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강인춘 |
1943년부터 1945년까지 3년간은 전시 관계로 총회를 열지 못했다. 총회 회의록에 의하면 99회 동안 총회가 모인 장소는 50곳이다. 제일 많이 모인 곳이 바로 서울 승동교회로 8회(제6 11 45 47 48 50 60 71회)이고 둘째가 평양 서문밖교회로 7회(14 15 19 23 24 27 31회), 셋째가 충현교회(57 80 82 86 89회)와 대전중앙교회(44 52 56 66 90회)로 각각 5번이다.
그 외 평양 장대현, 연동 평양신학교, 선천염수동, 대구남문안, 서울 안동, 재령 남산현, 전주 서문밖, 신천북, 신의주 함북신창리, 원산 광석, 대구서문, 새문안, 금강산수양관, 평양 창동, 선천남, 광주양림, 대구제일, 신의주제이, 부산중앙, 안동중앙, 영락, 부산남, 성도, 광주중앙, 서울 평안, 부산초량, 장충, 대구 서현, 인천제이, 총신, 대구동부, 부산부전, 군산개복, 서울 청량, 서울 신림동, 김제 중앙, 대구동신, 광주동명, 청주중앙, 왕성, 정읍성광, 경남 진주, 창훈대, 온천제일교회 등이다.
총회 장소에는 통일에 대한 여망이 담겨 있기도 하다. 1954년 4월 23일 경북 안동중앙교회에서 회집한 제39회 총회에서는 마지막 날, <내회 장소는 서울로 하되 남북통일 시는 평양으로 하기로 가결>한 기록이 있다(동 회의록 통권 11권 299쪽). 그러나 여망은 이루어지지 않아 1955년 4월 22일 제40회 총회는 평양이 아닌, 영락교회에서 열렸다(통권 11권 30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