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 <좋은수필> 11월호(2022.11.1.) 게재 작품
국어사전은 기본적인 문학 이론서
오 덕 렬
ohdl@naver.com
1. 들어가며
국어사전을 컴퓨터 바탕화면에 깔아놓는 게 작품을 쓰는 데 편리하다. 종이 사전 대신 인터넷 서비스를 하는 사전들을 말하는 것이다. 먼저 ≪우리말샘≫에서 ‘국어사전國語辭典’의 뜻을 찾아보자. 국어사전 「001」「명사」 국어를 모아 일정한 순서로 배열하여 의미, 주석, 어원, 품사, 다른 말과의 관계 따위를 밝히고 풀이한 책.
국어사전은 펼쳐만 보아도 유익하다. 평소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낱말도 다시 찾아보면 많은 정보를 쏟아낸다. 문예창작 이론은 말의 원리와 운용(작법)에 관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국어사전은 가장 기본적인 문예창작 원리이며 작법서일 수 있다. 국어사전은 말의 광이다. ≪우리말샘≫ 광에는 문학의 유일한 재료인 낱말들이 100만개나 모여 산다. 오직 문장으로만 말해야 되는 문학에서는 말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 제일 부자이고 훌륭한 작품을 쓸 수 있는 가능성도 높다.
2. 국어사전과 창작
1) 창작이란 형상을 만드는 일
창작이란 형상을 만들어 내는 일[형상화]이다. 형상形象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자. 형상形象의 뜻은 ① 형상(形相). ② (image) 상상하여 마음속에 떠오르는 대상의 모습. 마음과 감각으로 포착되는 형태 또는 표현된 것. 모양. 모습. 형체.(≪새우리말큰사전≫)문학에서는 ②번의 풀이로 생각하는 것이 좋겠다. 형상形象이란 현실의, 사실적 대상의 모양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 형상화形象化를 찾아보자. 형상화는 (추상적인 것을) 구체적인 모습으로 만들어 내는 일.(≪ᄒᆞᆫ+국어사전≫)
형상화 작법은 작가 머릿속에서 상상한 모양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되는 그것이 바로 작법의 기본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국어사전이 말해주는 형상화에 대한 문학 이론이다. 이렇게 국어사전에서 아주 훌륭한 문학이론을 발견할 수 있지 않는가? 이제, 문학 이론서에서 형상화를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지 알아보자.
문학은 구체적으로 형상形象이다. 작가가 인식을 하고 사고한다는 것은 과학자나 철학자에게서와 같이 개념槪念 그것으로써 하는 것이 아니고 형상으로써 한다는 사실이다.(백철: 문학개론, 신구문화사, 1956, 61쪽)
형상화란 모양을 지니지 못한 것이 구체적인 형태로 나타남을 가리킨다. 그것이 일정한 테두리를 이루고 형태를 가지지 못한다면 그에 대해서 예술 작품의 이름이 허용되지 않는다.(김용직: 현대시 원론, 학연사, 2001, 46쪽)
형상화[창작]에 대한 설명이 국어사전에서나 이론서에서나 속뜻이 같음을 본다. 국어사전이 기본적인 문학 이론서라는 사실이 밝혀진 셈이다. 문학예술이 창작하는 형상은 현실적 사물의 형상이 아닌 예술적 형상이다. ‘내 마음은 호수요’는 마음이란 추상적 대상을 호수라는 현실의 사물을 보조관념으로 동원하여 예술적인 상상적 대상으로 형상화形象化한 것이다. ‘마음이 된 호수’라는 상상적 대상을 현실적인 구체성으로 인식할 수 있는가? 없다. ‘마음이 된 호수’는 현실에는 없다는 말이다. 마음이 된 호수는 문학 작품 속에서만 있는 문학적 대상으로서의 형상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문학예술의 사실성은 현실적인 사실성과는 성격이 다른 사실성인 것이다.(이관희: 형상과 개념, 도서출판 비유, 2010, 53쪽)
2)<이것저것 놀이>
내 마음은
김동명(1901∼1968)
내 마음은 호수요.
그대 저어 오오.
나는 그대의 흰 그림자를 안고 옥같이
그대의 뱃전에 부서지리다. (「내 마음은」(4연 중 제1연)
강원도 명주 출생인 김동명의 시,「내 마음은」을 문학 창작의 기본 틀인 <이것저것 놀이>로 분석해 보자.<이것저것 놀이>는 벌써 6년 전, ≪한국창작문예수필협회≫에서 전주 문학기행 때 발견되었다. ‘은유 놀이’로써 ‘창작’의 기본적인 구성의 틀을 발견했다. 우리 협회의 보물 1호다. 예술은 본질상 놀이다. 문학 이론서들이 말하고 있는 문학 발생의 네 가지는 <자기표현 본능설>, <흡인 본능설>, <모방 충동설>, <유희본능설>이다. 예술이 놀이 본능에 그 기원이 있다는 사실을 <이것저것 놀이>를 통해서 직접 체험하게 되었다.
● <이것저것 놀이>
○ 소재[은유]: 내 마음 = 호수
○ 왜?[동일성]: 잔잔하다. 때로 물결이 사납게 일기도 한다. 넓다. 깊다.
