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배(빌 길버트/류광현 옮김) -01-
"거제(巨濟)"하면 떠오르는 말이 여럿 있다. 우리나라 두번째 큰섬, 굴지의 조선소들이 있는 섬, 포로수용소 등이 우선 생각 날 것이다. 그리고 1만4천명의 피란민을 싣고 온 최후의 흥남철수선 "메르디스 빅토리 호"도 그 중 하나일 것이다.
나는 부산의 유엔평회기념관-유엔기념공원-임시수도기념관 등에서 문화관광해설사로 해설을 하면서 최후의 흥남철수선 "메르디스 빅토리 호"와 배에서 태어난 새생명 "김치1~5"를 소개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몇 가지 궁금한 것이 있었다. "메르디스 빅토리 호"는 어떤 배이며 화물선인 이 배에 1만4천 명이란 사람을 어떻게 태울 수 있었을까?
그 답을 "기적의 배(빌 길버트/류광현 옮김)"라는 책에서 찾을 수 있었다.그래서 그 내용을 시간 나는대로 수차례에 나누어 여러분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기적의 배:14,000명을 구출한 기적적인 항해... "인류 역사상 단 한 척의 배가 가장 많은 생명을 구출한 작전!"-1960년 8월 21일 미국 해양업무국 발표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 워싱턴 D.C.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비에 새겨진 한 구절
"권두언": 알렉산더 헤이그(Alexander M. Haig Jr.)
50년의 세월이 흘러도 한국동란 중 그 참혹했던 첫 겨울의 기억, 특히 흥남철수작전"잊혀진 전쟁에서의 잊혀진 전투"를 뇌리에서 지워버릴 수가 없다.
나는 당시 네드 아몬드(Ned Almond) 소장의 부관으로서 참혹한 전투상황과 상상을 초월한 혹한 속에서도 미국 군인들이 보여준 용감한 행위, 특히 놀랄만한 인도주의와 용기를 보았던 산 증인이었다.
영하의 혹독한 추위 속에 중공군과 인민군의 맹렬한 추격에 맞서, 미국 육·해군과 해병대와 화물선단이 적들과 사투를 벌이며 거의 10만 명에 달하는 젊은 미군 장병들과 그와 맞먹는 숫자의 탈영한 인민군과 포악한 정권으로부터 도망치려는 피난민들을 구출해 냈다.
이 이야기는 냉전시대 초기에 벌어진 열전(熱戰), 그것도 아주 먼 땅에서 우리가 새로운 전쟁을 치렀던 기억에도 생생한 1950년 크리스마스- 바로 그때를 회고한 이야기다. 불과 6개월 전 전쟁 초기부터 심상찮게 보였듯이, 이 전쟁은 결국 미국과 소련이 적대국으로 충돌하여 전쟁을 확대시키는 전주곡이라는 것이 당시의 큰 우려였다. 만일 그런 사태가 정말로 벌어진다면 결국 세계 3차대전도 곧 터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였다.
이 책에 기술된 극적인 생명구출 작전에서 나는 네드 아몬드 장군과 함께 216킬로 적진 깊숙이 있는 홍남시에 있었다. 나는 약관의 육군 대위로 군 경력을 조금 쌓았으나 실전 경험을 한 것은 생애 처음이었다. 지독한 악조건, 치열한 전투, 몸을 얼어붙게 하는 혹심한 겨울 추위, 미군 병사들의 극적인 철수작전, 북한 피난민들의 가슴 메어지는 참상을 어찌 필설로 다 표현할 수 있으랴.
우리는 군인들과 피난민 모두를 흥남 부두에서 철수시켰다. 미군들은 우리의 동포이지만, 북한 주민들은 엄밀히 따지면 우리 적국의 남녀노소들이 아닌가. 그러나 그런 구분이 우리에겐, 특히 우리 해군과 상선단의 용맹스런 장병들에겐 전혀 없었다. 구출을 애원하는 10만여 명의 피난민들의 참상을 보며, 장병들은 피난민들을 위기에서 건져 우리 배로 승선 시키는 데 필사적인 노력을 했다. 그 상황에서 피난민들의 국적, 정치사상, 신분 등을 가린다는 것은 말도 안 되었다. 그들은 단지 죄 없는 전쟁의 희생자들일 뿐이었다. 가려내기 위해 조사할 시간도 없었다. 오직 생명부터 구출하고 봐야 했다.
특별히 이 책은 미국의 화물선 메러디스 빅토리 (Meredith Victory) 호 선원들의 기적적인 노력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구조대원들과 피난민들을 보호하려고 홍남시에서 혈투를 벌인 미군 병사들과 20만 명의 미군과 북한 주민의 생명을 구출한 용사들 모두 크게 자랑할 일을 해낸 것이다.
한국은 오늘날까지 분단국가로 남아 있다. 1953년 휴전에 조인했을 뿐 실질상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최근 희망적인 징조가 보이기는 하나, 혁혁한 전투였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역사 속에 파묻혀 버린 흥남 철수와 메러디스 빅토리 호의 비화는 한국동란 50주년을 맞은 오늘까지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이 전투는 벙커힐 (Bunker Hill), 미드웨이 (Midway),
벌즈(Bulge), 이워지마(Iwo Jima), 오끼나와 (Okinawa) 전투처럼 역사에 빛나는 전투의 하나로 꼽힌다.
