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협조자이고 누가 배신자인지,
누가 친구이고 적인지,
누구와 동맹을 맺고 누구와 싸워야 하는지,
이제는 지도에 나와 있지 않은 길을 찾아 나가야 할 것이다.
어떤 경우든 '우파'와 '좌파''자유화''해방''시장원리'와 같은
예전 표지를 다시 사용할 수는 없다.
심지어는 '로컬'이나 '글로벌','미래'나 '과거'와 같이 오랫동안
자명했던 시공간의 표지도 마찬가지다.
모두 새로운 비용을 들여 다시 설계되어야 한다.
= 7.세번째 극의 출현으로 흔들리는 로컬과 글로벌이라는 두 극의 관계 57 中 =
지구와 충돌하지 않고 착륙하는 방법 신기후체제의 정치
브뤼노 라투르 지음 | 박범순 옮김 | 이음 | 2021년 02월 15일 출간
라투르가 말하는 ‘신기후체제의 정치’란 무엇인가
우리가 살아갈 땅을 박탈당하지 않기 위해서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기후 위기를 넘어 기후 재난을 향해가는 시대. 그 어느 때보다 기후변화 문제가 주목받고 있으며,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공감대도 커져가고 있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에 대한 입장도 모두가 같을까? 미국을 파리기후변화협약에서 탈퇴하게 만들고 기후변화를 부정하는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을 떠올린다면, 모든 사람이 기후 위기를 해결해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트럼프주의”로 대표되는 기후변화 부정론자들의 존재는 기후 위기가 곧 지정학적 이슈이며, 불평등의 문제와 직접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트럼프와 같은 핵심 지배계층이 자신들이 거주하는 영토를 모두가 공유하는 ‘공통 세계’에서 분리하고, 지구에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지내기에 충분한 공간이 더 이상 남아 있지 않다고 결론 내렸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사회학자인 브뤼노 라투르는 기후 위기뿐 아니라 점점 심화되는 불평등, 대규모의 규제 완화, 악몽이 되어가는 세계화로 인해 지구에 각종 위기가 엄습하는 이 시기를 신기후체제(New Climatic Regime)라 선언하며, 그에 적합한 정치적 도전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세계나 국가를 향한 정치가 아니라 지구를 향하는 정치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구는 더 이상 인간의 활동을 위해 무한한 자원을 공급하는 자원의 보고가 아니다. 오히려 이 행성의 운명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행위자 중 하나이다. 그렇기에 오늘날 정치의 가장 큰 과제는 지구와 충돌하지 않고 착륙하는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라투르는 세계화의 종말, 새로운 터전을 찾아 이주하는 난민들, 기후변화에 직면한 국민국가의 한계 등을 고려하며, 최근 50여 년간의 정치적 지형을 분석하고 우리 사회가 이대로 괜찮은 것인지 의문을 제기한다.
저자 : 브뤼노 라투르
과학자/공학자
Bruno Latour
프랑스의 사회학자이자 인류학자, 철학자. 과학기술학 연구자이다. 1982년부터 2006년까지 파리국립광업학교에서, 2006년부터 2017년까지 파리정치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파리정치대학의 명예교수이며, 2018년부터는 독일 카를스루 미디어아트센터에서 연구를 이어 가고 있다. 과학기술학 분야의 개척자이자 가장 영향력 있는 사상가로서 2013년에는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홀베르상을 수상했다.
대표 저서로는 첫 책인 『실험실 생활Laboratory Life』부터, 과학기술학의 고전으로 자리매김한 『젊은 과학의 전선Science in Action』, 근대성에 대한 독특한 관점을 담은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We Have Never Been Modern』, 과학전쟁의 결과를 탐구한 『판도라의 희망Pandora’s Hope』 등 숱한 문제작들을 펴냈다.
