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의 지식이 동양의 지혜보다 우월한 까닭은]
낙서장 2009/04/24 23:39.45
지식과 지혜의 추구에 있어서는 서양이나 동양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 차이가 있다면 서양에서는 지식을 '축적'하고 '공유'한다는 점이 다르다. 서양의 지혜란 것도 결국 이런 지식의 축적과 공유를 기반으로 해서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된 '축적의 결과물'이다. 어느날 갑자기 번개처럼 스치고 지나가는 영감에 의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축적된 선조들의 지혜들로부터 실마리를 찾아 '새로운 문제해결 방법'을 찾아내는 '노력의 결과물'이 바로 서양의 지혜인 것이다.
그러나 동양은 서양이 갖고 있는 '지혜의 창고'를 갖고 있지 못한 것 같다. 공맹을 공부하는 사람은 기존 지식의 이해와 습득에에만 평생 동안 전념하면서 마치 자신들만의 소유물인양 '공유'하려들지 않는다. 그리고 도불에 귀의한 사람들은 이런 '퀘퀘묵은 지식'을 멀리하고 '지혜의 발견'에 몰두하나 이들에게는 '축적'이라는 단어를 모른다. 어렵게 발견된 지혜가 반짝 나타났다가 홀연히 사라져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공맹이나 도불의 경우에는 지식이건 지혜건 업그레이드라는 것이 없게 된다. 그러다보니 밖으로 널리 뻗어나가기 보다는 점차로 안으로 침체되기 일쑤다. 즉 현실과 점점 동떨어져가고 있다. 가지고 있는 지혜를 축적하지도 공유하지도 못한다는 것은 더 이상의 발전이 없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서양은 이미 더 이상의 '지혜의 발견' 없이도 그동안 축적된 지식만 가지고도 현실에 닥친 난관을 헤쳐나갈 힘이 있다. 반면에 동양은 그동안 수많은 천재들에 의해 발견된 지혜들이 '축적'되지도 '공유'하지도 못한 까닭에 끊임없이 새로이 지혜를 발견하고자 애써야만 하는 수고로움이 뒤따른다. 그러나 현대의 복잡하게 얽힌 문제들을 해결하고 새로이 생겨나는 난관들을 헤쳐나가기에는 그간의 축적된 힘이 없으므로 그 천재들에게도 힘에 부쳐 보인다. 그런 까닭에 허황된 발상을 가리켜 획기적인 지혜라느니 하는 억지 주장이 난무하게 되는 것이다. 더우기 그것을 증명하거나 반증할 기준이 없기에 혼란만 가중된다.
이제라도 늦지 않다. 동양의 지혜가 서양의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지식보다 우월하다는 자부심을 남김 없이 버려야 한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억지 궤변을 뜯어다 붙이지 말고 순순히 서양의 지식이 우월함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시작이다. 이로부터 우리는 새로이 지식 기반을 형성하면서 이제부터라도 '축적'과 '공유'가 가능한 지식과 지혜를 쌓아가야 한다. 그래야 새로운 미래가 열리는 것이지, 아집과 편견만 가지고는 저만치서 앞서가는 서양을 극복할 수 없다.
그러자면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우선 지식 공유의 기반이 되는 민주주의의 정착이며 지식정보의 민주화와 개방이 첫번째 조건이 된다. 그 다음이 언론의 공정성을 되찾는 일이며 그 다음이 독점자본의 횡포를 물리치는 일이다. 이런 조건들이 충족되지 않고서는 지식의 건전성이 보장받지 못하며 따라서 축적되지도 못한다. 그리고 건전한 지식의 공유가 제한받기 때문에 그만큼 발전에 속도를 내지 못하게 된다.
혹시라도 이런 지식이나 지혜의 우월적 지위에 대한 서양의 편애를 '양시론'으로 무마하려는 시도는 않는 게 좋겠다. 왜냐하면 이는 '경쟁의 논리'를 터부시하게 되는 자기모순에 빠지기 때문이다. 해석상 '상호보완적'이라기보다는 '비교우위론'이 이 경우에 맞지 싶다. 하찮은 자존심 때문에 자신에 대하여 보다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을 게을리하고 자기보다 나은 상대로부터 배우는 것을 부끄러워한다면 참다운 지식인으로서의 자격이 없다. 나 보다 나은 것을 인정할 줄 알고 그것을 배우는 데 거리낌이 없어야 발전된 미래가 있다.
그렇다고 서양을 무조건 따르고 익히라는 것은 아니다. 그런 것은 맹목적 추종에 불과할 뿐이다. 서양도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왔기에 그것을 반복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그들보다 제3자인 우리가 더 훌륭한 반성적 고찰을 할 수 있다. 좋은 것은 배우고 나쁜 것은 버리면 된다. 서양이 가진 좋은 것 중의 대표적인 것이 논리적인 사고와 과학적인 사고이다. 이것이 '지식 축적'의 동력이 된 것이다. 그런데 유념할 것이 하나 있다. 현대과학철학의 이론(토마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에 따르자면 과학적 지식은 축적된 것이 아니라 '패러다임의 변화'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너도 나도 심심치 않게 이 패러다임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그런데 '패러다임의 변화'로 해석될 수 있는 것도 결국 '축적된 과학지식'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처럼 축적된 것이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패러다임의 변화를 아무리 외쳐봤자 공허하게 들릴 뿐이다. 허장성세에 능한 우리 습성에 비추어 볼 때 반드시 지양해야 할 점은 바로 새로운 개념이나 용어를 남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남의 것이 좋다고 해서 남의 것을 추종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러나 더 나쁜 것은 남의 것이 좋다고 해서 나를 남처럼 꾸미거나 혹은 그런 남과 나를 동일시하는 것이다.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남의 좋은 것을 내것으로 만들려는 노력이다. 그리고 나아가서 내가 가진 장점과 더불어 공존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이 글(발제)에 대한 댓글들(토론)]
수월동 2009/04/25 06:16.02
동서양 막론하고 부적절한 비유겠지만,
돈오와 점수를 날카롭게
해부하려는 듯(??)..하였군요.
저사 워낙 질서적이지 못하여서
치밀할 것 같은 라이프스타일에서는
영점처리를 각오하고 있습니다만
기웃거리면서도 항상 온정을
입고만 간다는 심정입니다.
아무튼 너무 애쓰지 마시기를 바라면서
오브~님의 지혜와 지식을 조금만 더
너그럽게 하여 방명록 風에
찬물이라도 한사발 쪼까~ㅎ
oflife 2009/04/25 07:09.32
수월동님처럼 매사에 수월하게 처리된다면
저처럼 굳이 애쓰지 않아도 문제가 술술 풀리겠지만요.^^
수월동 2009/04/25 08:43.11
라이프님 금주자로 소문 있던데
우찌 수월에다 술술 떠넘긴다요
(약올리기로 오해받을 수도 있으니 술술에서 1/2 도맡아주세욧)
oflife 2009/04/25 08:48.22
금주자 아닌데요?
그런데 누가 술 선물하면 그건 싫어해요.
함께 나눠마시는 방법밖에 없네요.ㅎㅎ
조달똥 2009/04/25 06:55.49
새기고 싶은
새길만한 주장입니다. ㅎ
oflife 2009/04/25 07:23.50
달똥님께서 잘 봐주시니 감사합니다.^^
깨 2009/04/25 07:31.18
트랙백 걸었습니다. 이 번에는 반론이 아닙니다. ㅎㅎ
oflife 2009/04/25 07:34.03
ㅎㅎ 다행입니다. 휴~
아젠다 2009/04/25 09:47.33
지식 축적 얘기를 하면서 민주주의와 독점자본의 횡포를 이야기하는 것은 좀 오바인 것 같다는..^^ 지식 축적 이야기는 아마 역사적 인식의 문제로 부터 출발해서 이야기를 풀어나가셔야 할 듯^^
oflife 2009/04/25 10:43.57
그 부분은 지식의 축적 보다는 지식의 공유 측면에서 얘기한 부분이구요, 더불어 지식의 건전성도 거론한 부분이라 다소 모호한 부분도 있겠지만 지식의 편향성에 초점을 맞추시면 그리 무리는 없을 듯합니다.
