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자연을 벗 삼아 노래 할 때면 항상 계절마다 등장하는 계절의 꽃들이 소재거리로 등장하는데 어김없이 나타나는 것이 사군자(四君子)다 그런데 사군자 중에서도 화풍(畵風)으로서는 골고루 분포되어있지만 “시”로 노래한 것은 아마 들에 피고 지는 국화를 소재로 하여 자연과 결부시켜 노래한 작품들이 제일 많으리라 본다. 그만큼 국화는 우리주변에서 흔하게 그리고 친근감 있게 많이 볼 수 있기에 그렇다.
일찍이 중국에 도연명은 국화를 바라보며 기상과 군자의 덕을 갖춘 식물이기에 어려서 친구와 다니며 놀던 고향에 세 갈래 길 거칠어졌어도 소나무와 국화는 그대로 있다 하면서 옛 추억을 더듬으며 노래한다.
채국동리하(採菊東籬下)동쪽 담 밑에서 국화를 꺾어 들고
유연견남산(悠然見南山)쓸쓸히 남산을 바라 보네
미당 서정주도 "국화 앞에서" 라는 제목으로 국화에 대하여 노래를 한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하여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보다/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하여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보다/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 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노오란 네 꽃잎이 피고 간밤에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내게도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이러하듯 예로부터 국화는 우리들과 가까운 곳에서 자생하며 귀여움을 받았기에 더욱 더 친밀감을 높여 주는 식물이다.
조선 성종 때 신 용개(申用漑)는 원래 성품이 호방하여 세상이 다 아는 풍류객으로 어느 날 부인에게 오늘은 여덟 분의 아름다운 손님이 오실 터이니 술과 안주를 준비하라 했다 그런데 날이 저물어가도 온다는 손님이 하나도 오지를 않아 조급해하는 부인에게 조금만 기다리면 귀한 술손님들이 온다고 한다.
그러던 중 밤이 되자 그가 평소 즐겨 기르던 국화꽃이 만발한 여덟 개의 화분이 창틀에서 교교한 달빛이 황홀하게 비추는데 달빛이 점점 방안에 스며들면서 방안에 가득 차게 되자 부인에게 이제 손님들이 모두 왔노라 소리치며 술상을 내오라고 한 뒤 여덟 개의 화분그림자 사이사이에 술잔을 놓고 하나하나 국화에게도 권커니 자커니 권하며 대작하기를 몇 차례 권하며 마시다가 거나하게 취기가 오르자.
참으로 오랜만에 술다운 술을 손님다운 손님과 한잔했노라 했다 한다.
중국에 시성(詩聖) 이 태백도 평소에 자연과 술을 즐기면서 노래를 많이 했던 인물로 비록 국화를 상대하며 노래를 하지는 안했지만 자연을 벗 삼아 노래하는데
삼배통대도(三杯通大道)
일두합자연(一斗合自然)
석 잔을 마시면 벌써 큰 도에 통하고 한 말을 먹으면 자연에 합 한다
다른 노래에서는 하루에도 모름지기 술을 삼백 잔(三百盞)은 마셔야 된다고 극찬했던 대목이 있는데 말이 삼백 잔이지 삼백 잔이 어디 누구이름인가 하기야 그것도 잔 나름일 것이다 사발이나 대접 같은 것이야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지만 소주잔보다 훨씬 작은 잔이면 가능 할 수도 있다 아무튼 술에 대한 예찬을 한 것을 보면 어지간하게 술을 좋아했던 것은 사실이다.
아무렴 국화의 계절을 맞이하여 절정기에 맞은 단풍놀이만 생각하지 말고 요즘 여러 사회단체나 학교에서 국화전시회가 수도 없이 열리고 있는데 한번쯤 찾아가 국화의 아름다운 자태를 감상하며 국화 하나쯤은 집안 뜰악이나 현관에 놓고 저물어가는 늦가을의 정취를 한번쯤 음미하여보는 것도 나를 뒤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아닌가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