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휘 및 문장 구성의 기본기
1) 문학의 재료는 언어이다
앞서 글은 언어로 표현되는 문학 행위라 하였다.
그렇다면 시는 어떠한 언어로 써야 하는가?
두말 할 나위도 없이 언어의 예술이라고 하는 시는 보편적이며 우리들에게 친숙한 언어로 씌어져야 한다. 시가 ‘1+1은 2다’ 라는 논리적인 수학이나 과학처럼 어떤 것을 규정하거나 증명해 보이기 위한 수단이 아닌 만큼, 상투적인 언어를 걷어낸 우리들에게 친숙하면서도 참신한(관념적이지 않은) 언어를 선택하는 것이 좋다.
※ ‘똥’은 시적 언어가 되나 ‘대변’은 시적 언어가 되지 못한다. 이 말은 안도현의 일침이다.
자, 그럼 안도현의 ‘똥’에 대한 변론을 들어보자.
‘똥’이라는 말은 얼마나 향기로운가? ‘똥’이 삶의 실체적 진실이라면 ‘대변’은 가식의 언어일 뿐이다. 시는 ‘대변’을 ‘똥’이라고 말하는 양식이다. 그리하여 시는 ‘똥’이라는 말에 녹아 있는 부끄러움까지 독자에게 되돌려주고, 그렇게 함으로써 스스로 즐거워 슬그머니 미소를 띤다.
지난해 여름 나는 지리산 실상사 근처에서 한 보름 지낸 적이 있다. 시집 원고를 정리하기 위해서였다. 번잡한 세상의 일들을 뒤로 밀쳐두고 싶은 욕심도 없지 않았다. 내가 묵은 곳은 산 중턱의 외딴집이었다. 그 집 뒤로는 인가가 한 채도 없었다. 지리산의 한 능선이 구불구불 펼쳐져 있을 뿐이었다. 방안의 가재도구라고는 빗자루와 쓰레받기, 휴지통 하나가 전부였다. 인터넷이나 전화도 없었다. 방 한 칸이 집 한 채인 집이었다. 다행히 전기가 들어와서 밤에 책을 읽을 수 있었고, 마당가 수도꼭지에서 흘러나오는 물로 세수를 할 수 있었다. 그 외딴집은 그야말로 꿈에 그리던 집이었다.
밤늦게 글을 쓰다 보면 늦잠을 자기 마련이어서 아침밥은 걸렀고, 점심과 저녁은 실상사 공양간에서 얻어먹었다. 그렇게 하루 두 끼를 먹고 이튿날 눈을 뜨면 어김없이 뱃속에서 신호가 왔다. 화장실까지 한참을 걸어 내려가야 하는 게 귀찮아서 매일 뒷산에서 ‘큰일’을 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절밥을 먹었으니 땅에게 똥을 돌려주는 일은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삽 한 자루와 휴지만 달랑 들고 숲 속으로 가면 곳곳에 내 똥을 받아줄 자연이 기다리고 있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나는 산에서 똥을 누는 사람이 되었다. 아, 나는 그 아침의 오묘하고 향기로운 냄새를 잊지 못한다. 그것은 똥 혼자서만 풍기는 냄새가 아니었다. 흙과 똥이 어울려 만들어내는 기막힌 화음이었다. 도시의 화장실은 똥을 감추고 그 냄새를 지워버리려고 애를 쓰지만, 흙은 숨기지 않고 아주 익숙하게 받아들일 줄 안다.
사람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양변기에 눈 죽은 똥은 금세 잊어버리고 만다. 하지만 흙속에 눈 똥은 쉽게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흙속에서 똥은 오롯이 살아서 새로운 생명으로 부활하기를 꿈꾸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 덕분에 시 한 편을 얻었다.
사라진 똥 / 안도현
뒷산에 들어가 삽으로 구덩이를 팠다 한 뼘이다
쭈그리고 앉아 한 뼘 안에 똥을 누고 비밀의 문을 마개로 잠그듯 흙 한 삽을 덮었다 말 많이 하는 것보다 입 다물고 사는 게 좋겠다
그리하여 감쪽같이 똥은 사라졌다 나는 휘파람을 불며 산을 내려왔다
─똥은 무엇하고 지내나?