지식이 지식으로서 가치를 지니려면 독재자의 입맛에 맞추거나 자본가의 상업적 가치관에 따르는 것과는 거리를 유지해야, 즉 중심을 가져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래야 축적의 의미도 있겠구요.^^
아젠다 2009/04/25 10:16.24
지식축적 문제와 관련해서 또한가지 주목해야 할 점은 아마 언어의 문제가 아닌가 싶어요. 제가 얼마전 '루터'라는 영화를 봤는데 서양 종교개혁가 루터의 업적 중에서 가장 큰 것은 아마 성경의 독일어 번역인 듯 싶더라구요. 로마 입장에서 게르만인인들은 중세만 해도 순전히 미개인 취급을 당했죠. 그리고 로마 사회는 기독교 제국이었죠. 루터가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면서 게르만족은 로마의 정수인 기독교를 대중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프로테스탄티즘, 위대한 독일 관념론철학, 심지어 마르크스철학 조차도 독일어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지도 모르죠.
oflife 2009/04/25 11:14.55
독일 오페라의 경우를 봐서도 아시겠지만 독일은 상당히 (언어적으로) 흡수력이 강한 나라입니다. 참 본받을 점이 많죠. 물론 우리나라도 그에 뒤지지 않는 흡수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독일은 축적되고 우리는 소비되어 없어지고 만다는 점이 다를 뿐이죠.
oflife 2009/04/25 11:00.20
언어의 대중화도 중요하지만 언어의 명료화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둘 다 병행하면 더욱 지식의 축적이나 공유가 원활해지고 그만큼 발전 속도가 빨라지겠죠.^^
아젠다 2009/04/25 10:21.26
공맹의 사상도 그렇고, 도교, 불교도 마찬가지지만 이러한 것들이 일반 민중의 삶속에서 삶의 철학으로 뿌리내지 못한 것은 그러한 사상들이 언어로 표현된, 말하자면 이성으로 인식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보여집니다. 그리고 그 주된 이유는 상형문자인 한자문화권에서 우리가 살았다는 점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상의 귀족화도 잉태됬고 종교의 무속화도 진행되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한글은 참 훌륭하죠. 일본 말도 부족하기는 하지만 한자보다는 훨씬 대중적이죠. 그래서 앞으로 동양에서도 한국이나 일본이 문명의 중심으로 등장할 것이라고 저는 기대합니다.
oflife 2009/04/25 11:06.23
아젠다님과 함께 저도 기대해보렵니다.^^
그러나 언어의 통일이 충분조건이라기보다는 필요조건이기 때문에 보다 충분한 조건들이 충족되기 위해서는 논리적 사고와 과학적 사고, 그리고 중립적 사고가 필요한데, 한국이나 일본도 그러한 부분에 있어서는 부족한 면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2009년은 여전히 '의사소통의 부재' 현상을 겪고 있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갈 길이 요원할 따름입니다.
행복지킴이 2009/04/25 11:53.37
제가 일을 하면서 느낀 점은,
동양은 서양에 비해 "방법론"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서양에서는 항상 지식 그 자체보다 그 지식을 공유하기 위한 "방법론"이 발달되어 있는데,동양은 그것이 없습니다.
예를 들어 항상 영화에서 보듯,
어떤 실험을 할 때 서양에선 소형녹음기에 자기가 하는 일을 하나 하나 녹음하면서 하죠.
동양은 기록과 보존이 너무 부족합니다.
oflife 2009/04/25 12:06.29
우리는 우선 당장 써먹기 바쁘죠. 그래서 정권에 따라서 지식은 정치적 도구화가 되고 마는 결과를 낳고 맙니다. 기록과 보존도 정치적 판단에 따라 존폐 여부가 갈리기도 하니까요. 참으로 딱한 일입니다.
행복지킴이님이 말씀하시는 '방법론'은 제가 말하는 지식의 정치적 도구화가 아니란 것 잘 알고 있습니다. 지킴이님께서 말씀하시는 방법론은 과학적 방법론이겠지요.^^
아무튼 우리나라 사람들은 너무도 정치에 대해서 관심도 많고 너무 잘 알고 있어요. 그런데 아는 게 병이라는 건 여기에 해당되는 것 같아요.ㅎㅎ
시앙골 2009/04/25 13:34.09
'동양의 지혜가 서양의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지식보다 우월하다는 자부심을 남김 없이 버려야 한다.는 말씀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제가 뒤늦게 한문고전을 공부하며 참고하게 되는 서적들이 바로 님이 말한대로 '공맹을 공부하는 사람은 기존 지식의 이해와 습득에에만 평생 동안 전념하면서 마치 자신들만의 소유물인양 '공유'하려들지 않는다.'는 그런 분들의 서적이기 십상이었기 때문입니다. 최근에 읽은 '신영복님의 고전읽기'는 그렇지 않았습니다만.
그리고 '서양과 같이 이제부터라도 '축적'과 '공유'가 가능한 지식과 지혜를 쌓기 위해서는 우선 지식 공유의 기반이 되는 민주주의의 정착, 지식정보의 민주화와 개방이 첫번째 조건이 된다. 그 다음이 언론의 공정성을 되찾는 일이며 그 다음이 독점자본의 횡포를 물리치는 일이다.'라는 말씀에는 그저 머리를 숙일 뿐입니다.
시앙골 2009/04/25 13:35.59
해석상 '상호보완적'이라기보다는 '비교우위론'이 이 경우에 맞지 싶다." 는 말씀도 저는 오히려 "---이 경우에 맞다."라고 하고 싶습니다. 분명 '경쟁의 논리'에 어긋납니다.
단지 그 '지식'과 '지혜' 라는게 서로 물리고 물려가는 관계라서 어느 한쪽이 우월할 수도 없겠지만, 설사 비교적 우위에 있다하더라도 맹목적 추종을 해서는 더욱 안되겠지요.
끝으로 "과학적 지식은 축적된 것이 아니라 '패러다임의 변화'일 뿐이다."라는 말에도 함께 유념코자 합니다.
시앙골 2009/04/25 13:37.25
님의 말씀대로 좋은 것은 배우고 나쁜 것은 버리기 위해, 논리적 사고와 과학적 사고를 통해 바른 것을 선택하고 함께 쌓아나가는 것이 바로 참된 경쟁이겠지요.
덕분에 경(競)자와 쟁(爭)자를 찾아보았습니다.
둘다 '다툰다'는 뜻으로 나와 있기에 한참 더 어원을 찾아보니 '爭'자는 서로 쥐어 뜯어가며 뺏느라고 다투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습니다만, '競'자는 본디 옳고 그름의 경우나 사실여부 등을 따져서 짚고 넘어가려는 언쟁의 모습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그러니 사리나 다툼의 경위를 밝혀 우열을 가리는 건 '경쟁'이고, 누가 1등이고 누가 앞섰느냐를 다투는 건 '쟁경'이라고나 할까요?
무달구름 2009/04/25 23:37.09
자연의 조화로움은 다투지 않고서도 자신의 理法을 따르게 한다고 하네요....누가...ㅎ
不爭善勝...
시앙골 2009/04/26 00:49.02
제가 잘 못 눌러서 저 아래로 내려가 버렸네요. 오늘은 술 한잔도 못마셨는데----.
시앙골 2009/04/26 00:46.09
그래서 원래 경(競)자는 다툰다는 뜻이 아니라 단지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어느 한 사이 사이처럼 잘 알 수도 없고, 없는 것 같은데 있기는 꼭 있는 어떤 마디를 뜻하는 글자로 출발 했답니다. 그 증거로는 경계 경(境)자 속에도 들어 있는 것 같습니다.
저도 술 한잔 드리고 싶습니다. ㅎ~
oflife 2009/04/25 13:51.04
시앙골님 반갑습니다.^^
시앙골님의 댓글에 감사드립니다. 님의 댓글을 보면서 왠지 발가벗겨지는 느낌이 들어서 많이 부끄럽습니다.
