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시장을 가다 - 중국 리우리창 시장 유리기와 굽던 공장이 문화거리로
영원한 인간사랑 ・ 2023. 12. 19. 5:28
URL 복사 통계
본문 기타 기능
세계의 시장을 가다
중국 리우리창 시장
유리기와 굽던 공장이 문화거리로
텐안먼 광장 서남쪽 고서적 및 골동품 상가 리우리창(琉璃廠). 이 리우리창 거리에는 베이징 지하철 허핑먼(和平門) 역에서 남쪽으로 200m쯤 떨어진 곳에 동가와 서가가 두 갈래로 뻗어 있다.
리우리창은 문자의 뜻 그대로 유리기와를 굽던 공장이었다(琉=유리 유, 璃=유리 리, 廠= 공장 창). 여기서 구워진 기와들은 주로 황궁 건설에, 채색 기와들은 궁궐 장식에 주로 사용되었는데, 이 같은 장소의 역사는 7, 8백년을 넘는다. 이런 최초의 공장 자리가 오늘날의 ‘문화거리’가 되어 베이징의 특별한 문화 기질을 간직하고 있다.
이곳은 역사상 멀리 요대(遼代)에는 성 안이 아니라 교구(郊區)의 해왕촌(海王村)이라 부르던 곳이었다. 나중에 궁요(宮窯, 궁중의 도자기 굽는 가마)를 설치하여 유리기와를 구웠다. 이때가 13세기 원나라 때였다. 나중에 명나라 때에 내성(內城), 즉 이중으로 쌓은 성 가운데 안에 있는 성을 건설할 때 궁전을 고쳐지었는데, 채색 유리기와를 굽던 리우리창의 규모는 과대하였다. 명나라 영락제는 베이징으로 천도하기 전 궁전(宮殿, 지금의 고궁)을 대대적으로 보수(補修)하였다. 10여 년 후 그러한 작업이 끝나자 이곳에 가마가 있기에는 부적합하여 교외로 자리를 옮긴다.
이런 까닭에 리우리창은 이름만 명맥을 유지하게 되지만, 채색기와로 고궁을 수리하고 거기서 나온 값나가는 물품 탓으로 청나라 초기에는 골동품상들이 드나들었다. 건륭제 때에 이르면 골동품뿐만 아니라 서예, 서화, 문방사보(文房四寶) 또는 문방사우(文房四友)라 불리는 종이, 붓, 벼루, 먹의 집산지를 이루게 되었다. 17세기에 이르러 리우리창은 점차 쇠락하게 되었다. 그러자 당시 청나라 정부는 민간의 연등회를 이곳에 옮긴다. 그리하여 이곳은 다시 흥성하여 명절이면 인파들이 몰려들어 발 디딜 틈조차 없게 된다.
동가와 서가에서 취향 따라 물건 사기
리우리창 지도. 난신화지에(南新华街)가 남북을 가로지르고, 그 양 옆으로 동가와 서가가 펼쳐져있다. ⓒ이명수
리우리창의 오늘날 모습은 1980년대 초 보수를 거친다. 이를 문화거리라 부르기도 한다. 중국 문화에 관한 서적, 예술적 풍취, 기타 사람의 흔적으로 가득하다. 이 거리는 동가와 서가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그 길이는 750미터이다. 양 켠에는 구식벽돌로 지은 1층 또는 2층짜리 가옥 형태의 건물은 돌에 정교하게 새긴 조각이나 목조 조각에 붉은 색을 바탕을 하고 있다.
리우리창 동가, 곧 동쪽 상가에서는 주로 옥돌, 도자기, 보석, 목기를 판다. 서가 곧 서쪽상에서는 주로 서예, 서화 작품을 파는데, 차를 구입하거나 아담한 찻잔이나 잡다한 골동품을 사면서 베이징 여행의 ‘인증샷’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이곳 1000여 개의 가게는 대부분 오후 6, 7시쯤 문을 닫는다. 여기서 우리는 전통 인력거 체험도 하면서 고서적, 골동품, 서화, 문방사우, 민간 공예품 등을 쉽게 구입할 수 있다. 골동품은 비교적 비싼 편이지만, 안목에 따라 싸고 좋은 물건을 고를 수도 있다.
1
| 2
|
1 리우리창 서가 곧 서쪽 상점에서는 주로 서예, 서화 작품을 파는 곳이 많다. 이 일득각(日得閣)은 청나라 동치연간(同治年間, 1862~1874)에 세워졌으니 이미 150년 정도의 역사를 지니고 있는 셈이다 ⓒ이명수 2 리우리창 동가의 모습 <출처: http://www.zgsd.net/> |
자료가 없어 애 먹던 연구자와 수험생의 책 가게
1
| 2
|
1 이 중국서점은 출판사이자 책 가게로서 연구자와 과거시험 응시생에게 수많은 자료를 제공했다. 간판 글씨는 ‘십비판서(十批判書)’의 저자로 유명한 궈모뤄(郭末若)가 썼다. <출처: http://s.visitbeijing.com.cn/> 2 리우리창 거리의 고서적들. ⓒAntoine Lacroix/flickr |
당초 청조(清朝)의 대학자 지샤오란(紀曉嵐, 기효람)의 열미초당(閱微草堂)이 리우리창 남쪽에 있었다. 그는 3,000 사람을 이끌고 10여년에 거쳐 16만여 책의 사고전서(四庫全書)를 편찬하였다. 이때 중국 각지에서 서적상, 책장사들이 몰려들어 이 거대한 사업의 원시자료, 곧 기초자료를 제공하였다. 그들은 리우리창에 서점을 세우거나 책을 펼쳐 놓고 팔기도 하였다. 이에 리우리창은 중국 최대의 고서적 시장이 되기에 이른다.
베이징 거주 문인들은 물론이고 베이징에 온 수만 명의 과거시험 응시자, 즉 거자(擧子)들은 일상적으로 이 책 시장에 몰려들었다. 광서제 연간(1874∼1908)에 이곳 서점은 이미 220가(家)에 이르렀고 1945년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