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
하면 늘 아련한 그리움이랄까, 그 어딘가를 가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된다.
예전에 <다리>라는 잡지도 있었고 625피난시절에는 부산의 국제시장 못지않게 영도다리가 유명했다.
수필가 김소운 선생의 수필에도 다리가 배경이 된 글이 많은 걸로 기억된다.
다리는 불가능했던 양쪽의 왕래와 소통을 가능케 한다.
장애물로 가로막혔던 이웃과 이웃을 이어주는 물리적인 역할은 물론이요,
때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정이 오가게 하는, 화합을 이루게 하는 의미에서의 다리!
김소운 선생은 평생소원이 한일 간의 가교架橋 노릇을 하고 싶다고도 했다.
나는 다리를 참 좋아한다.
처음 가는 데마다 꼭 보고 싶은 게 그 고장의 다리부터다.
예컨대 벌교의 소화다리(부용교), 광한루의 오작교 같은 작지만 아담한 다리부터
북한과 중국을 이어주는 압록강 대교, "런던"교, "뉴욕"의 "부르클린"교, "시드니"의 "하버브릿지",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금문교는“우리지보스톡”에도 있었다. 물론 고려인들이 부르는 이름이지만!),
동경"오다이바"의 "레인보우"(무지개)교“파리-세느”강의 아름다운 다리들. . .
그리고 서울의 동호대교, 당산철교는 건설 당시 현장에도 여러번 가 보았었다(남광토건에서 건설)
이렇게 수많은 다리들을 평생 보아왔다.
또한 전쟁의 상흔은 다리에서 가장 적나라하게 느껴지지 않았던가!
625때 한강대교 평양 대동강의 선교대교를 비롯해 남과 북의 수많은 다리가 폭파되고
“유고”의 <“드리나”강의 다리>(“이보-안드리치”의 “노벨”상 수상작품) 등등,
전쟁이란 다리폭파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다리!
그 중에서도 제일 감명 깊고 오래 기억되는 다리가 20여 년 전에 보았던“페낭”대교다.
“말레이”반도의“말레시아-이포”지역“스버랑프라이”와 피낭 섬을 잇는
교량(1982년 착공-1985년 개통, 이명박 대통령이 당시 현대건설 사장)으로 "말라카"해협을 관통하고 있다.
당시로서는 대역사였다. 지금도 동남아 최장의 바다 위 사장현수교(13.5키로)다.
당시 한창 동남아 출장이 잦아“페낭”섬엘 자주 갔었는데 현대건설이 착공할 때부터 완공 때까지
몇 번이나 가보았었다. 처음에는 우리나라 건설회사가 착공한다는 사실에 놀랐고 완공된 후에는
망망대해로 끝없이 뻗어나가다 아스라이 수평선 너머로 소실점이 되어 사라지는 다리를
"페낭"해변에 우두커니 서서 보면서 많은 감회에 젖어 하염없이 눈물 흘린 적이 있었다.
그런 추억의“페낭”대교를 차를 몰아 한번 건너보고 싶었는데 그러질 못했었다.
평소에도 다리에 대한 이런저런 아련한 감회를 서울의 여러 다리를 건널 때마다 떠올리곤 하는데,
인천대교완공개통 첫 행사로 걷기대회라니 눈이 번쩍 뜨일 수밖에 없질 않은가!
“페낭”대교가 확“클로즈-업”되면서, 그 보다 더 긴 인천대교가 개통되어 걸어서 건넌다니
나로선 인천상륙작전 이상 가는 설렘이 일었다. 차로 건너는 것도 감지덕지할 일인데 걸어서라니!
꿈을 꾸는 듯 했다. “페낭”대교의 꿈이 수 십 년 만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10월17일이 가까워 오면서 모든 일상이 조심스러워졌다.
감기조심, 배탈조심. . . 무리하지 않는 일상을 오로지 10월17일 인천대교 걷기에 맞추었다.
그런 인천대교가 걷기대회부터 개통이 되는 것이다.
역시 걷는 순서부터 한 것은 잘한 일이다. 인간의 자립은 직립보행에서 시작되는 것 아닌가!
18일은 자전거 대회, 19일 0시부터 차량통행으로 완전 개통된다.
인천도시축제가 시작되어“매스컴”에서 연일 떠들썩한 지가 오래다.
인천광역시 역대 가장 큰 행사일 게다. 무려 5만 명이나 걸어서 다리를 건너다니!
평생 바다 위를 걸어보는 기회는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것 아닌가!
바다를 거닐어 보는 절호의 기회, 구약의“모세”가 되어보는 것 아닌가!
