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쓰메소세키라고 하면, 근대문학의 최고봉에 위치하는 문호(文豪)라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그는 당시의 귀족원 서기관장이라는 고관의 장녀와 결혼을 하였다. 그러나, 그 결혼생활은 반드시 행복한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만년의 소설 <노방초>는 그의 자전적 작품이라고 말하고 있으나, 거기에는 스스로의 불행한 결혼생활이 농도 깊게 그려지고 있다.
소세키의 분신(分身)인 주인공 겐소는 30대의 대학교수, 아내의 이름은 오스미라고 하며 고급관료의 딸이다. 사람들의 축복을 받는 결혼이었음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두 사람은, 아무리 해도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마음을 닫아 버린 채로 엇갈리기만 한다. <노방초>는 이러한 부부 사이의 갈등을 소세키의 체험에 의해서 묘사한 명작이다.
이 얘기 중에, 잊혀지지 않는 이러한 장면이 있다.
겐소가 조금이라도 생계의 보탬이 되려고 생각하여, 지금으로 말하면 아르바이트를 한다. 거기에는 아내의 살림 걱정을 덜어주려는 대견한 마음이 있었다. 그러나 그가 번 돈을 건네 줬더니 ꡒ그 때 아내는 별로 기쁜 얼굴로 보이지 않았다ꡓ고 하는 것이다.
소세키는, 이 때의 두 사람의 심리를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오스미는 ꡒ만약 남편이 부드러운 말을 곁들이며 그것을 건네주었다면, 분명히 기쁜 얼굴을 할 수가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ꡓ라고 한다.]
한편, 겐소는 ꡒ만약 아내가 기쁜 듯이 그것을 받아 주면 부드러운 말도 걸 수 있었으리라 하고 생각했다ꡓ라는 것이다.
인간의 심리의 미묘한 갈등을 찌른, 과연 문호라는 명성에 걸맞은 예리한 필치라고 나는 감동했다. 한 가지 일을 보면 딴 것도 미루어 알 수가 있다. 서로가 완고하게 상대에 대한 기대와 요구만으로, 자기를 되돌아 볼 여유와 인정이 없었다면, 사사건건 마음의 흠이 깊어질 뿐이다.
이것은 부부 사이만의 문제가 아니다. 가족․친척, 또 이웃과의 교제에 있어서도 명심해야 할 중요한 문제이다. 또한 조직의 동지간에 있어서도, 다분히 통하는 소중한 방정식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또 이러한 장면도 있다. 어느 일요일에, 겐소는 저녁 식사를 혼자 마치고, 방안에 들어앉아 있다. 외출한 오스미의 귀가가 늦어졌다. ꡒ돌아왔어요ꡓ라고 했을 뿐, ꡒ늦어졌어요ꡓ라느니, 뭐니 아무런 말이 없는 그녀의 무뚝뚝함이 그에게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힐끗 돌아다 봤을 뿐 입을 열지 않았다 라고.
겐소의 심정도 무리가 아니라면 그렇게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다만 한 마디, ꡐ늦어졌어요ꡑ라고 말을 걸면 남편의 마음도 풀릴 것을 (기품이 높아서 인지, 겐소와의 냉담한 관계에 마음이 얼어붙은 탓인지) 간단한 한 마디가 오스미의 입에서는 나오지 않는다. 겐소는 아무래도 그 일에 화를 참을 수가 없어, 입을 다물어 버리는 것이다.
귀가가 늦어졌을 때의 심경이라고 하면, 자신의 일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지도 모른다.(큰웃음) 특히 술을 즐기는 장년부라든가,(폭소) 어떻게 해서 속일까하고,(큰웃음) 가슴은 두근두근,(큰웃음) 그런 상황은 총명한 부인인 여러분에게 당장에 탄로가 난다.(폭소) 솔직하게 ꡒ돌아왔어요! 늦어져서 미안해. 적적했었지ꡓ하고 한 마디라도 말을 걸면, 부인 쪽에서도, 그다지 나쁘게 대응할 수 없는 게 아닐까 라고 생각한다.(폭소) 어쨌든 진심 어린 솔직한 ꡐ한 마디ꡑ의 무게는 크다.
또 부인부의 여러분들이 활동 등으로 다소 예정보다도 늦어지는 경우도 있으리라. 그러한 때의 예의바른 귀가 인사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명심해 주기 바란다.
그런데 소설에서는, 겐소가 입을 다물어 버린 뒤, 계속해서 이렇게 쓰고 있다. ꡐ그러자 그것이 또 아내의 마음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는 매개(媒介)가 되었다. 아내도 그대로 서서 주방 쪽으로 가버렸다. 얘기를 할 기회는 그것으로 두 사람 사이에서 끊겼다ꡑ라고.
