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20일 오늘의 역사
2022년 윤석열 대통령 유엔총회 기조연설
2021년 그룹 방탄소년단 유엔을 방문하여 희망의 메시지 전달
미국 뉴욕을 방문 중인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20일(현지시간) 유엔의 SDG 모먼트(지속가능발전목표 고위급회의) 행사에서 10~20대 미래세대를 향해 "'로스트 제너레이션'이 아니라 '웰컴 제너레이션'이라는 이름이 더 어울린다"며 희망 메시지를 전달했다. BTS는 이날 오전 유엔총회장에서 열린 SDG 모먼트 개회식에서 특사 발언을 통해 이같이 밝혔다.
이 자리에서 BTS RM은 "저희는 오늘 미래세대의 이야기를 전하려고 왔다"며 "이 자리에 오기 전에 전 세계 10대, 20대들에게 지난 2년은 어땠고, 지금은 어떤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지 물어보았다"고 말했다.
정국은 "입학식, 졸업식이 취소됐다는 소식도 안타까웠다. 인생에서 꼭 기념하고픈 순간을 놓쳐 많이 아쉬우셨을 것 같다"며 "저희들 같은 경우엔 오랫동안 준비한 콘서트 투어가 취소돼서 속상도 했고, 우리가 완성하고 싶었던 순간을 한동안 그리워했던 것 같다"고 전했다.
지민은 아울러 BTS가 공식 SNS를 통해 진행한 소중했던 순간을 담은 사진을 보내는 '#youthtoday(청춘의 오늘)' 캠페인 결과를 소개하며 "자연과 함께하는 모습을 보내 주신 분들이 많았다"며 "2년 동안 자연을 느끼고 가꾸는 시간들을 더 특별하게 느끼셨던 것 같다"고 말했다.
제이홉은 "지구에 대한 애도는 정말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며 환경문제를 언급했다. 이에 RM은 "이 자리에 오기 위해 준비하는 동안 알게 됐던 건 환경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전공으로 택해 공부하는 학생분들도 많다는 사실이었다"며 "아무도 겪어보지 않은 미래고, 거기서는 우리들이 채워갈 시간이 더 많으니,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는 게 맞을지 스스로 답을 찾아보고 계신 거였다"고 설명했다.
한편, BTS가 유엔총회에서 연설하는 것은 이번이 세 번째다. 지난 2018년 제73차 유엔총회에서는 유엔아동기금(UNICEF)의 청년 어젠다 '제너레이션 언리미티드'(Generation Unlimited) 발표 행사에 참석해 "스스로를 사랑하고 목소리를 내자"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지난해 9월에는 온라인으로 진행된 제75차 유엔총회 유엔 보건안보 우호국 그룹 고위급 회의에서 특별 연사로 나서 코로나19로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 미래세대를 향해 "삶은 계속될 것이다. 우리 함께 살아내자(Life goes on. Let's live on)"는 응원 메시지를 냈다.
2019년 기후변화에 의한 환경오염과 파괴에 맞선 세계기후파업 기후 비상사태 선언
2018년 문재인 대통령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함께 백두산 오름
2016년 한겨레 최순실 국정농단 관련 첫 보도
2013년 일본 후쿠시마 현에 규모 5.9의 지진 발생
2012년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유튜브의 역대 최고좋아요 수로 기네스북에 올랐다
2010년 '유신헌법 제정 참여' 원로 헌법학자 한태연씨 별세
유신헌법 제정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진 원로 헌법학자 한태연(韓泰淵·94)씨가 2010년 9월 20일 별세했다.
1916년 함남 영흥생으로 일본 와세다대 법학부를 졸업, 1949~1963년 서울대·동국대·한양대 교수를 지낸 '1세대 헌법학자'이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공화당)으로 정계에 입문, 유정회 소속으로 9·10대 의원을 지냈다.
