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뜨니 0525분.
후다닥 일어나 옷을 입고 집을 나섰다.
엊저녁 잠자리에 들기 전에 내일부터 새벽 운동을 하기로 다짐을 하였던 것이다.
한국에 가서 3키로나 늘었던 체중을 이번 노동절 3일 휴일 동안 확실하게 제거할 목적이다.
목표는 천진 시내 유일의 산. 해발 30미터가 안 될 것 같은 가산(假山)이다.
쓰레기를 쌓아 놓았다던 곳인데 한국 난지도처럼 지금은 울창한 산과 공원이 되어있다.
메이장을 출발하여 옛날에 살았던 아파트 사이를 지나 철길을 넘어 재래시장에 접어들었다.
4년 전 멀쩡하게 다니던 회사에서 느닷없이 정략적으로 짤린 뒤(?) 무역을 해 보겠다고
사무실을 얻은 뒤 6개월 동안 열심히 걸어 다녔던 길을 선택하여 걸었다.
6시 전후라 그런지 아직 많지 않은 온간 물건들이 나와 있었다.
하천을 따라 줄 지어 있던 재래시장을 따라 계속 걸어가니 링아오시장이 나온다.
한국상회가 옮겨오고 가라오케 만리장성이 옮겨오기 전까지 한국인은 전혀 올 일이 없었던
우범지역이 시방은 엄청나게 변하고 화려한 변화가로 변모중에 있고 차량도 무진장 다닌다.
링아오를 지나고 아오청을 지나 자산(한자:가산) 밑자락에 도착하니
많은 사람들이 운동을 하고 있었는데 중국도 이제는 아침 운동 인구가 늘어남을 느끼고 있다.
10년 전만 하더라도 아침 운동은 태극권이나 광장무(廣場舞)를 하는 노인들뿐이었는데
시방은 젊은 사람들도 땀을 뻘뻘 흘리며 달리기도 하고 열심히 걷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자산 꼭대기를 올라가려면 나선형 시멘트 길을 따라 걸어가야 하는데 시멘트 길이 싫어
공원 숲 사이의 급경사(?)진 흙길을 따라 올라가니 이것도 등산이라고 땀이 솟아나온다.
해발 약 20미터(?) 정상에 도착을 하니 해는 이미 아파트 숲 위로 솟아나 있고
희뿌연 황사에 가려 빛이 산란하다 보니 붉은 태양이 대신 하얀 태양이 도시를 비추고 있었다.
노인 한 무리가 맨손체조를 열심히 하더니 조장의 구령에 맞추어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아에이오우”라는 신의 소리를 길게 내지르는 것을 보고 빙혼도 따라 하고 싶었으나 참았다.
“아에이오우”는 소리 자체가 목소리가 아닌 배에서부터 시작되는 소리로서
길게 내지르면 몸에 있는 탁기가 빠져 나오고 탁기가 빠져 나간 자리에는 신선한 공기가
채워지게 되는 신이 인간에게 전해 준 신선술(神仙術) 또는 도인술(道人術)인데
중국에서는 이 짓을 오래하면 할수록 황사와 스모그가 몸 안에 쌓이니 빙혼은 절대 안 하는데
이 노인네들은 몸 안에 시커먼 사리를 만들려고 하는지 열심히 하고 계시기에 바라 볼 뿐이다.
어떤 이는 “술”자만 나오면 주(酒)를 생각할 수 있을 수도 있으니
이런 분들은 참으로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인생을 살아간다고 말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
빙혼도 아프기 전에는 그랬기에 더욱 더 술자만 보아도 토하고 싶을 지경은 아니다.
인생이라는 것은 나이별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새삼 실감을 한다.
20년 전에는 아니 10년 전만 하더라도 이 시간에는 술 냄새 폴폴 풍기면서 모텔에서 나와
마치 마교 천진 분타의 쫄병들처럼 뻘건 눈동자로 해장국집을 찾아다니고 있을 터인데
시방은 이렇게 이미 50년식 육신을 조금이라도 보양을 하고자 새벽부터 운동을 하는 것이다.
20대, 30대는 열심히 술을 먹어도 되지만 40대부터는 정신 차리고 슬슬 몸 보양을 해야 한다.
인간의 몸과 자동차는 유사한 시스템에 의하여 운영되어지는 것이다.
자동차는 인간을 흉내 내어 만든 기계적 장치이므로 쇳덩이로 인간을 만든 것과 다름이 없다.
돌아오는 길은 이전 무역을 하던 사무실 쪽으로 걸어와 인근 시장 입구에 가 보았더니
역시나 사람이 여전히 바글거리고 있었고 주머니 잔돈을 뒤져 또우장(콩물)을 샀는데 헐,,,,
내심 1.5위안을 생각하였는데 또 가격이 올라 2.5위안이 하는 것을 보고 기겁을 하였다.
또우장을 마시면서 아마 천진시 가장 가난한 골목 중의 하나인 길로 오랜만에 들어서니
산천은 의구(依舊)한데 인걸(人傑)도 아닌 찌질이 빙혼만 늙어버렸네.
괜히 이제는 서서히 잊혀져가는 우렁공주가 갑자기 떠올라 지금은 어찌 사는지 궁금해졌다.
다시 재래시장으로 접어들었더니 장사하는 사람들과 물건을 사려는 사람들이 바글바글하였다.