말을 하지 않는 남편의 태도가 처의 마음을 어둡게 하여, 두 사람 사이를 더욱더 냉담한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원인을 말한다면, 처가 고작 한 마디 진심에서의 솔직한 말을 할 수 없었던 것이 발단이었다. 사소한 일이라면 참으로 사소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사소한 일이 현실을 움직이는 ꡐ큰일ꡑ인 경우가 종종 있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은 상상 이상으로 섬세한 것이다. 마치 조그마한 톱니바퀴가 맞물리어 회전하고 있는 것 같이, 미묘한 심리의 움직임이 일순일순 서로 겹쳐서 움직이고 있다.
그러므로 인정(人情)의 자상한 기미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특히 많은 사람과 접하는 리더는 결코 이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일류의 지도자라면 그럴수록 그러한 인심(人心)의 묘(妙)에 통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많은 세계의 지도자를 만났으나 그 중에서도 정치가로 말하면 중국의 고(故) 주은래(周恩來) 총리가 그러한 지도자였던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지도자에 있어서도 상대의 심리를 경시(輕視)한 일방적인 것이어서는 안 된다. 독선적이거나 으스대는 태도 등이 추호라도 있으면 안 된다는 것은 당연하다.
모든 면에서 인생의 기미에 정통한 교양과 인간성 풍부한 지도자로 성장하기 바란다. 따뜻하고 섬세한 배려를 할 수 있는 리더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보다 많은 사람들이 안심하고 납득하여 불도수행에 면려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현재의 십배 백배 사람들 마음에 불법에 대한 공감의 파도가 침투해 갈 것도 틀림이 없다고 확신한다.
또 어느 때 겐소는 자기 감정을 처에게, 이렇게 말한다.
ꡒ나는 결코 당신이 생각하고 있는 것 같은 냉혹한 인간이 아니다. 다만 당신이 내가 갖고 있는 따뜻한 애정을 가로막아, 밖으로 나갈 수 없도록 응대하니까, 할 수 없이 그렇게 하는 거다ꡓ라고.
어떤 아내도 그렇게 심술궂게 구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항상 그러한 심술궂음을 당하고 있다고 느끼는 겐소는 자기 생각이 아내에게 전혀 통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안다. ꡒ어째서 나를 더욱 세심하게 관찰해 주시지 않는 것일까요ꡓ라고 하는 아내.
겐소에게는, 아내의 말에 귀를 기울일 여유도 없이, 아내의 부자연스런 냉담함에, 화가 날 정도의 고통을 느끼고 있다.
그리고 소세키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ꡒ두 사람은 서로 철저할 만큼, 대화하는 따위는 끝내 할 수 없는 남녀라는 생각이 들었다. 따라서 둘 모두 현재의 자신을 수정할 필요를 느낄 수 없었다ꡓ라고.
이 작품은, 인간의 숙명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생명의 움직임, 부부의 엇갈리는 마음이라는 것을 통하여 생명의 실상의 한 부분을 실로 교묘하게 표현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소세키의 문학적 역량은 ꡐ과연ꡑ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도다(戶田) 선생님은 곧잘 ꡒ읽으려면 일류의 책을 읽어라ꡓ고 청년들에게 말씀하시고 있었다. 우수한 책은 인간의 마음을 풍요롭게 해 주는 것이다.
소세키가 묘사한 겐소 부부의 관계를 보아도 어떻게도 할 수 없는 마음의 엇갈림이, 두 사람의 갈등을 회복시킬 수 없는 사이로 이끌어 간다. 우리들의 현실 생활에 있어서도 ꡐ마음의 엇갈림ꡑ이 여러 가지 갈등과 불행한 관계를 가져오는 경우가 많다. 마음에 여유를 가지고, 허심탄회하게 상대의 입장과 상황을 알아가면, 일어나지 않아도 되는 무가치적인 ꡐ갈등ꡑ은, 훨씬 적어질 것이 틀림없다.
신심의 세계에도 남편이 입신하지 않았다라든가, 친족과 친구가 이해하지 못한다라는 경우에도 의외로 이러한 마음의 엇갈림이 원인이 되어 있는 경우가 많은 게 아닌가 하고 염려한다. 이쪽 편의 일방적인 생각이나 논리의 강요가 아니라, 상대의 입장과 생각을 잘 인식한 후의 언행의 대응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거듭 말씀드려 두고 싶다.
