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2월 11일
삼성 이재용 전무, 수천억원대 이혼 소송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의 외아들인 이재용(41) 삼성전자 전무의 부인 임세령
(32)씨가 이 전무를 상대로 이혼을 청구
하면서 수천억원대의 재산 분할을 요구하
는 소송을 냈다.
임씨는 지난 11일 서울가정법원에 소장
을 냈으며, 이 전무를 상대로 위자료 10억
원과 수천억원대의 재산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임씨는 이 전무와 사이에 두고 있는 아들
과 딸의 양육권도 함께 요구한 것으로 알
려졌다. 임씨는 소송을 내면서 구체적인 이혼 사유를 밝히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
졌다.
임씨는 법정대리인으로 법무법인 '남산'
의 임동진 변호사를 선임했으며,서울가정
법원은 사건을 가사4부에 배당했다.임씨
는 대상그룹 임창욱 명예회장의 장녀로, 지난 1998년 6월 이 전무와 결혼했다.
이 전무는 사업상 애플과 AT&T 관계자를 만나기 위해 지난 6일 출국해 현재 미국에 체류 중이다
▶ 2015년 2월 11일.
영종대교 상부에서 106중 추돌사고가 일어나다.
해무로 인한 저시정으로 인해 발생한 사고로 2명이 사망하고
130명이 부상당했으며, 차량 106대가 파손되어 13억 2천
만원에 달하는 재산피해가 났다.
해무로 인한 저시정으로 인해
발생한 사고로 2명이 사망하고
130명이 부상당했으며, 차량
106대가 파손되어 13억 2천
만원에 달하는 재산피해가 났다.
▶ 2011년 부산발 KTX, 고속철도 개통 후 첫 탈선
▶2011년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 하야 발표
▶2010년디자이너 알렉산더 맥퀸 사망
▶2009년인공위성 사상 첫 충돌
2009년 2월 11일 오전 1시55분(한국시각) 러시아 시베리아 타이미르 반도 789㎞ 상공의 우주에서 거대한 파편 구름이 생성됐다. 미 항공우주국(NASA)측은 "두개의 온전한 인공위성이 사상 처음 충돌했다"며, 피해규모 조사에 착수했다고 말했다. NASA의 첫 레이더 측정에선 "파편의 확산 범위가 커져, 다른 위성과의 후속 충돌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사고 위성은 1993년에 발사된 러시아 코스모스 2251 통신위성(중량 900㎏)과 1997년에 발사된 미국 이리듐사의 33 통신위성(560㎏). 그 중 코스모스 2251호는 수명이 다해 방치된 위성이었다. NASA에 따르면 지금까지 궤도상에서 일어난 충돌 사건은 모두 4차례지만, 소진된 로켓이나 소형 위성의 부품들 사이에서 일어났다.
뉴욕타임스는 11일 "그동안 많은 전문가들이 궤도 내에 위성의 수가 너무 많다며 (이 상황을) 경고해왔다"고 보도했다. NASA측은 두 위성이 정면으로 충돌해 피해 범위가 넓다며, 발생한 파편은 600개가 넘는다고 밝혔다. 어느 위성이 먼저 충돌을 초래했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2007년 중국 날씨위성인 '펑윈(風雲) 1호'가 중국의 미사일 요격실험으로 파괴됐을 때 2000조각 이상의 파편이 발생했으며, 아직도 저(低) 궤도를 돌고 있다. 만약 이 파편들이 다른 위성과 부딪힌다면, 추가 파편이 발생하는 '폭포 효과(cascade effect)'가 발생할 수도 있다. NASA는 2009년 현재 우주에는 위성만 6000개가 떠 있다고 밝혔다.
▶2009년삼성 이재용 전무, 수천억원대 이혼 소송
▶2007년여수 출입국사무소 불
불법체류 수용된 외국인 27명 사상
▶2007년하버드대 첫 여성 총장,
드류 길핀 파우스트 교수 임명
▶2003년러시아 한인동포 박 미하일 교수,
50년 걸려 러시아어 최초 삼국사기 완역
▶2003년서울시, 청계천 복원 기본 계획 발표
청계천 복원 계획 단면.
11일 서울시가 발표한 청계천 복원 기본 계획에 따르면 청계천은 한강물과 지하수를 이용해 맑은 물이 흐르는 하천으로 복원된다. 또 자동차와 시민이 통행할 수 있는 다리 21개가 놓이고, 산책길도 마련된다.
◆ 일부 복개구조물은 보존 =청계천의 일부 구간은 양쪽에 2차선 정도의 복개구조물을 그대로 남겨둬 그 밑으로 홍수 시 물이 흘러갈 수 있도록 했다. 하천 양쪽에는 각 2~3차로와 폭 1.5~4m의 보도를 놓고, 상가 밀집지역에는 폭 2m 정도의 조업주차공간이 조성된다.