하루 내내 똥이 궁금해
생각을 한 뼘 늘였다가 줄였다가 나는 사라진 똥이 궁금해 생각의 구덩이를 한 뼘
팠다가 덮었다가 했다.
제목은 <사라진 똥>이다. 나는 도라지꽃 앞에서, 싸리꽃 앞에서, 칡꽃 앞에서, 애기원추리꽃 앞에서, 이름도 모를 버섯들 앞에서 매일 똥을 눴다. 그러고는 삽으로 꼭꼭 덮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절밥을 먹고 똥을 땅에게 돌려주었더니 땅은 또 많은 것을 내게 선물하였다. 매미소리, 새소리, 계곡 물소리, 소나무를 지나가는 바람소리가 아침마다 나를 응원하는 듯하였다. (안도현)
‘똥은 더럽다, 또는 똥을 똥이라 쓰면 천박한 표현이다’라고 하는 관념이 우리들 머릿속에 박혀 있는 한 ‘똥’이라는 단어는 죽은 언어가 되어 버린다. 그렇다고 똥을 대변이라 표현했을 때 더욱 고상해지는가? 그렇지는 않다. 우리에게 친숙한 똥이라는 단어를 선택했을 때 시적 울림은 더욱 크다 할 수 있겠다.
이와 같이 시적 언어는 우리가 터부시 하던 것들까지 과감히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
(최영미 시에 이런 싯귀가 있다. ‘컴퓨터와 x하고 싶다’)
자신의 감정과 사상을 제한된 언어를 통해 표현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시에 접근하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상에 대한 느낌이나 자신의 생각을, 말들을 조합해서 드러내는 일은 너무나 막연하고 난감하기만 하다. 그 이유는 자신이 알고 있는 낱, 개의 말들이 한정적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난관을 뛰어넘기 위해서는, 시적인 언어를 많이 습득해야 한다. 습득의 방법은 좋은 시를 많이 읽고 시를 쓰는 훈련을 거듭 하다보면 어느새 언어의 조탁에 눈을 뜨게 된다.
2) 시적(詩的) 언어
반복되는 이야기지만 시의 재료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언어이다. 간장게장을 만들려면 간장과 싱싱한 게가 있어야 한다. 그림을 그리려면 필요한 색깔의 물감이 있어야 하듯 시를 쓰려면 참신한 언어가 있어야 한다. 참신한 언어란 다름 아닌 우리에게 식상하지 않은 언어를 말함이다. 우리말 속에 있는 곱거나 거친 말들을 많이 알고 있는 것이 시 쓰기의 지름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지름길인 멋진 우리말들을 많이 사용한다고 해서 진심이 실리지 않은 언어가 독자를 감동 시킬 수 있을까? 진심이 실린 말이라는 것은 진심을 드러낼 수 있는 낱말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라는 말과도 같다. 문학에서의 언어는 곧 자신의 세계관을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 그러면 자신의 세계관을 드러내는 언어들은 어떤 것인가.
개인이 가진 언어郡은 다르다. 그 사람이 태어나고 자란 환경, 그리고 만나는 사람들과 밀접한 관련이 있게 마련이다. 전라도에서 자란 사람과 경상도에서 자란 사람, 산골에서 자란 사람과 바닷가에서 자란 사람, 도시에서 자란 사람과 시골에서 자란 사람의 언어群은 분명히 다르다. 이렇게 어떤 상황에 반응하고 갈등하면서 형성된 것이 그 사람의 언어 습관이 된다. 그러므로 언어 습관이란 의도적으로 학습된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서서히 스며들어 자연스럽게 축적된 것들이다. 이와 같이 자신의 몸 속에 육화된 언어야말로 남이 흉내 낼 수 없는 자신만의 개성적인 언어이며 자신의 세계관을 드러내는 가장 적절한 시의 언어인 것이다.
[팡(쉼터의 제주어)] : 잠시 쉬어가기
할머니에게 맡겨져 자란 아이가 있었다. 아이가 유치원에 다닐 때, 선생님을 따라 동그라미를 그려놓고선 ‘동글뱅이’라 하고, 화단에 핀 꽃을 보고 “아구 이 고장 잘도 곱다”라고 하여 한바탕 웃은 적이 있다 한다. 그 아이는 할머니가 말하는 ‘동글뱅이’와 ‘고장’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 있었던 것이다. 한동안 친구들과 선생님께 우스갯감이 되던 그 아이는 초등학교 고학년 때 어릴 때의 그 이야기를 써서 전국글짓기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는 일화가 있다.