○ 원관념[주제]: 내 마음
○ 보조관념[제재]: 호수
○ 형상화[창작]: 호수 이야기로 내 마음을 그려낸다.
창작의 기본 구조는 <이것>을 {저것}으로 형상화하는 것이다. 소재, <이것>을 또 다른 소재 {저것}으로 그려내는 일이다. <이것>을 {저것}으로 형상화해야 한다는 뜻이다. ‘내 마음은 호수요’에서 글의 주제는 무엇인가? ‘내 마음’이다. 그러면 ‘호수’는 무엇인가? ‘내 마음’이라는 원관념을 형상화해 주는 보조관념이다. <이것>이라는 것은 그 글의 주제, 즉 원관념이고, {저것}은 그 글의 주제를 형상화해 주는 보조관념인 것이다.
처음 발견한 소재는 일단 <이것>이다. <이것>에 대한 다른 소재는 일단 {저것}이다. 이 중 어느 소재가 <원관념>이 되고, 어느 소재가 보조관념이 되는가? 원관념은 누군가가 자기를 꾸며주기를 바라고, 보조관념은 누군가를 꾸며 주는 자이다. 미장원에서 예를 들자면 손님은 항상 원관념이고 미용사는 항상 보조관념이 되겠다. 미용실에서 미용사는 항상 손님의 머리를 꾸며주니까, 보조관념인 것이다. 미장원에서는 원관념과 보조관념이 바뀔 일이 없다. 그러나 창작의 다른 소재에서는 때로 역할에 따라 <이것>과 {저것}이 자리바꿈을 할 수도 있다. 두 소재 중 더 개념적인 것은 원관념 소재이고, 더 형상적인 소재는 보조관념 소재가 된다. 모양이 없는 것이 모양 있는 것을 꾸며주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형상화 역할을 하는 편은 항상 보조관념이다. 형상화란 추상적 관념, 정서를 구체적 형상적 존재의 세계로 나타내는 것이다. 원관념과 보조관념의 거리는 멀고, 엉뚱할수록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이 교재는 <창작수필> 작법의 왕도가 아니다. 문학 창작의 왕도는 작품 자체에 있다. 작품 감상이 빠진 이론 연구도, 이론 연구가 빠진 작품 감상도 모두 반쪽의 공부밖에 안 된다. 문예창작법 공부는 반드시 작품 자체의 감상과 이론 연구가 함께 가야 한다. 문예창작법은 수학 공식과 같이 외워서 되는 일이 아니다. 우리 몸의 세포 하나하나에까지 몸에 배어야 비로소 내 것이 되는 것이다. 이때에 비로소 ‘문학 공부 = 창작 실기 + 이론 습득’이라는 공식을 세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작품을 읽고, 그 작품을 가지고 ‘창작 분석’을 하게 된다. (오덕렬: 수필의 현대문학 이론화―오덕렬의 <창작수필 교실 교재(1), 조선대학교 평생교육원, 2022.9.9.)
2) 국어사전이 말하는 ‘문학’
문학文學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사전마다 그 표현이 약간씩 다르다. 그 약간씩 다른 ‘문학文學’의 풀이를 살펴보자. 인터넷 국어사전인 ≪우리말샘≫(2016.10.5. 열려 개통)에서 풀이한 ‘문학’의 뜻풀이를 ‘기본형’이라 가정하고, 여기서 ‘문학의 대상’이 되는 ‘사상이나 감정을’의 자리에, 여러 국어사전들의 표현은 어떻게 되어 있는지 알아보자. 인터넷 사전은 물론이고, 평자가 가지고 있는 종이사전 모두를 살폈다. ‘문학’이란 낱말 풀이 말고 크게 다른 것 하나가 있다. ‘상상의 힘을 빌려서’란 문구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는 말이다. 그럼 사전마다의 실상을 살피자.