좋은 격려 다시 한 번 감사드리며 앞으로 좋은 글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시앙골 2009/04/25 13:47.06
한마디 끼어들어 본다는 게 너무 길어져서(서툴러서 마우스 움직이느라) 한참 또 고생했습니다. 좋게 받아 주시길.
나비엄마 2009/04/25 17:28.41
쯥..
성형수술 생각했다가 접어야 겠다는....ㅋㅋㅋㅋㅋ
oflife 2009/04/25 17:37.33
다시 읽어보니 마지막 두 줄이 바로 그렇다눈 ㅋㅋㅋ
깨 2009/04/25 18:13.30
동양의 지식축적 문제와 관련해서 제 어쭙잖은 소견을 덧붙여 봅니다.
우리나라에도 옛날에 문헌의 축적이나 교육기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오브라이프님이 지적하신 처럼 탐구해서 나타난 지혜가 홀연히 사라졌다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즉, 역사적으로 왕권이나 체제가 변화하면서 구시대의 지적산물을 <모두 박멸하는 경향>을 보였다 할 수 있다. 중국도 분서갱유와 같은 구지식의 말소작업이 있었다. 조선왕조실록이나 팔만대장경 같은 것은 선조들이 지식과 사실을 극히 중시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새로운 지식이 구지식을 추방하고 박멸하는 뒷편에 그 지식의 내용이 이야기(설화)나 무속, 산방으로 흩어져 피신하지 않았는가 추측해 본다. 동양은 인쇄술이 발달하였다. 이는 지식을 축적하고 배가시킨다. 그런데도, 동양에 지식축적이 결여하다는 것은 그 독특한 학문 풍토에서도 기인한다다 하겠지만, 이와 같은 체제의 변화가 구지식 청산작업으로 이어지는 경향과 연관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한 경향은 체제의 변화가 대개 완벽한 새로운 지식의 질서를 건설하려는 것과 동전의 앞면과 뒷면이라는 짝을 이루는 것으로 보인다(신라나 고려의 '불교', 조선의 '주자학',...). 다른 사회경제적인 이유가 있겠지만, 공산주의와 반공주의라는 남북의 대립도 단순한 겉보기 측면에서는 그러한 양상을 보여준다 할 것이다.
oflife 2009/04/25 18:36.55
지식이나 지혜의 목적은 문제의 해결이고, 방법론상 얼마나 합리적인가의 여부, 즉 옳고 그름이 지식(문제해결방식)의 선택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럼에도 역사를 돌이켜보면 옳고 그름에 의해서 판단되어지고 수용되어진 것이 아니라 정치적 견해에 의해서 좌지우지되는 경향이 매우 짙었습니다. 그러기에 입장이 다른 지식은 소멸되어 씨를 말리게 되고 '간택된' 지식은 위정자 집단의 전유물이 되어버리는, 그래서 공유되어지지도 않았고, (정치적 견해를 달리하는 세력이 집권하면 물갈이가 이루어지므로)축적되어지지도 못했다고 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지식에 대한 '천대'가 있었기에 활발한 연구나 집필을 통한 발전이 거의 없었다고 여겨집니다. 일부분 실용적 지식을 연구하기도 했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그런 실용적 지식들은 과학적이지 못합니다.
깨 2009/04/25 18:53.48
옳습니다. 그것이었군요. 위정자집단에 '간택된 지식'! -- 이걸 '어용'이라 했지요.
합리라는 '가시'를 뽑아버린... 천대와 박멸...
오브라이프님, 이 다음에 독점자본과 지적 재산(권)에 대한 글 한 번 기대해도 안되겠습니까?
oflife 2009/04/25 18:57.46
깨님께서 한 번 써보시지요....저도 깨맛 좀 봐야겠습니다.ㅋㅋ
사실 깨님의 글맛을 아직 못봤습니다. 참깨인지 들깨인지 ㅎ
제가 오히려 기대하겠습니다.^^
깨 2009/04/25 19:12.28
아는게 없어서... 안되고요.(겸손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글하고도 먼 사람입니다.
본글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 가운데, 그리고 아젠다님과의 토론 가운데, 특별히 그 문제가 부각되기에 여쭤보는 것입니다만,...
이 문제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다면 지식기반사회니 뭐니하는 것은 구름잡는 이야기가 될 것 같아서요.
oflife 2009/04/25 20:23.45
저도 거기에 대해 깊은 이해는 없습니다. 다만 제가 생각하기로는, 지식이 상품화되고 그 값이 정해지고 거대 자본에 의해 독점화되어갈 우려가 있다는 점이 문제로서 제기될 수 있겠다 싶은 겁니다. 흔히 현대를 정보사회, 지식사회라고 규정하는데 있어서, 정보와 지식이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에 편입되어 돈을 매개로 하여 사고팔 수 있게 된다면(이미 그렇게 되고 있습니다) 이 또한 양극화현상으로부터 예외가 될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군요. 특목고나 자립형사립학교의 난립도 이런 관점에서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게 되구요, 재벌기업이 지식을 독점하고 국정원이 정보를 독점해서 공급하게 되면 자연히 국민들은 지식과 정보로부터 소외되고 억압받게 된다는 겁니다.
그리고 지적 재산 혹은 지적 재산권이란 말은 여기서 광의적으로 해석해서 논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당혜 2009/04/25 18:24.51
끄덕끄덕...<---몬 말인지 대충 알겠다는 말씀.ㅋ
oflife 2009/04/25 18:38.23
오셨습니까?^^
흔적 남겨주셔서 감사하옵니다. ㅋ
당혜 2009/04/28 11:56.01
정...감사하시다면...선물이라도 주시던지요.ㅋ
마리안느 2009/04/25 19:49.50
끄덕끄덕2... <--- 위와같음
oflife 2009/04/25 20:26.06
너무 힘차게 흔들지 마십시오. 목디스크 생깁니다.ㅋㅋ
흙손 2009/04/25 19:50.47
전혀 엉뚱한 말이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증산 선생이 했던 말 중에서
"도(법)은 사람에게서 사람으로만 이을 수 있다"는 말에 크게 공감한 적이 있습니다.
경전이나 말로는 도저히 전달할 수 없는 진리...
빠르거나 손쉽게 혹은 좀더 효과적인 방법으로 전달하는 방식의 함정에 대해 제 경우는 살면서 톡톡히 실감하고 있는 터이기 때문입니다.
동전의 양면처럼 그런 방식이 갖는 한계와 가치가 분명 있을 것입니다만
저로서는 오히려 쉽지 않고 느리고 두터운 방식에 삶과 세상을 걸고 싶은 심정입니다.
은근한 반론이었는데요... 암튼 한 꺼풀 더 속에 있는 진리를 찾아 누구나 길을 가고 있는 중이니까요. ^^*
oflife 2009/04/25 20:14.37
안녕하세요, 흙손님. 반갑습니다.^^
예전에 어떤 드라마의 내용이 갑자기 생각납니다. '신약'을 개발하는데 그 내용은 '머리가 좋아지는 약'이었습니다. 고생 끝에 마침내 그 약을 개발했지요. 한 두 사람이 먹어보니까 갑자기 천재가 되어버리는 겁니다. 참으로 기가막힌 발명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과 똑같은 약을 만들어내는 데 실패하는 겁니다. 왜냐하면 실험 기록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었죠. 더군다나 그 약이 검증되는데 까지는 몇십년이 걸릴지도 모른다는 판단이 내려졌습니다. 드라마는 그 속사정을 속이고 그 신약 개발권을 팔아치워버리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습니다.
여기서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바는, 위의 예에서 보듯이 진리를 추구하는 지식이나 지혜가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마침내 성공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기록되지 않고서는, 그리고 그것이 전문가로부터 검증을 거치면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인정 받기까지에는, 설령 그것이 진리라 할지라도 '문제해결의 방법'으로서의 자격을 획득하는 데 실패한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오늘날에는 카오스이론이니 뭐니 하면서 진리의 절대성 보다는 오히려 상대성이 각광받는 시대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을 무시하고 각자 나름대로의 진리를 추구하고 각자가 옳다고 믿는 지식과 지혜 쌓기에 몰두하다보면 진리의 보편성과 멀어지고 만다는 제 생각입니다.