역자 : 박범순
대학/대학원 교수 과학사/과학철학자
서울대학교 화학과를 나와 존스홉킨스 대학교에서 과학사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미국 국립보건원(NIH)에서 생명과학 및 의학정책의 변화에 대해 연구했다. 현재 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의 대학원장으로 재직 중이며, 과학 관료제, 새로운 과학기술의 거버넌스, 법정에서의 과학, 과학과 민주주의 등의 주제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목차
한국어판 서문
1. 정치적 허구로서의 가설: 불평등의 폭발적 증가와 기후변화 부정은 같은 현상이다
2. 미국의 기후협약 탈퇴로 선포된 전쟁
3. 모든 이의 걱정거리로 전락한 이주 문제: 발 디딜 땅을 빼앗겼다는 깨달음
4. ‘글로벌화-플러스’와 ‘글로벌화-마이너스’를 구분하기
5. 글로벌주의를 신봉하는 지배계급은 어떻게 연대의 책임을 외면하는가
6. 인식론적 망상을 일으킨 ‘공통 세계’의 포기
7. 세 번째 극의 출현으로 흔들리는 로컬과 글로벌이라는 두 극의 관계
8. ‘트럼프주의’ 덕분에 발견한 ‘외계’라는 네 번째 유인자
9. 새로운 지정학적 조직: ‘대지’라고 부를 유인자의 발견
10. 왜 정치생태학은 그 문제의 중요성에 걸맞게 성공한 적이 없는가
11. 왜 정치생태학은 좌우파의 대립에서 벗어나는 데 그토록 어려움을 겪는가
12. 사회 투쟁과 생태 투쟁을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
13. 계급 투쟁은 지리-사회적 위치 사이의 투쟁이다
14. ‘자연’에 대한 한 관점이 어떻게 정치적 입장을 고정시키는가
15. 좌우파 이분법에 고착된 ‘자연’의 주문에서 벗어나기
16. 객체로 구성된 세계와 행위자로 구성된 세계의 차이
17. ‘임계영역’ 과학의 정치적 특성
18. 더욱 커지는 ‘생산 시스템’과 ‘생성 시스템’ 사이의 모순
19. 거주지를 기술하는 새로운 시도: 프랑스의 진정서 제도
20. 구대륙을 위한 개인적인 변호
주(註)
옮긴이의 말
책 속으로
24p
다시 말해 이주의 위기는 일상이 됐다. 지금부터는, 엄청난 비극 속에 조국을 뒤로하고 국경을 넘어온 외부로부터의 이주민과 함께, 그 자리에 머물러 있기는 하지만 자기 자신의 나라에 의해 뒤로 밀려나는 것을 경험하고 있는 내부로부터의 이주민을 추가로 생각해야 한다. 이주의 위기를 개념화하기 매우 어려운 이유는 그것이 모두가 함께 겪는 몹시 고통스러운 시련, 즉 땅을 박탈당하는 시련에서 나오는 증상이기 때문이다.
48p
이는 인지 결핍을 고치는 법을 배워서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 같은 세상에서 살고, 같은 문화를 공유하며, 같은 이해관계를 직시하고, 함께 즐길 풍경을 느끼는 법을 배워야 한다. 우리는 위와 같은 합리적 생각에서 인식론의 악습, 즉 공유된 경험의 결핍에 불과한 것을 지적 결핍의 탓으로 돌리는 나쁜 습성을 발견한다.
83p
이 때문에 생태 정당들의 성장이 늦춰졌다. 그들은 우파와 좌파 사이에 자리 잡거나 그런 구분을 ‘초월’하려고 했지만, 그런 초월을 상상할 수 있는 지점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못했다. 그들은 옆으로 한 발짝도 비켜서지 못하는 바람에 두 유인자 사이에 끼게 되었고, 그 유인자들 자체도 점차 현실성을 잃어 갔다. 정당들이 어디로도 신속하게 움직이지 못한 것은 전혀 놀랍지 않다.
