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 인사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웰스피치리더십센터 대표원장 행정학박사 여순모입니다.
시골(진교 배골) 촌놈이 1969년 겨울, 고등학교 시험을 치기위해 처음 부산에 발을 붙인 것이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중·고등학교 때 웅변반에서 조금 듣고 배웠던 풍으로 대학 2학년 때 웅변동아리 회장을 맡으면서 웅변과 연설 그리고 화술에 재미를 느꼈습니다.
1975년 대학을 졸업하고 대한청소년신문사 기자로 일할 때 대인관계와 대화술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교양언어문화원 김양호 원장의 저서 40여권을 시리즈로 읽으면서 스피치 전문가의 세계로 접어들게 되었습니다.
1983년 2월 연천웅변교습소, 1988년 9월 퇴계웅변학원설립에서 부산시장선거연설팀장, 15대, 16대 대통령선거연설원으로 무대를 종횡무진 하기까지 숱한 사연들이 speech·리더십 교육의 노하우로 비축되어 있습니다.
1998년 8월29일 한국웅변연설협회 회장으로서 한국최초로 웅변급수제를 도입하고 제1회공개웅변습급심사회를 부산적십자회관 대강당에서 개최하여 웅변교육 체계화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웅변급수제를 도입할 때, 많은 선배 동지들로부터 아주심한 질타까지 받았지만 15차 이상 성공적으로 진행이 되자 그들이 도리어 빠르게 제휴를 청해왔고, 사단법인 한국웅변인협회(회장 권태호) 검정원장으로 취임하면서 국회의사당에서 검정시험(지정연설 5분, 즉석연설 10분)을 성대히 치러 역사적 기록을 남겼습니다.
2001년 3월, 동아대학교 사회교육원(원장 최학유)에 스피치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여 웅변지도자 최고위과정이 개설 되었고 한국의 대학에서 최초로 웅변, 연설, 화법을 체계적으로 강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지도교수라는 직책으로 강단에 서서 “말을 맛있게 하는 비법”과 ‘소리공명법’을 소개 했을 때 선배들의 심한 질책과 비판을 받아왔지만 오늘날 맛있는 공부(음악(音樂), 미술(美術), 영어(英語), 수학(數學) 등)의 광고가 봇물처럼 쏟아져 나와 저의 손을 들어 주고 있습니다.
2001년 9월 부산대학교 평생교육원(원장 김용경)에 대중연설지도자 과정을 개설하여 스피치교육의 과목 분류로 강사들의 전문성과 교육의 효율성 제고에 힘써왔으며 스피치리더십과정으로 개명하여 책임교수로서 열심히 가르치고 있습니다.
틈틈이 공부를 하여 동의대학에서 행정학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박사과정을 수료 하여 논문준비에 한창이며 동의대학교 학부과정에 강의를 하면서 부산대학, 경찰대학을 비롯한 전국 유명대학과 관공서 그리고 기업체와 사회단체에 초청특강이 줄을 이어 저의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습니다. 여순모는
등의 많은 저서를 통해 넓은 스피치 세계를 연구하며 개척해 나가고 있습니다.
특별히 아버지의 신명과 목소리를 물려받아 자신감이 앞서고 어머니의 명석함과 지도력을 이어받아 창의력이 뛰어납니다. 아버지의 뼈를 받아 황동(皇洞)이라 부르고. 어머니의 슬기를 받아 댄디(Dandy)라 부르기도 합니다.
저에게는 세상을 보는 눈과 사람을 보는 머리가 있습니다.
저에게는 말로서 사람을 이끌고 소리로써 세상을 부리는 힘이 있습니다.
이제 지천명의 나이에 웰스피치에서 만나는 모든 분들께 자신감과 스피치 능력, 리더십, 그리고 세상사는 재미를 만들어 드리는데 열정을 바치겠습니다.