나는 이 행사에야말로 만사 제치고 꼭 참가하고 싶어 8월7일 <모놀>게시판이 뜨자마자
잽싸게 신청하여 50명 안에 들었었다.
15일 대학동기 야유회 뒤 끝에 17일의 대장정, 벼르고 별렀던 일인데 고단하다고 빠진다는 건
상상할 수가 없었다. 헌데 아무리 연구해도 수지서 인천송도 동막역까지 신 새벽에 대중교통편으로만
가는 일이 보통이 아니다. 최소한 3시간은 잡아야 했다. 축지법은 알지도 못하고 별 뾰족 수가 없었다.
그래 17일 새벽 3시에 자명종을 맞추어 놓았다.
일어나보니 일진광풍에 비바람이 몰아쳐 행사가 제대로 이루어질지 걱정이 되었지만,
점차 바람이 자기 시작했다. 우비에다 추위에 대비한 여벌 옷, 식수, 커피, 점심도시락까지. . .
빈틈없이 장비를 배낭에 넣으니 묵직하다.
이걸 지고 20여 키로를 걸을 수가 있을까 하는 걱정이 태산 같았으나 어차피 각오한 일, 내친 걸음이다.
새벽5시에 집을 나서 수원역 가는 버스를 기다리니 날씨는 겨울날처럼 쌀쌀하고
비는 흩뿌리고 스산하기가 짝이 없다. 5시 20분에야 첫 버스가 나타난다.
밤새 버린 쓰레기로 지저분해진 수원역, 근처에서 김밥 잔치국수로 허기를 때우는 날품팔이 노동자
또는 노숙자 같은 허름한 사람들. . . 새벽 첫 버스, 첫 지하철 타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공사 현장이나 식당 등 일터로 나가는 근로자들인 것 같았다.
그들은 자는 것인지, 시름에 잠겨있는 것인지 하나같이 모두 눈을 감고 있었다.
부지런해야 하는 삶을 운명으로 짊어지고 하루하루 벌어먹고 사는 사람들이 아닌가!
가난이란 부지런해야 최소한이라도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그들에 비해 나는 이 무슨 호사란 말인가!
인천대교 완보할 것을, 시름에 겨운 그들을 보며 다시 한 번 다짐을 했다.
유복한 사람들은 모두가 단잠에 빠져 있을 시간이다.
6시 수원역에서 또 첫 지하철을 타니 난방이 들어와 한결 안온해졌다.
구로역쯤 오니 비가 그치고 희멀거니 도시의“실루엣”이 나타난다.
6시40분 구로역에서 인천 쪽으로 가는 열차로 갈아타고 부평역에 도착하니 7시 10분,
부평역은 벌써 온탕 북새통이다.
5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대부분 부평역에서 갈아타기 때문이다.
눈이 휘둥그레진다. 지하철이 서울보다 더 깨끗하고 최신식에다“스크린-도아”까지 설치해 놓았다.
경인지역이 그야말로 일취월장 발전하고 있다는 실감이 난다.
아직 차도연변 거리는 허름한 연립주택이 많아 가난한 옛 정취가 가시지는 않았으나
지하철시설은 몰라보게 좋아졌다.
부평역서 인천송도 동막역 가는 열차를 또 갈아타고 도착해보니 7시40분,
약속한 8시에 훨씬 못미처 도착한 것이다.
<모놀>식구들과 약속한 장소 3번 출구로 나오니 내가 일등이다. 거의 3시간 가까이 걸린 것이다.
동막역이란 게 있는 줄도 모른 초행길이다.
길모를 때는 대중교통 이용하는 것이 가장 정확하고 시간절약도 되는 것이다.
차 몰고는 엄두가 나질 않는 길을 시간 맞추어 찾아온 것이다.
동막역 3번 출구를 나서니 날이 활짝 개어 해가 가끔씩 반짝 빛나기 시작하고,
하나 둘 <모놀>인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다가 용산역에서 합류한 주력대부대가 8시에 와르르 모여들었다.
모두 희색이 만면, 지급 받은 봉투에서 붉은 "티셔츠"를 꺼내 갈아입고, 번호표를 가슴에 붙인다.
"티셔츠"와 양말 50인분을 나르느라 고생이 막심한 <모놀>의 대장 얼굴은 아침부터 상기되어 있었다.
바다를 걸어 건너는 것도 처음, 걷기대회도 난생 처음, 가슴에 번호표를 붙여보는 일 또한 처음이다.
모든 게 첫 경험이다. 내 번호는 10652. 모두들 번호표를 가슴에 달며 희색이 만면이다!
