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25일 오늘의 역사
2022년 북한 동해상으로 탄도 미사일 발사
2022년 카나다 강력한 허리케인으로 50만 가구 정전사태 발생
2021년 '오징어 게임', 한국 드라마 최초 전 세계 넷플릭스 1위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이 국내 드라마 최초로 전 세계 넷플릭스 인기 순위 1위에 올랐다. 25일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순위 집계 사이트 플릭스패트롤에 따르면 지난 17일 공개된 '오징어 게임'은 23일에 이어 24일까지 이틀 연속 넷플릭스 TV쇼 부문 전 세계 1위를 차지했다. 세계 83개 국에서 서비스 중인 '오징어 게임'은 같은 수의 국가에서 볼 수 있는 영국 드라마 '오티스의 비밀 상담소'를 제치고 선두를 달리고 있다. 한국 드라마가 이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전까지는 '스위트 홈'이 미국 TV쇼 부문 3위에 오른 것이 최고 기록이었다.
'오징어 게임'은 넷플릭스 최대 시장인 미국을 비롯해 캐나다, 일본, 대만, 태국, 멕시코,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아시아와 북미·남미 대부분의 국가에서 1위에 올랐다. 83개 국가 중 '오징어 게임'이 1위를 차지한 나라는 43개국이다. 독일을 제외한 유럽에선 상대적으로 '오티스의 비밀 상담소'가 강세를 보이고 있다.
2021년 북한 김여정 남북정상회담 가능성 언급
2016년 경찰 물대포에 맞아 쓰러진 농민 백남기 씨(2015.11.14) 세상 떠남
2015년 1970~80년대 저항시인 문병란 별세
노래로 널리 알려진 시 ‘직녀에게’를 쓴 문병란(80·전 조선대교수) 시인이 25일 별세했다. 전남 화순에서 태어나 조선대 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1962년 김현승 시인 추천으로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이후 ‘죽순 밭에서’ ‘벼들의 속삭임’ ‘5월의 연가’ ‘양키여 양키여’ 등 주로 저항과 비판 의식이 담긴 작품을 써왔다. 분단의 아픔과 통일 염원을 노래한 시 ‘직녀에게’는 1980년대 노래로 만들어져 가수 김원중이 불렀다.
순천고·광주일고 교사를 거쳐 조선대에서 가르치며 시작(詩作)을 병행해왔다.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와 5·18기념재단 이사를 지냈다. 박인환시문학상, 광주예술상, 금호예술상, 요산문학상을 받았다.
2011년 케냐 환경운동가(2004년 노벨평화상 받음) 왕가리 마타이 세상 떠남
2011년 통일운동과 민주화 운동에 헌신했던 박용길 장로 별세
고(故) 문익환 목사의 부인 박용길(93·사진) 장로가 25일 서울 도봉구 쌍문동 한일병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박 장로는 1919년 황해도 수안군에서 태어나 경기여고와 일본 요코하마여자신학교를 졸업했다. 1938년 도쿄 지역 한국 신학생 모임에서 문 목사를 만나 1944년 결혼했다. 문 목사가 1976년 민주구국선언서 사건으로 투옥되자 구속자가족협의회에 참여해 활동했고, 1986년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공동의장을 지냈다.
1994년 문 목사가 별세한 뒤 자주평화통일민족회의·민화협·통일연대 상임고문과 '6·15 남북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남북·해외 공동행사 남측준비위원회' 명예대표를 지냈다. 1995년 6월 평양을 방문한 데 이어 2000년 10월 북한 노동당 창건 55돌 초청 인사로 방북했다. 노무현 정권 시절인 2005년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아들인 배우 문성근씨는 이날 트위터를 통해 문 목사가 별세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박 장로도 각막을 기증한다고 밝혔다.
2003년 에드워드 사이드 세상 떠남
2002년 아산 신도시 107만평 택지지구 지정
수도권 인구 분산책의 하나로 추진 중인 아산 신도시에 2004년 상반기부터 아파트 분양이 시작되는 등 개발이 본격화된다. 이에 맞춰 순천향대학과 한국고속철도건설공단·국립특수교육원 등 공공기관도 아산 신도시로 이전한다.