또 <노방초>에서 ꡒ두 사람 모두 현재의 자기를 수정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ꡓ라고 있었으나, 작품을 통하여 두 사람의 업(業)이라 할까, 자기 자신을 지켜볼 수 없는 숙명적인 생명의 경향성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ꡐ숙명전환(宿命轉換)ꡑ ꡐ인간혁명(人間革命)ꡑ을 할 수 없는 인생은, 결국은 숙명의 파도에 떠밀려 버린다. 여기에 숙명전환의 대법(大法)을 수지하고 현실로 인간혁명의 길을 걸을 수 있는 우리들의 행복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 ꡐ격려ꡑ와 ꡐ이해ꡑ와 ꡐ포용ꡑ을
그런데 영국의 격언에 ꡒ결혼 전에는 두 눈을 크게 뜨고 보라, 결혼하고 나서는 한 쪽 눈을 감아라ꡓ라고 있다. 여러분들도 아시겠으나, 이것은 결혼 전에는 상대의 결점을 놓치지 않도록 단단히 주의를 하고, 결혼 후는 다소의 결점이나 흠에는 눈감는 편이 좋다 라는 것이다.
니치렌(日蓮) 대성인은 시조깅고(四條金吾)에게 주신 어초(御抄)에서 「과실이 있다 해도 약간에 과실은 모르는 척 하시라」(어서 1176쪽)고 말씀하시고 있다.
언제까지나 결점을 집어내어 책망을 당한다고 하면, 그것이 옳다고 알고 있어도 싫어지는 것이다. 여기에도 그러한 경험을 가지신 부부도 계실지 모른다.(크게 웃음) 사소한 결점이나 과오(過誤)는 넓은 마음으로 포용해 가는 것이 부부관계나 인간관계를 원활하게 하는 인생의 지혜일 것이다. 부디 결점을 책망한다기보다 장점을 인정하고 칭찬해 가는 너그러운 사람이기를 바란다.
여기에 도키조닌(富木常忍) 부부에 대하여, 니치렌(日蓮) 대성인이 얼마만큼이나 이 부부에게 세심한 자애의 마음을 기울이고 계셨는가를 얘기해 두고 싶다.
도키조닌은 1276년 3월, 돌아가신 어머니의 유골을 가슴에 안고 미노부(身延)의 대성인에게 참예하고 있다. 그 때 도키조닌은 소지한 법화경을 미노부에 두고 돌아갔다. 대성인께서는 이 법화경을 제자에게 들려서 전해 주셨다고 하는 에피소드가 있다. 그 일로 대해서는 「망지경사(忘持經事)」라는 어서에 쓰셨는데 대성인께서는 「지금, 조닌(常忍) 상인은 지경(持經)을 잊으니 일본 제일의 잘 잊어버리는 사람이라」(어서 976쪽)라고 말씀하시고 있다.
그런데 미노부에서 대성인을 뵈러온 도키조닌은 아내에게 병이 있다는 것을 보고드렸다. 아내인 이(尼) 부인은 조닌의 어머니를 헌신적이고 정중하게 간호를 계속해 왔다. 따라서 부인의 병은, 간호의 의한 과로였는지도 모른다.
부인의 상태를 물으신 대성인께서는 당장에 부인 앞으로 서신을 쓰신다. 그것이 「도키니부인답서(富木尼夫人答書)」이다. 이 어서는 모두(冒頭)에 남편과 아내의 기본자세를 화살과 활의 비유를 인용하시어, 말씀하시고 있는 데에서 ꡐ궁전어서(弓箭御書)ꡑ라고도 불리운다.
이 어서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화살이 나는 것은 활의 힘이요, 구름이 흘러가는 것은 용(龍)의 힘이며, 남편의 소위(所爲)는 부인의 힘이로다. (중략) 연기(煙氣)를 보면 화력(火力)을 알 수 있고, 비를 보면 용을 알 수 있고 남편을 보면, 부인을 알 수 있으니 지금 도키전(富木殿)을 만나 보아하니 부인을 만나뵌 것 같이 생각되노라」(어서 975쪽)
즉, 화살이 나는 것은 활의 힘에 의하고, 구름이 가는 것은 용의 힘이다. 남편의 소업은 처의 힘에 의한다. 지금 도키전이 이 미노부(身延)의 산에 오신 것은 이(尼) 부인의 힘에 의한다. 연기를 보면 불을 알고, 비를 보면 용을 알고, 남편을 보면 처를 본다. 지금 도키전을 뵙고 보니, 이 부인을 뵙고 있는 듯이 생각된다 라고.