○ ‘문학文學’의 풀이와‘상상의 힘을 빌려’의 유무
순 | 사전명 | 단어 | 풀이 | 비고 |
기본형 1 | ≪우리말샘≫(국립국어원, 2016) | 문학文學 | 사상이나 감정을 언어로 표현한 예술. 또는 그런 작품. 시, 소설, 희곡, 수필, 평론 따위가 있다. | ‘상상의 힘을 빌려’ 없음 |
2 | ≪네이버국어사전≫ (인터넷사전) | 문학文學 | 사상이나 감정을 언어로 표현한 예술. 또는 그런 작품. 시, 소설, 희곡, 수필, 평론 따위가 있다. | ‘상상의 힘을 빌려’ 없음 |
3 | ≪민중 포켓국어사전≫ (이희승 감수, 중서관, 1968) | 문학文學 | 정서·사상을 상상의 힘을 빌려서 언어·문자로 써 표현한 예술 및 그 작품. | |
4 | ≪새우리말큰사전≫, (신기철·신용철,삼성출판사, 1975) | 문학文學 | (Literature) 정서·사상을 상상想像의 힘을 빌려, 언어 또는 문자에 의하여 표현한 예술 작품. 곧 시가詩歌·소설·이야기·희곡·평론·수필 따위. | |
5 | ≪다목적 종합 국어사전≫ (김민수·홍웅선, 어문각, 1980) | 문학文學 | 정서情緖·사상을 상상의 힘을 빌어서 말과 글로써 나타낸 예술 작품. 시·소설·희곡·수필 따위. | |
6 | ≪동아 국어 대사전≫ (양주동 책임감수, 쌍룡문화사, 1983. | 문학文學 | 언어와 문자로써 표현한 인간의 사상·감정·상상 등의 미적美的 작품의 모두와 또 이들 작품에 대한 지식과 그 창작 과정·효과·영향·가치 등에 관한 연구와 비평의 총칭. 시·소설·희곡·평론 따위. | 상상 포함 |
7 | ≪콘사이스 국어사전≫ (이숭녕 감수, 동아출판사, 1985) | 문학文學 | 언어와 문자로써 표현한 인간의 사상·감정·상상등의 미적美的 작품의 모두. 곧, 시·소설·희곡·수필·평론 따위. | 상상 포함 |
8 | ≪동아새국어사전≫ (이기문 감수, 동아출판사, 1992) | 문학文學 | (좁은 뜻으로는) 정서와 사상을 상상의 힘을 빌려 문자로 나타내는 예술 및 그 작품. 시·소설·희곡·수필·평론 따위 | |
9 | ≪표준국어대사전≫ (국립국어연구원, 두산동아, 2000) | 문학文學 | 사상이나 감정을 언어로 표현한 예술. 또는 그런 작품. 시, 소설, 희곡, 수필, 평론 따위가 있다. | ‘상상의 힘을 빌려’ 없음 |
10 | ≪ᄒᆞᆫ+ 국어사전≫ (남영신 엮음, 성안당. 2010) | 문학文學 | 생각이나 감정을 상상의 힘을 빌려 글자로 나타낸 예술과 그 작품. 시, 소설. 희곡, 수필과 이들에 관한 평론 같은 것을 포함한다. | |
11 | ≪보리국어사전≫ (윤구명 감수, 보리출판사, 개정판 2014) | 문학文學 | 생각이나 느낌을 글로 나타내는 예술. 시, 소설, 수필, 희곡 평론들이 있다. | ‘상상의 힘을 빌려’ 없음 |
이상에서 11권의 국어사전을 펴낸 연대순으로 ‘문학文學’의 뜻풀이와 ‘상상의 힘을 빌려’의 유무를 살폈다. ‘언어로 표현한 예술’ 앞에 ‘상상의 힘을 빌려’가 들어 있지 않은 국어사전이 눈에 띈다. 인터넷 사전인 ≪네이버국어사전≫과 ≪우리말샘≫, ≪표준 국어대사전≫, 그리고 ≪보리국어사전≫,이렇게 4권이다. ≪표준국어대사전≫(국립국어연구원: 상(ㄱ∼ㅁ), 중(ㅂ∼ㅇ), 하(ㅈ∼ㅎ), 두산동아, 1999.10.9. 초판 1쇄 발행, 2000.3.20. 초판 2쇄 발행, 발간사: 문화관광부 장관 박지원, 머리말: 국립국어연구원 원장 심재이)은 마지막 종이 사전이다. 이 사전 이후로 정부에서는 종이로 만든 국어사전을 내지 않았다. ≪표준국어대사전≫의 내용을 네이버에서 인터넷 서비스를 한 사전이 ≪네이버국어사전≫(2008)이다. 이 사전에 실려 있는 어휘가 50만이었던 것을 ‘방언’, ‘전문어’, ‘생활용어’를 보태어 100만 단어로 만든 것이 ≪우리말샘≫이다. 이 사전이 한국에서 제일 많은 어휘를 가지고 있는 국어사전이다. ≪우리말샘≫이란 이름은 전국적인 공모를 통해 정해졌다. ≪우리말샘≫의 ‘샘’은 용비어천가 제2장 2절 ‘미 기픈 므른 ᄀᆞᄆᆞ래 아니 그츨 내히 이러 바ᄅᆞ레 가ᄂᆞ니’의 ‘미’―샘[泉], 源遠之水, 새암의 ‘샘’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뜻은 주로 학생들이 선생님의 준말로 쓰는 샘[샘:]의 뜻을 함께 갖는다. 그러니 중의법의 이름인 것이다. 이렇게 국립국어연구원에서 만든 ≪표준국어대사전≫을 저본으로 하여 나온 인터넷 사전에는 ‘상상의 힘을 빌려’가 빠져 있다. 물론 저본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사전을 만들 때 다른 사전도 참고하고, 문학 전공 교수의 의견도 듣고, 작가들의 의견도 들었어야 하지 않았을까. 다른 사전에 다 들어 있고 또 들어가야 할 문구를 뺀 것은 의도적인 다른 뜻이 있느가, 아니면 만들다 보니 그냥 빠진 것인가는 알 길이 없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어사전에서 그 문구가 빠져 있다는 것은 세계적인 수치가 아닐까 한다. 이제라도 문학 관계인들이 뜻을 모아 ‘문학文學’의 뜻풀이를 제대로 해 줄 것을 국립국어원에 건의하자. ≪우리말샘≫은 사용자가 만들어가는 ‘위키피디아형’ 사전이므로 우리 모두가 ‘의견 제시’ 난을 활용하여 문학의 풀이에서 ‘상상의 힘을 빌려’가 빠져 있으니 검토 후 삽입시켜 줄 것을 건의하는 방안도 있겠다.