건설교통부는 전체 876만평의 충남 아산 신도시 중 1단계 사업지구로 경부고속철도 역사 주변 107만평(353만8000㎡)을 택지개발예정지구로 지정했다고 25일 밝혔다. 1단계 사업지구 중 33만평의 주거단지에는 고층 아파트 1만가구 등 주택 1만2500가구가 지어지는데, 2004년 상반기 분양을 거쳐 2006년 말부터 입주가 가능할 전망이다. 고속철로 서울에서 30분대 거리에 위치한 아산 신도시는 1단계 107만평(2003~2008년), 2단계 330만평(2004~2015년), 3단계 439만평(2008~2020년)이 단계적으로 개발되며 주택 5만3500가구가 들어선다.
아산으로 이전이 결정된 기관 중 순천향대는 신도시 사업주체인 주택공사와 7만평의 부지공급 협약을 이미 체결해 2010년 의대 일부와 연구시설을 옮길 예정이다. 이와 함께 연세대 등 수도권 및 지방 4~5개 대학도 땅 매각 협상을 진행 중이라고 건교부는 밝혔다. 대학에는 조성원가(45만~50만원)의 절반인 평당 25만원선에 10년 장기분납 방식으로 부지가 공급된다.
공공기관 중에서는 교육부 산하 국립특수교육원과 한국고속철도관리공단이 6000평과 8800평을 각각 구입, 2006년에 이전할 계획이다. 서울 여의도에 있는 사립학교교원연금관리공단도 아산 신도시로 이전하기로 하고 토지매각협상을 벌이고 있다.
2001년 중국 연변의 소설가 김학철(85세) 세상 떠남
2000년 박찬호, 미국 메이저리그 2000시즌에서 17승 달성
박찬호가 2000년9월25일 미국 프로야구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의 홈경기에서 8이닝동안 2안타 무실번의 금빛투구로 1대0의 팀 승리를 이끌며 또 하나의 금자탑을 쌓았다
시즌17승(10패)으로 1996년 일본인 노모 히데오가 세운 동양인 시즌 최다승 기록(16승)을 갈아치운 것
박찬호는 이날 타자 바깥쪽을 찌르는 최고구속 156km의 직구로 볼카운트를 잡고 승부구는 폭포수처럼 떨어지는 변화구를 구사했다.
박찬호는 5회 1사 이후 7회 선두타자까지 6연속 삼진을 기록했다.
이날 박찬호는 삼진을 13개나 잡아내 시증 217개로 메이저리그 3위에 올랐다
박찬호는 시즌 마지막 경기인 9월30일 경기에서는 1994년 메이저리그 데뷔이후 185경기 만에 처음인 완봉승을 거둬 18승이라는 놀라운 성적으로 2000년 시즌을 마감했다.
마지막 경기에서도 삼진 13개를 추가, 시즌 217개로 메이저리그 3위(내셔널리그 2위)가 됐다. 방어율도 3.27로 끌어내렸다
1998년 원로가수 김정구씨 사망
`눈물 젖은 두만강`을 부른 원로가수 김정구(82)씨가 1998년 9월 25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타클라라 차남 김영국씨 집에서 별세했다. 김씨는 1992년 10월 노환으로 활동을 중단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투병해왔다.
`가요계 역사` 김정구씨는 1916년 함남 원산에서 기독교 집안 5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다. 고향 광명보통학교때부터 노래에 재능을 보였고 1933년 17살에 뉴코리아레코드에서 `어머님의 품으로`로 데뷔해 반세기 넘게 국민 애환을 달래준 국민가수로 활동했다. `눈물 젖은 두만강` `바다의 교향시` `낙화삼천` `왕서방 연서` `수박타령`을 비롯해 7백여곡을 남겼으며 1980년엔 가요인 처음으로 문화훈장을 받았다.
한국연예협회는 27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가수분과위원회 강당에 분향소를 마련했고, 이른 아침부터 원로가수, 후배가수, 가요계 관계자 등 1백여 명이 찾아와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김씨는 미국시각 29일 낮12시 산타클라라 스카이론 메모리얼파크 묘지에 안장됐다.