그는 1972년 유신헌법 제정 때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독재를 정당화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2001년 한국헌법학회 주최 학술대회에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직후 박정희 대통령이 '헌법 개정안'이라며 유신헌법 초안이 적힌 메모를 건네주며 법무부를 도우라는 지시를 내렸고, 이미 법무부가 초안을 마련한 상태에서 자구(字句) 수정만 해줬다"고 경위를 밝혔다.
한국헌법학회 회장·고문을 맡았으며, 대한일보 논설위원·서울신문 주필을 역임하며 언론계에도 몸담았다.
2009년 ‘짱구는 못말려’ 작가 우스이 요시토 실족사
2009년 9월 11일 등산을 떠난 뒤 연락이 끊긴 일본 인기 애니메이션 ‘크레용 신짱(한국명 짱구는 못말려)’의 작가 우스이 요시토(臼井儀人·51)의 시신이 20일 군마(群馬)현과 나가노(長野)현 경계에 있는 아라후네(荒船)산(표고 1423m) 절벽 아래에서 발견됐다.
우스이 작가의 시신 주변에서는 카메라와 휴대폰이 든 등산가방도 함께 발견됐다. 유서는 없어, 실족사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된다.
우스이 작가는 지난 11일 가족들에게 “오후에 돌아오겠다”며 아라후네산으로 떠난 뒤 연락이 끊겼다.
1987년 만화작가로 데뷔한 그의 대표작 ‘크레용 신짱’은 1990년 8월 후타바샤(雙葉社)의 ‘위클리 만화 액션’에 연재를 시작해 현재 같은 회사 잡지인 ‘만화 타운’에 지금도 연재되고 있다. 만화는 물론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돼 어린이에서 어른까지 폭넓은 팬층을 확보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다.
2008년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 메리어트호텔에 차량폭탄테러 53명 사망
2008년 타보 음베키 남아공대통령 아프리카민족회의(ANC) 요구로 사퇴
2004년 삼성전자 8기가비트(Gb)플래시메모리 반도체 개발 발표, 60나노시대 개막
2000년 김영호, 시드니올림픽 남자 펜싱경기 사상 첫 금메달
시드니올림픽 남자 펜싱 플뢰레 개인전에 출전한 한국의 김영호 선수가 2000년 9월 20일 독일의 랄프 비스도르프를 15대14로 꺾고 금메달을 획득했다. 한국이 펜싱 사상 첫 금메달을 따내는 순간이었다. 아시아 남자로도 처음으로 따낸 올림픽 펜싱 금메달이었다.
김영호는 이에 앞서 8강전에서 세계 랭킹 3위인 우크라이나의 세르게 골루비츠키를 15대 5로, 4강전에선 러시아의 드미트리 체브첸코를 15대14로 물리치고 결승에 진출했다.
14세이던 충남 논산의 연산중 1학년때 검을 잡은 김영호는 1991년 국가대표에 발탁된 뒤 94히로시마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1997년 세계선수권 은메달을 따며 세계강호로 성장한 김영호는 99세계선수권 3위, 99오스트리아, 99이란국제대회, 2000대우그랑프리를 석권했다.
1998년 미국 프로야구 선수 칼 립켄, 연속출장 2632경기 기록 수립
메이저리그의 ‘철인’ 칼 립켄 주니어(38·볼티모어 오리올스)가 21일(한국시각) 뉴욕 양키스전에 결장했다 . 이로써 립켄은 82년 5월 30일부터 16년 4개월여간 계속한 연속출장기록을 2,632경기에서 마감했다.
95년 9월 6일 클린턴 대통령이 보는 앞에서 루 게릭의 기록(39년·2,130경기)을 56년 만에 경신한 뒤 신기록을 이어가던 립켄은 경기 전 감독에게 “이제는 때가 됐다”며 출장 라인업에서 빼줄 것을 요구했다 . 맞상대 양키스선수들은 소식을 듣고 벤치 앞에 일렬로 늘어서서 경의를 표했고, 관중들도 우레와 같은 기립박수를 보냈다.