상상의 힘을 빌려 작품을 쓴다는 것은, 그 작품은 창작 문학으로 ‘허구’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우리말샘≫의 입장은 어떤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상상과 허구의 관계 규명이 되지 않아 1980년대 초 허구성 논쟁으로 어처구나 없는 국제적인 망신을 산 일이 있다. 그런 망신을 사고도 지금까지 상상은 되고, 허구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는 작가가 있으니 한심할 노릇이다. 현대문학 이론을 모르는 것인가, 그냥 외면하는 것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한국산문의시문인협회≫의 기본 입장은 다음 문장과 같다. “우리는 <현대문학 이론>에서 말하면 말하고, 말하지 않으면 말하지 않는다.”
상상이란 머릿속에 들어 있을 때의 이름이고, 허구란 머릿속의 상상이 밖으로 나와 작품화 되었을 때의 이름인 것을 알아야 한다. 이관희 평론가는 간단명료하게 상상과 허구의 관계를 말한다. “상상은 표현되지 않은 허구이고, 허구는 표현된 상상이다.” 여태까지 상상과 허구의 관계가 분명하게 연구되지 않아서 여러 혼란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이제 수필에서 허구에 대한 입장은 결판이 났다. 아니, 결판은 진즉에 나 있던 사실을 가지고 논쟁을 벌였던 것이다. 옥동자는 이미 낳았는데, 그 아이를 낳을 것인가, 말 것인가를 토론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세상 사람들은 입은 다물고 있지만 ‘공부 좀 하시오!’ 하며 웃고 있을 것이다. 몽테뉴식 비창작 일반 산문을 쓸 사람은 허구가 필요 없을 것이고, <창작수필>을 쓰는 사람은 허구와 함께 살아야 한다.
여기서 대한민국 수필가 모두―허구의 부분적 인정론자, 허구 인정론자, 허구 불인정론자 모두―에게 허구성 논란에 관련하여 한 말씀드리고자 한다. 영국의 찰스 램의 엘리아수필집(1823)에 실려 있는 「꿈에 본 아이들―하나의 환상」 등의 작품은 허구 이야기를 써서 에세이의 완성자로 추앙 받고 있는 사실을 지금도 모르고 있다는 말인가? 200년 전의 영국에서는 허구 이야기를 써서 세계적인 에세이스트가 되어 영원히 빛나고 있는데, 지금 우리는 그런 허구를 받아들이느냐 마느냐로 서로 우기고 있는 것이다. 창작 문학이 허구인 것을 모른단 말인가? 1863년에 발표된《엘리아 수필집》은 영국 수필 최고의 걸작으로 불린다. 허구 작품이 영국에서는 최고의 걸작이고 한국에서는 허구를 쓰지 말아야 한다니 이게 무슨 꼴이란 말인가? 눈을 돌려 에세이(수필)의 본고장의 사정도 살펴야 하겠다. 지금 영국의 그런 사정을 알았다면 이론을 잘 몰라서 폈던 여태까지의 자기주장을 철회하는 용기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램의 엘리아수필집에 실린 작품을 다 읽을 필요도 없다. 「꿈에 본 아이들」 한 편만 읽으면 된다. 이 한편도 읽지 않고 허구‘를 논한다는 말인가. 대한민국 작가 중에 자기가 폈던 이론을 나중에 수정하여 말한 수필가를 아직까지 본적도 들은 적도 없다. 수필가들은 솔직하게 반성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자기가 주장한 학설이 틀렸다면 새로운 주장으로 돌아서는 용기가 필요하것다. 허구 반대론자가 허구 찬성론자로 탈바꿈하는 결단이 필요하리라. 어디서 읽은 내용이다. “최근 교황청에서는 종래 종교인들이 주장했던 천동설을 배척하고 지동설을 주장했다가 화형을 당한 부르노(1548∼1600)에 대한 잘못을 전 세계에 사과했다. 이것이 바로 카톨릭이 아직도 살아갈 수 있는 종교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다.” 우리에게도 이런 결단이 필요한 때이다.
백철은 본인의 문학개론에서, 윤오영 선생은 수필문학입문에서 영국의 램을 순문학적 수필 즉 <창작에세이(창작수필)>의 시조라고 인정하며 존경하고 있다.에세이(수필)에서 허구가 영국에서는 되고, 한국에서는 안 된다는 무슨 규정이라도 어디 있다는 말인가? 다시 말하지만 ‘상상은 표현되지 않은 허구요, 허구는 표현된 상상이다’ 상상과 허구의 관계는 손바닥의 앞뒤 관계를 알면서도 상상은 되고 허구는 안 된다는 말인가. 이게 어찌된 말인가? 평자가 상론한 「꿈에 본 아이들―하나의 환상」, 서두와 결말 부분을 상론한 글을 눈여겨 읽어주기 바란다. 서구 문예사조를 받아들이지 않고 이론도 아닌 ‘붓 가는 대로’만 믿고 우물 안 개구리가 되어 120여 년을 한 우물 안에서 진화하고는 연을 끊고 썩은 물을 벌컥벌컥 마시며, 하늘의 달을 보고 이태백이 놀던 달을 흥얼거리며 금도끼 은도끼만 노래하는 한국의 수필은 그래서 신변잡기, 여기의 문학, 변방문학, 서자문학 소리를 듣고 있는 것이다. 한국문협의 같은 회원이면서도 타 장르 문인들이 “수필도 문학이냐”며 폄하하는 말을 면전에서도 서슴없이 하고 있다. 그래도 한 마디 반론을 펴지 못하고 듣고만 있는 딱한 사정이다. 이론 정립이 안 되었기 때문이다.
