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소개
저자 : 김선옥
김선옥 시인은 경북 문경에서 태어났고, 2019년 『애지』로 등단했다. 김선옥 시인의 첫 시집 『바람 인형』은 고명철 교수의 말대로, 점點과 직直으로 이뤄진 직정直情의 세계는 절로 ‘곡曲의 율동--생의 율동’으로 이뤄지고 부드러운 환環의 세계가 갖는 시적 진실에 이른다. 소리의 풍경과 생의 율동으로 이루어진 더없이 독특하고 신선한 세계가 바로 그의 첫 시집 『바람 인형』이라고 할 수가 있다
시인의 말 5
1부
바람 12
검은빛의 배경 14
돌 깎는 남자 16
풍경화 18
비 20
초승달 21
지금 내 귓속엔 무슨 일들이 22
봄 햇살은 24
밤에 쓰는 시 26
꽃밥 27
포장 28
인연 30
거미의 독서법 31
봄, 꽃, 나무 32
숲은 귀를 풀어 새를 키운다 34
경천댐 35
봄을 쓰다 37
2부
안녕, 남편 40
싹트는 남편 42
3월 43
소파, 그 위의 남편 45
백내장 47
지금이 참 좋다 49
퇴고 50
화장을 하다가 52
공터 53
환한 죽음 55
맷돌에 박힌 기억 57
아버지의 마지막 출타 59
위내시경 61
새순 63
하늘을 품은 저수지 65
산다 67
3부
틈 70
묵란도 72
철없이 핀 꽃 73
주흘산을 오르다 74
영강, 겨울을 견디다 76
연, 하늘을 날다 78
시, 탄생하다 80
도깨비바늘 82
단상 84
눈물이 가는 길 86
공 87
묵은 된장 89
벌집을 건드리다 91
하루살이 93
바람 인형 94
길 96
4부
2박 3일의 외출 100
그늘의 노동 102
내 엄마, 구절초꽃으로 피다 104
뇌졸중 106
조밥 107
술이 엄마를 발효시키다 109
바닥을 외면한 신발 111
마네킹 113
손금 114
낚시 116
빅뱅 117
셋째 언니 119
짖는다, 개가 121
장례식장에서 123
폭염 124
토막사건 125
해설
시작 詩作:소리의 풍경과 생의 율동/고명철 127
출판사 서평
이 책에 대하여
바람이 잔뜩 든 여자
바람이 눈이고 소리고 콧대인
몸 안, 밖의 일이 온통 바람인 저 여자
가슴 가득 바람을 불어넣어
몸을 일으키는
세상의 바람만이 뼈임을 온몸으로 느끼는 여자
환한 목련꽃이 가지 가득 물을 뿜어 꽃잎이 절정이듯
도심 가득 사람들을 풀어 표정들이 혼연히 피어나는 거리
한사람이 홀로 절정이 되게 할 줄 아는 거리
한 발짝도 몸 옮길 줄 모르는 저 여자도 살아가는 거리
낯 일을 못 하는 여자는 밤일도 못 한다는
상사에게 대들다 해고 통지받고 돌아서는 저녁
공장 돌아 도심을 오래 아무 대도 몸 들일 곳 없는 거리
알량한 관절을 꺾어야만,
길가는 사람들을 유혹해야만 하는 인형의 바람이
더욱 팽팽해지는 저녁
붉은 노을빛에
몸 두고 얼굴만 벌겋게 달아올랐다
몸뚱이가 온전히 서기까지 절정에 이르기까지
쓰러질 듯 주저앉을 듯
구겨진 마음의 관절을 접었다 펴는 데는
저만큼은 능숙해야지
말랑한 구름이 잘 익은 달을 낳지
생각하다가도 깨끗한 불빛이 서러운 여자
- 「바람 인형」 전문
「바람 인형」의 시적 대상은 길거리에 상업 광고용으로 비치된 고무 튜브 인형으로, 바람을 넣어 팽팽한 인형은 바람의 방향과 세기에 민감히 반응하면서 마치 관절을 자유자재로 꺾을 수 있는 양 바람에 따라 움직이는 홍보 마케팅 수단일 뿐이다. “세상의 바람만이 뼈임을 온몸으로 느끼는 여자”란 시구는 이 인형의 심층적 존재를 적실히 표현한다. 여기서, ‘바람 인형’의 시적 대상이 표면상 자본주의의 꼭두각시로 전락해가는 여성에 대한 시적 풍자와 비판으로 읽혀도 무방하다. 그런데 이보다 한층 시적 상상력의 지평을 넓힌다면, 그래서 앞서 살펴본 「뇌졸중」과 「셋째 언니」처럼 생의 고통의 바람을 온몸으로 감당해온 여성의 신산스러운 생의 이력을 포개놓을 경우 「바람 인형」의 시적 대상은 한국사회를 힘겹게 살아내고 있는 뭇 여성의 삶에 대한 시적 풍자와 비판, 그리고 연민의 시선으로 넓혀 얼마든지 해석할 수 있다.