1995년 제1회 광주비엔날레 개막
세계인의 미술제전인 제1회 광주비엔날레가 1995년 9월 20일 개막됐다. 국가, 민족, 이념, 종교 등을 초월해 세계 공동체를 형성하자는 뜻에서 정해진 ‘경계를 넘어’(beyond the borders)를 주제로 한 광주비엔날레는 11월 20일까지 71만평 규모인 광주중외공원 문화벨트 일원에서 열렸다.
세계현대미술의 최근 경향을 볼 수 있는 본전시(市) 국제현대미술전을 비롯, 6개의 특별전과 3개의 후원전도 20일 일제히 개막됐다. 본전시 국제현대미술전의 출품작들은 세계 50개국 91명의 작품 88점. 이름이 알려진 대가들보다는 각국에서 현대미술의 흐름을 주도하는 20~30대 젊은 작가군이 중심을 이루고 있는게 특징이었다.
창립전 영예의 대상은 2천5백여개의 맥주병과 목선의 결합을 통해 쿠바 난민의 문제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쿠바 작가 알렉시스 레이바 카초씨(24)의 설치작품 ‘잊어버리기 위하여’가 차지했다. 이 작품은 한국소재를 사용함으로써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있는 쿠바와 한국의 또 다른 만남을 시도, 예술과 정보의 유대를 창출해내는 탁월한 힘을 발휘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1995년 미국의 최대 통신사 AT&T분할 발표
미국 최대의 통신회사인 AT&T사는 3개의 회사로 나누어질 것이라고 20일 말했다. AT&T사의 이번 분할은 역사상 최대 규모의 회사분할로 평가되고 있다. 이 회사가 분할하는 것은 컴퓨터 사업에서 손을 떼고 장거리 통신사업에 집중하기 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새로이 분할될 3개 회사의 주식은 AT&T사의 주주들에게 넘겨져 공식적으로 거래될 예정이다.
AT&T사의 로버트 알렌 회장은 이날 아침 열린 긴급이사회의에서 회사분할안이 가결된 직후 “고객 요구, 기술, 정부정책의 변화가 우리 산업을 급격하게 변형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분할된 3개 회사는 통신서비스, 통신장비, 금융서비스 등 3개 부문의 사업에 각각 집중할 것으로 알려졌다. AT&T사측은 특히 전화사업, 신용카드사업, 무선통신사업 부문은 AT&T라는 이름으로 하나의 사업체로 유지될 것이라고 전했다.
1994년 미국 무대음악의 거장 줄리 스타인 사망
`집시`와 `화니 걸` 등의 뮤지컬 음악을 작곡, 에델 머먼과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등을 유명스타로 도약시킨 미국 무대음악의 마지막 거장 줄리 스타인이 1994년 9월 20일 88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사망전까지 70년 간에 걸쳐 무려 1천5백곡의 영화 및 뮤지컬 음악을 작곡, 아카데미상과 토니상을 수상한 스타인은 뉴욕 소재 마운트 시아니 병원에서 이날 숨을 거두기 6주전 심장 절개수술을 받았었다.
스타인은 지난 1954년 영화 `분수 속의 동전 세닢`의 동명 주제곡으로 아카데미상을 수상한데 이어 1968년에는 `할렐루야 베이비`로 토니상을 받았다. 또한 스트라이샌드가 부른 `화니 걸` 속의 `피플`은 바로크계 음악이 인기가 없던 1964년 최고 인기곡 차트에 5차례나 올랐다. 대표적 작품은 스티븐 존트하임의 시를 바탕으로 작곡, 1959년 발표한 `집시`로 `솟아나는 것은 모두 장미`와 `작은 세계` 등의 곡을 수록하고 있으며 에델 머먼은 집시 엄마 로즈 리 역으로 일약 유명해졌다.