위에서 보면 <에세이>와 <수필>이 뒤섞여 쓰이고 있다.평자는 찰스 램까지는 ‘에세이(수필)’이라 쓰고, 이것이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창작적 진화를 거듭하여 <창작수필>이 자생적으로 발생한 후로는 ‘수필(에세이)’라고 쓰고 있다. 계간지 수필공원의 제호가 에세이 문학으로 바뀌기도 했는데.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그것은 수필의 정체성이 확립되지 못했다는 증거도 된다. 우리나라 학자·수필가 중에는 ‘수필 = 에세이’라는 쪽과 ‘수필 ≠ 에세이’라는 견해를 가진 분이 있다. 수필과 에세이가 같다고 보는 편이나, 다르다고 보는 견해나 다 같이 수필을 에세이 개념의 입장에서 보고 있는 점은 두 견해의 공통점이다.
○ 사전마다 다른 문학의 대상과 ‘상상의 힘을 빌려’의 유·무
문학의 대상 | 앞 표에서의 국어사전 번호 | ‘상상의 힘을 빌려’의 유·무 | 비고 |
사상이나 감정 | [기본형]·①·⑧ | 무 | |
정서·사상을 상상의 힘을 빌려 | ②·③·④·⑦ | 유: ②·③·④·⑦ | |
사상·감정·상상 | ⑤·⑥ | 유: ⑤·⑥ | 상상포함 |
생각이나 감정을 상상의 힘을 빌려 | ⑨ | 유: ⑨ | |
생각이나 느낌 | ⑩ | 유: ⑩ |
이제 문학의 대상을 어떻게 보았는가, 정리해 보자. 문학의 대상을 ‘정서나 감정’으로 본 국어사전이 3권, ‘정서나 사상’으로 본 사전이 4권, ‘사상·감정·상상’이 2권, ‘생각이나 감정’이 1권, ‘생각이나 느낌’이 1권으로 나타났다. 그러면 비슷한 것끼리 묶어보자. 사상 ≒ 생각이요, 감정 ≒ 느낌이며, 정서 ≒ 감정 ≒ 느낌이다. 이상을 간추려 보면 ‘생각 ≒ 사상’이고, ‘느낌 ≒ 감정 ≒정서’임을 알 수 있다.
∴생각≒ 사상
∴느낌≒ 감정≒ 정서
문학文學을 한자어 없이 순수 국어로 가장 쉽게 설명한 국어사전은 ≪보리국어사전≫이다. 이 사전은 남녘과 북녘의 초·중등 학생용으로 편찬된 사전이기 때문일 것이다. 한자어가 아닌 순우리말로는 사상은 ‘생각’이요, 감정이나 정서는 ‘느낌’이다. 이로 보면 결국 문학은 소재에서 받은 ‘생각과 느낌’을 주로 써야 한다고 국어사전은 말하고 있는 것이다. 수필이 문학이고자 한다면 제재에서 받은 ‘느낌’이나 ‘생각’을 주로 써야 할 것이다. ‘있는 사실’을 쓰는 몽테뉴류의 에세이는 비창작 일반산문문학으로 ‘토의문학’이다. 상상의 힘을 빌려 쓸 필요가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상상의 힘을 빌려’ ‘느낌이나 생각’을 쓰는 찰스 램류의 <창작수필>을 하는 쪽은 적극 활용하는 것이 창작 문학을 활성화하는 일이다. 그러니까 몽테뉴류의 에세이는 논픽션이라 할 수 있고, 찰스 램류의 <창작에세이>는 픽션으로 이해하면 좋겠다.
3) 수필문학의 진화 현장
몽테뉴 에세(essais)에서 찰스 램의 「꿈에 본 아이들―하나의 환상」이 태어나기까지는 243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진화하여 바꿔진 것은 무엇인가? 「꿈에 본 아이들」에서 찾아보자.
