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 앙투와네트와 이멜다 그리고 김.. [펌]
서울의소리 / 이 득 신(작가) 2024/ 01/ 26
프랑스 왕비였던 마리 앙투와네트는 남편 루이 16세와의 사이에 2남 2녀가 있었다. 그녀의 고향은 오스트리아 빈이다. 프랑스와 오스트리아의 동맹정책으로 인해, 왕족인 그녀는 프랑스 왕자와 결혼하고 16세 나이로 프랑스 왕비가 된다.
그녀는 프랑스 왕가 부정부패의 상징같은 인물이다. 가혹한 조세정책은 물론, 농민을 향한 엄청난 수탈 등 프랑스혁명이 일어난 계기를 만든 인물이기도 하다. 그녀의 사형을 결정한 재판에서 마리 앙투아네트에게는 온갖 혐의가 걸렸다. 혁명정부로부터 국고 낭비, 정부의 부패, 오스트리아와의 결탁, 루이16세를 타락시킨 혐의, 백성에 대한 기만, 프랑스를 멸망시키려는 시도, 전쟁유발 등으로 기소되었다. 또한 그녀는 근친상간(아들 루이17세)으로 유명한 인물이기도 하며, 동성애 혐의도 적용되었다. 결국 분노에 찬 시민들에 의해 그녀는 남편과 함께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1793년의 일이다.
필리핀의 독재자 이멜다는 변호사 마르코스와 결혼후, 필리핀의 영부인이 된다. 마르코스가 취임하기 전에 필리핀은 아시아에서 최고 부자나라로 꼽히던 나라였다. 마르코스의 독재가 본격 시작되면서 그녀의 부정부패도 시작되었다. 그녀는 필리핀 수도(마닐라 주)의 주지사까지 역임하며 ...온갖 범죄를 저지른다. 또 국회의원을 지내며 자신의 범죄를 합법화시키는 입법을 하기도 했다. 마르코스 독재 20년 동안 저지른 부정부패는 어마어마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사치스러운 인물'이라는 평가까지 받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사치 행각으로 유명했으며, 한때 장관직과 마닐라 시장직을 역임하면서 횡령도 엄청나게 저질러 필리핀 경제를 말아먹는 데 일조했다. 그래서 필리핀인들은 ‘마르코스는 용서할 수 있어도, 이멜다만큼은 용서할 수 없다’고 할 정도로 그녀에 대한 감정이 안 좋은 사람들이 많다. 그녀는 국민들에 의해 쫓겨났지만 처벌받지 않고 하와이로 망명을 간 것이기에, 재기의 칼날을 갈며 복귀를 시도하다가 마침내 아들을 대통령에 당선시키는 대업을 이룩한다.
이는 미국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 마르코스를 몰아내고 대통령에 당선된 아퀴노 여사가 미국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시도를 보이자, 미국이 적극 개입하여 마르코스 일가를 다시 대통령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대한민국역사에도 길이 남을 유명한 사치녀가 등장한다. 한때 전두0의 부인인 이순0가 부정부패 최고의 인물이었다. 그러나 김00의 등장 후 그런 타이틀은 모두 김00가 흡수한다. 이미 당선 전부터 엄청난 논란에 휩싸였던 김건희는 결국 당선 이후에도 끝없이 국가를 상대로 부정부패를 저지른다. ....김0를 보며 마리 앙투와네트가 떠오르고 이멜다가 떠오른다는 국민들의 분노가 깊어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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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자들의 손아귀에서 놀아나는 백성들의 절망적인 상황과, 국가를 그저 수익모델로 생각하며 경제적 이득을 취하기에 급급한 자들의 말로는 총선으로 결정될 것이다.
출처; 서울의소리 https://www.amn.kr/46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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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우리 카페의 점잖은 특성상..)
주옥과 같은 이 작가님의 글 중에 부득이 일부만 펌 했습니다.
전체 글은 위 원문을 참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