런던에서 태어난 스타인은 1912년 부모와 함께 미국으로 이민 후 11세에 시카고와 디트로이트의 교향악단의 객원 솔로주자를 지냈고,17세에 첫 히트곡 `일요일`을 발표했다.
1989년 환율자유화 시행
1988년 태풍 길버트 멕시코 남부 유카탄지역 강습 사망 200명 이재민 20여만명
1986년 제10회 아시안게임 서울서 개막
30억 아시아인의 영원한 우정과 전진을 다짐하는 제10회 아시안 게임이 1986년 9월 20일 서울 잠실종합운동장에서 막을 올렸다. 27개국이 출전, 중국이 금메달 94개로 종합1위, 한국이 금메달 93개로 2위 일본이 금메달 58개로 3위를 각각 차지했다.
서울아시안게임은 역대 대회사상 최대규모인 4,839명의 선수와 임원이 참가했으며 경기종목은 태권도를 포함해 25개 종목이고 세계신기록 11개, 세계타이기록 2개, 아시아신기록 90개, 아시아타이기록 8개, 대회신기록 224개, 대회타이기록 32개를 각각 수립, 1982년 인도대회때보다 풍성한 기록을 남겼다.
1985년 남북고향방문단과 예술공연단, 서울과 평양 교환방문
1985년 5월 제8차 남북적십자 본회담에서 남북한이 이산가족 고향방문단과 예술공연단의 교환방문을 합의해 1985년 9월 20일 김상협 대한적십자사 총재가 인솔하는 우리측 방문단 151명과 손성필 북한적십자회 위원장이 이끄는 북한측 방문단 151명이 판문점을 거쳐 서울과 평양을 각각 방문했다.
우리측 고향방문단 50명중 35명이 북쪽 가족들과 상봉하고 북한측 고향방문단 30명이 남쪽가족 및 친척들과 만났으며 21일과 22일에는 평양대극장과 서울의 중앙국립극장에서 예술공연을 가진 뒤 23일 판문점을 통과 각자 자기측 지역으로 돌아갔다.
남북한 고향방문단은 민족통일에 대한 국민의 열망을 폭발시켜 전국민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었으나 국민들의 기대와는 달리 일회적 사건에 그친데다 체제간의 장벽 등 분단 40년의 깊은 골로 민족적 통한을 심화시키는 등 아쉬움을 남겼다.
1984년 충북 제원 남한강상류 상공에서 KBS헬기 고압전선에 걸려 폭발추락
1981년 한국-바베이도스, 문화 및 경제협정 체결
1981년 중국, 3개 위성발사 성공
1979년 중앙아프리카 쿠데타로 독재자 보카사 추방
1978년 스와질랜드왕국 마페브 드라미니수상 내한
1978년 고려대장경 초본 59종 73권 발견
1975년 프랑스의 외교관 겸 시인 생 종 페르스 사망
프랑스의 외교관이자 시인인 생 종 페르스가 1975년 9월 20일 사망했다. 보르도와 파리의 대학에서 공부하고 1914년 외교관의 길을 걷기 시작한 페르스는 중국 상하이 주재 영사와 베이징 주재 서기관을 지냈으며, 1921년에는 동아시아 문제 전문가로 워싱턴 군축회의에 참가했다.
1921년부터 10여년 이상이나 정치가인 아리스티드 브리앙의 비서로 근무하다 1933년 대사급에 해당하는 프랑스 외무부 사무국장에 임명됐다. 1940년에 비시 정권에 의해 프랑스 시민권까지 박탈되자 미국으로 망명, 국회도서관에서 프랑스 문학 담당 고문으로 일하다 1957년 귀국했다.