동막역에서도“셔틀버스”를 타고 걷기대회 출발장소인 국제 업무지역 기업홍보관 광장 앞으로
한 번 더 이동을 해야 한다.
동막역 앞, 대회장으로 가는 "셔틀버스"를 타기 위해 장사진을 친 사람들이 끝도 없이 일렁인다.
헌데 웬 젊은 여인이 심장발작을 일으켰는지 차가운 인도 위에 엎어져 있고 119대원들이
연신 인공호흡 시키는 안쓰러운 장면에 순간 숨이 헉 막힌다. 이런 변이. . .
제발 오늘 이 많은 사람들이 다 무사하게 마치기를 기원하면서 더욱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일행도 긴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비교적 질서유지가 되는 편이다.
한 10여분 서 있었을까 복닥거리는 와중에 내 앞으로 웬 중년부부가 시침 뚝 따고 염치불구
끼어드는 게 아닌가! 생긴 것도 산도적과 술집 마담 같았다.
늙은이라면 가만있었을 터인데,
<이런 얌체들이 요즈음도 있나!>하며 들으라고 큰 소리로 한 마디 했건만 눈도 마주치지 않으니!
이렇게 새치기가 심하다.
2-30분 기다려 버스 탔더니, 웬걸 대회장은 금세 5분도 안 걸린다!
도보로도 한 20분이면 충분할 텐데, 무언가 주최 측의 엉성함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9시가 훌쩍 넘어서 행사장에 도착!
<모놀>일행들은 수많은 사람들 속에 섞여 어딜 갔는지 보이질 않고,
간단한 개막식은 거의 다 끝나가고 있었다. 9시 반부터 도보시작!
떠밀려 앞자리까지 갔다가 우연히 식 마치고 단상에서 내려오는 안상수 시장 손 한번 얼떨결에 잡아보고 걷기 시작!
사람, 사람, 사람. . . .난생 처음으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평화롭게 움직이는 현장은 처음 경험했다! 419 때도 이랬었지, 허나 그땐 살벌한 싸움, 이젠 평화의 축전이다!
인천대교 입구는 조금 돌아가면 되는걸, 한 50미터 차이나 날까!
화단을 무단 횡단하는 사람들, 20km 나 가야할 사람들이 이렇게나 어리석다.
자칫"버팔로"현상(들소 떼처럼 한쪽으로 몰리는 현상, 대참사 원인)이 일어날까 걱정스러웠다!
편도3차선, 왕복6차선인데 처음에는 6차선 다 공개해 많은 사람들이 몰려 나갔다!
다리 위로 수천 명이 한꺼번에 밀려들어가니 걷는다기보다는 떠밀려가는 형국이다.
중앙분리대가 사람 키만 하다! 썰물이어서인지 개펄이 넓다!
한 2Km남짓 길을 간 후에야 사람들 사이에 간격이 생겨 비로소 걷는 기분이 들었다.
한 두 시간 쯤 걸었나, 다리 중간지점 주탑 부근에서 우연히 고등학교 동기 10여 명을 만나
많은 사람들 틈새에 끼어 앉아 쉴 겸 도시락을 먹고 있는데, 앞쪽에서 소란스러운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식사를 마친 참가자들이 다리 끝까지 건너편으로 계속 가겠다고 항의를 해대고
아침에 바람과 비로 말미암아 안전요원을 철수시켰으니 여기를 반환점으로 해서
되돌아가야 한다는 진행요원들 사이에 일촉즉발의 상황이다.
필경은 참가자들의 의지대로 영종도"골인"지점 까지 계속 가게는 되었지만,
주최 측 진행이 우왕좌왕 하는 모습이다.
이때가 12시 좀 넘었다.
중간지점에 빨리 도착했던 사람들은 일기불순하다며 돌아가라는 말을 곧이곧대로 듣고 돌아가는
사람들도 많았다. 나도 선두 쪽에 선 편이라 하마터면 중간지점에서 돌아설 번 하였으나
마침 <모놀>대장이 영종도로 길이 터졌다는 소식을 휴대전화로 전해와 완주 쪽으로!
주최 측은 처음에 바람 때문에 교각중간 사장교 주탑에서 돌아오는 것으로 계획했는데
날씨가 좋아져 계속 가도록 했다는 것이다.
역시 후반부부터는 다리가 해면으로 낮아져서인지 바람이 세다!
펄럭이는 태극기, 높은 교각, 휘둘러 구비치는 용틀임의 곡선미, 주탑과 상판을 지탱하고 있는 거대한
“하프”줄 같은 “케이블”철선!