언어 / 구상
말은 단순한 부호가 아니다
‘하늘’하면 저 하늘이 지닌
모든 신비를 그 말이 담고 있고
‘땅’하면 땅이 거느리고 있는
모든 사물을 그 말이 담고 있느니
그래서 낱말 하나하나가 소우주다---------------①
말은 지시기능만을 지닌 게 아니라
미묘한 정서기능을 지니고 있다
‘어’해 다르고 ‘아’해 다르지 않은가
어순과 어조의 강약과 고저장단에 따라
그 말의 감응과 감동은 전혀 달라지느니
그래서 시인의 말은 걸음이 아니라 춤이요,
춤 맵시처럼 아름다운 말씨만이 되풀이된다-----------②
말과 생각과 느낌은 둘이 아니다
우리는 말로써 사물을 포착한다
그래서 언어는 존재의 집이요,
그 존재의 영역도 말이 한정하느니
등불의 강약에 따라 모습을 드러내듯
존재에 대한 인식의 깊이와 넓이가
그 말의 깊이와 넓이를 결정한다---------------③
시는 말의 치장술이 아니다
아무리 말이 번드레하고 교묘하더라도
그 말에 담겨진 진실이 없으면
그 말이 가슴에 와서 닿지 않느니
시의 표상도 실재가 수반되지 않으면
공감과 감동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시인이여, 그대들은 기어(綺語)의 죄를 범하여
저 무간지옥에 던져질까 두려워하라------------④
① 연은 언어가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가라는 존재 자체에 대해
② 연은 언어의 지시기능과 정서적 기능을
③ 연은 언어가 없으면 사물이나 생각, 느낌을 담을 수 없다는,
(인식의 깊이와 넓이도 언어에 의해 한정 된다)
④ 연은 시를 쓸 때, 치장술을 사용치 말고 진실(실재)이 담겨진
표상능력을 기르라는 말. 그래야 공감과 감동을 줄 수 있다
안도현은 시적 언어의 선별에 대해서 아래에 열거한 하얗게 풍화된 죽은 말들을 쓰지 말라고 한다.
갈등 갈망 갈증 감사 감정 개성 격정 결실 고독 고백 고별 고통 고해 공간 공허 관념 관망 광명 광휘 군림 굴욕 귀가 귀향 긍정 기도 기억 기원 긴장 낭만 내공 내면 도취 독백 독선 동심 명멸 모욕 문명 미명 반역 반추 배반 번뇌 본연 부재 부정 부활 분노 불면 비분 비원 삭막 산화 상실 상징 생명 소유 순정 시간 신뢰 심판 아집 아첨 암담 암흑 애련 애수 애정 애증 양식 여운 역류 연소 열애 열정 영겁 영광 영원 영혼 예감 예지 오만 오욕 오한 오해 욕망 용서 운명 원망 원시 위선 위안 위협 의식 의지 이국 이념 이별 이역 인생 인식 인연 일상 임종 잉태 자비 자유 자학 잔영 저주 전설 절망 절정 정신 정의 존재 존중 종교 증오 진실 질서 질식 질투 차별 참혹 처절 청춘 추억 축복 침묵 쾌락 탄생 태만 태초 퇴화 패망 편견 폐허 평화 품격 풍자 피폐 필연 해석 행복 향수 허락 허세 허위 현실 혼령 화려 화해 환송 황폐 회상 회억 회의 회한 후회 휴식 희망
무슨 말이냐 하면 귀에 질리도록 들은 이야기가 진부하듯 우리 머릿속에 새겨져 있는 관념어들은 시어로서 적합하지 않다는 뜻이다. 누군가 처음에 갈등이라는 말을 썼을 때는 고상하고 그럴듯하게 보여졌겠으나 지금은 아마 여러분들도 신선한 충격은커녕 대수롭지 않다고 여길 것이다. 가령, ‘갈등’이라는 말 대신에 ‘네가 왼쪽으로 난 길을 가고 있을 때 나는 오른쪽 길로 가고 있다’ 라고 쓴다면 서로 엇갈림에 대한 감정의 폭이 더 크게 나타나며 ‘갈망’이라는 말 대신에 ‘한 눈 가득 그리움을 담은 눈물이 그렁그렁하다’라고 쓴다면 시인이 갈망하는 것에 대한 그리움이 절절이 배어나는 시적 표현이 된다. 또한 굳어진 관념도 버려야 한다. 바늘 가는데 실이 따라와선 안된다. 바늘 가는데 뱀이 따라와야 시가 된다.
