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으로 보이는 바깥쪽만 멀쩡한 물건, 속-박이
‘속박이’가 있다. 겉으로 보이는 바깥쪽은 물건이 멀쩡한데, 상자를 열어보면 눈에 보이지 않는 안쪽에는 그보다 작거나 부실한 것, 못난 것을 바닥에 깔고 그 위에 실한 과일을 얹어 놓은 경우를 말한다. 그럴 경우 얄팍한 속임수에 속은 것에 억울한 생각이 든다. 모처럼 받은 선물이 속-박이라면 더욱 속상하다. 너무 실망스럽고 선물을 보낸 사람마저 달리 보인다.
그런데 과일 속-박이보다 더 나쁜 것은 사람 속-박이다. 처음에는 간, 쓸개 다 빼줄 듯하다가 나중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돌변하는 사람을 만나면 정말 속이 상한다. 속-박이는 경건하게 치장한 겉모습과는 달리 속에는 더러운 탐욕과 불법이 숨어 있는 모습이다. 처음과 나중이 변함없고 겉과 속이 한결같은 사람이 그립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마 23:27)
예수님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위선자’라고 질타하셨다. 그들은 겉과 속이 다르고 말과 행실이 다르다는 것이다. 경건하게 치장한 겉모습과 달리 속에는 더러운 탐욕과 불법이 숨어 있기 때문이었다.
그 위선으로 한 두 번쯤은 사람을 속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속-박이 신앙으로 머리털까지도 헤아리는 하나님을 속일 수는 없다. 속-박이 신앙은 참된 신앙이 아니다. 그것은 거짓이요 위선이다.
우리의 믿음은 입술만 아니라 삶으로 고백되어야 한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 그 말을 증명하는 삶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그 사람의 고백은 거짓이다. 하나님께 대한 믿음은 말씀을 듣고 삶에서 순종할 때에 온전하게 된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는 고백과 삶을 분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주님은 우리가 언제부터 예수 믿었느냐보다도, 지금 어떻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느냐를 중요하게 여기신다. 말만 그럴듯하고 행동하지 않는 신앙, 그것은 속-박이 신앙과 다를 바 없다. 처음과 나중이 변함없고, 겉과 속이 다르지 않으며, 믿음의 고백과 삶이 분리되지 않는 신앙인을 주님은 찾으시고, 또한 그를 기뻐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