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야구가 전해진 것은 미국인 선교사에 의한 것으로 1873년 쯤이다. 이와 같은 야구의 일본전래는 세계적으로 봤을 때도 매우 이른 편이라고 한다. (영국과 거의 같은 시기) 또한 일본의 야구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있는데 바로 平岡熙란 인물로, 그는 철도기술을 배우러 미국에 유학 갔을 당시 Boston Red Sox의 열광적인 팬이 되어 일본에 돌아와 자신이 근무하고 있는 新橋鐵道局동료들을 중심으로 1878년, 일본최초의 야구팀인 新橋アスレチッククラブ(신바시 Athletic클럽)을 만들었다.
이렇게 일본에 선을 보이기 시작한 야구는 이후 아마추어 스포츠 특히 학생스포츠로 발전해 전국의 각 중고등학교 및 대학 운동부로 급속히 퍼져 나갔다. 특히 이 시기엔 (1890-1902) 야구의 一高時代라 불릴 만큼 第一高等學校 야구팀의 전성시대 였는데 야구란 명칭도 이 당시 一高 출신이었던 中馬康에 의해 고안된 것이라고 한다.
1903년부터는 이른바 早慶시대라 일컬어지는 와세다(早稻田)와 게이오(慶應義塾)의 대학야구시대가 펼쳐지는데 와세다 대학은 일본야구팀 최초로 해외원정(1905년 미국)을 가기도 했다.
1908년부터는 미국 프로팀을 초청해 경기를 갖기 시작했다. 1931년에는 일본프로야구의 아버지로 일컬어지는 讀賣신문사 사장이었던 正力松太郞가 미국 올스타팀을 초청해 경기를 가졌는데 이때 正力松太郞을 중심으로 결성한 일본팀과의 경기를 가졌는데 17전 전패를 기록했다고 한다. 3년 후인 1934년에도 홈런 왕 베이브 루스나 게릭같은 대선수가 포함된 미국 올스타 선수들을 초청해 경기를 가졌는데 이 때 正力松太郞을 중심으로 大日本東京野球클럽를 결성해 대항했다고 한다.
바로 이大日本東京野球클럽이 일본 최초의 프로야구팀이자 현 讀賣ジャイアンツ(巨人)팀의 모체라고 한다. 이 때도 물론 17경기중 단 1승도 거두지 못했으나 17세 어린 나이의 좌완투수 澤村榮治라는 일본야구사에 기리 남을 걸출한 야구영웅이 탄생하는 계기가 되었다. 澤村榮治는 그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미국 측 선수 게릭, 루스, 게히너, 폭스를 연속 삼진아웃 시키는 귀여움을 토하며 6회까지 0대 0, 무승부를 기록했다. 아깝게도 7회 말 게릭에게 통한의 홈런을 맞아 결국 1대 0으로 아깝게 지긴 했지만, 이 날의 경기는 일본프로야구사에 전해지는 자랑거리자 전설이 되었다.
그리하여 일본 센트럴리그에서는 그 해의 가장 우수한 투수에게
澤村賞를 수여하고 있다.
그 후 大日本東京野球클럽는 일본인들로부터 많은 관심 을 모으기 시작했으나 국내에 상대할 프로팀이 없었으므로 주로 미국으로 원정경기를 갔다.
그러던
1936년 드디어
日本職業野球聯盟라는 이름으로 巨人을 비롯
阪神 名古屋 セネタ-ス 阪急 大東京金의
7개 구단으로 이루어진 프로리그가 탄생되었다.
2. 일본프로야구의 수난과 부활
1941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 3년째인 1943년엔 동경 6대학과 도시대항야구등이 전면 중단되기에 이른다. 프로야구만은 직업야구로서 연면하게 되는데
적대국인 미국의 용어를 사용하지 못하게 해, 스트라이크는 よし一本, 二本, 三本으로, 볼은 ひとつ ふたつ로 세이프는 よし로 아웃은 ひけ로 말해야 했고, 또 야구모자 대신에 선수전원이 전투모를 쓰고 게임에 임하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 일어났다. 게다가 72명에 달하는 프로야구선수가 전쟁에 동원되어 전사했다고 한다. 그 중에는 20승 투수였던 石丸進一도 있었는데 그는 神風特攻隊에 자원해 전사했다고 한다.
