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맛이 없다는 말들을 자주 하는데 밥맛은 쌀의 질과 짓는 사람의 솜씨가 좌우합니다. 지금은 솥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지만 예전엔 다 부엌에서 불을 때서 밥을 했기 때문에 솥은 밥맛의 구성에서 제외되었습니다.
밥상머리에서 ‘밥맛없다’는 말을 했다가는 ‘배부른 소리 한다’고 핀잔을 듣기가 일쑤였을 건데 요즘은 아이들이 밥맛이 없다고 하면 엄마들이 오히려 걱정을 하는 세상이 되었으니 세상 참 많이 변했습니다.
예쁘지 않은 여자들을 가리켜, ‘밥맛’이라고 얘기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아마 그건 얼굴이 예쁘지 않다기보다는 행동거지가 마음에 안 들었을 때에 쓰는 말이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밥맛이 형편없어진 것은 1970년대 초반에 통일벼 계통의 벼들이 나오면서부터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다 옛날이야기가 되었지만 제가 기억하는 1960년대 중반에는 시골에서 쌀밥을 세 끼 먹는다는 것은 여간 잘사는 부잣집이 아니고는 꿈꾸기 힘들었습니다.
그때는 쌀밥은 고사하고 보리쌀로 지은 보리밥이라도 세 끼 배불리 먹는 것이 소망이었습니다. 지금이야 건강식이라고 해서 먹는 감자나 고구마로 하루 한 끼니를 잇던 것은 보통 있는 일이었고 그마저도 부족해서 늘 배고픔에 서럽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런 어려운 시기에 정부에서 ‘녹색혁명’을 주창하며 농업생산을 늘리기 위한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4학년 때에 가슴에 달았던 패찰이 “소주밀식”인데 이 뜻을 알고 다닌 학생은 거의 없었을 것입니다.
소주밀식(小株密植), 즉 벼를 심을 때에 적게 그리고 빽빽하게 심으라는 얘기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벼를 심을 때는 모판에 볍씨를 뿌려 모를 기른 다음 이것을 뽑아다가(모를 찐다고 합니다) 세네 개씩 떼어서 심는데 예전에는 네다섯 개를 심던 것을 하나씩 줄이고 대신 그전보다 더 촘촘히 심으라는 얘기였습니다. 이렇게 심는 것이 소출을 늘린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새로운 벼 품종이 등장했는데 처음에 나온 것이 ‘통일벼’입니다. 이 통일벼는 정말 우리나라에 녹색혁명을 일으켰습니다. 보통 200평 한 마지기에서 쌀 세 가마가 나오면 좋은 논이라고 했는데 통일벼를 심으면서 좋은 논은 쌀 다섯 가마 이상을 낼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이 통일벼가 우리 동네 것이 아니고 저쪽 인도네시아가 부근이 고향이라는 거였습니다. 우리나라와 일본, 중국의 일부 사람들이 먹는 벼 품종은 자포이카 종으로 쌀에 끈기가 있는 것인데, 동남아 사람들이 먹는 인디카 종은 끈기가 없어서 바람이 불면 날아갈 정도라고 했습니다.
이 인디카 종이 들어와 통일벼가 된 것인데 우리나라사람들 입맛에 맞지 않아서 소출은 늘었지만 인기가 아주 없었습니다. 그 뒤로 쌀 맛을 개량했다는 ‘노풍’과 ‘내경’이 있었는데 1977년에 나온 노풍은 원래 이리 327호였다가 새로운 벼 품종을 개발한 박노풍 씨의 이름에서 왔고, 내경은 밀양 29호였는데 역시 이를 개발한 박래경 씨의 이름에서 온 거였습니다. 박정희 대통령께서 고생한 사람의 이름을 붙여주라고 해서 그렇게 되었다는데 아쉽게도 이 두 벼 품종은 도열병에 약해 농촌에 보급되던 해에 완전 실패작으로 끝나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졌습니다.
통일벼로 생산한 쌀은 맛이 없다고 먹지 않으니까 전량 정부에서 수매해 내어놓은 쌀이 ‘정부미’였습니다. 저는 이 정부미를 집에서 먹은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군에 가서는 34개월 14일 동안 정부미로 지은 밥을 먹어야 했습니다.