2005년 8월 5일 황동 여 순 모 올림
<경력>
대한심도관 무술 수련
한국영화인협회 회원
육군병장만기제대(7사단, 육본 정훈참모부)
대한청소년신문사 기자
한국신생윤리연구소 교육부장
연천웅변학원 원장
부산웅변인연합회 회장
퇴계웅변학원 원장
동래구홍보위원
재부하동연제구회장
신한국당정치연설연구회 부산회장
청계생활문화원 원장
한나라당정치연설연구회 부산회장
한국웅변연설협회 회장
제1회 한국웅변공개검정실시
부산시장후보 연설원
제15대 대통령후보 연설원
제16대 대통령후보 연설원
연산여자중학교 운영위원(지역위원))
연신초등학교 운영위원(지역위원)
연일초등학교 운영위원(지역위원)
연산여중한문특활강사
연산중학교웅변특활강사
동래초등학교예절강사
연제구가정의례지도위원
연산1·8·9동새마을금고 이사-감사
연제구홍보위원
한국자유총연맹연제구부지부장
연산8동주민자치위원
부산교도소 강사
동아대학교 사회교육원 외래교수
부경대학교 평생교육원 외래교수
경성대학교 평생교육원 외래교수
부산대학교 스피치과정 책임교수
동의대학교 사회과학부 외래교수
경상대학교 평생교육원 전임교수
국립경찰대학교 출강
좋은예감갖기운동본부 회장
한국스피치TOP클럽 회장
대한민국자신감주식회사 대표
잡코리아 부산경남본부 전임강사
웰스피치리더십센터 대표
여순모스피치 방송국대표
<저서>
[생활사자소학], 부산 : 도서출판 경성출판사(1995)
[웅변의 이론과 실제],(공저), 동아대학교 사회교육원(2001)
[웅변연설화법개요].(공저), 동아대학교 사회교육원(2001)
[대중연설의 이론과 실제], 부산대학교 평생교육원(2001)
[공공연설과 자기표현],부산대학교 평생교육원(2003)
[침묵보다 아름다운 말], 부산 : 도서출판 대산(2003)
[말만 잘하면 세상이 내게로 온다], 서울:STAR출판사,(2004)
[말맛이 살맛이다], 부산 : 도서출판 대산(2004)
[현대화법연구], 부산 : 도서출판 대산,(2005)
[스피치골든벨], 고려동, (2006)
[자기혁신과 리더십], 고려동, (2007)
<자격>
태권도 3단 취득(국기원/1976)
화술강사(한국화술교육회/1988)
행정학석사(교육부장관/1992)
비만치료사(부산대학교/2001)
NGO지도사(부산대학교/2001)
웅변지도사(동아대학교/2002)
스피치지도사자격시험문제 출제위원(전국국공립대학평생교육협의회/2004)
스피치지도사자격실기시험 평가위원(전국국공립대학평생교육협의회/2004)
<출강처>
경남대, 경찰대, 동서대, 동아대, 동의대, 부경대, 부산대, 울산대, 울산과학대, 인제대, 전북대, 경남교육청, 부산지방경찰청, 중소기업청, 삼성, 롯데, 부산교도소, 부산사회체육센터, 잡코리아, 라이온스, JC, 연제문화원, 동래문화원, 초·중·고, 유치원, 학원, 각종 문화센터 및 사회단체 등
<여순모가 자라온 환경>
안태지 집채의 구성은
대지 1000여평의 넓은 정원가(庭園家)를 이루고 있었다. 상채는 4칸접집으로 아주 큰 대궐형이고 동채에 창고와 디딜방아가 놓여 있었다. 남쪽 아랫채 방2칸과 마루 곡간과 우사, 화장실이 있었다. 서채엔 닭장과 남새밭이 넓다랗게 있었다. 남쪽에서 동으로 열리는 대문과 사립문이 있었고 돈사가 손님 맞이를 했다. 서쪽 부엌 바깥에 우물이 있고 앵두나무와 무화과 있었다. 5대 종손가 답게 우람한 장독들이 즐비하게 가로세로 줄을지어 가솔들을 짐작케 했다. 동쪽 부억 바깥으로 청배나무가 있었고, 집 뒤로 대밭이 능을 이루며 무성했고 아름드리 감나무들이 즐비하게 늘어서고 살구나무, 복숭아, 가죽 나무가 특색 있게 어우러져 풍성한 저택을 이루었다.