아이들은 어른들의 어린 시절에 대한 얘기를 듣고 싶어할 뿐만 아니라 상상력을 활용함으로써 자기네가 한 번도 본 일이 없는 전설적인 종조부從祖父니 할머니니 하는 분들이 아마 이러저러한 분이었으리라고 생각해 보고 싶어한다. 수일 전에 있었던 일이다. 저녁에 어린 것들이 내게 기어와서 피일드라는 성을 가졌던 증조모에 대한 얘기를 듣고자 한 것도 바로 이런 마음에서 였으리라.”(찰스 램 저 / 이상옥 역: 엘리아 수필선, 범우에세이 선 51. 범우사, 1982-「꿈에 본 아이들-하나의 환상」의 ‘서두 부분’)
‘서두 부분’이다. 이 작품은 프랑스 몽테뉴의 수상록(Essais)보다 243년 뒤에 나온 엘리아수필집에 실려 있다. 그동안 <에세이>는 ‘창작적 진화를 계속하여 드디어 <창작에세이>가 탄생한 것이다. 그래서 램은 에세이의 완성자로 추앙받고 있다. 몽테뉴의 비창작 일반 산문문학이었던 <에세이>가 찰스 램의 <창작에세이>로 진화한 것은 무엇이 어떻게 되었다는 말인가? 외형적으로 보면 <에세이>에서는 화자가 1인칭 <나>였던 것이 <3인칭 그>인 이들로 바뀐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상상력을 도입한 것이다. 부제인―하나의 환상이 그것을 시사하고 있다. 작품에서 3인칭 화자로 상상을 도입했다는 것은 ‘나는 창작 문학이오!’라고 말하는 것이다. 창작문학은 현실이 아닌 상상력의 세계를 만들어 내는 문학이다. 곧 허구라는 얘기다. 상상은 머릿속에 있던 때의 이름이요, 허구란 밖으로 나와 작품이 되었을 때의 이름인 것이다. 상상과 허구는 한 몸으로 동전의 앞뒤의 관계와 같다.
우리는 엘리스의 아이가 아니요. 당신의 아이도 아니며 도대체 우리는 아이들이 아니란 말이요. 엘리스의 아이들은 바트럼이란 사람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소.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요, 아무것도 아닌 것에도 미치지 못하며 꿈일 뿐이요. 우리는 어쩌면 그렇게 되었을지도 모르는 어떤 가능성의 소산所産에 불과하며 우리가 실제로 태어나서 이름을 갖자면 억만년 동안 망각의 강에서 지루하게 기다리고 있어야 할 것이요. 이 말을 듣고 곧 잠을 깨니 총각 신세인 내가 안락의자에 조용히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의자에서 내가 잠이 들어버렸던 모양이었다. 충실한 브리지트는 이전 모습대로 내 시중을 들고 있었지만 존·L(일명 제임스 엘리아)만이 영영 세상을 떠나고 없었다.(찰스 램 저 / 이상옥 역: 엘리아 수필선, 범우에세이 선 51. 범우사, 1982-「꿈에 본 아이들-하나의 환상」의 ‘결말 부분’)
결말 부분이다. <창작에세이>의 결말 부분이 어떻게 다른지 살펴보자. “아무것도 아닌 것에도 미치지 못하며 꿈일 뿐이요.”이 말은 속뜻은 무엇일까? 이 앞부분까지는 꿈 이야기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여기까지는 꿈 이야기인 허구라는 얘기다. 서두 부분에서 ‘상상’을 넌지시 꺼낸 것은 ‘앞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는 허구요!’ 하는 말이다. 소설에서 미리 깔아두는 복선과 같다.“우리는 엘리스의 아이가 아니요.”에서 ‘엘리스’는 누구인가? 램의 첫 애인 ‘앤 시먼스’를 암시한다. 그렇다면 옛 애인, 지금은 시집가서 남의 아내가 된 애인과 결혼도 하고 아이까지 나아 그들과 대화하는 내용의 허구다. 상상이 거기까지 미쳤으니 허구도 너무한 허구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엘리스의 아이들은 바트럼이란 사람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소.”에서 바트럼은 램의 첫 애인의 남편이니 말이다. ‘어떤 가능성의 소산’은 창작문학을 말한다. 창작문학은 시에 속하는 문학으로서 그 문장 형식 여하를 불구하고 <존재의 총계에 부가>하는 창조적인 문장이 된다. 창작문학의 본질은 그 직능이 창조 행위를 하는 데 있다. 창작 문학의 본질이 새로운 생명 하나를 만들어 내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문장 행위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역사와 문학을 비교해서 말했다. 역사는 사실 있는 것을, 문학은 사실 없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되는 것을 쓴다고 하였다. 문학은 허구라는 뜻이다. “의자에서 내가 잠이 들어버렸던 모양이었다.”에서 화자는 일인칭 ‘나’로 돌아왔다. 이것은 에세이 본연의 상태로 돌아온 것이다. 이것을 ‘수필로 빠져나오기’라 부르는데 문학적 용어로는 <허구적 사실의 소재형식>이라 한다. 토의 문학을 <사실의 서재 형식>이라고 한 데서 온 <창작수필>의 형식의 명칭이다. 브리지트는 램의 누님인 메리 램을 말한다.