다시 대성인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고 있다.
「도키전이 말씀하시기를 이번에 어머님의 상사(喪事)에 있어서, 임종(臨終)이 좋으셨다고 하는 것과 부인이 극진히 대하여 간호한데 대한 기쁨은 어느 세상엔들 잊을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고 했느니라」(어서 975쪽)
즉, 도키전의 얘기로는 이번 모친이 서거한 것은 슬프지만, 그 임종의 모습이 좋았던 것과 이 부인이 정성껏 간호해 드린데 대한 기쁨은, 어느 세상에 까지도 잊을 수 없다 라고. 대단히 기뻐하시고 있었습니다 - 대성인께서는 이와 같이 이 부인에게 말씀하시고 있다.
왜 대성인께서 도키조닌의 처에 대하여 감사하는 심정을 서신에 적으셨는지, 아마도 조닌은 처가 어머님을 정성껏 간호해 준 것에 대해 마음속으로 깊이 감사하면서도, 부인에게는 그 감정을 솔직하게 말하여 전할 수가 없었던 것이 아닌가하고 생각된다.
남자이고 무사라는 자부심이, 감사하다는 말을 하는 것을 억제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남자에게는 그러한 감정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또 조닌의 성격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대성인께서는 그러한 사정을 짐작하신 연후에, 조닌을 대신해서 그 감사의 마음․애정을 이 부인에게 주신 서신에 적으셨다고 배견되는 것이다.
여기에 이 부인의 마음을 부추겨 부부의 애정이 한층 깊어지도록 배려하시는 대성인의 자애, 세심한 심정이 나에게는 강하게 느껴져서 어찌할 수 없다. 정말 고마우신 어본불의 대자대비(大慈大悲)이시다.
우리들도 후배와 동지에의 격려에 있어서는 어디까지나 자애 깊고, 자상한 마음의 기미(幾微)를 명심해야 한다고 생각된다. 또 그와 같은 광포의 지도자로 성장해 가시도록 염원해 마지않는다.
제10회 전국청년부간부회 1988년 12월
청년부 가운데에 결혼한 사람도 많이 있다. 또는 지금부터 가정을 가질 사람도 있다. 한 번밖에 없는 인생이다. 충실하고 훌륭한 일생이 되고 가정이 되기 바란다. 그렇기 위해서도 나는 새로운 이상(理想)의 부부상(夫婦像)을 제군이 실현하여 주기를 원한다. 목적관도 없이 감정에 좌우되는 결혼이며 부부이어서는 결국 자기가 불행의 그늘에 빠지고 만다.
오늘 내가 소 명예회장 부부의 이야기를 하는 것도 제군들이 무엇인가 참고로 해 주기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 마음에는 마음, 신의(信義)에는 신의를
소 씨의 부인 소송본(蘇松本) 여사는 실은 일본인이다. 일본이름은 마쓰모토요네코(松本米子)이다. 중화인민공화국(中華人民共和國) 수립후인 1953년, 중국국적을 최초로 획득한 일본인으로서 유명하다. 일중우호(日中友好)의 지보적(至寶的)인 존재였다.
2년 전, 1986년 5월, 81세로 타계하여 금년이 3주기이다. 소 씨는 잡지 ꡐ인민중국ꡑ에 ꡐ처(妻), 요네코(米子)를 그린다ꡑ라는 감동적인 글을 기고했는데 이 두분의 파란만장한 인생항로는 참으로 드라마 그것이다. 멀지 않아 연극 등으로 상연을 계획하고 있다는 말도 있다.
두 분이 결혼한 것은 1929년의 봄. 소 씨는 도호쿠제국대학(東北帝國大學)에 유학 중으로 26세, 요네코 부인은 23세의 봄이었다. 당시 일본은 군부세력이 점차적으로 대두되기 시작하여 일중전쟁(日中戰爭)에의 위기의 징조가 보였다. 그런 가운데 요네코 부인의 부친(도호쿠제국대학교수)을 비롯하여 반대도 많았던 것 같다.
소 씨는 요네코 부인과 아이를 데리고 중국으로 귀국했다. 1931년 9월, 유조호(柳條湖)에서 일본군이 군사행동을 일으켰다. 소위 만주사변(滿洲事變)의 개막이다. 이래 15년간 일중전쟁이 계속된다. 그렇지도 않아도 익숙해지기 않은 이국(異國)땅에서의 생활은 젊은 요네코 부인으로서는 대단한 고통이었다. 생활환경도 일본 보다 혹심했다.
