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성요소는 분화할수록 좋다. 그래야 구성이 치밀해진다. 궁금한 게 없는 글이 된다. 문제를 해결하는 보고서에서 ‘문제점’을 분화하여 ‘문제점의 본질’, ‘문제점의 심각성 정도’ 등을 넣어주고, ‘기대 효과’만 쓸 것이 아니라 잘못됐을 때의 ‘부작용’을 추가하면 더 믿음이 간다.
일기도 오늘 한 일, 즉 ‘사실’만 쓰는 경우보다는 ‘느낌’을 덧붙이고, 나아가 사실과 느낌을 쓴 후 ‘다짐’으로 마무리하면 더 좋은 구성이 된다. ‘오늘 놀았다(사실)’, ‘후회된다(느낌)’, ‘내일은 공부해야지(다짐)’처럼. 이 경우는 구성요소가 세 개다. 구성요소가 ‘사실’ 하나뿐인 일기보다는 더 나은 글이 된다. 독후감도 줄거리, 저자 소개, 느낀 점만 쓰기보다는 책에 대한 정보와 함께 같은 분야 책과 비교, 평가가 들어가면 서평 수준으로 격상된다.
커뮤니케이션 이론 중에 ‘구성주의’라는 게 있다. 예컨대 갑은 ‘좋다’, ‘나쁘다’ 두 가지로 말하고, 을은 ‘매우 좋다’, ‘좋다’, ‘보통이다’, ‘나쁘다’, ‘매우 나쁘다’로 말한다면, 갑보다 을이 커뮤니케이션을 잘하는 사람이다. 이것을 구성주의에서는 ‘인지적 복합성’, 즉 ‘구성의 분화’라고 말한다. 구성이 복잡해지고 세분화됨으로써 의사 전달이 좀 더 명확하게 이루어졌다는 뜻이다.
나는 구성주의 이론을 발견하고 무척 기뻤다. 그동안 글쓰기 강의에서 강조했던 ‘글의 구성 틀’이 바로 여기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구성이 섬세할수록 좋은 글을 쓸 수 있다고 말해왔던 것이 틀리지 않았음을 이론적으로 검증받은 기분이었다.
구성 틀을 다양하게 갖고 있는 사람이 글을 빨리 잘 쓰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기죽을 필요는 없다. 기본은 ‘사실-느낌’이다. 감상문 대부분이 이 틀을 쓴다. 감상문이 자신에게만 머물지 않게 하려면 느낌만 쓰지 말고 의미까지 넣어주면 된다. 나를 우리로 확장한다. 그리고 공동체와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를 추가한다. 논술에서는 ‘느낌’을 이유와 근거로, 시에서는 비유나 은유로 나타낸다. 느낌을 ‘주장’으로 바꾸면 사설이나 연설문이 된다. 소설에서는 ‘사실’은 묘사로 표현된다.
이처럼 대부분의 글은 사실-느낌을 기본 틀로 활용한다. 사실과 느낌의 마스터키를 갖추면 글의 문을 열 수 있다. 객관-주관의 구성도 사실-느낌의 연장선상에 있다. 세계와 나, 사회와 개인, 보편과 특수, 이론과 실제, 원칙과 실천 등도 맥락을 같이한다.
쉽게 얘기하면 ‘남과 나’다. 나는 이 틀을 자주 쓴다. 앞은 남의 얘기이고, 뒤는 내 얘기다. 앞은 공자 말씀이고, 뒤가 본론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나, 주관, 개인, 특수, 현실, 실제, 실천, 해석이다. 문제는 객관과 주관의 비중이다. 많은 사람이 내 생각, 의견, 주장, 즉 주관이 빈약하다는 이유로 글쓰기를 주저한다. 그러나 굳이 주관을 많이 쓸 필요는 없다. 객관적 사실만 잘 써줘도 독자는 주관까지 읽어낸다. 어떤 사실을 선택했느냐에 따라 쓴 사람의 주관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구성 능력을 키우는 방법 역시 어렵지 않다. 칼럼을 잘 쓰고 싶으면 좋아하는 칼럼니스트의 칼럼 20~30편을 출력하여 구성요소가 무엇인지 파악해보면 된다.
2000년대 초 전북대 강준만 교수가 쓴 칼럼을 분석해본 적이 있다. 시작은 어떤 구성요소로 했고, 끝은 무엇으로 맺었으며, 중간은 어떻게 전개했는지 따져봤다. 일화 소개로 시작해서 인용이란 구성요소로 끝맺기도 하고, 누군가의 대화로 출발해서 속담이나 고사성어로 마치기도 했다. 칼럼마다 구성요소를 일일이 적어서 한 장에 정리했다. 그리 많지 않았다. 종이 한 장에 강 교수가 활용하는 구성요소가 망라됐다. 정리 내리기, 비교와 대조, 구분과 분류, 예시, 인용, 비유하기 등의 구성요소를 주로 썼다. 이 가운데 마음에 드는 칼럼의 구성요소에 내용만 내 것으로 바꿔서 칼럼을 써보자.
연설문도 마찬가지다. 국가기록원, 청와대나 총리실 홈페이지에 가면 각종 연설문이 공개돼 있다. 연설의 종류별로 구성 틀을 정리해보자. 축사, 기념사, 격려사 등 구성 틀에 맞춰 연설문을 써보자. 어렵지 않다.
보고서에 들어갈 수 있는 구성요소도 정리해보자. 많아봤자 50개가 넘지 않는다. 보고서의 중간제목에 해당하는 것들이 바로 구성요소다. 이것만 있으면 기획안, 제안서, 품의문, 협조전, 회의·행사·출장 보고서 할 것 없이 무엇이든 쓸 수 있다. 구성요소의 조합이 보고 문서이기 때문이다.
포털사이트에 가보면 직장에서 쓰는 글의 구성요소를 채집할 수 있다. 반나절만 시간 내면 종이 한 장에 정리가 가능하다. 책상에 붙여놓고 문서를 써야 할 때 한 번씩 읽어보자. 그중 몇 개를 조합하는 것이 문서 작성이다. 그것이 기획력이다.
대학에 들어가서 첫 여름방학을 맞아 고향 전주에 갔다. 방에서 뒹굴뒹굴하다 책꽂이에 꽂혀 있는 정치경제 교과서를 봤다. 불과 몇 달 전까지 끼고 살던 책이었다. 문득 내용이 궁금해서 목차를 봤다. 목차를 주의 깊게 본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아, 이런 내용이었구나!’ 처음으로 숲을 봤다. 그 책이 어떤 내용으로 구성되었는지를 비로소 알게 됐다. 고등학생 시절 내내 더듬더듬 나무만 만지고 다닌 것이다.
책의 전체 윤곽을 파악하려면 목차를 봐야 하듯, 글을 쓰기 위해서는 먼저 목차가 떠올라야 하지 않을까. 나는 그런 감을 고등학생 시절 ‘야한 장면’ 찾기에서 익혔고, 그 덕분에 미로를 헤매는 글쓰기는 면하게 됐다. < ‘강원국의 글쓰기, 남과 다른 글은 어떻게 쓰는가(강원국, 메디치미디어, 2020)’에서 옮겨 적음. (2020.08.22. 화룡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