전쟁이 끝나자 일본 직업야구관계자들이 다시 모여 일본프로야구의 부활을 꾀하였는데 전쟁 전부터 있었던 巨人, 阪神, 名古屋, セネタ-ス, 阪急, 南海, 朝日의 7개팀을 재 결성했으나 선수가 부족했던 탓으로 東軍(巨人, セネタ-ス, 名古屋)과 西軍(阪急, 阪神, 南海, 朝日)으로 나뉘어 경기를 치른다. 동군이 19대 9로 승리를 거둔 이 경기에 동원된 관객은 6천명 미만 정도로 적었지만 일본프로야구의 부활전으로 기록될 만한 의미있는 경기였다. 또한 패전 후 이렇다할 오락문화가 없었던 일본국민들에게 프로야구는 크게 환영받아 전후 4년여 동안은 프로야구붐이라 할만한 시기였다.
3. 일본프로야구팀과 경기
60여 년의 역사를 지닌 일본 프로야구는 어린이에서 노인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지지를 얻고 있다. 프로야구 시즌인 4∼10월에는 거의 연일 TV를 통해 생중계 되고 있으며 스포츠뉴스는 반드시 라 해도 좋을 만큼 프로야구 이야기로 시작된다.
1993년 프로축구 J-리그의 출범과 함께 축구인기가 급상승하자 한때 프로야구 인기가 하락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으나 1995년 혜성처럼 등장한 이치로(イチロ-)(オリクッスブル-ウェ-ブ소속)와 미국 메이져리그에 진출한 노모(野茂英雄)(당시 LA Dodgers소속)의 활약으로 인기가 떨어지기는 커녕 그때까지 관전스포츠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던
프로스모(大相僕)을 제치고 인기순위 1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현재 일본 프로야구 구단은 12개로 센트럴리그(セ·リ-グ)와 퍼시픽리그(パ·リ-グ)의 두 그룹으로 나눠 각각 리그 우승을 놓고 겨룬다.
프로야구 페넌트 레이스가 진행되는 계절은 우리나라와 거의 비슷한 4월부터 10월 초순경까지로 경기 수는 한 팀당 135경기(같은 리그의 각 팀과 27게임씩 한다.)를 치른다.
그 다음 양 리그의 우승팀이 10월 하순 일본시리즈 우승을 놓고 겨루게 되는데 7번의 시합 중 먼저 4승을 거두는 팀이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
4. 일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요미우리 자이언츠팀
한편 가장 인기있는 팀이라 하면 누가 뭐래도 요미우리 자이언츠 (讀賣ジャイアンツ)이다. 올해 초 실시된 여론조사에 의하면
가장 좋아하는 프로야구팀을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36.4%나 되는 사람들이 요미우리 자이언츠(讀賣ジャイアンツ)라 답했다고 하는데 7.4%로 2위를 기록한 한신 타이거스(阪神タイガ-ス)와의 차이만 봐도 그 인기가 얼마만큼 인지 짐작이 간다 하겠다. .
흔히 거인(巨人)이라 불리며 일본인들의 가장 친근한 팀으로 자리잡고 있는 讀賣ジャイアンツ는 프로야구 발족이래 일본프로야구계를 인기나 실력의 양면에서 선도해온 팀이자 역사라 할 수 있다 나가시마( 現, 讀賣ジャイアンツ감독) 왕정치(現 ダイエ-ホ-クス감독)등 일본프로야구계에 기록될 만한 스타선수를 배출했고,
리그우승37회, 일본시리즈 우승 18회라는 기록은
다른 11개 구단의 추종을 불허하고 있다. 현재도 松井秀喜 淸原和博 高橋由伸 등의 인기 선수가
있는데, 미스터프로야구로 불리는 나가시마시케오감독의 인기는 가히 절대적이라 한다.
5. 일본야구의 영웅 이치로
일본프로야구는 매년 가을 일본시리즈가 끝난 후, 미국 메이져리그 선수들을 초청해 メリルリンチ日米野球경기를 갖는다.
일본프로야구에서 가장 인기있는 선수는 オリックスブル-ウェ-ブ의 イチロ-(본명 鈴木一郞외야수)로 94-96, 3년 연속 MVP로 선출, 95년 타점왕 94-97베스트나인 및 골든 클럽에 선정·최다안타기록 94-95 正力賞 2년 연속수상 94-96 최고 출루율이란 화려한 경력과 기록을 지니고 있다.
게다가 훤칠한 키와 귀여운 외모로 TV CF등에도 자주 선보이고 있으며 그의 치솟는 인기는 94년엔 イチロ-の すべて(이치로의 모든 것)이란 책까지 나와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