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
계명의 주체는 하나님이고 그 하나님이 하라 말라 하신 말씀이 계명이다. 크게 부사다. ⌜메오드⌟란 “크다”란 말은 본래 “열렬함”에서 왔다. 얼마큼 계명을 즐거워하는지를 짐작이 간다. “즐거워한다.” ⌜하페츠⌟는 “구부리다.” “갈망하다이다.” 하나님 계명에 구부릴 만큼, 갈망하는 상태를 말한다.
이 시는 다윗의 시로서 그가 친히 하나님을 바로 섬겼더니 사울왕의 계열에서 자신의 계열로 왕위가 넘어오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그는 자신만아니라 후손까지 직접 복을 받는다는 것을 경험했기에 당당히 이 시를 쓰고 있는 것이다.
후손: 여기에 후손까지 운운하는 것은 계명을 지키는 자는 본인만 아니라 후손까지 복을 받는다는 상징적 의미를 강하게 제공한다.
2. 언제
2-1. 영원히(6) “그는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함이여 의인은 영원히 기억되리로다.”
여기서 “그는” 여호와의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고 지킨 자를 의미한다.
땅에서 복을 받고 후손이 복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렇게 하나님의 계명을 기뻐하고 지키는 자는 영원히 하나님이 흔들리지 않게 하겠다는 다짐으로 그를 극찬하고 있는 것이다. 즉 천국에 가서도 그를 대접하고 크게 환영할 것이다. 이 얼마나 영원히 복을 받고 감사한 일인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인데도 이렇게 영원토록 대접하시고 흔들리지 않고 기억하시겠다는 것은 축복중의 축복 영고아중의 영광일 것이다.
예수님도 예수님의 발아래 옥합을 붓고 머리털로 씻어드린 마리아를 영원히 기억하게 기념이 되게 하겠다고 하셨다.
전쟁 영웅이나 나라에 큰일을 한 자에게 기념탑이나 기념물을 세워 기념하며 그 공로와 의미를 잊지 않는 것만도 영광인데 당연히 하나님 기뻐하고 계명을 지킬 일인데도 이렇게 대우하겠다고 하면 우리는 더 더욱 감사함으로 계명을 사랑하고 지키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3. 어디서:
3-1. 땅에서(2)
그렇다. 땅이다. 천국이 아니다. 천국 가서 받을 상급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게 아니다. 당장 이 땅에서 받을 축복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천국 가는 것만큼 큰 복과 은혜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당장 땅에서 살면서도(here & now) 복을 받는 것이다. 그러기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분의 계명을 지키는 일은 가장 현명한 선택이요, 지혜로운 일이다.
사람이 당장 눈앞에 일어나는 일을 보고 경험할 때 먼 미래에 일어날 일에 대해서도 기대감이 크고 더욱 확고하게 신뢰하게 된다.
3-2. 그의 집에서(3)
다른 집이 아니다. 바로 그 집이다. 하나님의 계명을 크게 기뻐하며 지키는 바로 그 사람의 집이 복을 받는다. 집이라고 할 때는 군집명사로서 그 사람을 포함하여 그 집 식솔들까지 받는 복을 말한다.
(시37:25.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의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26.그는 종일토록 은혜를 베풀고 꾸어 주니 그의 자손이 복을 받는 도다.)
간수장이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 믿을 때 그 집이 구원을 받는다고 하셨다. 반면에 엘리와 사울이 하나님을 멸시할 때 그만 아니라 그의 자식들까지 심지어 요나단같이 훌륭한 아들까지 함께 죽음을 당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나와 식솔 그리고 후손이 함께 복을 받는 지혜로운 길을 택해야 할 것이다.
4. 어떻게(무엇)
4-1. 그의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누가에서 다룸)
4-2. 정직한 자들에게는 흑암 중에 빛이 일어나나니 그는 자비롭고 긍휼이 많으며 의로운 이로다.
성경 전체 중 구원의 문제가 제일 크고 무게감 있게 다루지만 그 구원받는 자가 땅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 의 문제를 다룰 때는 바로 헤세드와 정직의 문제가 다뤄진다.