상판은 길이 50m,폭 16m, 무게 1400톤에 달하는 대형 구조물,
이런 상판이 모두 336개나 얹어졌다고 하니, 대단한 현대문명의 산물이다!.
인천대교는 앞으로 인천시의 명물,“심벌”이 될 것은 물론이요,
하늘 길과 이어져 중국, 아시아, 전 세계로 뻗어나가는 평화와 소통의 다리가 될 것이다.
많은 사람이 다니면 길이 나듯이 역시 많은 다리가 놓여지면 선진조국이 될 것이다!
걸어가면서 저 멀리 왼편으론 화력발전소가 있는 영흥도, 팔미도 등이 점점이 보이고,
영종도 인천국제공항 쪽으로는 비행기들이 쉴 새 없이 뜨고 내린다.
아파오는 무릎에 좀 도움이 될까 싶어 갯내음에 섞인 가을 냄새를 깊고 길게 마시며 걷고 또 걸었다.
한 달음에 날아가는 갈매기의 유연한 비상이 부러웠다.
"베르나르"의 <나는 걷는다>란 책 읽은 생각이 났다. 기자생활하다“리타이어”한 후
"파리"서 북경까지 나이 60 넘어 2년에 걸쳐 걸어간 별난 사나이 "베르나르"자신의 이야기다.
3권에 거의 2천 쪽이나 되는 도보여행기의 압권이다.
골자는 <그저 걷고 싶어> 서였다니! 괴짜 중의 괴짜다. 하기야 지금 나도 그저 걷고만 있질 않은가!
많은 사람이 몰리다보니 쓰레기 또한 대단하다! 간밤의 바람이 어찌나 셌던지 넘어진 간이화장실도 있었다.
후반부에는 사람들이 대폭 줄어 화장실도 한산했다.
전반부에서는 화장실 가느라 병목현상에다 1-20분은 기다려야 했었는데!
바람에 날려 모자가 몇 번이나 날라 갔었다. 으레 뒷사람이 주워 주는 게 규칙이 된 것 같았다.
막바지에 거의 다 와 약간의 술로 피로를 달랬다. 마침 배낭에 桃盃가 들어 있었다.
형아님 한잔, 대장님 한잔, 나 한잔 또 누구던가!
대교 아래에도 세월은 흐르고
우리들 사랑도 흘러내릴 것이다.
내 마음 속 깊이 기억하리
기쁨은 언제나 고통 뒤에 온다는 것을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바다는 남는다
손에 손을 맞잡고 얼굴을 마주 본다
우리들 발아래 다리 밑으로
영원의 눈길을 한
지친 물결이 흐르는 동안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바다는 남는다!
사랑은 흘러간다 흐르는 강물처럼!
우리들 사랑도 흘러내린다
인생은 얼마나 지루하고
희망은 얼마나 격렬한가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바다는 남는다
나날이 흘러가고
달도 세월도 흘러만 간다
우리들 사랑은 오지 않는데
대교 아래에도 세월은 흐른다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바다는 남는다!
"아폴리네르"의 시 <미라보 다리>에서 <미라보다리> 대신 <대교>를, <나> 대신 <바다>로 바꾸어 읊어본 것이다.
하월곡동 허름한 주막집에서 개다리소반 논다니 젓가락 장단에 맞추어
가까운 벗들과 <미라보 다리>를 목 놓아 외쳤던 푸른 시절이 있었건만!
기쁨도 낭만도 슬픔도 우울도 순간일까,
인생은 그렇게 잠시 나에게 맡겨진 것!
*****
마침내 영종도 운서동 "톨게이트"가 나오고 다리는 끝!
인천대교 진입로에 들어서면서부터 무려 5시간 이상이 걸린 셈이다.
인천대교 관리소 앞 화단에 앉아 있는 일행들 옆에 나도 나란히 앉았다.
시원한 바람에 땀 마른지는 오래 이고 은은한 갯냄새를 맡으며
뉘엿해지는 햇살이 구름 사이로 오락가락하는 정경은 보기 드문 노을이었다.
<모놀>인들의 장기인 즉석 음악회도 갖고 기념사진도 찍었다.
이곳 "톨게이트"에서 운서동 지하철역까지 버스로 데려다 주긴 하는데, 언제 올지 . . . . 아무래도
"셔틀 버스" 대기 줄에 서서 매연 냄새 맡아가며 순번을 기다리기보다는 걷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나는 망설이다 걸어가는데 합류, 기울어가는 해만큼 앞서 가는 일행들 그림자도 길게 늘어지고 몸도 천근만근 늘어진다!