1998년 한-일 어업협정 교섭타결
1998년 9월25일 한국과 일본간의 새로운 어업협정 체결 교섭이 최종타결되었다.
앞서 일본은 1965년에 체결된 한일어업협정을 일방적으로 파기했다.
한일 양국은 동해의 131도 40분과 135도 30분을 각각 서쪽과 동쪽 한계선으로 정했다.
또 양쪽 연안으로부터 35해리 떨어진 다각형 모양의 중간수역을 설정해 두 나라 어민들이 모두 조업을 할 수 있도록 합의했다.
그러나 새 어업협정으로 고급어종이 풍부한 훗카이도 근해의 어장을 잃게 된데다 쌍끌이 어선의 조업 등이 누락된 것으로 드러나 타격을 입게 된 어민들의 항의가 끊이지 않았다.
당시 김선일 해양수산부장관은 여섯달 뒤인 1999년 3월 추가협상을 마무리한뒤 사임했다
1992년 국내 위성통신 시범서비스 개시
1991년 리옹의 도살자 클라우스 바르비 사망
1991년 한국-멕시코, 과학협력협정-관광협력협정-경제사회개발기획협력협정 체결
1990년 사마란치 IOC위원장, 제1회 서울평화상 수상
국내 유일의 국제평화상. 1988년 서울 올림픽의 개최를 기념하고, 올림픽 정신을 계승해 평화로운 세계의 발전에 일조하고자 제정되었다. 2년마다 격년으로 시상하며, 인류화합과 세계평화에 이바지한 개인이나 단체에게 수여한다. 초기에는 제정 취지와 유효성의 논란이 있었으나, 점차 정치색이 배제되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1987년 한국-소말리아 국교 수립
1985년 남북국회회담 제2차 예비접촉이 판문점에서 열림
1984년 북한적십자, 수재물자 29-30일 전달통보
1983년 제53차 ASTA(미주여행업협회)총회 서울서 개막
1982년 문화진흥원, 제1회 대한민국미술대전 수상자 발표
1980년 북한 남북직통전화 중단
1978년 공군 팬텀기 영등포 민가에 추락
1978년 보잉 727기와 세스나 172기 캘리포니아 상공서 충돌 사망 150명
1972년 일본의 다나카총리와 오히라외무장관, 국교정상화를 위해 중공 방문
1972년 서울서 아시아대법원장회의 열림
1970년 독일의 소설가 레마르크 사망 - `서부전선 이상없다`(1929)
1970년 보사부, 우량식품에 SF(Superior Food) 마크 표시 결정
1968년 새 주민등록 신고(-10월10일)
1968년 법주사 팔상전에서 신라시대 사리 발견
1967년 세계반공연회의 개막
1965년 위수령 해제. 서울대생 등 11명 정부전복혐의로 구속.
1965년 주월한국군 사령부 창설, 초대사령관 채명신
주월한국군사령부는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여 베트남 공화국 사이공(현재의 호찌민시)에 본부를 두고 모든 주월 한국군(ROKFORV)을 지휘통제한 합동사령부였다.
대한민국 국방부 일반 명령 제16호에 의해 1965년 9월 25일 합동참모본부에서 창설되었다. 초대 사령관은 수도사단장인 채명신 소장이 겸임했다.
이후 1965년 10월 20일, 사령부가 베트남 공화국 사이공에 전개하였다.
1966년 6월 1일에 수도사단으로부터 제100군수사령부 "십자성"을 배속 이전받았다. 같은 해 8월 15일, 수도사단과 제9사단을 효율적으로 작전통제하기 위해 냐짱 쩐흥다이 19번지에 야전지휘소를 창설하였다. 두 개 사단 외에도 군사정보대, 통신보안대, 민사심리전중대가 배속되었다.
1968년 6월 1일에, 야전지휘소가 야전사령부로 개편되었다.
