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적인 코칭을 받으려면
참고말씀: 사43:21; 마5:16; 요21:15; 롬15:16; 고전6:2,3; 엡2:19; 골1:13,14; 딤전2:1,2; 히13:15
읽을말씀: 벧전2:9
주제말씀: 벧전2: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첫째, 우리가 누군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벧전2:9 상)
최고의 코칭은 한두 번으로 끝나지 않으며, 또한 끝나서도 안 됩니다. 어째서입니까? 모든 그리스도인은 예외 없이 지속적인 코칭을 통해 꾸준하게 성장할 수 있고 또 하나님의 멋진 사명자들로 세워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수련회 등을 통해서 짧은 시간에도 코칭이 폭발적으로 이루어질 수도 있지만, 이후에도 꾸준하게 코칭이 이루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의 정체성, 곧 우리가 누군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사실 왜 사람들이 코칭을 거부하거나 도중에 그만 둡니까? 자신이 누군지를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안데르센의 동화 속에 등장하는 미운오리새끼의 경우를 보십시오. 왜 그 미운오리는 변화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으며, 새로운 것에 도전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습니까? 자신이 누군지도 몰랐기 때문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자신이 누군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변화하려고 하거나 새로운 것에 도전할 수 있었겠습니까?
우리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누군지도 모르면서 변화를 기대하거나 새로운 것에 도전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이제라도 분문을 통해 우리가 누군지를 제대로 깨닫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누구입니까?
① 택하신 족속, 곧 하나님께 선택 받은 새로운 유형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9절 상) 그러니 믿지 않는 친구들처럼 생각하거나 살아가려고 애쓸 필요가 전혀 없는 것입니다. 오히려 어떻게 살아가야 합니까?
② 왕 같은 제사장입니다.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9절 중) 즉 그리스도와 함께 세상을 판단하고,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세상도 너희에게 판단을 받겠거든 지극히 작은 일 판단하기를 감당하지 못하겠느냐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하거든 하물며 세상일이랴.”(고전6:2,3)
세상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또 그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해야 하는 제사장 같은 존재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딤전2:1,2) /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분을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실 만하게 하려 하심이라.”(롬15:16) 또 어떻게 살아가야 합니까?
③ 거룩한 나라와 그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9절 중) 즉 하나님의 거룩한 나라의 백성답게, 천국의 시민권자답게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엡2:19)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분문을 통해 우리가 누군지를 제대로 깨달았습니까? 우리가 하나님께 택한 받은 사람이자 왕 같은 제사장으로써 거룩한 나라의 백성임을 깨닫고 합당하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둘째, 우리를 왜 부르셨는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2:9 하)
지속적인 코칭을 받기 위해서는 또 무엇을 바로 알아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왜 우리를 부르셨는지, 곧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이유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왜 우리를 부르셨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아름다운 일을 선포하고 찬양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9절 하)
여기서 그 아름다운 덕이란 결국 무엇을 가리킵니까? 우리를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신 것, 곧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하여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하신 구원사건입니다.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 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골1:13,14)
그러므로 마땅히 우리는 어찌 해야 합니까? 이를 선포하고 선전해야 합니다. 무엇을 통해서 말입니까? 우리의 입술의 찬양을 통해서 그리하고,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사43:21) /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니라.”(히13:15) 우리의 말과 행실을 통해 그리 해야 할 것입니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6) 즉 우리 각자가 하나님 나라의 전광판(電光板) 내지는 간판(看板)이 되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아름다운 많은 일들을 마음껏 드러내고 찬양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우리가 부르심의 목적을 알지 못하면 어떻게 됩니까? 지속적인 코칭이 어려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어째서입니까? 예수님은 우리가 아무런 것도 모른 채 맹목적으로 따라오는 것을 원치 않으실 뿐만 아니라, 설령 따라온다고 해도 이 같은 상태에서는 제대로 된 코칭이 이루어질리 만무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최고의 코치이신 예수님께 계속해서 최고의 코칭을 받기를 원합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이 우리를 왜 부르셨는지부터 바로 깨닫고, 그 부르심의 목적에 따라서 합당하게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을 위해 사랑의 헌신과 믿음의 수고를 마다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요21:15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