오디, 참외, 포도, 복숭아, 수박도 있고 각 종 생산, 화분 꽃, 의류, 시장에 빠지지 않는 골동품,
다양한 장사꾼들이 저마다 하나라도 더 팔려고 열심히 손님들과 흥정을 하고 있는 것을 보니
우리 인생도 시장의 다양한 물건들처럼 참으로 다양한 인간군상을 이루어 산다는 것을 느꼈다.
관리자, 기술자, 노동자, 공무원 등 모두가 저마다 먹고 살려고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사는데
어떤 이는 자기 인생을 잘 팔고 있고 어떤 이는 팔리지 않는 자기 인생을 붙들고 있으면서
어느 누군가가 자기 인생을 사 주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인생이나 시장 물건이나 똑같은 이치인 것이다.
계절에 따라 시대에 따라 잘 팔리는 물건을 시장에 가져와 팔아야지
자기 혼자 가장 맛있고 품질이 좋은 물건이라도 잘 팔리지도 않는 물건을 가지고 있다면
손님들을 거들떠보지도 않는다는 것을 모르니 항상 찌질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자기 인생이 찌질한 경우에는 자기 스스로 인생 품질을 싸구려로 만든 것이다.
인생 품질을 지속적으로 향상시키는 사람들은 절대로 찌질하게 살지 않는 법이다.
그래서 빙혼은 슬픈 것이다.
빙혼 인생은 아무리 가꾸어도 이제는 팔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새롭게 인생을 다시 만들 수 없는 늙어버린 인생이 되었다는 것이 슬픈 것이다.
금수저로 태어나지 못한 한국 남자 또는 특별한 능력이 없이 살아가야 할 남자가
이 세상을 찌질하지 않고 보통 사람답게 살아가는 방법을 쉰이 넘은 후에야 깨달았다.
첫째 돗빠지게 공부하여 일류대학을 나와 일류 기업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임원은 하늘의 별따기이고 최소한 차장, 부장을 달 때까지 버티다가 협력업체로 옮겨
다시 10여년 버티고 다시 또 제2차 협력업체로 옮기다보면 인생 마무리가 된다는 것이다.
물론 사업을 하더라도 일류기업이나 1차 협력업체를 든든한 언덕으로 삼아서 할 수 있지
빽도 없는 사람들은 사업을 하다가는 개피만 보고 만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
둘째 일류대학을 나오지 않았으면 공무원 시험이라도 합격을 하여 주제파악을 한 뒤
그냥 철밥통 속에서 평생을 그럭저럭 편안하게 살아가는 것이 장땡이라는 것도 알았다.
빙혼은 중앙직 9급 공무원 합격을 해 놓고서도 도저히 공무원 노릇이 맞지를 않아
한 달 만에 때려치고 다시 공돌이로 변신하여 살다가 오늘날 이 꼬라지가 되어 버렸다.
아니 꿈에 그리던 심사원도 되었다가 배가 불러 직접 공장 좀 해 보겠다고 하다가..결국,,,,눈물.
셋째 대학도 다니기 싫고 죽어도 공부하기 싫었다면 차라리 기술을 배웠어야만 한다.
금형, 사출, 도장/도금, 다이캐스팅, 기계가공, 용접, 건축/토목 등 어떤 한 분야를 파고들어
10년, 20년 동안 기름 묻혀가면서 기술자가 되어야만 인생이 고달프지 않은 것이다.
또는 특정 제품 분야의 개발자가 되었어야만 했다.
관리를 해도 회계 쪽의 관리를 하면 그나마 조금 나았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빙혼은 숫제 품질관리 한 분야에서만 30년 동안 굴렀더니 개털이 되어 버렸다.
품질관리자는 기술자도 아니고 관리자도 아닌 회색인간이다.
품질관리를 하더라도 품질시스템 분야가 아닌 특정한 제품의 품질관리를 해야만 했었다.
그런데 빙혼은 어쩌다가 품질 인증분야로 빠져버려 품질인증 사기꾼 노릇 30년만 하였다.
품질인증을 위한 품질시스템은 거의 97.2% 이상이 가짜이고 쓰레기일 뿐이다.
그것을 쉰이 넘어서야 확실하게 깨달았던 것이다.
깨닫고 보니 더 이상 인생을 개선할 것도 사라져버려 찌질이 인생을 들고 방황만 하고 있다.
빙혼은 진짜 품질시스템을 구축하고 실행하는데 자신이 있는데
실질적으로 빙혼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사장들은 절대로 진짜로는 안 한다는 것이다.
가짜로 해도 먹히는 세상인데 미쳤다고 쓸데없이 돈 들이고 시간 들여서
진짜 품질시스템을 구축하여 스스로 품질시스템의 울타리에 갇혀서 살겠는가?
그래서 빙혼은 뒤늦게나마 기술을 조금이라도 배우려고 사출회사에 들어와 버티고 있는데
2년 반이 넘었는데도 사출품을 양산하지 않은 희한한 공장을 눈물 나게 다니고 있는 것이
어쩌면 빙혼이 전생이 지었던 모든 죄업을 이 생에서 털어버리고 영겁으로 들어갈 모양이다.
빙혼이 가진 기술은 어쩌면 “3파장 조명”기술이라고 볼 수가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 최초 3파장 형광램프를 생산하였을 때 빙혼이 품질 특성을 담당했기 때문이다.
청춘과 젊음을 제품 개발에 투자하였던 탓인지 지금도 조명 공정은 눈에 선하다.
재래시장을 거쳐 오면서 각 종 물건들을 보니 마치 인생이 재래시장을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오니 9시. 총 3시간 20분을 새벽부터 돌아다녔더니 발바닥에 물집이 잡혀 아파 죽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