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ㆍ기후위기 시대에는 인왕경 독송이 제격
위기에는 누구나 마음이 불안
개별적 수행의 힘을 결집할 때
공포도 사라지고 힘도 증장돼
우리 선조들 인왕경 독송 통해
마음의 힘과 반야의 지혜 결집
전 세계 명상열풍은 내호 시작
인류 합심 세계를 지키는 외호
‘인왕경 독송’으로 시작해 보자
무학대사가 창건한 인왕사에서 이름이 유래된 인왕산. 사진은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서울 서쪽에 왜 인왕산이 있을까?
8월 동국역경원에서 출간한 독송본 인왕호국경.
최근 동국역경원에서 독송본 <인왕호국경(仁王護國經)>(백진순 번역, 혜거스님 감수)이 출간되었다. 삼국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 큰스님 100명을 모시고 백고좌(百高座)법회를 열었던 인왕회(仁王會)의 전통은 바로 이 <인왕경>에 기록되어 있는 법식에 따른 것이었다. 이 경전에 등장하는 호국품(護國品)은 한국불교의 정신이 ‘호국불교’라는 것을 증명해 주기에 충분한 것으로 한국불교사 연구에 중요한 부분이다.
내가 이 경전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인왕산 등산을 다니다가 문득 서울의 동쪽이 아닌 서쪽에 왜 ‘인(仁)’이라는 글자가 들어간 산이 자리 잡고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기면서부터이다.
동쪽이 인(仁)이고 서쪽은 의(義)를 상징하므로 동대문은 흥인지문(興仁之門)이고 서대문은 돈의문(敦義門)이라 명명되었다. 역사자료를 찾아보니 아니나 다를까 고려 때까지 인왕산은 서산(西山), 서봉(西峯)이었고, 조선시대에 와서 비로소 인왕산이라는 이름이 생겨난 것이었다. 그렇다면 조선 왕조가 시작하면서 동쪽과 서쪽에 모두 인(仁)이라는 글자가 쓰인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인왕(仁王)’의 의미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전문적인 학술 연구 논문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공통적인 것은 현재의 인왕산에 ‘인왕사’라는 절이 있었고 이 절은 무학대사가 세운 사찰이며, 태조 이성계가 직접 거둥했다는 기록이 왕조실록에 전하고 있으며, 이러한 인연으로 ‘인왕산’이라는 이름이 정해졌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인왕’이라는 용어에 대해서는 전문적인 연구가 부족해 보였다. 한 연구에 따르면 금강역사(金剛力士)를 의미하는 ‘인왕역사(仁王力士)’의 의미를 담아 무학대사가 사찰을 창건했다고 추정하고 있었다. 인왕사가 왕실의 호법신장이라는 의미인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들어갈 필요가 있다.
나는 고려의 역사에서 연등회보다는 실시횟수가 적었지만 팔관회보다는 많이 국가행사로 행해졌던 ‘인왕회’와 인왕 백고좌의 역사를 더듬던 중 인왕경을 만나게 되었다. 백진순 선생이 번역한 원측의 주석본인 <인왕경소>를 일람하게 되면서 인왕산은 인왕경에서 그 이름이 유래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확신이 들었다.
무학대사가 어떠한 연유로 사찰 이름을 인왕사로 했다는 정확한 역사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하지만 인왕산을 주산으로 하고 북악산을 좌청룡으로 하여 동향을 해야 조선이 편안할 것이라는 자신의 의견이 묵살되고 정도전과 사대부의 말만 듣고 남향을 고집하는 것을 보고 왕조의 미래에 근심이 생겼을 것이다. 그리하여 무학대사는 인왕사를 창건하여 인왕경을 독송하며 국가를 수호하겠다는 발원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
인왕경의 이름은 <인왕호국경>, <인왕호국반야바라밀경>이라 하여 호국품을 강조하거나 반야부의 경전임을 드러내는 이름과 함께 <인왕문반야바라밀경(仁王問般若波羅蜜經)>이라는 이름도 있다. 바사닉왕을 비롯한 16 국왕이 부처님에게 반야바라밀을 질문하는 경전이라는 뜻이다. 그 왕들을 부처님은 ‘인왕(仁王)’이라고 칭해주며 세상에 환란이 닥칠 때 이 경을 독송하며 내호(內護)를 통해 백성의 몸과 마음을 수호해 주고, 외호(外護)를 통해 불법(佛法)과 국가를 수호하라는 이호(二護)의 가르침을 내렸던 것이다. 16 국왕을 향한 부처님의 마음이 바로 무학대사가 이 태조에게 전하고자 했던 간절함과 동일했으리라.
