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犬)에게도 물(水) 복음을
이원우 아우구스티노
오늘은 5월 17일 주님승천대축일이다. 주의 집중이 잘 안 되는 나 같은 무지렁이의 귀에도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의 끝’이 파고든다. 아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표현해도 괜찮으리라. 적어 본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열한 제자에게 나타나시어 15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전하여라.(이하 생략)”
나는 차라리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어떤 경우든 생물을 사랑하는 것, 예를 들어 나무 한 그루나 풀 한 포기에 물을 듬뿍 준다면 준다 치자. 나는 자문했다. 그리고 자답했다. 그게 나무나 풀에겐 복음이 되고말고. 하물며 살아 움직이는 동물이랴.
미사 중인데도 며칠 전에 일어난, 기가 막히는 피조물 학대 이야기가 불경스럽게도 떠올랐다. 소름이 끼치지 않을 수 없었다. 세상에 말이다. 어떤 여자가 어린이 그것도 유치원생과 초등학생이 보는 가운데, 햄스터를 한 마리 꿀꺽 삼켰다는 것! 사연인즉슨 이렇다. 여자는 어릴 때 쥐에게 물렸었는데, 그 충격이 아직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는 것. 하필이면 어린이들이 햄스터를 그 시설에서 키우도록 한 이유는 불분명하다. 다만 녀석들이 햄스터를 사랑하기는커녕 귀여워한다는 짓이 그만 햄스터 대부분을 죽음으로 몰아넣어 버렸단다. 여자는 나머지 두 마리인가를 보호하려 하다가, 얼떨결에 자기 뱃속으로 넣어 버린 것.
나는 미사를 마치고 나서 본당의 견사(犬舍)로 달려갔다. 거기 두 마리의 개가 있었기 때문이다. 한데 여태껏 녀석들 앞에 물그릇이 놓인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사실 개는 사람 염분(鹽分)의 1/10 정도의 식생활(?)을 해야 한다. 그래서 개에게는 충분한 물을 제공해야 하는 것이다. 어찌 보면 사료보다 물이 더 중요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내 30년 개 사육 생활에서 곱씹기 수천 번인, 정답 중의 정답이다. 나는 결심했다. 좋다. 오늘부터 적어도 두 녀석의 물은 내가 책임지리라!
그런데 내 눈을 의심케 하는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두 마리의 개가 흔적 없이 사라지고 없는 게 아닌가! 대신 녀석들이 활발하게 뛰어놀던 자리에는 꽃이 심어져 있었고. 누굴 붙잡고 물어 볼 수도 없어 돌아 나오고 말았지만, 어리둥절할밖에. 그래 억지로 표현을 덧붙이자. 야, 우연의 일치 치고는 정말 기가 막힌다.
몇 시간 지난 지금은 흥분이 약간 가라앉고 마음이 안정되었다. 어디로 가서 살든, 하느님 피조물 라브라도 리트리버와 진돗개 트기(?) 두 마리가 편안하게 지냈으면 한다. 특히 물, 그 물만은 실컷 마셨으면 얼마나 좋을까?
저녁 식사 후 오순절 평화의 마을(삼랑진/ 부랑아 시설) K 사무국장과 K 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통화가 안 된다.
일고여덟 해 전 내가 김영곤 시몬 원장신부와 함께 경산까지 직접 가서 분양받아온 삽살개 부부 오순이와 도순이의 안부가 궁금해서다. 하지홍 교수에게 한사코 매달린 끝에 얻은 결실이었다. 녀석 둘은 자라자 자연 교배가 되어 수십 마리의 새끼를 낳았었지. 일정 기간 지나가 올라가 보면, 새끼들의 발톱에 어미 젖무덤이 할퀴어져 피가 나기 예사였고. 지적 장애 형제에게 관리를 부탁했었는데(그가 개를 좋아해서), 그가 적어도 개에게 물은 충분히 공급해야 한다는 것쯤 알고 있었다. 거의 자동적으로 그 힘든(?)일을 형제가 해냈으니 고맙고말고. 거기 오순절 평화의 마을에 못 가 본 지도 어느덧 몇 년이고, 나는 귀향을 포기한 채 타관에서 칩거해 있다.
그 시절이 그립다. 자문위원이랍시고, 같이 일하던 몇몇 부산 교우들에게 견사 출입이 마치 자랑이라도 되는 양 으스대던…….그러면서도 자위를 했지 않았었나? 나는 적어도 개에 대해서만은 당신들보다 알고 행하는 바가 낫다면서.
그러나 그게 무슨 업적이라도 되는 듯 큰소리치니 이게 낭패다. 개를 제외한 다른 피조물에 대해서는 나는 관대하지도 못했었다. 무엇보다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들에게’ 잘못한 일이 너무 많다. 40년 교직 생활 외 자연인으로서의 삶, 모두 부끄럽다. 복음을 전했다? 얼토당토않다. 뼈저리게 후회할 일이 수두룩하니 어찌 낯인들 들랴!
까짓 허울 좋은 ‘애견 생활’을 스스로 드러내, 피조물 복음 운운이라며 견강부회(牽强附會)하려 들려는 자신이 한심하달 수밖에. 이참에 내가 선택할 덕목은 근신(謹身),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리라.
*복음/ 기쁜 혹은 반가운 소식(즉 예수님의 가르침)이라 해석하면 되는지 모르겠다. 福音을 그대로 해석해서 복된 소리? 그건 아닌 것 같다.
*12장
서귀포 성당 교우님 여러분께.
찬미 예수님! 그동안 안녕하신지요?
지난 5월 4일 정말 1년 만에 제주도에 가서 3박 4일 있다가 왔습니다. 피닉스 아일랜드 리조트에서 묵었지요. 성산 일출봉 마을에도 다녀왔고, 우도도 가 봤습니다. 제주도는 참으로 좋은 고장이라는 생각을 내내 했습니다.
하지만 꿈에도 잊어지지 않는 서귀포 성당에 못 들러 한이 됩니다. 생애 최고의 미사에 참례했던 서귀포 성당! 근처에만 가도 큰 영성을 얻을 수 있는 본당인데---.교우님들께 허리라도 굽혔더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습니다.
다행히(?) 제가 소액 후원하겠다는 약속은 지키고 있습니다. 여생 동안에 계속하겠다는 의지도 그대로이구요. 교우님 여러분의 가정에 은총이 충만하기를 기도합니다.
이원우 아우구스티노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