청계천 상류에는 미니 저수로를 조성하며 빨래터, 수표석 등이 재현된다. 청계 4~7가에는 징검다리·창포군락·수변 쉼터 등이 조성되며, 하류에는 데크 관찰로, 물억새·갈대 등 대규모 식생군락, 자연학습체험장, 지압보도 등이 마련된다.
그러나 복원 후 광교부터 고산자로에 이르는 5.08㎞ 구간에는 기존의 복개구조물 일부가 그대로 남아있어, 하천 둑방에 나무와 풀을 심겠다는 애초의 복원 청사진과는 차이를 보였다.
◆ 공사는 어떻게 =복원구간은 동아일보 앞에서 시작해 동대문을 거쳐 신답철교에 이르는 약 5.84㎞ 구간. 3600억원의 공사비를 들여 3개 구간으로 나눠 동시에 공사를 진행하게 된다. 철거공사는 하천 양쪽에 차단막과 2~3차선을 확보한 후 고가상판 →교각 →복개구조물 순으로 진행되며, 하천 조성공사는 2005년 말까지 완공된다.
◆ 하루 9만4000여t 물 공급 =청계천에는 자양취수장에서 취수한 한강 원수(하루 7만1700t)와 인근 14개 지하철역사의 지하수(2만2000t) 등 모두 9만3700t을 흘려보내 수심 30㎝ 이상을 유지할 계획이다. 하천 바닥은 홍수 예방을 위해 2~2.5m 깊이로 파며, 물이 새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하천 바닥에 점토층 등을 깔거나, 하천 양쪽에 차수벽을 설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 다리 21개 설치 =청계천 남북 방향에는 차도 14개, 보도교 5개, 보·차도교 2개(세운상가·통일상가) 등 모두 21개의 다리가 설치된다. 하천 둔치에는 폭 1.5~3m의 산책로가 들어서고, 계단이나 경사로 형태의 접근로 14곳이 생긴다. 다리는 라멘교·강상형교·판형교·아치교 등의 다양한 형식이 적용된다.
당초 복원키로 했던 광교와 수표교 등 옛다리는 원래의 자리에 원형대로 복원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광교의 경우 현 광교 교차로의 북동쪽에 위치해 있어 원래의 자리에 복원될 경우 교통흐름에 방해를 주게 된다. 수표교는 원위치 복원 시 교량이 하천폭보다 길기 때문에 인근 도로에 병목이 발생할 수 있고, 교각이 많아(9개) 홍수 시 수위가 상승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 청계천 주변 개발 =청계천 상류부터 ▲무교동 일대는 국제금융 및 비즈니스산업 ▲세운상가 일대는 IT 및 멀티미디어, 문화산업 ▲동대문시장은 토털 패션산업 등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눠 개발한다.
▶ 2002년 오늘,
삼성전자가 영국에서 4백20만 파운드(약 84억 원) 상당의 휴대폰 2만6천대를 도난당하고도 상당한 홍보 효과를 거두고 있어 화제
84억 도난당하고,
100억이상의 '홍보효과'를 얻다!
▶2001년정부, 시화호의 담수화 포기를 최종 결정
▶1999년최순영 신동아 회장, 사기혐의로 구속
▶1998년한국최초의 서양식 교회건물인 약현성당 화재
▶1997년에콰도르 의회, 파비안 알라르콘
에콰도르 의장을 새 대통령에 선출
▶1990년타이슨, 무명의 더글러스에 KO패
더글러스의 펀치를 맞고 다운된 타이슨.
▶1990년남아공 흑인지도자 만델라 수감 27년 만에 석방
석방후 지지자들의 선두에 서서 부인
위니 만델라와 함께 행진하고 있는 만델라.
▶1983년샤론 이스라엘국방상 사임
▶1983년미국, 인도양해군사 창설
▶1982년보건사회부, 의료보험 적용대상을 5인이상 사업장으로 확대
▶1982년프랑스, 국유화법안 발표
▶1981년제12대 대통령을 선출하기 위한
대통령선거인단 선거
▶1981년정부, 은행지로제 확대실시
▶1980년EC 루마니아와 첫 무역협정 체결
▶1979년이란 군지도부의 중립표명으로
바크티아르 정권 붕괴. 혁명파 승리
▶1977년인도의 대통령(1974-77) 아메드 사망
▶1975년대처여사, 영국 보수당수 피선
▶1971년65개국 해저 핵실험 금지조약 조인
▶1970년일본 최초의 인공위성 발사 성공
람다L4S형5호의 발사장면.
▶1967년세계적 디자이너 메리퀀트의
미니스커트 패션쇼 열림
▶1965년미군, 북베트남 병참기지 공습
▶1964년한국 프랑스와 국교단절.
