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역사의 도시 장쑤성 성도(省都) 난징(南京)
난징(南京) 기차역 / 명대(明代)에 쌓은 성곽 유적
양자강(揚子江) 하구의 강소성(江苏省) 남경(南京)은 춘추전국시대 초(楚)나라의 왕도(王都)였는데 이후 많은 제국(諸國)들이 도읍(都邑)으로 삼았던 역사 깊은 도시로, 남경(南京)이라는 말 자체가 남쪽에 있는 수도(首都)라는 뜻이겠다.
남경은 명대(明代)에 쌓은 성곽도 남아있고 명(明)나라의 고궁(古宮), 손문(孫文)의 무덤인 중산릉(中山陵), 명나라 홍무제(洪武帝/주원장)의 효릉(孝陵), 영곡사(靈谷寺) 등 볼거리도 많은 곳이다.
이곳은 연중 날씨가 온화한 날씨 탓인지 도시 전체가 울창한 숲으로 덮여 있는 느낌이며 가로수도 수령(樹齡)이 오래된 고목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는 것도 이채롭다.
해산물이 주재료인 광동요리(廣東料理/중국 남부지방)는 우리 입맛에도 잘 맞는다. 중국이 자랑하는 남경박물원(南京博物院)은 선사시대 유물도 많이 전시되어 있고 우리나라 백제(百濟) 유물과 유사한 유물도 많이 전시되어 그 연관성이 주목된단다. 중국은 우리와 달리 박물관(博物館)이라 하지 않고 끝에 원(院)을 붙이는 것이 특이하다.
난징박물원에는 국보급 유물은 물론 선사시대 이래로 농경문화(農耕文化) 유물들과 서화(書畵), 도자기(陶瓷器), 공예(工藝) 예술품이 많은 것도 특징이다.
회족(回族) 식당 아가씨 / 난징 박물원 유물 / 거리의 남생이 장수
중국은 국토가 워낙 넓고 소수민족(55개 소수민족)이 많이 살고 있어서 그런지 지역마다 복색(服色)도 다르고 생활 수준이나 가치관도 큰 차이가 있는 것 같다.
도시권과 시골 지역의 생활 수준 격차가 너무 큰 탓도 차이의 원인이 되겠지만, 곳곳에서 중국인 특유의 공통적인 생활문화를 엿볼 수 있어서 재미있다.
<9> 난징 대학살 기념관(南京 大虐殺 紀念館)
난징 박물원 / 죽은 엄마의 피 섞인 젖을 빠는 아기와 울부짖는 소년
인류 역사상 인간이 저지른 가장 참혹한 살육(殺戮)의 기록 중 하나가 남경(南京)대학살이 아닐까?
독일 나치 정권의 유대인 대학살도 책으로 읽었지만, 실제 눈으로 보는 난징 기록은 상상을 초월한다.
인간이 얼마나 잔인한가를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이 기념관에는 당시의 참상(慘狀)들을 실물과 사진으로 적나라(赤裸裸)하게 보여주고 있다.
수만 점에 이르는 자료와 사진, 개인 기록 파일들이 보관되어 있고 당시의 전투 장면과 무자비한 살육장면들을 동영상으로도 보여준다. 우리나라도 일제 36년간 온갖 고초를 다 겪었고 엄청난 희생자도 있었겠지만 이처럼 생생하게 기록으로 남겨 보여주는 곳이 있던가?
어찌 중국과 한국 뿐이랴.... 일제(日帝)가 저지른 이 씻지 못할 만행(蠻行)은 일본은 잊을지 모르지만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이런 비무장 민간인 대 학살을 일본은 피치 못 할 전쟁 중의 희생자일 뿐이라는 변명과 그 뻔뻔스러움에 개탄(慨嘆)을 금하지 않을 수 없다.
전시물 대부분은 당시의 참상과 짐승만도 못한 일제(日帝)의 만행을 낱낱이 고발하고 있고 절대로 잊지 말자는 절규(絶叫)가 묻어 있다. 학살자들을 한꺼번에 파묻어 뒤엉킨 채 발굴된 엄청난 양의 유골들, 잘라 낸 목을 철조망 나무에 올려놓고 입에 담배를 물려놓은 저 인간모독(人間冒瀆)을 어찌 잊을 수 있겠으며 어찌 용서할 수 있을 것인가?
희생자 대부분이 비무장 민간인, 부녀자와 아이들이었다고 하며, 아버지가 딸을, 아들이 어머니를 강제로 겁간(劫姦)하게 하는 패륜적(悖倫的) 만행을 저질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전쟁이 아니고 단지 민간인 대 살육(殺戮)이었을 뿐이라고 기록은 전하고 있다.
두 일본 소위(少尉)의 목베기 시합 신기록 / 학살 현장 사진 / 사망, 실종 30만 명
학살 후 집단 매장터 발굴현장 / 아~~아!! 잘린 목에 담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