동네에 유일하게 벽장시계와 재봉틀, 디딜방아가 있어 동네 사람들이 아기를 낳으면 곧장 달려와 시간을 묻는가 하면 추석이나 설이되면 옷을 만들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 들고 떡가루를 만들기 위해 디딜방아에 아낙네들이 모여 들었다.(셀프였다) 명절이 다가오면 온 동네 사람들이 몇일동안 우리 집에서 진을 친다.
그래서 동네 사람들은 갖가지 이름을 지어 부르는 집이었다. 어머니의 택호 서동댁, 눈병 보는 할머니댁, 방앗간집, 시계보는 집, 면장댁 등 다양했다.
아버지는 동네 어귀에서 정미소를 운영하시고 어머니는 의술이 뛰어나 환자를 많이 돌보셨다. 아버지 힘은 장사지만 성격이 유순하고 흥이 많아 농악놀이에 상쇠를 잡으셨다. 어머니는 16세 때부터 언변과 의술이 뛰어나 동네 어른들은 신통술이라 하였고 하동군,사천군, 남해군, 진주, 함량군, 산천군, 전라도 등지에서 환자들이 몰려왔다. 심지어 제헌국회의원 3분이(경남, 강달수의원, 부산의 싱상옥의원, 강원도 모의원) 단골으로 찾아오셨고, 다솔사 최범술 주지스님과 한학자 요암 선생님의 문하생들도 의술에 탄복하고 자택으로 모셔가 치료를 받기도 했다. 그 당시 서부 경남의 소문난 명의셨다.
여름 방학 겨울 방학 때는 어머니께서 환자의 눈을 수술 하실 때 손발을 결박하는 간호원 역활을 했다. 우리 8남매는 모두 유능한 간호사다. 농한기에 환자들이 하루에 20~30명씩 찾아들어 온 집안이 환자로 가득하였다.
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큰형은 동아대학에 다니고 작은 형은 고3이었다.
내가 공부할 때 형들은 함께 할 수 없었고 6살위 누나가 친구요 선생이 되어 주었다.
가물거리는 등잔불 밑에서 업드려 아버지 어머니의 사랑과 담배연기 속에서 공부를 했다.
어려서 이마가 넓고 밝아 \'벗거지\'라는 별병이 최초에 붙었고 산골에서 10리길을 다니며 6년 개근상과 우등상을 받을 많큼 성실하고 공부도 잘했다. 특히 어른들 앞에 노래와 춤을 잘해 칭찬을 많이 받으며 자랐다.
소를 몰고 산이나 들로 나가면 고함을 지르며 어른들의 흉내로 즉흥연설을 수다스럽게 해댔다. 어른이 된 지금도 혼자 있으면 중얼거린다.
\"농사가 많은데 형들이 객지로 다 나갔으니 농사를 지으며 같이 살자\"시던 부모님의 권유를 뿌리치고 부산으로 나왔던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아프다.
작은형이 보내준 부산상고 원서를 쓰기위해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 가다가 낭떠러지에 떨어져 어머니께서 조제해주신 똥술을 20여일간 먹으며치료를 받은 적이 있다. 촌놈이 영남상고에 합격하여 부산에 유학을 하게 되었다. 모험심이 많은 나는 초량 일대에서 껌을 팔다가 신문팔이로 전향하여 부산진역과 초량 중앙극장 사이에서 신문을 팔았다. 주경야독이 아닌 야경주독을 하면서 경남정보대학에 진학을 하고 방송통신대학에 편입을 하고 동의대학교 대학원을 졸업을 하였다. 오늘 주어진 현실에 충실히 살아가고 있다. \"웅약홍도(雄躍鴻圖)\"를 좌우명으로 현실보다 밝고 큰 계획을 세워 충실하게 실천해가고 있다.
내고향 천황산 아래 대곡, 즉 천황댓골에서 자랐다하여 묵해 김용옥 선생님은 나에게 황동(皇洞)이라는 호를 내리셨다.
황동 여순모는 분에 넘치는 유년기와 질곡의 청소년 시절을 이런 환경 속에서 살아 왔다. 나로 하여금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좋아지길을 기원해 마지않는다.
지금은 또 다른 시작이요. 신명이 넘치는 새 시작이다.
-- 2005년 9월 초 지난날을 간략히 정리하다 여순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