까마득해 보이는 지나온 인천대교를 바라보니 걸음의 위대함이 느껴졌다.
한 발자국은 미미하나 그것이 쌓이고 쌓여 지평선을 뒤로 한 것이 아닌가!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 마치 흐린 겨울에 햇빛 같은 발자국이다. 햇빛의 위대함을 사람은 발에서 느낄지어다.
운서 역까지 거리가 3Km라고 했는데 어찌나 멀게 느껴지는지, 내 거리감이 거의 마비가 되어서일 게다!
길어지는 발 그림자만큼이나 걸음도 느려지고 뒤뚱거린다!
<긴울림> 님의 부축이 몸보다도 정신의 울림으로 다가왔다.
절뚝이는 파장 끝에 마침내 운서역 앞의 <가마솥 설렁탕>집에서 막걸리에다 부대찌개로 저녁식사!
해냈다 그리고 이제 살았다. 다리 총길이 21.3키로에다 운서 역까지 4-5키로 더 보태면
한 25키로는 걸었을 범초, 녹초가 되어 대취했다!
이 정도의 고행을 하는 것은, 이 큰 다리를 놓은 많은 사람들의 노고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란 생각을 하면서 모처럼 걷고 걸은 하루였다.
아름다운 젊은 <모놀>인들!
이렇게 두 번 다시 경험 못할 인천대교 걷기 대장정은 끝이 났다!
지하철 몇 번 갈아타고 사당역에 와서는 버스타고 집엘 도착해보니 밤 11시가 훌쩍 넘었다!
새벽3시부터니 20시간을 걷거나 서거나 하면서 지났으니. . . 허벅지 환두뼈까지 아파왔다!
다리 건넌 다리가 천근 만근이다. 이런 미친 짓은 다시는 안 해야지!
하다가도 언제 또 도질지도 모르는 역마살이다!
범초.
첫댓글 범초님의 역마살~ㅎㅎㅎ...덕분에 함께 걸었습니다. 평생 한번뿐인 기회를 누린 것이죠.수고 많으셨습니다. 그 길이에 겁먹었다면 시도하지 않았을 것이나 한걸음 한걸음 참 장하게도 그 인천대교를 건넌 것입니다 장장20여시간을 ...장하십니다*^^*
그날 반가웠습니다. 바람에 펄럭이는 "코트"에서 정겨울 님의 개성을 느꼈어요!
범초님 반가웠습니다. 하나의 현장이든 단어든 오랜 세월동안 쌓아온 경륜과 학식으로 세계를 연결시켜 사유하시는 범초님. 늘 넓고 새로운 시각을 배웁니다. 늘 건강하셔서 좋은 글 많이 써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청한님은 뱃길로 귀가하셨더군요! 멋진 노을의 바다 사진 잘 보았습니다.
범초님 답사기를 읽으면서 새롭게 인천대교를 걸었습니다. 진정한 애국자이신 범초님이십니다. 영광스러운 행사에 함께 해 주셔서 행복했습니다. 수고 많으셨어요. 충분한 휴식 취하시고 건강하세요. *^^*
정말 감개무량 했습니다. 우리만의 힘으로 이런 크고 긴 다리를 바다 위로 놓았다는 뿌듯함이 있어 힘든 길이었지만, 끝까지 걸을 수 있었습니다!
범초님 대단하십니다..글을 읽으면서 인천대교를 같이 걷고, 페낭대교를 같이 걷고 모자라나마 범초님의 세월을 같이 걷습니다..건강 잘 관리하셔서 더 많은 길을 함께 걷고 더 많은 이야기들을 들려 주십시오.
"페낭"대교의 환상이 훨씬 더 크게 현실로! 그걸 직접 확인하는 기쁨을 <모놀>여러분과 함께 한 것은 영원한 추억입니다! 구미까지 먼길 잘 가셨군요! 반가웠습니다.
범초님 저는 그날 저보다 앞서서중간지점을 지나셔서 출발점쪽으로 가신것 보고 놀랬답니다.다행이 같이 님과 같이 완주한게 큰 보람이였구요.고생많으신것 가슴이 찡합니다. 저희는 기다리다가 경찰차 소위 (닭장차)라는 것을 첨 타고 왔답니다.그리고 양주 맛있게 마셨습니다.감사합니다.
수원 거쳐 가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이라, 함께 하지 못했습니다. 닭장 차라니. . .친절한 경찰이네요!
태평양 건너는 일이 참 고단하실텐데. . .잘 다녀오셔서 좋은 얘기 들려주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