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기술 업체들은 그동안 인터넷과 TV를 접목하려 애써 왔지만 별다른 소득이 없었다. 물론 그 노력의 결과로 부두나 로쿠, 티보, 박시, 애플 TV처럼 TV와 연결하면 인터넷에서 콘텐트를 내려받게 해주는 자그마한 셋톱박스들이 쏟아져 나오긴 했다. 심지어 마이크로소프트나 소니의 게임기도 셋톱박스 기능을 지원한다. 그러나 저마다 기능이 다른 기기가 이렇게 많은데도 인터넷을 자유롭게 즐기게 해주는 기기는 아직 하나도 없다.
그런데 구글이 고만고만한 셋톱박스들을 쓸어버릴 구글 TV를 출시했다. 앞으로 구글 TV프로그램이 내장된 TV가 출시되면, TV를 컴퓨터로 쓰는 일이 가능해진다.
애플 아이폰이나 안드로이드 기반 스마트폰이 호주머니 속 휴대전화의 조그만 액정 화면을 ‘손안의 컴퓨터’로 변신시켰다면, 이제는 거실에 놓인 거대한 스크린이 바뀔 차례다. 구글의 상품 매니저 리시 찬드라는 “인터넷은 이동통신 산업에 혁신을 가져왔다. 다음 목표는 TV”라고 말했다.
구글 TV가 구글의 장담대로만 된다면, 이제 우리는 거실에서 TV를 켜고 구글 TV를 통해 편안히 웹사이트에 접속하게 된다. (구글 크롬 브라우저를 이용해) 인터넷을 검색하고, 스마트폰처럼 앱(응용 프로그램)을 TV에 다운받는 일도 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트위터에서 트윗을 보내거나 판도라에서 음악을 듣기도 한다. 홈네트워크에 연결된 컴퓨터에서 사진 앨범과 같은 콘텐트를 불러내거나 아마존이나 넷플릭스에서 영화를 다운받고, 즐겨 찾는 채널이나 웹사이트, 자주 사용하는 앱에 책갈피를 해놓거나 스마트폰을 리모컨으로 사용하는 일 또한 가능하다.
안드로이드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구글은 구글 TV 코드를 모두에게 공개해서 이에 기반한 앱 개발을 도울 예정이다. 운만 따라준다면,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단 몇년 만에 수십만 개의 앱이 탄생했듯이 연쇄적인 혁신이 일어날 가능성도 크다. 구글의 발표처럼 “놀라움에 한계가 없는 것이 구글 TV의 가장 놀라운 점이다.”
구글은 전자업체에 무료로 소프트웨어를 제공하고 전자업체는 코드를 수정해서 자사 제품에 적용한다. 그런데 이런 방법으로 구글이 얻는 이득은 뭘까? 바로 구글 온라인 서비스 이용자의 증가다. 그러면 G메일이나 유튜브, 구글 맵 등에 올라온 광고가 더 많은 사람에게 노출된다. “사람들은 매일 5시간 동안 TV를 본다. 지금까지는 TV를 보는 사람에게 우리 서비스를 노출시킬 방법이 없었다”고 찬드라가 말했다. “사람들이 어디에 있든, 우리는 이들에게 접근할 통로를 원한다.”
그러나 구글은 사용자 친화적인 디자인에서 그다지 뛰어난 재능을 보여준 적이 없고, 소비자를 직접 공략한 경험도 없다. 이는 고스란히 구글 TV의 약점이다. 특히, 뛰어난 기능이 많은데도 조작이 어려워 일반 소비자가 사용하지 못할 가능성이 가장 우려된다. 시간이 흐르면 새로 출시되는 TV에 구글 TV나 이와 비슷한 소프트웨어들이 기본으로 내장될 듯하다. 소니의 경우 올가을부터 구글 TV 소프트웨어가 설치된 TV를 선보이고 향후 그 수를 점차 늘려나갈 계획이다. 로지테크 또한 구글 TV 소프트웨어를 운용하는 셋톱박스 ‘레뷰’를 10월 말 299달러에 출시한다.
가격이 다소 높은 듯하지만, 로지테크 CEO 제리 퀸들렌은 매출 1위를 달리는 리모컨 제품의 가격이 249달러인데도 “구매자가 몰린다”고 말했다. “레뷰는 가정에 있는 모든 콘텐트를 아주 쉽게, 끊김 없이 스크린으로 불러올 수 있다. 기존의 어떤 제품도 선사하지 못한 경험이다.”
문제는 스티브 잡스 애플 CEO의 지적처럼 사람들이 별도의 셋톱박스 구매를 원치 않는다는 점이다. 잡스는 출시 3년이 지난 애플 TV의 판매 저조 원인으로 ‘별도의 셋톱박스 구매’를 꼽은 적이 있다. 이렇게 잡스가 애플 TV의 실패 요인을 언급한 이후, 애플은 가격을 229달러에서 99달러로 대폭 낮춘 애플 TV를 새로 출시했다. 저가의 애플 TV는 지금은 잘 팔려나간다. 그러나 애플 TV는 애플 아이튠즈 스토어, 영화 사이트 넷플릭스, 사진 사이트 플릭커를 비롯한 소수의 제휴 사이트에만 접속이 된다는 한계가 있다.
게다가 별도로 셋톱박스를 구매해야 한다는 문제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다. 애플이 구글의 뒤를 이어 다른 업체가 생산한 TV에 자사 소프트웨어를 내장시켜 판매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이는 전혀 애플답지 않다. 그보다는 애플이 독자적으로 TV를 개발할 가능성이 더 크다.
앞으로는 우리가 TV라고 여기는 기기가 인터넷에서 쏟아져 나오는 모든 콘텐트를 한 곳으로 모아주는 단일 통로가 되고, TV 채널 수도 지금의 수백 개에서 수십만 개로 늘어날 전망이다. 기술 애호가라면 흥분을 가라앉히기 힘들겠지만, 디지털 녹화기(DVR) 설치 방법도 몰라 쩔쩔매는 ‘기계치’에게는 악몽이 될지도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