프랑스의 중국 승인에 보복
▶1963년이주당사건 공소심 판결(장면 5년징역
5년 집유 안병도 사형후에 무기징역)
▶1961년민족일보 창간
▶1961년국제언론인협회(IPI) 한국위원회 발족
▶1959년국어심의회, 외래어 한글표기법 최종결정
▶1958년원자력법안 확정, 원자력원 설치
▶1951년국군, 서울 탈환
▶1951년거창양민학살사건 발생
1950년 겨울에 중국군이 6.25전쟁에 참전하며 공세를 펴기 시작하면서부터 빨치산의 활동 또한 활발해졌다. 1951년 2월 5일에는 거창군 신원면지역에서 빨치산이 경차지서를 습격하는 일이 생겼다. 그러자 정부는 육군 제11사단 9연대 3대대를 신원면 일대에 파견하여 빨치산을 토벌하게 하였다. 3대대는 주민 1천여 명을 신원국민학교에 모이게 한 뒤, 군인.경찰.공무원 가족을 가려내었다. 그리고는 나머지 주민 600여 명을 박산 골짜기 등으로 끌고가 학살하였다. 그러고는 주민들이 빨치산과 내통하여 경찰서를 습격하였다는 거짓 보고서를 작성하여 상부에 제출하였다.
이 사건은 그 해 3월에 거창 출신 국회의원 신중목의 보고로 폭로되었다. 신중목은 학살당한 자들이 대부분 노약자, 부녀자, 어린아이들로 빨치산에 협력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국회는 신원면에 조사단을 파견하였다. 하지만 헌병 부사령관 겸 경남지구 계엄민사부장인 김종원 대령은 자신의 부대를 빨치산인 것처럼 꾸며서 조사단에게 사격을 가해 조사를 방해하였다. 그러나 국회의 재조사로 사건의 진상이 밝혀졌고, 이를 비난하는 여론이 들끓었다. 그러자 정부는 당시 육군 제11사단 9연대 3대대의 대장이었던 한동석과 김종원에게 중형을 선고했다가 곧 석방시켰다.
1960년 4.19 혁명 이후 사건의 진상이 밝혀졌으며, 1996년에 '거창사건 등 관련자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조치법'이 법률로 제정되었다.
▶1948년영화감독 에이젠슈타인 사망
러시아의 감독 에이젠슈타인( Eisenstein)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사망 (1898년 1월 23일 러시아 라트비아 리가에서 출생~)영화의
고전으로 알려진 〈포툠킨 Potemkin〉(1925)·〈알렉산드르 네프스키
Alexander Nevsky〉(1938)·〈이반 대제 Ivan the Terrible〉(1944,
1958년에 1,2부로 상영) 등의 작품을 남겼다. 이라는 영화에서
몽 타 쥬 기법을 처음 썼던 감독은 영화감독이나 영화배우가 되려는 사람은 꼭 기억해야 할 명감독, 특히 은 영화에 뜻이 있는 사람은 꼭 보아야 하는 작품
〈전함 포템킨〉은 1905년 오데사 항구에서 일어난 ‘전함 포템킨호의 반란’ 사건을 소재로 한 흑백의 무성영화다. 내용은 총 다섯개의 챕터로 나뉘어 있으며, 러시아 황제의 독재에 반대하는 해병들과 오데사 시민들의 반란을 주로 담는다. 1925년작으로 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이며, 전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프로파간다 필름(선전영화)으로 알려져 있다.
시놉시스
1905년 1월, 러시아에서 최초의 혁명이 일어난다. 곧이어 같은 해 6월14일, 포템킨호의 해군들이 반란을 일으킨다. 이 사건의 시작은 부패한 고깃덩이에 대한 항의였지만, 이 작은 시초가 이후 오데사 항구에서의 반란으로 이어진다. 영화는 이 내용을 다섯개의 챕터로 나눠서 보여준다.
1부의 제목은 ‘인간과 구더기’다. 해군 사병 바쿨린추크를 중심으로 반란이 도모된다. 군의관은 고기의 기생충은 씻어내면 된다고 말하고, 지친 사병들은 썩은 고기까지 먹어야 하는 자신들의 현실을 한탄한다.
2부는 ‘바다에서의 드라마’다. 골리코프 함장이 모든 선원을 불러 갑판에 세운다. 바쿨린추크 일행은 선장의 뜻을 따르지 않고, 반란을 일으킨다. 그러다 바쿨린추크가 총에 맞아 희생된다.
3부 ‘죽은 자가 정의를 이끈다’는 포템킨호가 오데사 항구에 도착하면서 시작된다. 시민들은 죽은 바쿨린추크의 시신을 보고 마음이 움직인다. ‘이 땅과 미래는 우리의 것’이란 구호를 외치면서 군중은 하나가 된다.