흙손 2009/04/25 21:20.19
말하자면 그런 과정으로 축적된 지식의 쓰임새, 곧 근본적인 물음에 해당할 것입니다.
지식의 축적과 전달 과정이 어려울수록 위험요소에 안전장치를 마련한다는 모티브는 동양 무협지에서도 흔히 쓰는 방식입니다만
서양식 사고에 익숙해진 우리 세대는 그것의 숨은 뜻을 간파하기가 쉽지 않지 않을까요?
칼쓰는 법을 가르치는 사부가 사람을 죽이는 데는 칼을 쓰지 말라고 단속을 단단히 하는 것 같은...
신약 개발이 인류의 진보에 얼마만큼 이득이 있는지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면
그만큼 중요한 일이라면 그만큼 어려움을 겪으며 다시 한번 개발과정을 밟는 것이 오히려 인류에 보탬이 되지 않을까 하는 꼰대 같은 고집을 부려보는 바입니다. ^^*
oflife 2009/04/25 21:39.18
쓰임새에 대하여 말씀하셨는데, 가령 누군가가 칼을 주면서 찌르지 말라고 경고했다면 그건 역설적 상황이 아닐까요?
우리 동양에서는 그런 역설이나 반어법을 많이 사용하는데, '네가 깨달으면 다행이고 못 깨달으면 그만이라'는 식의 조금은 무책임한 교수 방법이 유행처럼 번졌다고 생각합니다. 서양은 사실적으로 매사에 명확하게 전달하는 걸 강조한 반면, 동양은 그런 명확한 걸 오히려 터부시하면서 관념적 수행 방법에 많이 의존한 걸로 압니다. 그러다보니 개인과 개인과의 사이에서 이신전심으로 깊이 있는 교수 전달이 이루어졌겠지만 그 외의 나머지 다수에 대해서는 무관심 내지는 신앙적 교리화로 오히려 대중을 무지몽매에 헤매이게 하는 역행을 저질렀다고 보여집니다.
신약 개발에 관련해서는, 서양은 대체로 오류와 왜곡을 줄이려 애를 쓴 반면, 동양은 사람들로 하여금 환상과 미몽을 심어주는데 그 역량을 다한 걸로 사료되는 바입니다.^^
무례하다 여기지 마시고 건전한 토론이라 여겨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흙손 2009/04/25 22:01.17
환상, 미몽, 관념... 으로 보일 수 있는 그 사고의 장막을 잠깐 거두어주시고
역설이나 반어...왜 그걸 쓸 수밖에 없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주실 수는 없을까요?
(저 또한 무례하다 여기지 마시고... 서로 이해와 소통을 바라나이다.)
불립문자(不立文字)라는 말을 왜 할 수밖에 없었는지,
왜 달과 손가락을 비유하며 사람들이 손가락만 보고 달을 보려하지 않는다고 했는지,
왜 '말'을 그토록 무서워했는지...
저는 지금도 말이 '필요악(惡)'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사실 그래서 어지간하면 말의 잔치나 논의에 끼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었는데
오늘 오무라이브 임한테 단단히 걸리고 말았나이다.^^*
저도 결국 말로써 사람들에게 뭔가를 외치려 하고 있는, 인간의 몸 받고 태어난 존재입니다만...
쉽게 가지는 말자고 다시 한번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정중한 애정을 담아서...^*
oflife 2009/04/25 22:14.30
제 생각에는, 지식은 만인에게 공유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데 깨달음이라는 것은 소수의 선각자들에게 비밀리에 전수되어지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미처 깨닫지 못한 대중은 그들이 가야할 방향을 주체적으로 찾아나서지 못하고 소수 특권계층이랄 수 있는 선각자들에게 은혜를 입어야만 할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을 계발시킬 방법이 없게 됩니다. 그렇다면 세상은 너무나도 공평치 못할 것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익부빈익빈이 점차로 극단화되어가는 상황에서 가난은 대물림을 할 수밖에 없듯이 지식이나 지혜도 선택받은 소수의 사람들만의 전유물로 전락하지 않을런지요.
저는 모두의 공통분모를 찾자는 겁니다. 그래도 지식도 평등하게(공평하게) 누릴 수 있는 '만인의 권리'로서 개방되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결코 쉽게 가자는 것이 아니라 '지식의 평등'과 '언어의 명료화'를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선문선답 같은 것을 별로 탐탁치 않게 생각합니다. 언외언의 깨달음도 별로 달가워하지 않습니다. 그저 모두 함께 공유하자는 거지요.
무달구름 2009/04/26 00:19.30
아...글고 이건 말꼬리는 아닌데요...ㅎ
<지식은 만인에게 공유되어야 한다고 봅니다>라는 표현에서
저는 외람되지만
<지식은 만인에게 공유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라고 새기고 싶습니다...ㅎ
흙손 2009/04/25 22:24.38
말이나 머리로가 아니라
몸이 말하고 알아듣는 언어가 있습디다.
실제로 도시에서 공부 많이 한 사람들보다
시골에서 몸으로 살아온 사람들과 말이 훨씬 잘 통할 때가 많습니다.
선문답이 아니라, 삶의 방식의 차이에 따라 언어의 방식도 달라지지 않겠습니까?
우리의 대화 같은 이러한 관념어를 시골 할매 할배들과 어떻게 나눌 수 있겠습니까?
저는 시골 할매 할배와 함께 나눌 수 없는 언어는 언어가 아니라고 박박 우기는 사람입니다.
오늘은 이런 단순무식한 말로 이 소통의 노력을 마감할까 합니다.
다음 덧글 보고 나서 소쩍새 오면 소쩍새 소리 듣고 혼새(저승새, 학명으로는 호랑쥐빠뀌) 오면 혼새 소리 들으며 잠을 청해 보겠습니다.
오므라이브 임 몸과 마음 영혼의 평화와 안녕을 빌며...... ^^* 좋은 꿈 꾸세요.^^*
oflife 2009/04/25 22:44.26
일상적 대화 속에서는 별 문제 없이 의사소통이 이루어지리라는 걸 저도 잘 압니다. 그러나 새로운 사태나 새로운 문제상황에 부닥치다보면 그간의 경험과 습관에서 비롯된 '상식'이 무력화될 때가 있습니다. 이 때 문제 해결을 위해 기도하거나 절을 한다고 해서는 전혀 해결되어지지 않습니다. 그러한 상황은 역사 속에서 무수히 겪어왔습니다. 그래서 상식보다는 과학적 지식을 찾게 되는 것이고 이것은 이미 검증을 거친 것으로 사용하는 데 실패할 확률이 매우 적습니다. 상식이 '경험의 보따리'라면 과학지식은 '질서정연한 경험의 진열장' 같은 것이 되겠지요. 과학지식은 상식처럼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의도적이고 계획적이고 조직적이며 체계적인 것입니다. 이것을 사용하는데에 지위고하의 여부나 어떤 다른 댓가의 요구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이것은 결국 잘 정리된 언어 체계고 상식적 관점에서 문제 해결이 불가능한 것들을 보다 편리하게 해결하는 방법을 제시하기 때문에 저는 이러한 명료한 지식 체계가 상식 체계나 뜬구름잡는 개개인의 깨달음 보다 우월하다는 것입니다.
불편하게 해드렸다면 죄송합니다. 부디 편안한 밤 되시기 바랍니다.^^
무달구름 2009/04/25 23:32.06
같은 나무의 다른 그늘을 보고 있는 느낌입니다.
박노해가 "사람만이 희망이다"라고 했다면 도법은 "사람만이 문제다"라고 했지요. 같은 문제를 다르게 본 것이고,
사람의 문제, 관계의 문제를 둘 다 치열하고 뜨겁게 천착하면서 무엇보다도 사람 그 자체를 사랑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고 보입니다.