4) 한국 최초의 창작수필 <가을>과 수필의 날 선포식 계획
찰스 램의 창작에세이가 한국에 들어와 한 줄기가 튼실하게 줄기를 뻗어났다. 우리 풍토에서 잘 적응하며 창작적 진화를 계속하여 자생적으로 제3의 창작수필이 탄생하였다. 우리나라 최초의 <창작수필>은 최남선의 「가을」(≪청춘≫(11호, 1917.11.16.)로 탄생한 것이다. 이런 우리 수필의 역사도 모른 체 <수필의 날> 행사는 매년―2022년 22회―치러지고 있다. 평자의 좁은 의견으로는 여태 맞이했던 수필의 날은 현대 수필이 탄생한 날하고는 아무 연관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떻게 생일날이 왔다갔다 한다는 말인가. 12월 1일도, 7월 15일도, 지금 쇠고 있는 4월 28도 수필의 날로 정당성을 확보하기는 어렵다고 스스로 말하고 있는 셈이다. 그리하여 오는 2022년 11월 16일에는 ≪한국산문의시문인협회≫에서는 <수필의 날 선포식>을 갖으려 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현대 <창작수필>인 「가을」이 태어난 날을 기념하려는 것이다. 혹 이런 계획이 부당하다는 의견이 있으면 휴대전화 010-4616-2865(오덕렬)로 연락주시면 고맙겠다.
에세이는 창작적 에세이(산문수필)로 진화 하고, 다시 창작에세이(창작수필)로 진화하여 진화의 꽃은 <수필의 시>로 개화했다. 평자가 속해 있는 한국에서 괜찮다는―지금은 돌아가신 피천득, 김태길, 송규호, 유경환 작가들이 함께 했던―수필 동호회가 있다. 몇 년 전이다. 연간집을 내면서 원고 청탁이 왔다. 수필의 형식이 여태와는 다른 <수필심포지엄(2)>의 작품을 보냈다. ‘어째 수필이 아닌 것 같다’며 다른 작품을 보내라는 것이다. 나는 속으로 ‘아, 창작수필을 이해하지 못하는 구나!’ 생각하고 <수필의 시> 작품을 다시 보냈다. 이 작품은 <수필>이 아니고 <시> 같다며, 연간집에 실을 것인가, 말 것인가를 이사장까지 참석하는 확대 편집회를 열어 논의한 후 싣지 않기로 했다는 통보를 받았다. ‘허허, 회원 작품을 안 싣다니….’ 나는 아무 말 않고 동호회의 결정을 따르기로 했다. 다만 <창작수필>과 <수필의 시>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때까지 잠정적으로 동호회를 탈퇴하여 때를 기다리기로 한 것이다. 필자의 수필이 ‘창작적 진화’를 거듭하여 <창작수필>집이 나왔고, 다시 수필의 꽃으로 피어나 ‘수필의 시집’ 여름밤 별 이야기(풍백미디어, 2022.6.)를 냈다. 출판사로부터 받은 500부를 전국 수필가와 수필 평론가님들께 뿌렸다. 이것은 단 한 마음, 시집을 읽고, 수필의 ‘창작적 변화’를 이해해달라는 몸부림이었다. 댓 분한테서 메일이나 편지로 반응이 날아왔다. “그의 시 행간에서는 또한 어려운 것을 쉽게, 쉬운 것을 재미있게, 재미있는 것을 깊게 보여주고 있다”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저도 이런 류의 시를 써 보렵니다.” 신문사에서도 ‘새로운 시도’라고 기사가 났다. 반가웠다. 하여튼 시시각각 수필도 변하고 있다.
문학에서 말하는 비평이란 곧 문학론을 의미한다. 문학론이란 문예 창작론을 말한다. 문예비평의 시원은 시학이요, 시학에서 말하는 문예창작론의 핵심은 플롯(Plot)론이다. 비평론의 본질 3가지는 첫째, 비평 혹은 평론이란 문예창작론이라는 것이다. 둘째, 비평 방법은 문예창작론에 근거한 창작방법론적 시비是非이어야 한다. 셋째, 비평의 현대적 개념으로 국어사전에서 말하고 있는 풀이를 보자. 비평批評「명사」사물의 옳고 그름, 아름다움과 추함 따위를 분석하여 가치를 논함.(<우리말샘>) 비평批評 {명} 옳고 그름, 좋고 나쁨을 가려 지적함.(≪ᄒᆞᆫ+ 국어사전≫)
3. 나가며
―<창작수필>의 문학 시대를 활짝 열어가자―
국어사전과 작가는 하루도 떨어져서 살 수 없다. 단어를 찾아보고 또 찾아보고…. 평자가 아는 한 소설가는 사전을 처음부터 외웠다. 그분은 어떤 경우 만약 책 한 권만 갖고 집을 떠나도록 한다면 국어사전을 가지고 나갈 것이다.