가격이 일반미보다 훨씬 싸도 사람들이 먹지를 않으니까 군대로 올 수밖에 없었고, 특히 군에서는 햇정부미도 아닌 묵은 정부미로 밥을 지으니까 밥맛이 안 좋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도 군에서는 쌀이 70%나 돼서 그 정도면 보리밥이 아니라 쌀밥이라고 할 만했습니다. 제가 입대해서 군에서 보낸 1979년부터 81년 말까지는 지역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나라 농촌에서 70%의 쌀이 섞인 쌀밥을 먹는 집이 아주 드물었을 것입니다.
저는 처음에 훈련소에서 밥을 도통 먹지 못했는데 냄새가 나고 입에 들어가면 역하고 씹어도 맛이 없어 잘 넘어가지 않아서였습니다. 조교에게서 '네가 얼마나 잘 살다 왔는지 모르지만 며칠이나 버티나 보자'는 악담도 들을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두 달이 지나고 자대에 가니까 거기서는 적응이 되었는지 그래도 먹을 만해서 크게 어렵지 않게 먹었습니다.
보리쌀이 아닌 정부미라도 쌀밥이라고 생각하며 감사하게 먹었던 것은 1980년대 후반까지일 것이고, 그 뒤에는 통일벼 계통의 벼들이 자취를 감추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벼 품종도 계속 발전했고 밥만 먹고 살던 시절이 지나면서 밥맛이 없는 쌀은 자연 도태가 된 것입니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밥맛이 좋은 쌀이라고 하는 것들은, 백진주 > 고시히끼리 > 추청(아끼바리) > 삼강 > 신동진 > 일품미 등의 순서라고 하는데 이것도 사람들에 따라서 다르기 때문에 대략 이 정도의 벼 품종이 많이 재배된다고 생각하면 맞을 겁니다.
쌀은 품종도 중요하지만 생산하는 지역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들었습니다. 좋은 품종을 그 품종에 맞는 지역에서 생산한 쌀이 좋은 것입니다. 이 좋은 쌀로 솜씨 좋은 어머니의 손맛으로 지은 밥은 누가 먹더라도 밥맛이 없다는 말을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올 해에 쌀 한 가마니에 80kg 기준으로 13만 원 정도 한다고 합니다. 40kg이면 65000원, 20kg 한 포대에 35000원도 안 된다는 얘기입니다. 쌀값이 이렇게 떨어지면 누가 쌀농사를 짓겠습니까? 쌀농사 지은 것을 정부에서 수매해서 북에 보내자는 정치인들이 많던데 지금 시점에서 그게 가당한 일이겠습니까?
쌀밥이 건강에 안 좋다는 얘기들, 쌀이 비만의 원인이라고 얘기하는 사람들, 밥 먹을 시간이 없어서 빵을 먹는다는 사람들……. 우리가 언제 이렇게 배가 불러졌는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어느 식당을 가도 다 좋은 쌀을 쓰기 때문에 밥맛없다는 말은 할 수가 없는 세상입니다.
밥맛이 없어서 문제가 아니라 먹지 않으려는 것이 문제입니다.
첫댓글 시우님 ...글을 읽어보니 옛 생각이 납니다. 저와 비슷한 연대 이시군요.^^
감사합니다. 불꽃이글스에서 이렇게 만나니 더 반갑습니다. 앞으로 종종 여기서라도 뵙기 바랍니다.
저는 1년에 쌀 두가마에서 두가마 반 정도를 먹는 것 같습니다.
라면, 수제비, 국수, 만두국을 먹어도 또 고기를 먹어도 조금이라도 밥을 곁들여 먹어야 먹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쌀 소비가 줄어 지금 벼농사를 짓는 분들의 시름이 깊어지는 걸 보면 안타깝습니다.
쌀 한가마니에 13만원이라니요. 최소 25만원이상은 가야하는데......
향후 우리나라의 식량주권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쌀 소비가 좀 늘어나고 적정선의 쌀값은 유지를 해야하는데요.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두 끼는 쌀밥을 먹는데 저녁은 밥을 먹지 않을 때가 많아서 조금 미안한 마음입니다. 정말 쌀값이 너무 떨어져서 큰 걱정입니다.