3) 시의 언어는 그 자체가 목적이 된다
① 이 땅에 평화가 왔다.
이 문장은 객관적 문장이면서 구체적 사실에 대한 진술이다.
② 이 땅에 비둘기가 날아왔다
이 문장은 평화를 비둘기로 표현한 주관적 감정에 의한 문장이다.
즉, 주관적 느낌, 곧 정서의 반응에서 비롯된 문장이 된다
위의 두 문장을 비교해보면
①의 평화는 사전적 의미로서 지시적 기능을 갖고 있으며
②의 비둘기는 지시적 기능을 벗어난 함축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비둘기는 평화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시의 언어는 그 자체가 목적이 된다는 이론이 성립된다. 이 말은 시의 언어는 비유와 상징, 함축으로 이루어지며 공간과 시간을 통합하는 하나의 울림으로 언어 그 자체가 존재이며 목적이라는 뜻이다.
이제 우리는 시에 대한 정의와 시적인 언어가 무엇인가를 알았다.
그러면 자신이 습득한 언어로 어떻게 시의 문장을 만들 것인가에 대한 공부가 필요하다.
자신이 습득한 언어를 문장의 적재적소에 배치할 수 있는 능력은 곧 어휘력이 된다.
같은 종류의 말이라도 전체 문맥의 흐름과 분위기에 맞게 잘 골라 쓸 줄 알아야 한다.
이를테면 ‘쓸쓸하다’고 해도 무방할 자리에 ‘고독하다’라고 표현했다 하자.
‘쓸쓸하다’라는 어감이 주는 여운은 사라지고 ‘고독하다’라는 표현은 어쩐지 의미 단절을 가져오는듯한 딱딱한 느낌이 앞서지 않은가.
좋은 문장이란 한마디로 군더더기가 없고 읽기에 편하도록 적절한 호흡을 가진 문장이다.
너무 긴 문장이 장황하게 계속되면 문맥의 의미가 불투명해지고 읽기에 불편하며, 너무 짧은 문장이 반복되면 단조로운 느낌을 주게 된다. 탄력 있는 문장은 사랑의 줄다리기를 하듯 길고 짧은 문장이 적당하게 섞이면서 이어져야 한다. 문장과 문장이 유기적 관계에 놓여져 있어야 한다.
김훈은 소설 <칼의 노래> 중 처음에 나오는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라는 문장에서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와 ‘버려진 섬마다 꽃은 피었다’라는 두 개의 문장을 놓고서 조사 하나를 선택하는데 이틀이 걸렸다는 고백이 실린 신문을 읽은 적이 있다.
여기서 주격 조사인 ‘이’의 사용은 ‘꽃’에 힘이 실리지만 보조사인 ‘은’의 사용은 버려진 섬이지만 꽃은 피었다 라는 ‘버려진 섬’에 힘이 실리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처럼 소설인 경우에도 작가는 조사 하나를 선택하는 데 있어서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는 말이 된다. 그런데 문학의 백미라 할 수 있는 시에서야 오죽하랴! 조사 사용은 정확하게 사용해야 한다.
※ 문학에 있어서의 상징성
상 징 | 의 미 |
물 (바다) | 창조의 신비, 탄생, 죽음, 부활, 재생, 어머니 |
태양 | 자연의 법칙, 시간과 인생의 경과 |
원 | 전체성, 생산, 풍요로움 |
대지 | 어머니, 생산, 풍요로움 |
바람 | 호흡의 상징, 공포 |
사막 | 정신적 불모, 죽음 |
십자가 | 고난, 고통, 시련 |
봄 | 새벽, 탄생 |
여름 | 인생의 절정기, 낙원 |
가을 | 몰락, 비극 |
겨울 | 밤, 혼돈의 세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