이 비화는 책으로 쓰여져야 할 가치가 있을 뿐더러 마땅히 쓰여져야 한다. 흥남에서 일어났던 역사적 사건에 동참했고 50년이 지난 지금도 이 영웅담의 일부인 나 자신에 대해 나는 자긍심을 갖고 있다.
(*알렉산더 헤이그(Alexander Haig)는 그 후 사성(四星) 장군으로 승진하여 리처드 닉슨 (Richard Nixon) 대통령의 수석보좌관, NATO 사령관,레이건 (Reagan) 대통령 때 국무장관을 역임했다.)
*차례*
-권두언 -알렉산더 헤이그(Alexander M. Haig Jr.)-.5
-한반도 지도.8
-서문.11
-제1장 죄없는 전쟁 희생자들과 그들이 겪은 공포.15
-제2장 당시 미국인들의 생활양식·25
-제3장 화물선 메러디스 빅토리호.39
-제4장 우리는 전쟁에 이겼다.57
-제5장 미국의 국가 비상사태.75
-제6장 놀라운 광경. 93
-제7장 그것의 충격. 119
-제8장 "그들에겐 있을 곳이 없었다". 161
-제9장 본국에 보낸 편지들. 175
-제10장 김정희는 50년간 계속 가족을 찾고 있었다. 187
-제11장 과연 그럴만한 가치가 있었나? 199
-제12장_ 끝맺는 말: 신(神)의 손. 225
-역자 후기. 228
● 서문
60대 이상의 수백만 미국인들은 한국전쟁이 터진 6개월 후인 1950년 크리스마스 때, 10만 미군 병력을 장진호 (the Chosin Reservoir) 에서 후퇴시켜 흥남부두를 통해 철수시킨 사건을 기억하고 있다. 그 전쟁 중 미 공군에서 2년 반을 복무하고 총성이 멎은 후에도 18개월을 더 복무한 필자로서는 그때의 일을 더욱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시간을 다투며 우리 병사들과 같은 숫자의 북한 피난민을 구출한 그 화물선 선원들의 용맹성은 가히 미국 전투요원들 못지않게 대단한 것이었다. 이 책은 잘 알려지지 않은 그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해 12월 중순 미 육군과 해병대가 장진호에서 포위망을 뚫고 흥남으로 간신히 퇴각하여 대기 중인 선박단에 의해 구출된 후퇴 작전에 관한 이야기들은 이미 많은 책으로 출판되었다. 반면에 그와 동시에 벌어지고 있던 북한 피난민의 구출, 특히 화물선 '메러디스 빅토리' 호의 용감무쌍한 역할에 대해서는 대체로 간과(看過)되어 왔다. 장진호에서 포위망을 뚫고 극적으로 탈출할 당시 미국인들 대부분은 아군 병사들의 안전에만 관심이 있었지 생사의 갈림길에 처한 북한 피난민들에게는 관심이 없었다.
미국인들이 피난민을 구출한 용맹스러운 업적에 관한 기사들이 1950년대와 60년대에 간간히 나타나다가 급기야 미국과 한국정부가 '메러디스 빅토리' 호 선원들의 공적을 표창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것도 40년 전의 일이었다. '메러디스 빅토리' 호 이야기를 아는 미국인은 홍남철수작전 직후에도 거의 없었다. 오늘에 와서는 사실상 그 이야기를 들은 사람조차 거의 없다.
한국전 참전 용사들, 특히 실전을 경험했던 장병들이야말로 역사책에 기술된 이상의 대우를 받아야만 한다. 월남전 참전 군인들이 등한시되고 있는 실태에 대해 정당한 이유를 들어 그들이 불만을 나타내기 훨씬 이전부터, 그들보다 먼저 치른 한국전쟁의 재향군인들 역시 그들이 망각되어져 가는 것을 알고 있다. 뉴스 기자들과 앵커들이 현충일과 재향군인의날 기념식을 보도할 때 말과 사진을 동원하여 2차대전과 월남전 참전용사들의 명예를 기리려고 한다. 하지만 한국전쟁에 관해서는 단 한 마디의 언급도 하지 않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이렇게 등한시하는 경향이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다.
이 책은 사실, 흥남과 '메러디스 빅토리' 호에서 펼쳐졌던 인간드라마를 전쟁의 전 국면을 배경으로, 즉 그 원인이 된 악조건과 오판(誤判), 공포와 불안과 그들을 에워싼 불가항력의 악조건에도 굴하지 않은 피난민들의 용맹성과 아울러, 내국전선(內國戰線: the home front)에 휘말린 미국 본토 내의 분위기를 분석해 보려는 시도였다.
허나 이 책은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홍남철수 작전의 영웅들에게 대한 경의를 표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 철수 작전을 성공시키기 위해 부두로 공격해오는 적군을 제거시킨 영웅적인 미군 병사들, 피난민들을 배에 타도록 한 후 인간 화물을 싣고 적의 포화를 피해 안전한 곳으로 항해하여 험한 날씨와 바다에 설치된 기뢰들을 피해가며 필사적인 싸움을 한 화물선 용사들이 있다.
역사적 기록을 남기며 흥남 철수작전 용사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과정에서 온 미국 국민들로 하여금 "미국의 잊혀진 전쟁'을 재인식시킴으로써 그 역사 현장의 남녀 영웅들에게 우리 모두가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것이 나의 바램이다.
-2000년 6월 수도 워싱턴에서, 저자 빌 길버트 (Bill Gilbe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