헤세드는 고아 과부를 선대하며 불쌍한 자를 하나님의 심장으로 대하는 것이다. 눅16장의 부자는 이 마음이 없었기에 지옥 갔다고 나온다. 즉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지 못한 것이다. 그만큼 헤세드는 구원받은 자에게 나타나는 열매다. 다음으로 정직의 문제이다. 욥8장 5~6절에서도 이 정직을 다루고 있는데 이 정직은 하나님의 의를 설명할 때 반드시 따라오는 것이다. 의로운 자는 땅에서 시작은 미약했어도 나중은 심히 창대해 지는 축복권의 문제로 등장한다.
그리스도인이 핍박을 받는 것은 정직 때문이다. 정직은 비록 핍박이 따라 온다해도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하나님의 마음이다. 아직도 정직하지 못하다면 ‘내가 과연 하나님의 아들, 딸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4-3. 은혜를 베풀며 꾸어 주는 자는 잘 되나니 그 일을 정의로 행하리로다.
이게 바로 헤세드다. 은혜를 베푸는 것 그리고 꾸어주는 것
부자는 이것을 하지 않았다. 자기는 아브라함에게 유대인들의 통상적인 인사인 아버지라 부르지만(눅16:24) 실제로 그는 유대인의 자녀답게 살지 않았다. 다시 말하면 육신으로는 유대인었지만 이면적으로나 영적으로는 전혀 유대인으로 살지 않았다. 열매로 나무를 본다는 마7:20절의 말씀에 부합되지 못했다.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는 말씀이 지엄하게 다가온다.
믿음의 사람들 즉 구원을 받은 사람들은 한결같이 그 신앙의 열매로 이 삶을 살았다. 다윗은 원수였지만 사울에게 이 은혜를 베풀었다.( 삼상24:4~11)
수넴 여인은 항상 선지자에게 자기 집을 내어 놓았다.(왕하4:8) 신약에서는 자주장사 루디아가 이런 삶을 살았음을 행16장에서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사는 것이 잘된다고 하신다. 우리가 믿음의 가정인가? 그렇다면 이러한 삶도 살고 땅에서 잘되는 복을 받아야 하리라.
5. 왜?
5-1. 왜 하나님의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다고 하시는가?
계명을 준수하라고 명령하신 분이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그 하나님이 신28장에서도 청종하면 이러한 복을 주리니 하고 15절의 분량으로 축복을 약속하셨다.
(3.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4.네 몸의 자녀와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소와 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5.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6.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여호와께서 너를 대적하기 위해 일어난 적군들을 네 앞에서 패하게 하시리라 그들이 한 길로 너를 치러 들어왔으나 네 앞에서 일곱 길로 도망하리라 등등)
5-2. 왜 정직한 자들에게는 흑암 중에 빛이 일어난다고 하시는가?
"이는 그는 자비롭고 긍휼이 많으며 의로운 이로다." 라고 같은 구절에서 답을 주셨다. 자비롭고 긍휼이 많은 것은 흑암중에서도 빛이 일어나는게 하는 의로운 일이다. 하나님이 이 땅에서 믿음의 가정 의로운 자의 가정으로서 살아가는 방법을 제시하고 계신 것이다. 그러한 가정을 복을 주시고 땅에서도 잘 되게 하시므로 다른 가정들 역시 이러한 삶을 살게 하고싶으신 것이다. 이러한 구성원들만 있다면 세상이 어찌 문제가 되겠는가?
욥기에서도 8:5~6절에서 "청결하고 정직하면 반드시 너를 돌보시고 네 의로운 처소를 평안하게 하실 것이라."고 하셨다.
5-3 은혜를 베풀고 꾸어주는 자는 잘된다고 하는가?
그게 하나님의 마음이고 하나님이 바라시는 바이기 때문이다. 딤전 2:4에서도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이 말씀 자체가 하나님이 얼마나 은혜베풀기를 좋아하시는 분인지를 보여준다. 그러기에 죄인도 용서하기를 바라시며 일흔번씩 일곱번이라도 그렇게 하시기를 원하신다.(마18:22) 가족 구성원 자체가 이렇게 서로 용납하고 용서하며 산다고 할 때 돠연 행복하지 않을 가정이 있겠으며 사회 구성우너들이 이렇게 살 때 어찌 사회가 아름답지 않겠는가? 생각하게 한다.
그래서
그러므로 어떻게나 왜 부분을 가지고 이렇게 살자 하고 적용하고 그 사례를 하나씩 붙히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