90p
그들이 예견하지 않은 것은(사실 완벽하게 예견할 수도 있었을 테지만!) 이 진보의 지평선이 그저 평범한 지평선으로, 단순한 조정의 아이디어로, 갈수록 모호해지는 유토피아로 조금씩 변모해 가는 가운데, 서서히 진화 중인 지구가 거기에 어떤 물질적 기반을 제공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123p
신기후체제의 이슈는 바로 우리가 어디에 기대어 살아가야 할지 모른다는 데 있다. 탈중심화가 안건에 들어 있지 않다면 그것은 둘레가 없기 때문이다. 이는 무한한 우주보다는 지구에 관한 문제이기에, 파스칼을 흉내 내어 “중심은 아무 데나 다 있고 둘레는 어디에도 없구나”라고 말해야 한다.
“불평등의 증가와 기후변화 부정은 같은 현상이다”
지배계급은 어떻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책임을 외면하는가
라투르는 신기후체제에 관한 정치적 가설 중 하나로,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어떤 엘리트 집단이 지구의 환경 파괴에 대한 경고를 들었다고 가정한다. 그에 따른 두 가지 시나리오가 존재한다. 하나는 경고를 들은 엘리트들이 그 심각성을 대중과 공유할 만큼 깨어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인류가 큰 대가를 치르게 되리라는 걸 알았지만, 그 피해는 엘리트 집단이 아닌 다른 사람들이 받게 될 것이기에 경고를 무시했다는 것이다. 라투르는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해 1980년대 이후 나타난 탈규제와 복지국가의 해체, 2000년대 이후 나타난 기후변화의 부정, 그리고 무엇보다 지난 40년 동안 급격하게 증가한 불평등을 하나로 꿰어 설명한다.
라투르는 또한 로컬과 글로벌이라는 두 개의 극을 통해 근대성을 배경으로 한 다양한 투쟁을 살펴본다. 그리고 여기에 ‘대지’와 ‘외계’라는 새로운 극을 등장시켜 글로벌과 로컬의 한계를 지적하고 지금의 정치적 상황들에 적용한다. 여기서 ‘대지’는 인간이 거주하는 환경이나 배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정치적 행위자를 뜻한다. 지구의 안정성이 담보되었을 때에, 인간들은 영토를 소유 가능한 개념이라고 생각했다. 그 땅 위에서 우리가 영원할 거라 믿었다. 그런데 그 영토 자체가 인간과 맞서고, 인간 생활에 관여하기 시작한다면 어떻게 될까? 라투르는 특히 생태학이 ‘대지’를 엄밀히 정의 내리지 못했기 때문에 19세기 이후의 사회 투쟁에서 발생한 변화의 동력이 생태 투쟁으로 이어지지 못했다고 분석한다. 그는 정치생태학이 왜 그 문제의 중요성에 걸맞게 성공한 적이 없는지, 왜 좌우파의 대립에서 벗어나는 데 그토록 어려움을 겪었는지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마지막으로 프랑스 역사에 등장하는 진정서 작성이라는 ‘정치’의 고전적 개념이 나오기 전에 시행되었던 제도를 통해 하나의 가능성을 제안하며 논의를 마무리한다.
역사상 처음으로 80억 명의 인류를 감당하며 신음하는 지구
지금이 지구를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가 필요한 바로 그 때이다
라투르를 소개하는 수식어는 너무나도 많다. 과학과 인문학을 아우르는 거의 모든 학문 분야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그중에서도 생태학과 사회학 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개척한 21세기 사상의 최전선에 서 있는 학자이다. 라투르의 가장 유명한 이론으로는 ‘행위자-연결망 이론’을 꼽을 수 있다. 라투르가 이 책에서 말하는 ‘착륙’의 의미 역시 행위자-연결망 이론의 연장선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근대인들이 지구를 바라보는 시각은 마치 우주 영화 속에 등장하는 푸르고 동그란 암석 덩어리를 바라보는 것과 같다. 그런 관점으로만 지구를 바라본다면, 우리는 지구 시스템이 인간의 행동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는지 영영 깨닫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지구를 ‘행성’이 아닌 ‘대지’로 감각해야 한다. 우리가 밟고 있는 이 땅을 다시 생각해보자. 풍부한 물, 숨 쉴 수 있는 공기, 비옥한 토양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우리와 나누는 자연을 말이다. 우리의 기반이 되어주는 이런 환경들은 오랜 시간 생명체 자체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다시 말해 한쪽에 유기체가 존재하고 다른 한쪽에 환경이 있는 것이 아니라, 양자에 의한 공동 생산이 있을 뿐이다. 인간은 더 이상 자연의 중심이 아니다. 다른 모든 생명체와 마찬가지로 자연과 교류하는 일부일 뿐이다. 우리가 ‘우주로서의 자연’이란 관점에서 벗어나 ‘과정으로서의 자연’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이다.