울 충청도 부여 에서는 아끼바리 라고 했어요.
어르신들이 좋은쌀을 아끼바리 라고 불렀던 기억이 나네요.^^*
잘 읽었습니다.^^*
아, 제가 실수했습니다. 아까바리가 맞습니다. 이 쌀이 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는 최고의 쌀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시우 제가 감사하죠. 추억을 되살려 주셨으니까요.^^*
@월광음주취행(이글×3) 서로 이렇게 추억을 더듬을 수 있으니 저도 감사한 일입니다. 저는 홍성군 장곡면이라고 오서산 바로 아래가 고향입니다. 예전에 고모님 한 분이 귀암면 나복리에 사셔서 어렸을 때는 방학 때에 꼭 한 번씩 가곤 했습니다. 다음엔 부여에 대한 이야기 한 번 올리겠습니다.
@시우 귀암면이 아니고 규암면 인듯 하구요.
전 규암면 지나서 은산면금곡리 에서 몇년 살았고 그곳에 작은 아버님 내외분 아직 살고 계세요.^^*
@월광음주취행(이글×3) 아, 그러네요,,, 규암면입니다. 제가 어렸을 적에 부여청양에 비가 많이 와서 청양애서 부여로 가는 도로 은산면 부근에서 떠내려가던 물던들이 다리에 막혀 한 마을에 이재민이 많이 났고 집 여러 채가 물에 잠긴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1972년인가 여름이었습니다.
@시우 72년인가에 은산면 금곡리로 부모님과 이사갔습니다.
아버님은 은산분 어머님은 청양분 이시구요.^^*
@월광음주취행(이글×3) 아 그 무렵이었네요,,, 제가 그때 청양에서 부여 규암면 나복리 까지 60리 길을 걸어서 고모님에 갔었습니다. 지금도 그 길이 생생하게 떠오르네요,,, 감사합니다.
@시우 은산면 금곡리 살다 8살에 서울로 이사와서 설 추석때 시골에 갈때마다 멀미하고 고생했던 기억이 나네요.
지금은 즐거운 추억이 되었지요.^^*
잘 읽었습니다..
졸은 글 감사합니다~~~ ^^
쌀 소비가 좀 더 늘어서 (꼭 쌀소비가 전부가 아니지만) 적정한 수매가격 인상으로 농민들 주름살 좀 펴지는 날이 하루 빨리 오길 바랍니다...근래에 들어 모임때엔 소주나 맥주 대신 순 쌀로 빚은 막걸리 순희를 좋아하고 많이 권합니다~~~^^
감사합니다. 오늘 보니까 쌀로 설탕을만들 수 있다고 나오던데 어떻게든 소비가 많아져서 쌀농사 짓는 분들의 노고가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밥에 대해 여러 가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쌀값이 떨어지는 게 안타깝네요.
감사합니다. 쌀을 사서 먹는 분들 입장에서는 싼 것이 더 낫겠지만 정말 너무 값이 떨어져서 걱정입니다.
익숙함에 젖어 소중함을 잊고
사는것들
무심히 지나치는 주변의 일상들이 사실은 살이의 이치
가 아닐까 하는.....
시우님의 글을 읽으면서
내게는 너무나 당연해서 한 구석에 던져 두었던 자잘한
소중함을 다시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 잠시 잊고 있던 것이니 다시 생각하면 소중한 마음이 살아납니다.
시우님 글~~
잘 읽고갑니다..감사~~^^
감사합니다.
아흐 소주밀식 통일벼 올만에 듣네요^^
옛날 혼식으로 도시락검사하구 난리였는데 학교에서 주던 맛없는 빵 생각도 아련합니다 저보다 바로 위 연배시네요 ㅎㅎ
쌀값은 여전히 싼 편이죠 얼마전 경기도
인근지나다가 정미소 있길래20키로 아끼바리 5마넌주고 샀는데 밥맛 좋더라구요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추억을 더듬게되서^^
감사합니다. 우리 불꽃이글스에는 나이가 든 분들도 많아서 더 좋습니다.
@시우 그러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