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흥궁 (인천시 강화군 강화읍 동문안길21번길 16-1, 관청리 441)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에 있는 조선의 궁으로, 25대 임금 철종의 잠저 중 하나다
강화도령이란 별명으로 잘 알려져있는 훗날 철종이 될 이원범은 전계대원군 이광의 3남으로 1831년 한성부 경행방(慶幸坊) 향교동(鄕校洞)에서 태어나 한동안 그곳에서 자랐다
이원범은 어린 시절에는 그의 형들과 함께 조선 왕가의 몇 안되는 남자 왕족으로 그럭저럭 살았다
이후 아버지가 10살 때 돌아가신 일 말고는 큰 어려움 없이 지냈지만, 14살 때인 1844년에 민진용 (閔晉鏞)이 큰형 이명을 왕으로 추대하려는 역모를 계획하면서 기구한 운명을 맞게 된다
이명은 처형되고 이원범은 연좌제로 작은형 이욱과 같이 교동도로 유배되었으며, 얼마 못가 강화도에 다시 유배되었다
이후 형과 함께 19살 때까지 5년간 농사를 짓고 나무나 베던 원범은, 강화도에서 왕족이 아닌 평범 한 백성으로 생을 마칠 뻔했으나,
순조의 손자이자 24대 왕인 조선 헌종이 23살이라 는 젊은 나이로 급사했을 때, 영조의 후손으로서 정통성을 가진 왕족은 이광의 아들들밖에 없었다
당시 왕실의 최고 어른이었던 순원왕후 김씨는 이광의 아들인 이원범을 차기 국왕으로 지명했다
자신을 왕으로 옹립하기 위한 행렬이 왔을 때, 이원범은 자신의 할아버지나 큰 형(이원경)이 역모 에 몰려 죽은 전례가 있어서 이번엔 자신을 잡으러 온 줄 알고 산 속으로 도망쳐버렸다
이원범의 형 이욱은 도망가다가 다리가 부러지기도 했다
이후 영의정 정원용의 설득으로 가마에 올라 궁으로 가고 결국 철종 임금으로 즉위하게 된다
그리고 철종이 왕이 된 후 강화도에 있던 그의 집은 왕의 잠저로서 '용이 흥하게 되었다' 하여 '용흥궁(龍興宮)'이라는 이름으로 격상되었다
이 것이 용흥궁의 유래다
원래는 초가집이었으나 철종이 즉위한 후 강화유수 가 큰 기와집을 지어 확장했다
참고로 현판은 흥선대원군의 친필이며 1903년 이복 형 영평군 이경응의 양자이자 누동궁 종손 청안군 이재순이 중건하였다
건물은 정면 6칸, 측면 2칸의 팔작 지붕 사랑채와 정면 7칸, 측면 5칸의 맞배지붕 안채, 그리고 행랑채와 우물, 대문과 후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건물의 구조는 지붕을 받치면서 장식을 겸하는 공포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으로만 되어 있다
또한 창덕궁의 연경당, 낙선재와 같이 살림집의 유형을 따라 지어져 소박하고 순수한 느낌이 든다
경내에는 철종이 살았던 옛 집임을 표시하는 비석과 비각이 있고 주변은 공원으로 조성되어 시민들의 휴식처가 되어 있다
1995년 3월 1일 인천광역시의 유형문화재 제20호 로 지정되었다
대한성공회 강화성당 (인천시 강화군 강화읍 관청길27번길 10, 관청리 422)
성공회강화성전 현판이 보이고 아래로 이어서 대문이 또 보이고 성당현관 까지 보여 마치 사찰에 일주문 불이문 천왕문을 한 눈에 보는 듯하다
대문 색갈 문양도 한국적이다
내삼문 왼쪽으로 종각과 동종이 보인다
한국의 산사에서 흔히 보는 풍경이지만 종의 문양은 다르다
동종의 문양에 십자가가 있다
문양도 특이하지만 전체적으로 우아하면서도 위엄 이 있는 아름다운 종이다
16세기 종교개혁 때 분리된 영국성공회의 한국교구 로, 1889년 9월 29일 대한성공회 초대주교 찰이스 존 코프(Corfe. Charies Jone 한국명 고요한)가 축성한 건물로 성베드로와 바우로 성당으로 명명 되었다
건축공사는 궁궐 도편수가 주도 하였으며 몇차례 보수가 있었다
본 성당은 한옥교회 건물로서 국내에서 가장 오래 되었다
예배와 풍습은 천주교와 유사한 부분이 있으나, 교리와 관행은 개혁교회의 성격을 띠는 교회이다
천주교나 정교회처럼 주교제도의 전통을 지키고 있으나, 천주교와 같은 세계적 중앙기구나 헌장은 없다
주교, 사제, 부제 등 호칭은 천주교와 같으나 성직(聖職)에 대한 상호 인정은 하지 않는다
성당안에 들어서면 우선 예를 갖추고 경건한 마음 으로 보니 세례대가 반기듯이 앞에 서 있다
성당하면 로마자가 있을 법한데 한자가 있어 한국 종교 당내같은 느낌이다
수기세필거악작선(修己洗必去惡善作 자기를 수양 하고 마음을 닦고 악을 멀리하며 선행하라)글이 명심보감이나 불경에 있는 글귀를 보는 듯하다
뒷편에는 중생지천(重生之泉 거듭 나는 샘물) 글귀 가 있다
내부는 바실리카식 평면구조로 가운데가 높고 양편 으로 날개형으로 되어 있다
위층에는 유리창으로 되어 있어 환하게 빛이 내려 오니 성당분위기가 있는 듯 아주 좋다
12기둥은 예수의 12사도를 의미 한다
1900년 11월 15일에 축성된 전통한옥으로 현존 최고(最古) 교회인데 일제가 태평양전쟁 당시 정문 계단 난간과 종을 뜯어 갔다
이후 일본성공회 성직자와 신자가 축성110주년 기념일에 복원 하였다
영국 출신 수녀인 알마 수녀 기념비(대영국 알마 슈녀 긔념비, 大英國 謁瑪 修女 紀念碑)
온수리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며 초기 강화도 선교를 하던 수녀로 1906년 풍토병으로 숨진 분이다
마당 오른쪽에는 수령이 100년 이상된 보리수나무, 왼쪽에는 회화나무가 서 있다
보리수는 석가모니의 득도를, 회화나무(선비나무) 는 유교의 선비를 상징한다
특히 보리수는 영국에서 돌아오던 신부님이 인도에 서 묘목을 가져와 심었다
먼저 뿌리내린 다른 종교들과의 화합을 상징하는 깊은 뜻이 담겨 있다
♤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은 덕수궁(경운궁) 옆에 있다
한국인 최초의 성공회 세례자이자 최초 한국인 신부가 된 김희준, 해방 후 서울대교구 교구장을 맡았던 김성수주교, 정철범주교 등이 모두 강화출신이다
첫댓글 강화나들길 1코스에서 만나는 용흥궁과 대한성공화 강화성당이군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