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기기로 무장하고 있는 한국 도서관, 콘텐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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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중앙도서관 디지털열람실 photo 국립중앙도서관

지난 10월 8일 오후 3시 서울 서초구에 있는 국립중앙도서관을 찾았다. 강남고속버스터미널 남쪽, 가톨릭의과대학 맞은편에서도 ‘국립중앙도서관’이라는 큰 표지판이 눈에 띄었다. 표지판을 지나 도서관으로 들어가자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디지털도서관이었다. 전면이 유리로 돼 있어 세련된 느낌이 나는 디지털도서관은 2009년 5월 25일 개관했다.
   
   지상 7층 규모의 국립중앙도서관 본관 앞쪽에 위치한 디지털도서관은 지상 3층 규모였다. 디지털도서관의 문을 열자마자 마주한 것은 널찍한 공간과 테이블, 그리고 그 위에 놓인 데스크톱PC들이었다. 평일 한산한 시간이었던 탓에 몇몇 이용객들은 넓은 테이블에서 다른 공부를 하거나 엎드려 쪽잠을 자기도 했다. 데스크톱 바탕화면에는 ‘자료 검색 이외의 용도로는 사용하지 말라’는 문구가 있었다. 혹시나 해서 포털사이트 접속을 시도해 보니 텅 빈 페이지가 화면을 채웠다. 오직 ‘디브러리’에만 접속할 수 있었는데, 디브러리는 국립중앙도서관의 디지털도서관 홈페이지다. 디브러리에서는 신착도서나 사서 추천도서, 각종 잡지를 전자책 형태로 읽어볼 수 있으며 도서관의 각종 자료검색도 가능했다. 국립중앙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도서는 총 920만여권에 이르며, 이 중 디브러리를 통해 볼 수 있는 전자책은 66만6000여권에 달한다. 전자책은 저작권 문제로 디지털도서관 내에 구비된 데스크톱을 통해서만 읽어볼 수 있다.
   
   2층으로 향하는 계단 옆에는 길고 어두운 휴식 공간이 있었다. 양옆에 놓인 높고 낮은 소파들 곳곳에는 사람들이 발을 쭉 뻗은 채 의자에 기대어 책을 읽고 있었다. 2층에 가려고 휴게실을 돌아나올 때는 무인발권기가 보였다. 뭐든지 전자기기로 통하는 디지털도서관에는 직원이 유난히 적었다.
   
   디지털도서관은 2층이 메인이다. 2층의 시설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이용증이 필요했다. 기자는 디지털도서관을 처음 방문한 일일 이용객이었기 때문에 1층에서 이용증을 발급받은 후에야 이용이 가능했다. 2층 안내데스크에서 도서관에 들어온 뒤 직원을 처음 만날 수 있었다. 이용증을 건넨 뒤 2층으로 들어섰다. 가장 안쪽에는 UCC 스튜디오와 영상, 음향 스튜디오가 자리하고 있었다. 대학에서 미디어학을 전공하고 있는 구현모(23)씨도 이곳 UCC 스튜디오에서 영상 과제를 찍어 제출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자유로운 편집을 할 수 있게 블루스크린도 설치돼 있어 매우 편리했다고 한다. 구씨는 “스튜디오는 3일 전 예약을 통해 이용할 수 있는데 주변에 미디어 편집실과 미디어 자료이용실도 마련돼 있어 편집까지 마칠 수 있다”고 말했다.
   
   스튜디오를 나온 뒤에도 도서관 내부는 전자기기의 향연이었다. 대여한 미디어 자료를 볼 수 있는 복합상영관부터 세미나실까지. 데스크톱이 빼곡하게 들어선 2층 중앙에는 인공으로 조성된 작은 정원이 있어 숨통을 틔워 주기도 한다. 미국에도 얼마 전 종이책은 한 권도 없는 ‘전자 공공도서관’ 비블리오테크(bibliotech) 도서관이 개관했다고 하는데 국립중앙도서관의 디지털도서관에서도 종이책은 찾아볼 수 없었다. PC, 노트북에 태블릿까지 각종 IT기기에 둘러싸여 흘러가는 디지털 사회의 흐름을 도서관이 정면으로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디지털도서관이 기대를 모았던 또 하나의 이유는 시각장애인들도 도서관을 찾아 각종 자료를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복합상영관, 음향 스튜디오 등을 통해 시각장애인들도 도서관에서 다양한 미디어 자료를 이용할 수 있으며 장애인 포털사이트도 따로 마련돼 있다. 아쉬운 점은 이들을 위한 세세한 배려는 다소 부족했다는 점이다.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계단 손잡이에 으레 붙어 있는 작은 점자 안내판도 미비했고 바닥에 점자 유도블록도 없어 보행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또한 이용증을 내고 들어가는 출입게이트가 좁아 휠체어 이동도 자유롭지 않아 보였다.
   
   온통 푸른 잔디로 되어 있는 것으로 유명한 디지털도서관 옥상 구경을 마지막으로 도서관을 나섰다. 기자는 살고 있는 동네의 도서관을 가볼 예정이었다. 2009년부터 올해까지 시행된 정부의 도서관발전 종합계획에는 ‘학습과 도서 대출’에만 집중된 기존 도서관의 역할에서 벗어나자는 목표가 들어 있다. 도서관 서비스와 인프라의 선진화로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국가의 지식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을 도서관의 역할로 삼은 것이다. 발전계획에 힘입어 지난해에 전국 공공도서관 수는 800개를 돌파했다. 덕분에 이용객들이 도서관을 가려고 멀리 나서는 일이 줄었다.
   
   기자는 살고 있는 동네의 ‘강동 구립 암사도서관’을 찾았다. 암사도서관은 도서관 발전계획이 한창이었던 2010년에 개관했다. 그래서인지 설계부터 복합공간을 지향하고 있는 듯했다. 1층에는 어린이 전용 열람실이 있었고 2층에는 종합자료실, 3층에는 인터넷 검색과 DVD를 볼 수 있는 디지털자료실이 있다. 4층에는 독서실 역할을 하는 일반 열람실이, 마지막으로 옥상에는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옥상 정원 ‘해담뜰’이 위치했다. 지하 1층에는 90석 규모의 강의실이 마련돼 있어 영화 상영이나 강의가 진행된다고 한다. 암사도서관은 다변화되고 있는 도서관의 역할을 충실히 반영한 것처럼 보였다. 이용자들을 관찰해 보아도 가족 단위에서부터 공인중개사 준비를 하러 온 아저씨, 책을 읽으러 온 대학생들까지 다양했다.
   
   하지만 서울의 경우 급격히 늘어난 공공도서관 수를 장서나 사서가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OECD 국가 1인당 평균 장서 수는 2권 정도인 데 비해 서울의 구립 공공도서관은 1인당 0.46권 수준에 불과하다. 사서의 수는 서울 공공도서관 1곳당 평균 5.2명 수준인데 구별로 편차가 크다. 강남구와 양천구의 경우에는 2명도 되지 않는다. 기자도 암사도서관을 이용할 때 찾는 책이 없는 경우가 많아 더 규모가 큰 다른 도서관을 찾곤 한다. 종합자료실에서 만난 박현수(17)군도 “도서관 규모가 작아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찾는 책이 없어서 종종 멀리 있는 더 큰 도서관을 가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