1973년 3월 7일, 베트남 공화국에서 철수하여, 같은 해 6월 30일 대구광역시에서 제3야전군으로 재편성되면서 주월한국군사령부는 공식적으로 해체되었다
1965년 청룡부대 선발대 및 군수지원사령부 선발대 김포공항 출발
1963년 도미니카군부 쿠데타. 후앙 보슈 정권 전복
1963년 영국 프로퓨모사건 (킬러 스캔들)에 관한 데닝보고서 공개
1962년 알제리아 첫 의회 개원, 아바스씨를 의장 겸 임시원수로 선출
1961년 케네디, 유엔총회 연설, 3단계 완전군축안을 제출. 유엔평화군 창설과 전세계국가의 핵실험 금지협정 등 6개항 제의
1949년 소련, 1947년 이래 원자폭탄을 소유해왔다고 공식 인정
1949년 8월29일, 소련이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스탄 사막에서 첫 원자폭탄 실험에 성공했다. 실험은 성공했고 연기가 가득한 사막에는 폭발 효과를 실험하기 위한 건물, 무기의 잔해, 실험용 동물들의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실험은 9월 3일 미국 공군의 장거리 정찰기가 캄차카반도 동쪽의 북태평양 상공에서 대기중에 있는 다량의 방사능을 감지함으로서 서방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 사실을 보고받은 트루먼 대통령이 9월23일 “최근 수주일 동안 소련에서 핵폭발이 일어난 증거를 갖고 있다”고 발표하자 침묵을 지키고 있던 소련은 9월 25일, 비로소 “1947년 이래 원자폭탄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공식 발표했다.
소련은 1947년 11월 6일에 몰로토프 외무장관이 “원자폭탄 비밀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던 발표를 인용하며 “우리는 1947년에 이미 핵무기 비밀을 파악했다. 현재 우리는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지만 핵무기 금지를 지지한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1948년 연호를 단기로 채택
단기를 처음으로 사용한 것은 고려의 백문보(白文寶)였다. 『고려사』 열전 백문보조에 의하면 “하늘의 기수(氣數)는 순환하여 한 번 돌면 다시 시작하여 700년이 한 소원(小元)이 되고 3,600년이 쌓이면 한 대주원(大周元)이 되나니, 이것이 황제(皇帝)와 왕패(王覇)의 치난흥쇠(治難興衰)의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동방은 단군으로부터 지금까지 이미 3,600년이라 이에 주년(周年)의 기회가 됩니다.”라고 공민왕에게 글을 올려 단군기원을 언급하면서 천인(天人) 도덕의 설을 강론해 성학(聖學)을 밝힐 것을 청했던 것이다.
또, 1909년 창설된 대종교(大倧敎)에서도 단군기원을 채택하였다. 대종교는 우리 민족의 고유신앙을 체계화한 것으로, 1909년 1월 15일 나철(羅喆)이 천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교리를 폄으로써 시작되었다. 신앙의 대상은 환인(桓因)·환웅(桓雄)·환검(桓儉 : 檀君) 삼신일체(三神一體)의 상제(上帝)이다. 그 밖에 대종교에서 분립된 단군교(檀君敎)에서도 단군기원을 채택하였다.
그러나 단기연호가 국가에 의해 처음으로 채택된 것은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이다. 즉, 1948년 9월 25일부 대한민국 법률 제4호 「연호에 관한 법률」에서 “대한민국의 공용연호는 단군기원으로 한다.”고 하고 다시 그 부칙에서 “본 법은 공포한 날로부터 시행한다.”고 법제화함으로써 단군기원이 국가적인 공용연호로 채택되었다.
그 뒤 1961년 12월 2일부 법률 제775호 「연호에 관한 법률」에서 “대한민국의 공용연호는 서력기원으로 한다.”고 하고, 다시 그 부칙에서 “본 법은 서기 1962년 1월 1일부터 시행한다. 법률 제4호에 관한 법률은 이를 폐지한다. 본 법 시행 당시의 공문서 중 단기로 표시된 연대는 당해 연대에서 2,333년을 감하여 이를 서력연대로 간주한다.”고 법제화함으로써 단군기원은 폐지되고 서력기원이 채택되었다
1945년 파리서 세계노동조합연맹 발족
전세계의 노동조합을 결속하여 침략전쟁을 저지하고 영구적인 세계평화를 이룩할 것을 목적으로하는 세계노동조합연맹이 1945년 9월 25일 파리에서 결성됐다.약칭은 세계노련(世界勞聯)이다.