수필도 진화한다. 에세이(수필)에서 시작하여 창작적 에세이(수필)로, 다시 <창작수필>을 거쳐 지금은 <수필의 시>로 꽃피었다. 얼마 안 있으면 창작수필의 시대가 풍미하리라! 창작수필이 모든 장르를 거느리고 문학의 왕자가 되어 <창작수필>이나 <수필의 시>가 21세기 젊은 독자를 사로잡을 것이다. 어느 장르가 죽어 없어지느냐 대중의 사랑을 받고 영속하느냐는, 그 장르가 시대상을 담아낼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다. 21세기 인터넷 시대에 맞는 수필의 형식은 무엇일까? 김기림의 수필집 ≪바다와 육체≫에 실려 있는 <길> 같은 작품이 아닐까? 작가 김기림은 수필로 발표했지만 독자들은 시라고 말한다. 평자는 이런
외연확장도 | 「길」 같은 작품을 <수필의 시>라고 본다. 앞으로 「길」 같은 작품은 21세기 젊은 독자들의 적극적 호응을 받을 것이다. <창작수필>이 제3의 창작문학이 되면서 이제 변방문학 시대를 청산하고 문학의 중심부에 서게 될 날도 멀지 않았다. 왼쪽 그림의 <창작수필의 외연 확장도>처럼 중심부에서 주위에 시·소설·희곡·문학평론은 물론 창작적인 변화를 용인하는 기타 시문을 모두 포용할 시대가 열린다는 말이다. 수필가여! 허구를 포용하여 <창작수필> 시대를 열어가자. |
<참고 문헌>
김기림: 길-시 수필 시론(깊은샘, 1992)
남영신: ᄒᆞᆫ+ 국어사전(성안당, 2010 외 국어사전 10권)
양병석: 찰스램 수필선(범우문고 105, 2015)
오덕렬: 오덕렬의 <창작수필 교실> 교재 (1)
오덕렬: 여름밤 별 이야기(풍백미디어, 2022)
오덕렬; 수필의 현대문학 이론화(월간문학 출판부, 2016)
유종호: 문학이란 무엇인가(민음사, 2005)
유종호: 시란 무엇인가(민음사, 1996)
윤재천: 수필학, 11집, 19집, 20집(문학관. 2013)
이관희: 산뭄의 시-작품과 작법(17호, 18호, 21호, 24호)
이관희: 창작문예수필 작품 선집 1-여성작가 100인 편(도서출판 비유, 2012)
이관희: 형상과 개념(도서출판 비유, 2010)
이상옥: 엘리아 수필선(범우에세이선 51, 1992)
정비석: 소설작법(정음사, 1981)
조경희: 찰스램 에세이집 만우절(자유문학사, 1987)
조연현: 개고문학개론(정음사, 1973)
하희주: 정통 고문교실(성문각, 1969)
홍윤기: 한국현대시-이해와 감상(한림출판사, 1993)
저자 오덕렬吳德烈
○ <창작수필> 작가 · <수필의시> 시인·평론가
○ ≪수필의 현대문학 이론화≫ 운동가
○ 전라방언의 시어화詩語化 운동가
등단
≪방송문학상≫ 수필 당선(1983)
≪한국수필≫ 완료추천(1990)
≪창작문에수필≫ 평론(2014)·시(2015) 당선.
저서
수필집: 수필 한 편(風伯미디어, 2020) 외 4권
수필선: 무등산 복수초(현대수필가100인선Ⅱ·89, 수필과비평사·좋은수필사, 2019.3.)
간고등어(선우명수필선42, 늘봄 전영택문학상 수상작, 2019.10.)
평론집: 수필의 현대문학 이론화(월간문학출판부, 2016)
창작수필을 평하다(風伯미디어, 2020)
고전수필의 맥을 잇는 현대수필 작법(風伯미디어, 2021)
시집: <수필의시집>, 여름밤 별 이야기(風伯미디어, 2022)
약력
≪전라방언 문학 용례사전≫ 탈고(현)
≪光高문학관·光高문학상백일장≫ 운영위원장(현)
≪한국 산문의시 문인협회≫ 이사장(현)
≪광주광역시 문인협회≫ 회장 역임(전)
첫댓글 샘형의 끊임없는 노력과 열정이 아니었더라면 어떻게 오늘 날의 ‘창작수필’과 ‘수필의시’가 창작문학의 위치를 확보할 수 있겠습니까? 드디어 <창작수필>이 제3의 창작문학이 되어 이제 변방문학 시대를 청산하고 문학의 중심부에 서게 될 것이라는 그 엄숙한 ‘선언’을 가슴 찡한 감동으로 받아들입니다.
왜이리 눈물이 나는지요.이 길을 의연하게 피함없이 마주보며 걸어오신 분이 제 스승님이시랍니다.
그 그늘을 기뻐합니다.
따라가지 못해 죄솜하고 부끄럽습니다.
이토록 거름을 넉넉하게 주시는데도
성장하지 못하니 어쩌나요.
참 어처구니 입니다.
존경합니다.스승님께 절 합니다.
몇 번이고 읽고 또 읽습니다.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부디 건강하셔서 '창작수필'이 '수필의 시'가 활짝 피어나도록 힘써주십시요.
저도 작은 힘이나마 보태겠습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샘님이 아직 '산문의 시'와 '수필의 시'를 겸용하시는데,
이제는 확실하게 샘님 글에서는 아니 우리 전체 문단에서 '창작수필'과'수필의 시'로
쓰면 좋겠다는 의견을 보냅니다. 감사합니다.
창작이 안 된 '일반수필'은 문학으로서의 가치가 없으니
아무리 수려한 글 솜씨의 글이라도 잡문으로,
문단에서는 추방해야 만땅하다 생각합니다.
긴 글 읽으시느라 애쓰셨습니다.. 과찬의 말씀! 더 깊게 파고 파라는 채찍으로 받아들입니다. 눈이 더 밝아질 때까지 열심히 진실을 들여다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