라투르는 우리에게 무엇을 하라고 명령하지도, 제도적 실체를 제시하지도 않는다. 다만 이 위기 상황을 이해할 철학적 발판을 제공하고 준비시킨다. 지금껏 그 어떤 인간 사회도 80억 명에 달하는 인류를 감당하고 있는 지구가 무슨 반응을 보일지 고심해 본 적이 없었다. 라투르가 말하는 신기후체제에 맞는 정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생각하기 시작해야 한다. 우리는 어디에 착륙하고 싶은지, 누구와 우리의 장소를 공유할 것인지 말이다.
라투르의 학문적 궤적을 집약한 도발적 논의
한국어판 서문에서 전하는 팬데믹과의 연관성
『지구와 충돌하지 않고 착륙하는 방법』은 2017년 프랑스에서 처음 출간되었다. 한국어로 번역된 라투르의 저작 중 가장 근래의 것이다. 그만큼 최근 라투르의 관심사를 다루고 있으며, 지금까지 그가 걸어온 학문적 궤적과 더 정교하게 발전된 논의들이 집약되어 있다. 그가 이 책에서 던지고 있는 메시지는 매우 ‘정치적’이며 신선하다.
라투르는 한국의 독자들에게 한국어판 서문으로 인사를 전했다. 책이 처음 출간된 때와 현재의 상황을 비교하자면, 지금은 세계적 팬데믹 상황으로 락다운이란 초유의 사태를 맞았다. 라투르는 이 책에서 말하려는 이야기와 펜데믹 상황이 매우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본다. 기후변화와 바이러스의 출현 모두 인간 활동에 따른 결과이기 때문이다. 락다운 상황 앞에서 글로벌이란 단어는 순식간에 힘을 잃었다. 팬데믹 속에서 사람들이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개념을 떠올린다면, 이제 공간은 실체가 위치하는 곳이 아니라 갈등과 법, 기술로 벡터화되는 곳이다. 더 이상 미터법을 따르는 공간의 정의를 당연히 여길 수 없게 되었다. 이와 관련된 더 깊은 논의는 이 책의 후속작이자, 곧 번역될 예정인 『나는 어디에?(O? suis-je?)』에서 살펴보게 될 것이다.
『지구와 충돌하지 않고 착륙하는 방법』은 처음 출간된 이후로 이미 13개의 언어로 번역되었다. 원제인 ‘어디에 착륙할 것인가?(O? atterrir?)’를 각 언어 사용권에 따라 어떻게 변주했고, 어떤 느낌의 이미지로 표지에 형상화했는지 확인하는 재미도 누려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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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균, 쇠고기, CO₂를 국회로 보내자!"
[인터뷰] '백남준 국제예술상' 브뤼노 라투르 교수
강양구 기자(정리) | 기사입력 2010.12.17. 19:40:00 최종수정 2014.02.24. 11:48:56
"세균, 쇠고기, CO₂를 국회로 보내자!" (pressian.com)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65766?no=65766#09T0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
양장
브뤼노 라투르 지음 | 홍철기 옮김 | 갈무리 | 2009년 07월 15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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