처음에는 미ㆍ영ㆍ소 등 56개국 6700만의 조직노동자를 결집한 조직이었다. 그러나 1949년 유럽부흥계획(마셜플랜)을 지지하지 않은 세계노동조합연맹의 방침에 반대한 영국의 노동조합회의(TUC)ㆍ미국산업별 노동조합회의(CIO)ㆍ네덜란드의 노동총동맹(NVV)이 탈퇴, 같은 해 11월 국제자유노동조합연맹(ICFTU)을 결성함으로써 세계의 노동조합은 2개로 분열했다.
국제자유노동조합연합(WFTU)은 4년마다 세계노동조합대회ㆍ2년마다 총평의회ㆍ매년 평의회 집행위원회가 열리며 상설기관으로 정ㆍ부 의장, 정ㆍ부 서기장으로 구성되는 집행국과 서기국을 두고 있고, 하부기관으로 WFTU의 목적에 따라 자주적으로 활동하는 산업별 노동조합 인터내셔널이 있다. 본부는 프라하에 있다.
1945년 미국-영국-프랑스-소련, 독일점령 제2호 협정 공포
1940년 철학자 발터 베냐민 자살
유대계 독일 문학평론가·철학자 발터 베냐민 독일이 프랑스 점령하자 스페인으로 탈출하려다 국경봉쇄에 좌절 프랑스-스페인 국경에서 모르핀 50알 먹고 스스로 목숨 끊음,
1925년 상해판 독립신문 폐간
1922년 독립운동가 신규식 선생 사망
나라가 기울고 있을 때 신규식(申圭植)은 관립한어학교와 육군무관학교에서 문·무를 쌓으며 국권회복에 힘을 기울였다. 그러나 조국은 이미 바람 앞의 등잔불이었다. 1905년 을사조약 때는 의병을 일으켜보려 했으나 뜻대로 되지않자 사흘을 굶다가 이내 음독자살을 기도 했다. 가족들에 의해 목숨은 구했지만 오른쪽 눈의 시신경에 이상이 생겨 애꾸가 됐다. 신규식은 “그래, 애꾸눈으로 왜놈들을 흘겨보자”며 흘겨볼 예(睨)자와 볼 관(觀)자를 써서 ‘예관(睨觀)’을 자호로 삼았다. 1910년 한일합병이 됐을 때 또한번 자살을 기도했으나 이번에는 대종교 종사 나철이 그를 구했다.
신규식은 이듬해 상하이로 망명, 쑨원의 중국혁명동맹회에 가입하고 신해혁명에도 참가했다. 중국 혁명의 성공이 조선의 해방을 가져올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결국 이때의 연대(連帶)는 상하이 임시정부가 쑨원으로부터 승인받는데 결정적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임정이 곧 분란에 휩싸이자 신규식은 이를 통탄하며 25일간 불식(不食)ㆍ불언(不言)ㆍ불약(不藥)을 고집했다. 결국 신규식은 1922년 9월25일, 42세로 이승을 떠났다.
1920년 동아일보 제1차 정간
1910년 부산에 수도(水道) 개통
1906년 소련 작곡가 쇼스타코비치 출생
1905년 관부연락선 첫 취항
1897년 미국의 소설가 윌리엄 포크너 출생
1881년 중국 작가 루쉰(魯迅) 출생
1869년 거룩함에 대한 인간의 체험을 연구·발표한 독일의 신학자 오토 출생
1866년 초파리 실험으로 염색체 유전설을 확립한 미국의 유전학자 모건 출생
1846년 독일의 기상학자 쾨펜 출생
1882(조선 고종 19) 고종의 특명전권대신 박영효 태극기 처음 사용
1776년 규장각 창립
1773년 이탈리아 세균학의 창시자 바시 출생
1711년 중국 청나라의 4번째 황제 건륭제 출생
1680년 영국의 시인 버틀러 사망
1555년 아우크스부르크 평화조약, 로마가톨릭교회와 루터교회 공존하게 됨
1513년 발보아, 태평양 발견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후, 스페인은 그곳에 식민지 에스파뇰라(현재의 산 도밍고 혹은 아이티)를 세웠다. 부랑자들이 금을 좇아 그곳으로 달려갔으나 금은 없었다.