언어의 과학성, 지식과 지혜의 공유. 굉장히 중요한 야그지요. 그러나 그 공유 과정의 합리성을 논하기 전에 그 공유가 무엇을 위한 공유인가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언어는 소통이 태생적 목적이지만 어느새 정치적 도구가 된다는 사실을 경계해야 합니다. 그래서 고승대덕들이 언어의 분별을 경계한 것이고 언어 그 너머의 무엇인가를 깨닫고 찾기 위해 목숨을 건 토굴 면벽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이겠지요. 우리는 우리 것을 제대로 공부하지 않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 서양의 눈으로 동양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함축적인 메타포라 위험하지만, 서양의 언어는 동양에 비해 대단히 공격적이고 이기적이고 정치적이었기 때문에
정신적 공황이 앞으로 더욱 크게 나타나리라 보입니다. 그리고 그 해답을 이미 동양에서 찾으려고 움직이고 있구요...
무달구름 2009/04/25 23:39.18
반면 동양은 서양의 장점보다는 패악을 필터링 없이 정치적으로 수입하여 지금 그 뒤치다꺼리에 온갖 후유증을 앓고 있는 중이고요...
얘기가 조금 다른 데로 흘렀습니다만, 다른 것과 틀린 것, 좋은 것과 나쁜 것의 기준이 모호하게 적용될 경우 논점이 어긋나기 십상일 듯합니다. 오프 님과 흙손 님의 말쌈은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부분을 지적하는 듯 보입니다...상충이 아니라 상보의 문제로 보입니다만...에허...모리게따...ㅎㅎ
oflife 2009/04/26 00:00.35
아래에서 올리다 만 댓글을 여기서 마무리하려 합니다.
무달님께서 원효의 부챗살 이론을 피셨는데, 결국 흙손님도 옳고 저도 옳고 한데 왜 부채살만 부여잡고 있느냐, 부채살들이 모이는 한 점에서 보면 모두 같다는 질타로 들립니다. 수긍하는 바 큽니다. 그러나 한켠으로 아쉬운 것은 논쟁을 펼치기도 전에 화해의 길을 제시하시니 조금은 당황스럽습니다. 제가 모두 옳다는 것은 아닙니다. 이 논쟁을 통해서 제가 혹여 배울점이 있나 찾아보는 중입니다. 무달님께서는 저의 의중을 조금은 헤아려주셔서 오해하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무달구름 2009/04/26 00:41.23
저....부채 부치믄서 화해하시라는 말씀 한 적 없는디요...? 누가 싸웠시유...? ㅎㅎㅎ
좋네요 뭐...한 방에 모여서리 사부작 사부작...ㅎ..근디 골이 쪼께 아퍼서리 그렇지..
제 컴에 문제가 있는지...어제부터 자꾸 버벅거림돠...
우짯그나 서양은 동양을, 동양은 서양을 서로 사이좋게 벤치마킹하는 일이야 뭐 더 이상 강조할 필요가 없것지라...
지식의 독점이나 정보의 권력화, 학자연하는 또는 전문가연하는, 잘못된 지식이나 학문적 권위는,
오프 님이 지적하신 대로 민주적이고 전방위적인 공유를 위해서도 지양해야겠지요.
다만 아수운 것은, 그러면서도 다층 다방 다양한 시각에서 프리즘을 들이대되,
우리 역사, 동양 역사에서 서양보다 더 앞서고 깊었던 부분들을 법고창신하는 작업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것같습니다.
새참들 먹소 하이소~~~ㅎ
oflife 2009/04/26 00:48.32
솔직히 고백하자면 동양학은 저에게 무지 어렵습니다. 서양학은 그런대로 비교적 좀 쉬운 편이지요..ㅎㅎ
시루봉 2009/04/25 21:49.07
님의 글이 저는 많이 어지럽습니다..
지식과 지혜라는 용어의 구사에도 무리가 있고 무엇보다
통사적인 관점이 송두리째 빠져버린 한계가 보입니다.
현싯점의 양상 국면만을 논하더라도
조건이나 범위를 한정하는 것이 좋았을 듯합니다.
개인적 주장이라면 주장이겠습니다만..
oflife 2009/04/25 22:01.28
이 글은 논문을 쓰고자 한 것은 아니고 그저 발제 차원에서 문제 하나를 던져본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헛점이 많이 있을 겁니다. 그런 헛점들을 댓글 형식으로 토론하고자 하는 바이니 부디 가르침을 주십시오.^^
첫째, 통사적 관점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에 대해서 시루봉님의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둘째, 현 싯점을 논한다 감안해도 조건이나 범위가 한정되어 있지 않다는 점에 대해서 같이 고민해보는 것은 어떨지요.
귀찮더라도 저를 위해서 시루봉님의 시간과 에너지를 조금 할애하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시루봉 2009/04/25 23:23.31
옵라입님..
윗 글에 동원된 지식이란 용어를 '방법'으로 바꾸면 님의 논지에 근사할 것입니다.
통사적 관점이 결여되었다는 것은
세계가 동. 서양으로 이분하기에는 너무나 복잡하다는 것. 달리 말하자면
동서양의 교류에 의한 상호 기여분이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는 것.(역사성입니다)
과학과 지식과 지혜의 포함(상관)관계조차 고려함이 없이 논지를 펼친다는 것은
단순한 주장이라도 논지의 전개에 무리가 따르겠지요..
저는 스스로 이런 질문을 던져 봅니다.
예를 들어 동양의 물리학자가 새로운 물리학적 사실을 발견하여 이론으로 정립한다면
그것은 서양의 물리학입니까?
서양의 지식이란 용어 대신 인류의 지식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
생각보다 훨씬 많을 것입니다.
세계의 지배를 위해 동원된 서양의 방법은 동양의 그것보다 현재로서는
'효과적'으로 보이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필요한 자세 정도로 한정하면 좋을 듯합니다.
그 너머는 우리의 시비분별능력을 뛰어넘는 것 같군요.
oflife 2009/04/25 23:48.55
동서양의 역사성까지 논하기에는 저의 역량이 미치지 못합니다. 그래서 동서양의 각기 학문적 태도 혹은 학문의 방법론 측면만을 고려하여 논지를 전개한 것입니다. 만일 이 글에서 역사성을 고려한다면 너무나 방만한 글이 되고 말았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지식의 효용성 문제나 귀속 문제에 대해서는 통상의 구분 방식을 택하였으므로 분석적이 되지 못하여 시루봉님 보기에는 그다지 탐탁치 않으셨으리라 생각됩니다. 글의 완벽을 추구하기에는 이 공간이 조금은 대중적이라는 생각입니다. 양해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시루봉 2009/04/25 23:38.27
참. 덧붙이자면 글머리의
지식과 지혜의 추구에 있어서는 서양이나 동양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 가
가장 잘못된 언표라고 보입니다.^^ 추구하는 방법인지 추구하는 지향점인지..
거대 담론의 화두를 무우베듯 하기는 좀 그렇군요...
oflife 2009/04/25 23:42.15
지식과 지혜에 대한 정의를 먼저 내린 연후에 글을 전개했어야 했습니다. 저의 불찰입니다.
무달님의 글에 대한 댓글을 달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 댓글에 첨언하였으니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무달구름 2009/04/25 23:16.26
동양에서 태어난 처지에서 거저 먹고 들어가는 생득적 홈그라운드의 프리미엄을 고마워할 일만은 아닌 듯...ㅎ
시루봉 님의 지적처럼, 논점의 범위와 비판하려는 대상이 서로 뒤섞여 있어 비약의 우를 만나는 느낌임돠...^^
미시적이나 한정적 시각으로 통시적이고 거시적인 범위를 압축해서 비교 비판한다는 것이 아무래도 언 정도 무리를 전제하셨겠지만요...ㅎ
허나, 지혜의 축적이 지엽적인 개인적 깊이의 세계로 상쇄돼버린다는 지적은 쪼께 거시기함돠...
