밖에 되지 않아 대부분이 성인 가슴높이도 되지 않는다. 이곳에서 쪽배를 타고 고기를 잡았던 모습이다. 깊지 않고 수생식물이 많아 긴 장대가 배를 저어 나가기 편리했고 얕은 습지기 때문에 배는 평평한 바닥을 가지고 있다. (이다일기자)
우포늪의 관광객 2008년 람사르 총회를 계기로 우포늪이 외부에 많이 알려지게 됐다. 평일 오전에도 관광버스를 타고 온 관광객들이 우포늪을 둘러보고 있다. 우포늪은 특별한 시설물이나 빼어난 경관이 있지는 않다. 다만 자연 상태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우포의 가장 큰 장점이다. (이다일기자)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우포늪 우포늪의 전망대는 큰 나무들 너머로 늪의 전경이 잘 보이도록 우포늪의 남쪽 산 중턱에 위치해 있다. 나무로 만들어진 계단을 따라 100m올라가면 나오는 작은 통나무집이 전망대다. 망원경으로 새들을 관찰할 수도 있다. 주변에 마련된 벤치의 시원한 그늘에서 쉬어가는 재미가 있다. (이다일기자)
오솔길 우포늪 동쪽으로 만들어진 제1탐방로를 걷다보면 양 옆으로 수풀이 우거진 오솔길이 나타난다. 우포의 탐방로는 대부분 작은 오솔길들이다. 특히 제1탐방로 끝지점에서 목포제방으로 이어지는 길은 좁은 오솔길을 걸어가는 묘미가 있다. (이다일기자)
습지의 새들 우포늪은 어느 곳을 찍어도 새가 나온다. 그만큼 많다. 멀리 거뭇하게 보이는 오리는 제쳐두더라도 흰색에 S자형 목을 가진 왜가리가 아침식사를 위해 물고기를 잡고 있고 그 아래쪽 수풀 너머엔 흰뺨검둥오리가 줄지어 헤엄치고 있다. (이다일기자)
안개속 산책로 일출 직후 우포늪 대대제방 모습. 물안개가 걷히지 않아 직선에 가까운 3km의 길이 안개속에 갇혔다. 우포늪의 물안개가 낀 모습은 사진 동호인들 사이에 유명한 출사 포인트다. 우포늪 관계자에 따르면 서리가 내리기 시작하는 늦가을이 물안개가 절정이라고 한다. (이다일기자)
우포늪 전경 멀리 우항산이 보인다. 우항산을 중심으로 좌우측이 모두 늪이다. 여의도 면적과 비슷한 70여만평의 크기로 국내 최대규모의 습지다. 지난 1998년 람사르협약에 의해 보존습지로 지정됐다. 창녕군 대합면 주매리와 이방면 안리, 유어면 대대리, 세진리에 걸쳐 있다. (이다일기자)
물안개가 낀 우포늪 우포늪에 물안개가 끼면 몽환적인 경치가 펼쳐진다. 푸른 나무와 풀 사이로 안개가 스며들고 멀리 산 아래 늪에는 하얀 안개가 자욱하게 깔린다. 물안개는 날씨가 추워지는 늦가을에 볼 수 있다. (정지윤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