그런데, 시인의 이러한 시적 태도에서 눈여겨볼 것은 삶에 대한 자존감이 바탕을 이루는 삶의 내공이 튼실하다는 점이다. 이것은 남편과 아내 사이를 노래하고 있는 시편들에서 곧잘 헤아릴 수 있다. 부부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젊었을 적 상대방에 대한 매력이 현저히 없어지면서 서로에게 점차 실망감이 늘어가 애정이 식어 존재적 상처를 덧입히는 과정에서 아내의 실존적 소외와 외로움이 심해지는가 하면(「소파, 그 위의 남편」), 남편과의 심한 다툼과 갈등을 벌이며 심지어 이혼을 내뱉을 만큼 상대에게 정신적 비수를 꽂는 치명적 상처를 입히기도 한다(「3월」). 급기야 아내의 상상력 속 남편을 “수백 번을 죽이는” 살욕(殺慾)을 품으면서(「새순」), “남편과 머리 터지게 싸우는 날이면/늘 공터를 친구처럼 찾아가/먹구름 같은 속내를 걷어내”(「공터」)면서 자신을 위무하고 삶을 다시 추스린다.
이러한 시적 통찰은 김선옥 시인의 시작(詩作)을 주목하도록 한다. 석공이 비상(飛翔)을 하는 검독수리를 아주 세밀히 조각하는 “돌을 깨던 첫 망치질에서/마지막 완성의 시간이/검독수리의 일생이었음에/침묵하는” 것과(「돌 깎는 남자」), “꾹꾹 눌러 담은/무수히 많은 사물을 쏟아놓고/하나의 퍼즐과 또 하나의 퍼즐로 깊은 관계를 맺는”(「시, 탄생하다」) 것은 시인이 심혈을 기울여 시를 창작하는 일의 은유다. 이것은 또한 한 편의 그림을 완성하는 일이나 다름이 없다.
갈대꽃을 거꾸로 잡았다
붓이 되어
난잎이 아니어도 휘어진 그림을 그린다
블라우스 앞자락을 들추는 바람을 그리고
나뭇가지 휘어지는 새소리를 그리고
골목을 휘는 아이들 웃음소리를 그리고
두루미가 밟고 있는
굽이도는 강물을 그린다
붓 하나 잡고 먹구름을 찍었을 뿐인데
붓끝에서 세상이 다 휘어지는 그림이 된다
굽어지는 법을 모르던 남편 등이 휘고
풀들이 누우며 바람을 휘고
아카시아 나뭇가지에 얹힌
고음과 저음의 새소리가 휘어지며
그림이 된다
붓을 놓고 바라본 앞산에서
부엉이 소리가 휜다
- 「묵란도」 전문
김선옥의 이번 시집 해설을 마무리하면서, 「묵란도」를 음미해본다. 붓을 들고 바람, 새소리, 웃음소리, 강물, 먹구름 등을 그렸을 뿐인데, “붓끝에서 세상이 다 휘어지는 그림”을 그린다고 한다. 이것이야말로 시인이 추구하는 시적 진실의 세계이며, 이를 표현하는 시적 정동의 핵심을 이룬다. 말하자면, 김선옥 시인은 세계를 자신의 감각으로 사유하여 이를 시적 표현으로 나타내되, 점(點)과 직(直)으로 이뤄진 직정(直情)의 세계는 절로 ‘곡(曲)의 율동-생의 율동’으로 이뤄지고 부드러운 환(環)의 세계가 갖는 시적 진실에 이른다. 그래서일까. 마지막 연에서 시적 화자는 그림을 그리지 않고 앞산을 볼 뿐인데 어디선가 부엉이 소리가 휘어져 들려오는 경이로운 심미적 전율을 체득한다. 앞산의 어느 한 곳을 응시하는 시적 화자의 행위는 전방(前方)의 한 지점을 보는 행위인데, 부엉이 소리가 ‘굽어 휘어져’ 들려오는 미적 체험을 한다. 이것은 시인의 시작(詩作)이 갖는, 이후 좀 더 다듬고 궁리해야 할 시학(詩學)의 바탕을 이룬다는 점에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시적 성취이다. 그림을 그리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달리 말해 시인이 시를 쓰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김선옥 시인이 추구하는 ‘좋은 시’는 현실과 시작(詩作)의 경계를 넘어 세계 자체가 시예술의 경지로 절로 드러나고 있다. 이쯤되면, 시와 현실의 경계가 무화되는 게 아닐까. 어쩌면, 김선옥 시인은 이미 예의 시작(詩作)에 정진하고 있는바, 다음 시집에서 소리의 풍경과 생의 율동으로 이뤄진 자신의 시세계를 한층 완숙시킬 수 있으리라.
경천대 저수지가 하늘을 품었다/ 벌건 대낮에 한 몸이 되다니// 저들 입속에서 부풀었다 터지는 말들은/ 귓속말 같아서 알아들을 수가 없다/ 수천 개의 말들이 크고 작은 물방울로/
입술에서 달싹거린다// 태양이 직선으로 꽂힌 낮 한 시/ 공중을 버린 청둥오리는 수면 위에 길을 낸다/ 부리에 낚인 비린내가/ 허공을 퍼덕인다//
?저수지가 품은 것이 어디 하늘뿐인가?/ 가슴이 있는 것들은 다 품는다/ 마음 깊은 곳엔/
가로지른 하늘길을/반쪽이 되어 날아가는 새의 얼굴이 있다// 뜨겁게 달아오른 몸을 서서히 푸는 저녁이다/ 등 떠밀고/ 근육질 단단한 어둠 속에/ 밤별을 품은 저수지가/ 아직 몸은 식지 않았다
첫댓글 선생님 감사합니다
시집 소개를 해주셨네요
선생님 회원님들 모두 늘 건강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