일부분 그런 점이 없지는 않겠으나, 근대로 올수록 그럴수밖에 없어 보이는 거개의 원인은
바로 서양에서 유입된 합리적 분별과 권력 지향적 배경, 깊이보다는 양적 팽창주의를 통한 현시욕과,
과학 기술을 앞세운 정복욕에 그야말로 포섭되고 처염處染된 까닭도 크게 한몫했음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일부 동양인의 협소한 무능과 동양 체제 전체가 가지고 있는 역사 문화적 깊이를 같은 범주로 묶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자가당착의 길이 될 수도 있다능......ㅎ
위 아젠다 님의 댓글 가운데 '사상의 귀족화' 언급은 대단히 중요한 지적입니다.
이는 언어의 차별화, 언어의 귀족화, 언어의 계급화와 같은 맥락이고, 이 뿌리에서
오프 님이 지적하신 축적의 스러짐이 아쉬운 부분이 있겠지만, 이 또한 권력의 문제로 접근해야 오류가 적어질 듯함돠...
아 자꾸 길어진다...오프 님 자꾸 머리 아프게 하실꼬아.?ㅎ
oflife 2009/04/25 23:28.57
무달님의 글을 두 번 정독하였습니다. 한 번 더 정독하기 전에 일단 밑바탕에 흐르는 저의 기본 생각을 먼저 말씀드립니다.^^
한 마디로 압축한다는 게 무리가 있겠지만 그럼에도 한 마디로 요약하면, 동양은 서양에 비해서 '비판의식'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서양은 비판에 비판을 거듭하면서 새로운 시각들을 새롭게 탄생시켰고 그러한 것들이 축적되어왔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은 겁니다.
시루봉님의 지식과 지혜를 혼잡하게 섞어 사용했다는 지적을 하셨는데, 제가 알기로는 '지식'은 '사물에 대한 시각' 또는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 혹은 '문제 해결의 방법'을 가리키며, '지혜'는 '새로운 시각', '새로운 관점', '새로운 문제해결방법'입니다. 부연 설명이 부족한지는 모르겠으나 결코 혼동하여 사용하지는 않았습니다.
미진한 점은 다시 무달님의 글을 정독한 연후에 다시 올리겠습니다.^^
시루봉 2009/04/25 23:56.49
지식은 사물만이 아닌 관념을 포함한 대상에 대한 인지의 결과물,
지혜란 문제의 해결방법에 '가까운' 개념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oflife 2009/04/26 00:07.50
지식은 크게 상식과 과학으로 분리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여기서 언급하는 지식은 과학지식을 말한 것이구요, 지혜는 과학이 아니라 철학의 탐구 대상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철학을 '과학의 과학' 혹은 '인간의 학'이라고 일컫고 있습니다.
기존의 과학지식이 제시하는 방법을 '의심'하고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철학의 역할일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지혜는 과학의 대상이 아니라 철학의 탐구 대상이 되는 것이고, '비판의식'을 전제로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는 과정이 바로 지혜의 탐구 과정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시루봉 2009/04/26 00:17.03
하이고.. ^^
동양이 되었건 서양이 되었건
지식이 되었건 지혜가 되었건
어떤 맥락 어떤 범위 어떤 '의미'에서
무엇이 무엇에 우월하다는 건지를 모르겠다니깐요.. 님의 글을 봐선.
oflife 2009/04/26 00:25.36
지혜도 시간이 지나면 지식이 되는 거라고 보는데요? 제가 여기선 지식 저기선 지혜라고 마구잡이로 써서 혼란을 일으킨 것 같은데 실은 마구잡이는 아닙니다.ㅋㅋ
오늘은 늦었으니 내일 다시 하자구요.^^*
무달구름 2009/04/26 20:01.15
외려 그 반대에 가깝지 않을까 싶은디요...물론 순환 차원에서 멀리 보면, 저 아래 [개굴챙이] 님이 연결해놓으신 [사야] 님의 '지혜로운' 개념 정리처럼, 변증법적으로 인과를 이해할 수 있겠지만서두...ㅎ
지식은 지혜로 가야지 무기로 가서는 안 된다.
지식은 냉철한 눈과 머리만 있으면 가능할지 몰라도
지혜는 눈과 가슴, 손과 발, 몸뚱어리 전체가 유기적으로 필요하다.
나아가 진정한 삶의 총합이 녹아들어야 한다.
지식은 지혜에게 함부로 대거리할 깜냥이 아니다.
아주 오래 전 언젠가 이렇게 끄적거려 놓았네여...저의 아포리즘 낙서장에...^^
영화처럼 2009/04/25 23:56.15
논쟁이 뜨겁네요.
제목<서양의 지식이 동양의 지혜보다 우월한 까닭은>을 보고 왔습니다.
글을 하나 소개합니다. 미국의 심리학자 니스벳(Nisbett, R. E.)의 <생각의 지도>에서 가져 온 것입니다.
영화처럼 2009/04/25 23:56.55
* * *
그리스인들은 개인을 독립적이고 개별적인 존재로 보았고, 진리를 발견하는 수단으로서 논쟁을 중시했다. 그들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다. 같은 맥락에서, 그리스 철학은 개별 사물 자체를 분석의 출발점으로 삼아 개별 사물의 내부 속성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우주는 원칙적으로 단순하고, 따라서 파악 가능한 곳이었다. 따라서 철학자들의 과제는 사물의 독특한 속성을 파악하고, 파악된 속성에 기초하여 사물은 범주화하여, 그 범주의 보편적인 규칙을 발견하는 것이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중국인들은 인간을 ‘사회적이고 상호 의존적인’ 존재로 파악하고,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개인의 자유가 아니라 조화라고 생각했다. 그 조화란 도교에서는 ‘인간과 자연의 융합’이었고, 유교에서는 ‘인간들 사이의 화목’을 의미했다. 중국 철학의 목표는 진리의 발견보다는 도(道)였고, 구체적인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 추상적인 사고는 무의미한 것으로 간주되는 실용적인 경향이 강했다. 우주는 매우 복잡한 곳이기 때문에 그 안에서 발생하는 일들은 서로 얽혀 있고, 그 안에 존재하는 사물이나 인간은 마치 그물처럼 서로 얽혀 있다고 믿었다. 이러한 사고 경향 때문에 중국인들은 어떤 대상을 전체 맥락에서 따로 떼어 내어 분석하는 일에 거부감을 느꼈다.
oflife 2009/04/26 00:13.22
서양이 이론적이라면, 동양(중국-서양인들은 중국이 동양의 문화를 대표한다고 여겼음)은 실천적이고 사회적이라고 구분하기도 합니다.^^
영화처럼 2009/04/25 23:57.37
서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세상사를 개인이 완전히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 역시 불가능했다.(중략)
개별 사물과 그것의 속성에 집착한 탓에 그리스인들은 아주 기본적인 인과 관계를 파악하는 데도 실패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돌이 공중에서 땅으로 떨어지는 것은 ‘그 돌’이 ‘중력’이라는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나뭇조각이 물 위에 뜨는 것은 그 ‘나뭇조각’이 ‘부력’이라는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두 경우 모두 주 초점은 오로지 대상 자체이며, 그 대상을 둘러싼 외부의 힘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이와는 달리, 중국인들은 우주를 서로 연결되어 있는 하나의 장(場)으로 보았기 때문에, 인과 관계를 설명할 때에도 장 전체의 복잡성에 주목했다. 그들은 어떤 일이든지 수많은 힘들이 상호 작용하는 장 안에서 일어난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그들은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는 것들 사이에서도 힘이 작용한다.’라는 사실을 갈릴레오 훨씬 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들은 자석과 공명의 원리뿐만 아니라, 갈릴레오조차 깨닫지 못했던, 달의 운동과 조류 사이의 연관성도 알고 있었던 것이다.
* * *
시루봉 2009/04/26 00:07.08
옵라입님
글을 읽고 하두 심란하여 앞뒤 가리지 않고 단정적으로 제 할 말만 하였습니다.