4부가 가장 유명한 ‘오데사 계단’ 에피소드다. 수많은 사람이 포템킨호에 식량을 전달하고 있다. 그러던 중 갑자기 총을 든 군인들이 들이닥친다. 무차별 사격이 시작되고, 오데사 계단의 민중은 총살당하기 시작한다. 뒤늦게 포템킨호가 육군의 근거지인 ‘오데사 극장’을 포격하지만 이미 늦었다.
5부 ‘함대와의 조우’는 자신들만으로는 육군을 막을 수 없다는 생각을 한 포템킨호가 다른 함대의 합류를 기다리면서 시작된다. 전운이 감돌고, 이튿날 러시아 함대가 나타난다. 둘은 서로를 향해 총구를 겨누는데, 끝내 정부의 함대는 포문을 돌린다.
▶1947년정부, 공민증제 실시
▶1946년미국, 영국, 소련 얄타비밀협정 전문 공표
▶1940년조선영화인협회 창립
▶1940년일제, 창씨개명제 실시
일제가 황민화정책(皇民化政策)의 하나로 강제로 우리나라 사람의 성을 일본식으로 고치게 한 일. 미나미(南次郞) 총독은 부임 후 <내선일체(內鮮一體)>를 내세우며 한국인의 황민화를 꾀해 그 일환으로 39년 11월 10일 제령(制令) 제19호로 <조선민사령(朝鮮民事令)>을 개정했다. 그 내용은 창씨개명과 서양자제도의 신설이었다. 40년 2월 11일부터 접수한 창씨제도는 이틀 만에 87건이 접수되었는데, 그중에는 이광수[香山光郞], 변호사 이승우[梧村升郞], 종로경방단장 조병상[夏山茂] 등이 있었다. 이광수나 문명기[文明琦一郞] 등은 신문에 <선씨(選氏)고심담>을 싣기도 했다. 조선총독부는 8월 10일까지 창씨를 완료하도록 하고, 창씨를 거부하는 자는 불령선인(不逞鮮人)으로 몰아 감시케 했으며 그 자제의 학교입학을 금지했다. 창씨개명은 경찰서·지방행정기관의 독려·감시하에 강행되었으며 여기에 친일단체 들이 독려강연에 나섰다. 이러한 강압적 조치 아래 기한까지 접수된 창씨는 약 80% 정도였다.
▶1938년파나마 군부지도자 노리에가 출생
▶1929년바티칸, 이탈리아로부터 독립
▶1922년이광수 등 흥사단계 수양동우회 조직
▶1921년조선체육회, 제1회 전국축구대회 개최
▶1909년미국 영화감독 맨키위치 출생
▶1906년한국 최초의 야구경기 개최
【 1906년 2월 11일, 서울 】 3회 말 황성기독교청년회(YMCA)의 공격. 조금 전 한성고등학교 선수들에게 공을 던지던 현동순 선수가 이번에는 타자석에 들어선다. 방망이는 한성고등학교 타자에게서 넘겨받았다. 방망이가 엉겁결에 공을 맞추자, 어리둥절하고 있던 외야수가 날아오는 공을 허겁지겁 맨손으로 받는다. 관중석에서 아쉽다는 한숨이 터져나왔다.
동대문 근처 훈련원에서 황성기독교청년회와 한성고등학교 야구단의 경기가 열렸다. 훈련원은 한국 최초의 야구 경기를 보려고 몰려든 관중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양 팀 각 9명으로 구성된 선수들이 투수가 던지는 공을 방망이로 때려 점수를 내는데, 한손에 쏙 들어오는 작은 공을 방망이로 친다는 것이 선수들에게나 관중에게나 무척 신기했다는 후문이다.
미국인 선교사 필립 질레트가 황성기독교청년회 회원들에게 야구를 소개한 것은 지난해 봄. 그 후 일본인 선생의 지도 아래 한성고등학교 야구단이 만들어졌지만, 오늘 경기에서 승리한 쪽은 한성고등학교였다.
▶1905년엄주익, 양정의숙 설립
▶1900년현대 철학의 거장 한스 가다머 출생
▶1896년고종황제와 태자가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한 아관파천
▶1889년일본 헌법제정 공포
▶1879년프랑스 화가 오노레 도미에 사망
▶1876년강화도서 한일수호회담 개막
▶1860년영국의 사진술 발명가 W.H.F 탈보트 출생
▶1848년미국 낭만파 풍경화가 토마스 콜 사망
▶1847년미국 발명가 토마스 에디슨 출생
▶1821년프랑스 고고학자 마리에트 출생
출처 네이버지식백과,반가운의hi스토리,솦트리종려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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