에스파뇰라 총독은 땀흘려 농사를 지을 리 없는 그들을 모아 카리브해 건너 남미 대륙으로 파견할 탐험대를 조직했다. 스페인에서부터 황금을 좇아온 30대 중반의 건달 바스코 누녜스 데 발보아도 일원이었다. 탐험대는 파나마해협의 다리엔에 남미대륙 최초의 신도시를 건설했다. 다리엔의 총독이 된 발보아에게 인디언의 한 추장이 큰 바다와 그곳으로 흐르는 금이 많은 강물이 있는 곳을 알려줬다.
1513년 9월 1일 발보아는 미지의 바다를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정글과 늪지가 가로막고, 적도의 태양이 괴롭혔지만 발보아는 인내하며 나아갔다. 9월 25일, 그들을 가로막은 큰 산을 발보아가 먼저 올랐고, 훗날 잉카제국을 정복한 피사로와 27명의 대원들이 뒤를 따랐다. 정상에 오른 발보아의 눈앞에 큰 바다가 펼쳐졌다. 발보아가 ‘남쪽 바다(Mar del Sur)’라고 명명했던 태평양이었다.
이로써 건달 발보아는 대서양과 태평양을 모두 바라본 인류 최초의 사람으로 기록됐다.
1493년 콜럼버스 제2차 탐험 출항
1425(조선 세종 7) 평양에 단군사당 세움
1251년 해인사 팔만대장경 조판 완료
몽고의 침략을 불교의 힘으로 물리치기 위해 만들어진 팔만대장경이 1251년 9월 25일 완성됐다. 고려 현종 1011년 완성된 초조대장경이 몽고의 침입으로 소실되자 1236년 대장도감과 분사도감을 설치해 대역사(大役事)를 시작한 지 16년 만의 일이었다.
가로 24cmㆍ세로 69cmㆍ무게 2.4~3.75kg인 경판 81,340장을 책으로 엮을 경우 6,815권이 될 정도의 방대한 분량으로 전체무게가 26만kg이고, 4톤 트럭으로는 65대의 분량이었다.
이 대장경은 고려시대에 판각되었다해서 고려대장경, 판수가 8만여판에 이르고 팔만사천 번뇌에 대치하는 법문을 수록했다해서 팔만대장경, 몽고의 침입으로 다시 새긴 대장경이라해서 재조대장경, 현재 해인사에 보관되어 있다해서 해인사 대장경 등으로 불리운다.
팔만대장경은 고려왕조가 피난했던 강화도에 보존되다 1398년(태조7년) 서울 지천사를 거쳐 그해 가을 해인사로 옮겨져 현재에 이르고 있다. 대장경이 장기보존될 수 있었던 것은 해인사가 대장경을 보관하는 데에 필수조건인 습도와 통풍이 자연적으로 잘 조절되는 조건을 가졌기 때문이다. 해인사 장경고는 자동적으로 습기를 조절할 수 있도록 땅에 숯과 횟가루, 찰흙 등을 넣어 다졌는가 하면 판전의 창문도 통풍이 잘 되도록 과학적인 방법으로 만들어져 판본 보존 창고로는 이상적인 건물이었다. 또 대장경의 목판재료를 바다에 3년 담갔다가 그늘에 3년 말린 후에 사용했기 때문에 오랜 세월동안 뒤틀림이 없이 원형 그대로 보존될 수 있었다고 한다.
팔만대장경은 글씨가 아름답고 오탈자가 전혀 없어 동양에 남아있는 3천여종의 한역 장경가운데 가장 완벽한 세계적 문화유산으로 평가받아 1995년 12월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