님의 글을 압박한다기 보다는 앞가림이 안되는 우리 현실에 대고 악을 쓴 꼴입니다... ㅜㅜ
oflife 2009/04/26 00:14.27
오늘은 일단 휴전하고 내일 다시 이어가기로 하죠. 재밌습니다.ㅎㅎ
시루봉 2009/04/26 00:19.45
에고고.. 옵라입님.. 그냥 백기 들기로 합니다.
더 보탤 말도 없고 기력도 없어서리.. ㅎㅎㅎ
그만 뒹굴러 갑니당
꿈꾸는방랑자 2009/04/26 01:37.28
ㅋㅋ 편히 쉬고 계실려나 궁금?
상허 2009/04/26 00:30.22
제 소박한 의견입니다. 주장이 아니고요.....^^
동서양의 학문적 장단점에 대한 논의는 필통에서 예전에 간간이 있어왔던 주제입니다.
흔히 의사분들이 한의학에 대해 비판하고 한의사가 반론을 제기하는 과정이었는데요, 토론이 진행되다 보면 반드시 동서양의 학문의 장단점에 대한 논쟁으로 번지곤 하였습니다. 물론 결론은 나지 않고 항상 각자의 주장만 제기하는 선에서 결렬되곤 했습니다.
당시에도 늘 어느 지점에서 이야기가 결렬되느냐 하면,
서양의 과학을 내세우는 쪽에서 동양의 학문에 대해 별로 아는 게 없다는 겁니다. 공부할 기회가 없었거든요.
서양의 과학은 대부분의 필진들이 기본적으로 거쳤습니다.
그러면 서양의 과학을 주장하는 쪽에서는 동양의 학문에 대해 이야기해 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인식의 범주와 방법론이 동양학의 경우 서양과학과 다릅니다. 그런데 서양과학을 이야기하는 쪽에서는 과학의 범주와 방법론으로 설명하기를 요구합니다. 그러면 동양학은 설명불가에 봉착합니다. 아니 설혹 가능하다 하더라도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의 너무나 많은 이야기들이 전제되어야 하고, 아울러 중요한 것은 서양 과학을 이야기하는 쪽에서 열린 자세로 경청할 의사가 있어야 하는데......이런 점들이 잘 전제된 토론은 보지 못했습니다.
앞으로도 누군가에 의해 다시 제기될 것입니다만, 합의를 도출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무달구름 2009/04/26 00:52.14
그러게요...ㅎ
언어와 사고 체계, 역사적 정치적 환경의 차이에서 오는,
이를테면 유전자적 차이가 대화의 장애로 작용하는 경우가 숱하지요...
진정한 소통을 위해서는 그 같은 장애와 한계를 넘거나, 최소한 넘으려는 진정성은 있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그래도 서로의 차이점이라도 분명하게 상호 인지하고 나아가 이해, 인정한다면
그것도 진일보라 할 수 있겠다 싶네요...
문제는 권의주의적이거나 독선적인 일방성에 있겠지요. 그런 자세가 오해와 편견과 곡해, 심지어는 더욱 깊은 관계 악화를 낳고요...
100분 토론도 보면, 100분 동안 자기 주장만 하잖아요... 독백도 아닌 방백...시청자를 의식한 고도의 방백...선전장...
시청자에겐 100분 토론이 아니라 100분 고문...ㅎ
경험으로 지적하신 것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지사지란 참으로 어려운 문제인 것 같습니다.
상허 2009/04/26 01:03.28
100분 토론에 대한 말씀 전적 공감입니다......^^
21세기 대한민국의 대표적 풍속도 가운데 하나이죠....^^
역지사지......
저는 무달구름님과 깨님의 "어진 마을 지혜로운 사람들"에서 가능성을 봅니다......^^
깨 2009/04/26 12:14.00
"어진 마을 지혜로운 사람들" -
이 말씀은 상허님 글방에서 퍼다가 올려 놓은 것입니다.
제가 좀 덤벙대고 뻥이 심하여 말을 주의하지 못하지만,...
저는 저 말씀이 <지구촌을 다시 살릴 수 있을...> 큰 무게로 느끼고 있습니다.
oflife 2009/04/26 00:44.12
상허님의 진심어린 충고에 감사드립니다. 겸허한 자세로 수용하렵니다.
그런데 논쟁이라는 것이 자기 주장을 끌어가다 보면 평소에 막연히 알던 것들이 엄격한 반론을 받을 때마다 명료해지고 진화한다는 장점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래서 무례하지 않은 범위 내에서 이 논쟁을 즐기고 싶습니다.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는 무리를 범하지 않을테니 편안히 지켜봐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상허 2009/04/26 01:11.34
알겠습니다....^^
두 가지 점을 말씀드리면 됩니다.
1. 음양오행론을 이야기하되 대화식이어야 합니다. 범주와 방법론에 대한 이야기가 함께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근데 무지 복잡하고 피곤합니다. 언제 컨디션이 좋고 날씨가 화창한 날을 잡아....^^
2. 서양의 과학은 외적 대상에 대한 탐구입니다. 동양학은 탐구하는 주체의 변화를 늘 변수로 놓고 설명해야 합니다. 따라서 수행과 무관할 수 없습니다. 현미경이 없던 시절에 과학적 방법을 넘는 발효식품이 실생활에 이용되었으며, 망원경이 없던 시절에 천문학이 가능했던 이유입니다.
근데 실제로 해 보면 약간은 허탈합니다. 그래서 논의를 위한 논의보다는,
"어진 마을 지혜로운 사람들"운동의 차원에서 탐구정신보다는 삶의 과정으로 진행된다면 재미도 있고 보람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상허 2009/04/26 01:23.45
아! 이거 덜컥수입니다. 2번은 맞는데 1번은 지금 상황에서 적당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다.
뭐 주제야 뽑으면 되는 거죠...
스크롤의 피곤함도 있고....기회를 다시 잡아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여러분들께서 이제 자자고 하시니 저도 그만 물러갑니다....^^
무달구름 2009/04/26 00:55.19
교학상장敎學相長의 오르가슴을 맛보시려는 오프 님의 고도의 전략적 발의...ㅎㅎㅎ
또 보입시데이~~~
시루봉 2009/04/26 01:02.02
뒹굴라카이 잠이 안와서 살짝 와보니
제 머리 우에 별 흩어지고
제 발 밑에 별 힘차게 돌아가고
죽음의 아가리는 활짝 열렸으되
등돌린 희망들이 나 여깃소 웃는구나.
이제 자자!
마리안느 2009/04/26 11:05.41
좋은 토론 같아요. 보기 좋아요. 헤~~
사람은 동양, 서양이 같다고 봅니다.
사람이 생각(사상, 철학)하는 목적, 방법은 같은데, 생각의 표현은 각자의 철학언어(용어정의 또는 사유체제 라고 할까요 ?)에 따라 다르다고 봅니다.
동서양 역사에서 근대이전까지는 생각 목적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동양은 권위(권력, 종교.공자.맹자.불타,....등)에 봉사하는 (권위를 증명하거나, 정당성을 수호하는) 목적으로 생각해 왔다는 것입니다.
서양도 사실 같습니다. 하지만 종교개혁부터 생각의 목적이 변화가 생깁니다.
권위에 도전하는 목적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동양에서도 한때 권위에 도전하는 목적으로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맹자이죠.
맹자는 권위(왕권)에 도전하기 위하여, 새로운 권위(가치-왕도 또는 선)를 창안합니다.
불행하게도 동양에서는 중국 통일왕조체제가 오랫동안 유지되어 춘추전국시대 같은 오래된 분열을 다시 경험하지 못합니다.
권위에 도전하는 목적을 가진 사상가는 죽습니다. 맹자의 생각하는 목적이 단절됩니다.
서양도 권위에 도전하면 죽는 것은 마찬가지인데, 서양에는 갈등을 만드는 권위가 2종류입니다. 무력권위, 종교권위 입니다.
종교권위에 도전하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무력권위는 오랫동안 분열되어 왔었고 종교권위와 이해관계가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마리안느 2009/04/26 11:20.58
서양은 권위(기존가치)에 도전하는 생각을 하면서 새로운 권위를 내세워야 했습니다.
