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 부르는 층간소음 이렇게 막았다
아파트 층간 소음이 단순한 이웃간 다툼을 넘어 살인으로 이어지는 등 전 국민 70% 아파트거주시대에 새로운 사회 병리 현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정부는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해 관련 법규를 강화하고 있지만 2005년 이전에 지어진 대부분의 아파트가 층간소음에 취약한데다 이를 방지할 수 있는 기술도 없어 그야말로 무대책인 상황이다.
하지만 몇몇 아파트는 자체적으로 도입한 층간소음문제를 해결할 조정 기구를 자체적으로 도입해 소음 시비를 획기적으로 줄이고 있어 타 아파트의 귀감이 되고 있다.
지난 2010년 층간소음으로 인한 칼부림 사건을 겪었던 대구 수성구 지산동 녹원맨션(542세대)은 지난해 5월 전국에서 최초로 입주민 대표들로 구성된 소음 분쟁 해결기구인 ‘층간 소음 조정위원회’를 구성해 ‘녹원맨션 층간소음 방지규정’을 마련했다.
방지규정에 따르면 분쟁 조정 절차는 크게 4단계에 걸쳐 이루어진다. 먼저, 피해 민원이 들어오면 조정위원회는 간단한 사실 관계를 파악한 뒤 소음을 유발한 세대에 시정을 권고한다.
2주간의 권고 기간이 끝나도 개선되지 않으면 소음 피해자와 가해자 그리고 조정위원이 한자리에 둘러앉아 3자 면담으로 재차 조정을 시도하고 이마저도 실패하면 조정위원회는 전문가를 동반해 현장 방문조사를 실시하고, 이후 경우에 따라 상습적으로 소음 문제를 일으킨 세대를 아파트 모든 입주민에게 공지한다.
이 규정은 소음으로 인한 분쟁당사자간 직접 접촉을 차단하면서 3자에 의한 조정력을 키우는 한편 막무가내식의 입주자들은 공동체에 공개함으로써 억지력을 확보하는 셈이며 층간 소음 시비가 이웃간 대화와 협조만으로도 상당부분 해소될 수 있다는 ‘해결 모델’이 됐다. 실제 녹원맨션은 이 같은 조정 절차가 시행된 뒤 소음 민원이 예전의 30% 수준 정도로 줄어들었다.
경기도 하남시 D아파트와 부산시 해운대구의 H아파트도 ‘층간소음관리위원회‘를 구성해 층간소음분쟁을 획기적으로 줄였다. 경기도 하남시 D아파트는 자체 운영위원회를 발족해 설문조사와 공청회를 통해 6개 항목의 규칙을 만들었다. 세탁과 청소 등 소음을 일으키는 가사는 일요일엔 절대 금지하고, 월요일부터 토요일에도 오후 8시부터 오전 9시 사이에는 할 수 없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를 지키지 않으면 관리사무소로부터 시정권고, 그래도 해결되지 않으면 3만원의 벌금을 부과한다.
너무하다 할 정도의 규칙이지만 층간소음의 심각성을 인식한 주민들이 잘 따라 운영위원회 발족 이후 층간소음 민원은 종전 한 달에 30건 이상에서 2~3건으로 뚝 떨어졌다.
부산시 해운대구의 H아파트 역시 지난해 10월부터 입주자대표 7명으로 구성된 층간소음관리위원회를 만들어 운영 중이다. 위원회가 만든 규칙은 밤 12시~오전 5시엔 샤워와 배수 자제하고 밤 10시~오전 6시 음향재생기 사용을 금지했다. 또 문을 세게 닫는 행위와 아이들이 뛰는 행위 등을 자제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분쟁이 발생하면 위원회를 개최해 조정을 유도하고 조정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명단을 전체 입주민들에게 공지한다.
한편 대구시는 층간소음이 개인간 문제에 그치지 않고 사회문제로 비화되고 있다고 판단해 ‘녹원맨션 층간소음 방지규정’을 벤치마킹해 대구지역 각 구․군마다 층간소음 관리 시범 아파트를 지정해 운영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