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키예(터키)와 한국과의관계]
2022년 부터 국호를 터키에서 튀르크인의 땅을 의미하는 튀르크예로 변경 되었다
그렇다면 왜? 터키와 대한민국은 형제국가인가?
2002년 한일월드컵 이후 ‘터키’ 하면 형제의 나라라는 수식어가 떠오릅니다
하지만 그렇게 불리는이유를 알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은것같지는 않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터키가 6·25 때 미국,영국에 이어 1만4936명이라는 세번째로 많은병력을
파병하여 미국에이어 두 번째로 많은, 721명 전사에 2,147명이 부상했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많은 병력을 파견하고 또 전사했을까요? 라는
질문을 하면 그들은 대답하지 못합니다.그건 궁극적인 이유가 될수없기 때문이지요.
터키인들은 자신들의 나라를‘투르크’라고 부릅니다.
세계가 대한민국을 코리아(고구려또는 고려)’라고 하는 것처럼 말이지요.
역사를 배웠다면 ‘고구려’와 동시대에 존재했던 ‘돌궐(突厥)’이라는 나라를 알고 있을 겁니다.
220년에 수립된 ‘테오 야브구’ (Teoman Yabgu /흉노/ 匈奴) 왕국은 몽골과 함께 중국에서
흉노(匈奴)라 불리던 민족의 하나로, 6세기 중엽부터 8세기 중엽까지 몽골고원을 중심으로
활약했지요.
‘투르크’는 돌궐의 다른 발음이며, 우리 한민족과 같은 우랄 알타이족으로 고구려 전성기엔
글안 여진(숙신)과 마찬가지로 상당수의 돌궐인이 고구려의 기층(基層)민중에 속했습니다.
또한, 고구려와 돌궐은 동맹을 맺어 가깝게 지냈는데, 고구려가 멸망한 후(668년)
돌궐은 고구려의 유민을 많이 받아들이면서 우리민족과 특별히 긴밀해졌습니다
고구려가 멸망하자, 대부분의 서민은 초기엔 당(唐), 후엔 신라의 지배를 받으며 한반도에서
살아갔습니다. 또 귀족계급 등 중상류층 가운데 일부는 당에 포로로 잡혀갔지요.
나머지 고구려 유민은 몽골, 글안 돌궐 등 타민족에 섞여 살다가, 682년에 동돌궐이
올란바토르 현 몽고의 수도에 돌궐 제 2제국을 수립할때 바로 여기에 참여 합니다.
참여한 유민의 숫자가 전체 돌궐 제2제국 인구의 절반인 20만명이 넘었다니 돌궐 제 2제국은
고구려의 후예라 하여도 될 판이지요.
돌궐과 고구려는 계속 우호적 이며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서로를 형제의나라’라 불렀습니다.
그리고세월이 흘러 지금의 터키에 자리잡은 그들은 고구려의 후예인 한국인 들을
여전히 형제의 나라라고 부르는 데에는 이처럼 터키가 한때는 고구려의 기층민중 이었고,
고구려 멸망 후에는우리가 돌궐 제2 제국의 기층민중이었기 때문입니다.
즉,우리는 아주 오랫동안 형제의 관계였던 거지요.
그렇다면 의문점 하나.우리는 왜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을까?
그리고 터키인들은 왜 아직도 우리를 형제의 나라라고 부를까?
답은 간단하다.역사 교과서의 차이다.
우리나라의 중,고 역사 교과서는 '돌궐'이란 나라에 대해 단지 몇 줄만 할애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돌궐이 이동해 터키가 됐다느니 훈족이 이동해 헝가리가 됐다느니 하는 얘기는 전무하다.
터키는 다르다.
오스만 투르크 제국을 경험했던 터키는 그들의 역사를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학교에서 역사 과목의 비중이 아주 높은 편이며 돌궐 시절의 고구려라는 우방국에 대한 설명
역시 아주 상세하다. '형제의 나라'였다는 설명과 함께. 그래서 대부분의 터키인들은 한국을
사랑한다. 설령 한국이 그들을 몰라줄지라도..
실제로 터키인들은 한국인들 역시도 그들과 같은 생각을 할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한국인들도 터키를 형제의 나라라 칭하며 그들을 사랑할 것이라 믿고 있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했다.1988년 서울 올림픽 때 터키의 한 고위층 관계자가 한국을 방문했다.
자신을 터키인이라 소개하면 한국인들에게서 큰 환영을 받을 것이라 생각했으나
그렇지 않은 데 대해 놀란 그는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물었다.
'터키라는 나라가 어디 있는지 아십니까?' 돌아온 답은 대부분 '아니오'였다.
충격을 받고 터키로 돌아간 그는 자국 신문에 이런 제목의 글을 기고했다 한다.
'이제.. 짝사랑은 그만합시다..'
이런 어색한 기류가 급반전된 계기는 바로 2002 월드컵이었다.
'한국과 터키는 형제의 나라, 터키를 응원하자'라는 내용의 글이 인터넷을 타고 여기저기 퍼져
나갔고 터키 유학생들이 터키인들의 따뜻한 한국사랑을 소개하면서 터키에 대한 한국인들의
관심이 증폭되게 되었다. 6.25 참전과 올림픽 등에서 나타난 그들의 한국사랑을 알게 된 한국인
들은 월드컵을 치르는 동안 터키의 홈구장과 홈팬들이 되어 열정적으로 그들을 응원했다.
6·25때 북한이 남침하자,아시아에서는 가장 먼저, 미국, 영국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군대 (1만 4936명, 전사 721명, 부상 2147명)를 파견해 우리를 도왔던 것이지요.
파병이 늦어지자, 터키의 고등학생들이 왜 형제의 나라에 군대를 파견하지 않느냐 면서 데모를
벌였답니다. 6·25 참전과 올림픽등에서 나타난 그들의 한국사랑을 알게 된 한국인들은 월드컵을
치르는 동안 터키의 홈구장과 홈 팬들이 되어 열정적으로 그들을 응원했습니다.
하이라이트는 한국과 터키의 3, 4위전. 자국에서조차 본적이 없는 대형 터키 국기가 관중석에
펼쳐지는 순간 TV로 경기를 지켜보던 수많은 터키인이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합니다.
경기는 한국 선수들과 터키 선수들의 살가운 어깨동무로 끝이났고 터키인들은 승리보다도
한국인들의 터키사랑에 더욱 감동했으며,그렇게 한국과 터키의 ‘형제애’는 더욱 굳건해 졌습니다.
한국의 경제성장을 자기 일처럼 기뻐하고 자부심을 느끼는 나라,
2002년 월드컵 터키전이 있던 날 한국인에게는 식사비와 호텔비를 안 받던 나라,
월드컵때 우리가 흔든 터키국기(國旗)가 터키에 폭발적인 한국바람을 일으켜 그 후 터키 수출이
2003년 59%, 2004년 71%나 늘어났다는 KOTRA 통계가 있습니다.
이제 그 형제나라가 고난을 당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도와주고 같이 아파 해야됩니다.
6.25 때에 800여명이 생명을 바쳐 우리나라가 존재할수 있었듯이 우리도 최고의 선행으로
도움을 줘야됩니다.그들은 피가 섞인 우리들의 형제니까요...
지진으로 생명을 잃은 수많은 튀르키예인들에 삼가 명복을 빕니다.(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