그는 젊어서부터 시를 써, 외교관에 못지 않는 시인으로서의 명성을 얻었다. 초기 그의 시는 상징주의 경향을 보였으나 외교관 생활을 하며 틈틈이 발표한 그의 시는 정확함과 순수함으로 시인들의 찬사를 받았다. 하지만 그의 시 언어가 난해해 일반인에게는 인기를 끌지 못했다. 최면상태에 빠진듯한 환상을 기도서와 같은 운율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 그의 시 언어의 특징이다. 페르스는 1960년 `시의 드높은 비상과 생생한 회화적 형상`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1971년 남북적십자사, 가족찾기 예비회담 판문점서 첫 개최
1969년 군산 오식도 무장공비사건
1968년 한국-뉴질랜드 정상회담
1962년 서울에 무인공중전화 등장
1962년 알제리아 총선서 벤 벨라파 승리
1961년 미국-소련 군축 8원칙 공표
1961년 혁명재판소, 최인규 이강학 한희석에 사형 선고
1960년 제15차 유엔총회 개막
1960년 9월 20일 뉴욕에서 제15차 유엔총회가 전세계지도자가 참석한 가운데 개막됐다. 이번 총회의장에는 주 유엔 아일랜드 대사 후레데릭 보란드가 당선됐다. 9월 26일 열린 총회에서는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 수상이 미국을 비난하는 연설을 했다. 이 연설의 목적은 미국과 쿠바간 분쟁에 UN의 개입을 요청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쿠바의 독립에 대한 국제적인 지지를 확보하기 위한 것으로 장장 4시간 동안 이루어졌다. 식민주의에 반대한다고 소련을 추켜세우는 한편 미국에 대해서는 쿠바를 공산주의자가 지배한다는 추측으로 그의 정부파괴 명령을 내렸다고 비난했다.
한편 10월 12일에는 흐루시초프 소련 수상에 의해 총회가 중단되기도 했다. UN의 필리핀 외교관 로랜조 수쿠롱이 동구유럽의 정치적, 시민적 권리를 강탈했다고 소련을 비난하고 이들 국가들이 곧 소련에 먹히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자 흐루시초프는 불쾌감을 참지 못하고 그의 오른쪽 신을 벗어들고 탁자를 두드리고 큰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이날 흐루시초프는 몇 차례 더 총회를 중단시켰다.
1957년 핀란드 작곡가 시벨리우스 사망
1956년 국제원자력기구(IAEA) 창립총회 뉴욕서 개최
1951년 동서독 통상협정 조인
1951년 이승만대통령, 휴전에 4개조건 제시
1946년 제1회 칸영화제 개막
세계최초의 국제영화제 베니스 영화제가 무솔리니의 정치적 선전도구로 전락하자 프랑스에서 새로운 영화제가 모색됐다. 1939년 9월1일이 예정된 개최일이었으나 유럽 전역에 2차대전의 전운(戰雲)이 감돌면서 연기가 불가피했다.
다시 평화가 찾아온 1946년 9월20일, 제1회 칸영화제가 프랑스 남부의 관광도시 칸에서 열렸다. 축제형식으로 치러져 프랑스는 물론 미국ㆍ소련ㆍ인도ㆍ멕시코 등 대륙별 11개국 영화가 그랑프리를 수상했지만, 영화인들은 심사위원대상과 감독상을 수상한 르네클레망 감독(프랑스)의 ‘철로의 투쟁’을 최고의 그랑프리로 꼽았다.
칸영화제가 가장 권위있는 영화제로 자리잡기까지에는 적지않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1948년과 1950년은 영화제 개최가 무산됐었고, 1968년은 막상 개최는 했지만 5월혁명의 영향을 받은 데모대가 대회장을 점령하는 바람에 중단됐었다. 1979년에는 심사위원장이었던 작가 프랑소와즈 사강의 폭로발언이 영화제를 긴장시켰다. “그랑프리 선정에 뒷거래가 있었다”는 것이다. 실제 심사결과는 ‘양철북’과 ‘지옥의 묵시록’이 8대2였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발표 때 5대5로 둔갑, 황금종려상을 공동수상했다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우리나라와는 ‘11편의 우수작품’ 중 하나로 선정된 이두용 감독의 ‘물레야 물레야’(1984년)를 시작으로 1999년 송일곤 감독의 단편영화 ‘소풍’(1999년)이 심사위원상을 받고 2004년 임권택 감독이 ‘취화선’으로 감독상을 수상하며 본격적으로 인연을 맺었다.
