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3월, 서울방송(SBS)이 첫 전파를 쏘아 올렸다. 신군부의 언론통폐합 조치로 사라졌던 민영방송이 11년 만에 다시 빛을 본 것이다. 그러나 서울방송의 개국은 적잖은 논란을 불러 왔다. 민영방송의 부활이라는 의미가 있는 반면 상업방송의 등장에 따른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그치지 않았다. 게다가 민영방송의 사업자로 (주)태영이 선정된 것을 두고 내내 논란거리였다. 당시 태영은 도급순위 34위, 연간 순이익 19억원에 불과한 무명의 건설업체였다. 이런 업체가 무수한 경쟁자를 물리치고 선정된 만큼 특혜시비도 끊이지 않았다. 13년이 지난 지금 SBS는 연간 매출액 6천억원에 한해 순이익만 1천억원에 이를 정도로 대형 방송사로 성공했다.
"SBS을 겨냥한 방송 재허가"
그런 방송사가 위기를 맞고 있다. 최근 방송위원회는 지상파방송 재허가 추천과 관련, SBS와 부동산 투기의혹을 받고 있는 MBC에 대해 의결을 보류했다. 이와 함께 강원민방(GTB)는 '청문' 절차를 실시키로 하고, 경인방송(ITV)은 조건부로 재허가를 추천키로 했다. 청문회는 '재허가 불허' 또는 '조건부 허가'시에만 내리는 최후 조치인 만큼 경우에 따라서 방송중단이라는 초유의 사태도 나올 수 있는 상황이다. 현행 방송법은 방송사업자가 3년의 허가 만료 후 방송위의 재허가 추천과 정보통신부 장관의 재허가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방송위가 지상파 방송에 대해 재허가 규정을 근거로 칼날을 세우고 있는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지상파방송이 국민의 주파수자원을 빌려 사업을 하는 이상, 방송허가권을 통해 방송의 건전성을 확보하겠다는 의지다. 더불어 허가만 받고 나면 허가 당시 약속마저 깔고 뭉개는 방송사의 횡포에 쐐기를 받겠다는 계산이다. 결과적으로 이런 사태의 이면에는 SBS가 자초한 측면이 적지 않다. SBS는 허가 당시 순이익의 15%를 사회에 환원하겠다던 약속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 이 같은 약속 이행여부는 재허가 추천여부 심사항목으로 명문화하고 있는 사안이다.
문제는 방송위가 이 시점에 칼을 빼든 이유다. 누가 봐도 SBS가 논란의 중심에 있다. 사이버상에는 SBS에 대해 손보기라는 추측이 난무하는 실정이다. 사실 SBS는 대통령 탄핵정국때 다른 방송사에 비해 그나마 균형있는 보도를 하려 애썼다. 당연히 정권입장에서는 기분 좋을 리 없을 터다.
이 같은 추측은 칼자루를 쥔 방송위원회의 성격을 봐도 짐작이 된다. 본래 방송위는 전두환 정권 시절 방송에 대한 지배를 강화하기 위해 만든 기구다. 그런 만큼 권한도 무소불위이다. 방송위는 KBS의 대표이사 임명제청권을 비롯하여 감사 선임, 총 11명의 이사 중 6명의 이사 선임권이 있다. 여기에 예산 및 결산 승인권을 갖고 있어 사실상 KBS를 관리·감독하는 위치다. MBC에 대해서도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의 이사 전원(9명)에 대해 선임권을 행사하고 있다. EBS의 경우, 사장 임명은 물론 9명의 이사 중 5명을 선임하고 예산 및 결산을 승인하고 있다. 이 정도면 방송위가 SBS를 빼고는 지상파 방송 3사를 모두 장악하고 있는 셈이다.
"방송위, 자기혁신이 당면과제"
그러니 역할여하에 따라 정치적이라는 시각을 피할 길이 없다. 방송위는 지난 7월 편파적이라 제기된 9개의 탄핵방송 프로그램에 대해 모두 '문제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와중에 심의위원장과 일부 위원이 갈등 끝에 사퇴하는 촌극까지 빚었다. 심지어 스스로 의뢰한 언론학회의 탄핵관련보고서 마저 방송의 불공정성을 지적했다해서 외면했던 방송위원회다. 이렇듯 방송위는 정치적 편향성이 노골화할수록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것을 반증한다. 이번 방송 재허가와 관련해 논란을 빚는 것도 결국은 이 같은 불신과 무관치 않다. 방송위는 주된 임무가 공정방송에 대한 감시·감독에 있는 만큼 엄정한 중립성이 요구된다. 지금처럼 방송위는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음에도 논란이 되는 현실에서 획기적인 변화와 개혁으로 '바로서기'에 나서야 하는 당면과제를 안고 있다.<중부일보(2004.11.4. 조창용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