생각하는 방법의 가치인 이성(또는 자유) 이라는 새로운 권위를 만듭니다.
새로운 권위를 기존권위와 같은 레벨에 올려 놓음으로서 사회, 과학, 정치, 경제가 발전한 것 같습니다.
동양철학에서는 이성을 분별력이라고 해야 하나요 ?
서구도 사실 모든 권위에 도전하는 절대적인 자유가 용인되는 것은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2차대전 이후입니다.
한국은 아직 멀었지요.
oflife 2009/04/27 13:13.57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저도 동감입니다. 한국은 아직 멀은 것 같아요. 이성의 권위를 획득하기 까지는 멀고먼 길을 가야할 것 같습니다. 동서양의 사상사를 비교해주시니 이 글이 보다 선명해졌습니다. 자주 들르시어 좋은 충고 부탁드립니다.^^
수월동 2009/04/26 11:14.03
은근주라이프꼬릿말스타일이 너무 길어서 어떤 뜻인지 전부 확인하기 힘든 국면에 처해졌는지 모르겟으나--(대략)“인간이 하늘에만 매달리고 지상의 것을 무시할 수 있을까? 그들은 상호 연관이다. 즉 하나를 앎은 다른 하나를 앎이다. 하나를 배척함은 둘 다를 배척함이다. 부정 없이 긍정에만 의존할 수 있을까? 무엇에 대응하여 그 긍정이 나타난단 말인가? 그래도 그렇게 하겠다고 주장한다면 그는 바보이고 미치광이다.”
아마 장자의 양행으로 방점을 찾으려고 하지 않겠나들..요원하지도 않은 바람 중에 하나--후다다닥딱~~ㅎ
개굴챙이 2009/04/26 14:16.54
오브라이프님 무달구름님
사야님/ 지식과 지혜의 변증법...(?) http://blog.hani.co.kr/arcueid/19978
상허님/ http://blog.hani.co.kr/siangbini/19463
등 여러 분들께서 주거니 받거니 하시는 댓글에서
뭔가를....
한 일년치 양식을 이 댓글~곡간에서 발견한 느낌입니다.
누룽지도 해먹고 비빔밥도 해먹을랍니다 두고두고
좋겠지요. 숭늉 맛도~~~^^
개굴챙이 2009/04/26 14:17.47
저는 달랑 밥숟가락만..^^
행복지킴이 2009/04/26 22:34.59
음...이제와서 제가 한수 거들어도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오브님의 이글을 읽으면서 서양의 지식을 Data → Information → Knowledge의 체계로 발전해 나가는 지식으로 이해했습니다.
지식과 지혜 중 어느것이 우월하다기보다는 여러가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축적된 Data Warehouse로서의 Knowledge, 즉 Knowledge Management Syste으로 이해를 했다는 의미입니다.
동양의 지혜가 뒤떨어지는 것을 강조한게 아니고 더 뛰어난 수많은 지혜들이 지식으로 축적되지 못하고 스러져감을 아쉬워한다고 봐야 할까요?
곧,방법론에 기인한다고 생각합니다.
축적되기 위해선 우선 공유되어야 하죠.
"내밥그릇 챙기기"식의 사고는 곤란하다는 결론에 당도하게 됩니다.
"가문의 비법" "며느리에게도 가르쳐주지 않는 비법"이 더 발전하기 위해선 많은 사람들에게 공개되고,더 나은 시도에 의해 발전해 나가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였습니다.
Knowledge라는 뉘앙스와 "지식"과 "지혜"를 대비했을 때의 "지식"의 뉘앙스와는 많이 다르다는 것,인정해야겠네요..^^
카피레프트운동을 강조한 것이라고 이해했다면 제가 좀 오바한 것일까요?
oflife 2009/04/26 22:52.59
지킴이님에 앞서 깨님께서도 이 점을 위에서 지적하신 바 있습니다만, 저는 거기까지는 미처 생각지 못했습니다.
위에서 제가 언급한 내용 중에 제가 이 글에서 강조하고자 하는 바가 있는데, 그것은 동양에서 강조하는 '지혜'라는 것이 '비판의식'이 결여된 채 마구잡이로 사용되고 나아가 지적 환상에 빠져드는 것을 경계한 것입니다. 따라서 건전하고 올바른 지혜의 축적을 위해서는 지킴이님이 말씀하시는 카피레프트운동까지도 포함해서 생각해야겠지만 그 보다는 우선적으로 상호 의사소통을 위한 언어의 정제화 혹은 명료화가 이루어져야 하며 그 다음으로 상호교류가 확대되어야 하겠으며 그 다음으로는 지식의 체계화와 조직화 그리고 나아가서 지속된 업그레이드가 있어야 한다는 점을 말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지킴이님께서 말씀하시는 카피레프트운동도 그 중 일부가 될 것입니다.
행복지킴이 2009/04/26 23:20.02
'공유'되지 않은 지식은 '비판'될 수도 없고 '축적'될 수도 없지요.
꼭 동서양 구분할 것이 아니라 소프트웨어업계에서 윈도우즈와 리눅스의 싸움을 예로 들 수 있겠네요.
오브님의 말씀은 "표준화"로 출발하여 공유의식, 그리고 시스템화로 이어져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네요...
결국 그것이 KMS,즉 Knowledge Management System인데요.
단,경계해야 할 점은
표준화의 함정에 빠질 수도 있다는 점은 유념해야겠지요.
오브님이 본문에 밝히셨듯,
두가지의 우수한 점을 동시에 취하는 "지혜"가 필요하겠지요..^^
oflife 2009/04/26 23:34.13
표준화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가 생길 수 있는데, 가령 전혀 다른 관점에서 그 대상을 바라볼 때 기존의 언어체계로 설명이 불가능할 경우입니다. 그런 경우에는 새로운 언어체계의 정립이 필요하겠지요. 그리고 공인을 받아서 새로운 표준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이럴 때는 정말 기존의 지식체계로 해결이 안 되기에 '지혜'가 필요한 경우라 하겠습니다.
나그네 2011/07/25 20:10.09
흠 그러게요 동양 철학은 대체로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서 점점 안드로메다로 가는 분위기고 현실성도 별로 없는데 서양은 현실과 맞닿아 있고 열려있고 소통하려는 듯한 그런 분위기고요. 또 동양의 불명확한 언어와 생략된 논리에 비해 서양은 확실하게 박아주고 설명하죠. 더 철저한 외부 세계 관찰이 이루어졌고요. 같은 이성을 가진 인간인데 대체 왜 이렇게 동서는 다르게 갈렸을까요?
100년후에도 2012/03/16 01:44.44
서양에도 예의가 있고 동양에도 예의가 있는데 동양의 예의는 지나치게 엄숙하고 쓸데없이 강조되어서 사람의 자유로움을 억누르는 듯합니다. 이런 동양의 예의는 자신의 부모와 자신의 스승에 대해서 그들이 과연 훌륭한 부모인지 훌륭한 스승인지에 대해 반성과 평가를 할 수 있는 기회조차도 주지 않습니다. 일단 그 부모의 자식이면 따라야 하고 일단 그 스승의 제자면 거역할 수 없죠. 과거의 것에 새로운 것을 보태기 상당히 어려운 상황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상대를 존중하여 말하면 족할 것을 지나치게 높임말을 사용하고 지나치게 예의바르게 행동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상대의 의견을 따져보고 비판하고 반박한다는 것 그 자체가 그 지나친 예의에 벗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그런 일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는 안되는 일로 취급되기 쉽죠. 우리는 여전히 지나친 예의를 강조하는 사회에서 살고 있는 듯합니다. 물론 사람들은 지나친 예의를 행하지는 않지만 무의식의 깊은 곳에서는 지나친 예의의 잣대를 여전히 가지고 있는 듯합니다. 때로 타인의 행위에 대해 지나치게 엄숙한 예의의 잣대를 들이대는 걸로 보아서 그렇습니다.
kjm / 2009.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