고려말의 3대 화상이었던 나옹선사의 제자였던 무학대사의 호국(護國)과 호법(護法)의 의지가 담긴 사찰인 인왕사 창건으로 인해 인왕산이 된 것이다. 구글에 찾아보면 인왕산은 전 세계에 한국밖에 없고 중국과 일본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연산군이 1503년 승려들이 경복궁을 내려다보는 것이 싫다고 인왕사를 폐사시켜 버렸으니 이번에 출간된 ‘독송본 인왕호국경’은 520년 만에 인왕회의 전통을 이어보려는 21세기의 새로운 호국의 발원이 되는 셈이다.
혼돈 시대에는 늘 인왕경 독송
인왕경은 위경(僞經)의 혐의가 있다. 인도풍이 아닌 중국적인 색채가 가미된 부분들이 제법 있다. 중국 당나라 시절에도 이러한 논의는 있었다. 진제와 길장, 그리고 원측은 이 사실을 알고도 인왕경에 대한 주석을 남겼다. 위기의 시대를 맞아 이보다 좋은 경전이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기꺼이 주석을 남겼던 것이다. 구마라집 번역본에 원측의 주석이 있으며, 삼국시대부터 고려시대, 그리고 조선 초기까지 900년을 독송해 왔던 유서 깊은 경전이 바로 인왕경이다. 코로나19라는 전염성과 갖가지 기후재앙 시대에 새롭게 되살려야 할 한국불교의 위대한 전통이 바로 ‘인왕경 독송’이라 하겠다.
지금처럼 온 세상이 역병으로 혼란이 온 시기에는 인류가 개인주의로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 세계의 모든 정치지도자와 리더들은 이 경전에서 설한 부처님의 지혜를 수지하고 세계를 이끌어 나갈 지혜를 얻어야 한다. 그 근본에는 공(空)의 반야 지혜와 나와 남이 따로 없다는 불이(不二)의 정신, 그리고 중생을 제도하는 보살행의 실천이 인왕경의 주된 내용이다. 관공품(觀空品), 보살교화품(菩薩敎化品), 이제품(二諦品)에서 안을 수호하는 내호(內護)를, 호국품(護國品), 산화품(散花品)에서 밖을 수호하는 외호(外護)의 지혜를 설하고 있다.
이번 여름에 있었던 우리나라 강남의 물난리와 파키스탄의 홍수, 유럽의 유례없는 폭염과 가뭄, 이 와중에 발생한 중국 쓰촨성의 지진 등 온갖 기후재앙과 질병의 양상들이 인왕경의 수지품(受持品)과 촉루품(囑累品)에 자세히 열거되어 있다. 이러한 거대한 카오스의 시기에는 마땅히 이 경전을 범국가적으로 매일 독송하라는 것이 부처님의 말씀이었다.
호국(護國)에서 호세(護世)로
호국불교는 한국불교의 특징 가운데 하나이다. 이것을 부정하는 것은 너무나 현명하지 않은 고집이다. 900년 동안 이어졌던 인왕회는 이를 뒷받침해 주는 명백한 역사 사료이다. 위기가 오면 사람들의 마음은 불안하기 마련이다. 개별적 수행의 힘을 결집할 때 공포도 사라지고 힘도 증장된다. 우리 선조들은 인왕경 독송을 통해 마음의 힘과 반야의 지혜를 결집해 왔다.
의외로 인왕경은 번역하기에 매우 어려운 경전이다. 원측의 주석이 없었다면 구두를 제대로 끊어 읽기조차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신라를 대표하는 천재적인 원측스님의 주석이 남아 있어 21세기 독송본 인왕호국경이 세상에 출현할 수 있었다. 이미 주변에 많은 분이 인왕경 독송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인왕회가 곳곳에서 들불처럼 번지기를 바란다. 마음 같아서는 G7이나 G20 정상회담에서 인왕경을 독송했으면 좋겠지만 호국불교의 위대한 전통을 이어온 우리 한국인들부터 수지 독송하여 선한 영향력을 세상에 펼쳤으면 한다.
인왕경에는 호심(護心), 호신(護身), 호가(護家), 호법(護法), 호국(護國)까지 열거되어 있다. 세계가 하나가 된 스마트 시대에는 인왕경을 통해 호세(護世)에까지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전 세계에 명상 열풍이 일어난 것을 보면 분명 내호는 시작되었으니 인류가 합심하여 세계를 지키는 호세의 외호를 한국 땅에서 인왕경 독송을 통해 시작해 보는 것은 어떨는지 기대해 본다.
[불교신문 3734호/2022년9월2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