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도산은 생전 일본 프로레슬링협회의 설립자이자 NWA 인터내셔널 헤비웨이트 챔피언이었습니다.
하지만 1963년 12월 야쿠자가 내지른 칼에 병원으로 후송되었다가 복막염으로 사망합니다.
프로모터의 자리는 토요노보리가 물려받지만 NWA 인터내셔널 헤비웨이트 챔피언 자리는 공석이 됩니다.
김일은 자신이 역도산의 정당한 후계자임을 주장하며, NWA 인터내셔널 헤비웨이트 타이틀을 요구합니다.
일본 프로레슬링 측에서는 이를 거절하지만 곧 김일을 위해 새 타이틀인 '극동 헤비급 챔피언'을 신설합니다.
1965년 8월 김일이 서울에서 요시노사토 준조를 이기고 초대 챔피언에 오릅니다.
고국에서 챔피언에 오른 기쁜 날, 김일은 호텔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축하를 받으며 파티를 벌입니다.
이때 입지에 위기를 느낀 장영철은 참석하지 않았지만 장영철의 제자였던 박송남은 참석합니다.
박송남은 세계 진출을 위해 김일에게 접근했다가 이 사실을 안 장영철에게 납치당해서 협박을 당하지만 끝내 김일에게 갑니다.
다시 일본으로 간 김일은 치프 제이 스트롱보우, 리퍼 콜린스 등 세계에서 몰려드는 도전자들을 상대로 방어합니다.
하지만 자이언트 바바가 허리에 두른 NWA 인터내셔널 헤비급 챔피언에 비해 관객 동원은 저조했습니다.
결국 김일은 12월 일본 프로레슬링 측에 극동 헤비급 타이틀을 반납합니다.
타이틀은 공석이 되었지만 일본 프로레슬링 측에서도 굳이 새 챔피언을 가려내지 않습니다.
당시 악명높은 정치깡패 코다마 요시오가 회장의 자격으로서 일본 프로레슬링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습니다.
코다마 요시오는 김일에게 푸쉬를 달라고 토요노보리에게 압박을 가합니다.
결국 토요노보리는 김일에게 세계급 타이틀을 획득하면 역도산의 후계자로 계승시켜주겠다는 약속을 합니다.
1967년 4월 김일은 서울에서 마크 루인을 깨뜨리고 WWA 월드 헤비급 챔피언에 오릅니다.
WWA는 캘리포니아 주에 위치한 단체였는데 타이틀의 가치는 NWA, AWA, WWE에 맞먹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때마침 경찰에서 대대적인 야쿠자 검거 작전을 벌이자 코다마 요시오는 회장 자리에서 물러나 잠적을 탑니다.
토요노보리는 공금을 횡령해서 노름을 했다는 것이 밝혀지자 일본 프로레슬링에서 퇴사합니다.
또한 일본에서는 김일의 후배인 자이언트 바바와 안토니오 이노키의 위상이 성장합니다.
일본에서의 위상이 낮아지던 김일은 일본을 떠나 한국에 정착하며 자신의 문파를 설립합니다.
한국에서의 김일은 큰 흥행을 주최하고 외국 선수들을 섭외하면서 한국 프로레슬링의 일인자로 자리 잡습니다.
김일은 자신의 이름을 내건 체육관을 개최하고 제자들을 양성합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제자는 1기생 이왕표로, 1975년에 데뷔합니다.
주로 일본 단체에 출전하던 이왕표는 1990년 8월 서울에 와서 와서 타이틀이 걸린 토너먼트에 참가합니다.
토너먼트에 걸린 타이틀은 다름 아닌 극동 헤비급 타이틀로, 24년 만에 부활합니다.
토너먼트에서 우승한 이왕표는 미국 텍사스 주의 단체 GFW로부터 극동 헤비급 챔피언으로 인정됩니다.
하지만 타이틀에는 변동이 없다가 결국 6년 만인 1996년에 또 공석이 됩니다.
그 무렵, 1대 챔피언 김일은 누적되었던 부상의 후유증으로 휠체어 신세가 됩니다.
후배 안토니오 이노키의 배려로 후쿠오카 현의 병원에서 치료를 받지만 안토니오 이노키가 몰락하면서 김일은 버려집니다.
한국에서 김일의 사정을 아는 사람들은 김일을 데려오기 위해 노력했고, 덕분에 김일은 고국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 김일은 2000년 3월 2일 장충체육관에서 정식으로 은퇴를 선언하게 됩니다.
한때 김일이 활동하던 단체 WWA가 30여 년 만에 부활했고, 새 회장 루 테즈가 장충체육관을 찾아옵니다.
김일은 2대 극동 헤비급 챔피언이자 그날 WWA 월드 헤비급 챔피언에 오른 이왕표를 자신의 후계자로 지목합니다.
이왕표는 새로 출범한 WWA의 총재로서 단체의 운영을 맡게 됩니다.
김일이 사망하자 이왕표는 그해 11월 30일 김일 추모 흥행을 개최합니다.
이날 WWA에서는 김일과 노지심이 잠시 가졌을 뿐 오랜 세월을 봉인되어 있던 극동 헤비급 타이틀을 부활시킵니다.
김일체육관 2기생이던 노지심이 하다나카 히로시를 이기고는 3대 극동 헤비급 챔피언에 오릅니다.
오랜 세월 무명이자 타이틀도 없이 살던 노지심에게 있어서는 첫 타이틀 획득이었습니다.
노지심은 2015년 5월 이왕표가 은퇴할 때까지 지는 일 없이 자신의 타이틀을 방어합니다.
이왕표가 은퇴 후 WWA는 아무런 흥행이 없었고, 노지심은 계속해서 극동 헤비급 타이틀을 보유합니다.
그러던 2018년 5월 5일 WWA가 서울 KBS 스포츠월드에서 3년 만의 흥행을 개최합니다.
이날 노지심은 자신이 부상을 입어서 경기할 수 없다고 말하며 극동 헤비급 타이틀을 반납합니다.
WWA에서는 새로운 극동 헤비급 챔피언을 가리기 위해 토너먼트가 개최됩니다.
김민호가 조경호를 꺾고 토너먼트에서 우승하면서 제4대 극동 헤비급 챔피언에 오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