1945년 미군정청 설치
1945년 9월 20일 남한에 진주한 미군은 미군정청의 개설을 알리는 포고문을 발표했다. 미군은 이에 앞서 9월 2일 맥아더 연합군사령관의 포고를 통해 남한에 군정을 실시한다고 선언했다. 이어 하지 중장이 이끄는 미 제24군단이 9월 8일 인천에 상륙했고 9일 아베 노부유키阿部信行)조선총독이 항복문서에 조인하면서 북위 38도선 이남의 한반도는 미군의 통치하에 들어갔다.
9월 12일 아놀드 소장과 쉬크 준장이 미군정청의 군정장관과 민정장관으로 임명됐으며 소령 및 대위급의 미군들이 실무를 담당할 국-과장으로 선발됐다. 1948년 8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될 때까지 3년간 남한을 통치한 미군정은 대한민국의 사회구조 형성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무엇보다 미군정은 한국 정치권력의 주체를 사실상 결정했다.
미군정은 광복직후 각축을 벌였던 여러 정치세력 중 한민당과 이승만을 후원했다. 또 관료, 경찰, 군대 등 국가조직을 형성하면서 일제의 통치기구를 해체하기보다는 계승하는 쪽을 택했다. 또한 미군정기를 통해 남한사회는 시장경제와 서구식 민주주의가 본격적으로 도입되고 미국의 대중문화와 가치체계가 급속도로 이식됨으로써 또 한차례의 급격한 변화를 겪게 됐다.
1941년 독일군 키에프 점령
1937년 개화파 박영효 세상떠남
1913년 이승만 호놀롤루에서 월간 `태평양잡지` 창간
1910년 남아연방공화국 성립
1909년 영국, 실업소개소법 성립-실업보험제도의 시작
1908년 스페인 바이올린 연주자 겸 작곡가 파블로 데 사라사테 사망
1880년 칠레의 대통령 몬트 사망
1878년 미국 유머 작가 토마스 소프 사망
1878년 미국소설가 업튼 싱클레어 태어남
1875년 윤요호(운양호)사건 발생
1875년 운요호와 제이정묘호를 앞세워 부산앞바다로 들어온 일본은 조선해안을 조사하러 왔다는 핑계를 대며 동해,서해,남해안은 둘러보기 시적했다.
일본 군함은 영국에서 들여온 함대로 배의 규모와 무기만으로도 조선수군을 압도 했다.
운요호는 강화도 초지진에 근접하여 물을 보급받으러 왔다고 하나, 갑자기 나타난 왜군의 보트를 경비를 서던 조선수군이 접근하지 말라는 의미로 경고용 포격을 했다.
운요호는 물러나기는 커녕 초지진등에 함대의 함포로 맹렬한 보복공격을 단행하였다.
당시 화력이 약한 낡은 무기를 가진 조선수병은 근대식 대포와 소총으로 무장한 일본군을 대적할 수 없었다.
그 결과 조선군은 35명이 죽고 16명이 끌려갔으며, 무기를 뺏기는 인적,물적 피해를 보았다.
이듬해 일본은 이 사태의 책임을 모두 조선에게 돌리며 강화도조약 을 체결해 조선의 문호를 강제로 개방했다.
1870년 이탈리아 통일
1863년 독일의 형제작가 야고프 그림 사망
1840년 파라과이 독재자 프란시아 사망
1792년 발미 전투 발발
1519년 포르투갈항해사 마젤란 세계일주 항해 출발
622년 마호메트가 박해 피해 메카 떠나 야스리브(나중에 메디나로 바뀜) 도착(헤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