이런 가운데 소 씨는 요네코 부인을 음으로 양으로 지키며 격려했다. 요네코 부인이 먹지 못하는 중국요리가 있으면 맛을 연구하여 먹을 수 있게 한 적도 있다고 한다.
일찍이 도다(戶田) 선생님이 중심이 된 학습회 때 ꡐ여성해방ꡑ을 테마로 하여 입센의 <인형의 집>을 교재로 택하였다. 그 자리에서 선생님이 ꡒ남자는 강한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횡포하게 되지 말고 때로는 이런 책도 읽어 두어야 한다ꡓ고 말하셨던 일이 그리워진다.
남자는 성실하게 여자를 지키고 받드는 신사였으면 좋겠다. 청년부에 있어서는 남자부 제군은 여자부, 부인부를 존경하여 음․양 가리지 말고 도와서 소중히 하는 진심있는 인간이 되어 주길 바란다. 말만 앞서는 사람, 겉치레뿐인 사람은 신용할 수 없다. 현실의 하나 하나에 세밀하게 마음을 쓰며 기원하고 행동하는 - 그것이 참된 신앙자의 모습이다.
소 명예학장 부부는 8명(6남2녀)의 자식을 두었다. 그리고 일․중은 전쟁에 돌입했다. 생활도 고통을 점점 더해 갔다. 남편인 명예학장은 수업이나 연구가 바빠서 자식들이나 가사를 돌볼 여유가 없어져 갔다. 이런 가운데 요네코 부인은 8명의 자식을 교육은 물론 가사 일체를 혼자서 닥치는대로 했다.
남편의 친구나 학생이 방문해 왔을 때도 싫은 표정을 조금도 보이지 않고 따뜻한 마음으로 접대했다. 고통스러운 전쟁 중에 남편의 일을 받들고 자식들을 위하여 진력해 온 요네코 부인. 소 명예학장의 주요연구는 실로 이 고통스러운 시기에 완성되었으며 많은 우수한 학생도 육성했다. 지금은 각 대학의 교수나 연구소장으로 대성(大成)한 학생들은 명예학장 댁을 방문했었을 때의 요네코 부인의 따뜻한 마음을 누구 한 사람 잊지 않고 있었다고 한다.
부인은 소녀시대부터 거문고 타는 것을 제일 좋아했다. 결혼하고 중국으로 갈 때도 거문고를 가지고 갔다. 그런데 전쟁의 고통스러운 생활 속에서는 거문고에 손을 댈 여유조차 없었다. 현재도 그 거문고는 명예학장의 방에 놓여 있으며 줄을 손톱으로 타며 고곡(古曲)의 아름다운 음률을 연주하는 요네코 부인의 모습이 눈에 떠오른다고 소 씨는 기술하고 있다.
광포대원(廣布大願)에 ꡐ혼(魂)의 동지(同志)ꡑ의 유대를
참된 ꡐ환희의 인생ꡑ을 위한 신심(信心)
중국고전(中國古典)의 <시경(詩經)>에는 부부의 애정의 깊이를 금(琴 - 거문고)과 슬(瑟 - 비파)의 소리에 비유한 다음과 같은 시(詩)가 있다.
ꡒ금슬(琴瑟)이 어(御)에 있어 정호(情好)하지 않는 것이 없다ꡓ고 ꡐ어(御)ꡑ란 옆이라는 뜻, 즉 나의 옆에 있는 금이나 슬은 조용하고 아름다운 소리를 낸다. 부부의 애정도 이 금슬의 소리가 조화하여 울리듯이 아름답다는 뜻이다.
소 명예학장 부부도 참으로 금슬의 소리와 같이 부부애가 조화를 이루었음은 틀림없다.
나도 결혼할 때 처가 거문고를 가져 왔다. 당시 이렇게까지 바쁜 생활이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않았으며, (웃음) 가을에는 달을 바라보고 봄에는 꽃을 반기며 처는 거문고를 타고 나는 퉁소나 피리라도 불며(웃음) 또 시도 읊고 인생의 춘추(春秋)의 역사를 엮고 싶었다.
그런데 형편은 완전히 뒤바꾸어(폭소) 광포(廣布)의 법전(法戰)의 폭풍우 속에 뛰어들고 말았다.(폭소) 이것이 우리 부부의 숙명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인생이었다.(대박수)
그러나 요네코 부인이 중국으로 간지 14년 만인 1945년, 전쟁은 끝나고 4년 후에는 새로운 중국이 탄생하게 된다. 그 후 소 명예학장도 복단대학으로 전근하고 생활도 어느 정도 여유가 생겼다.
그러나 어느 날 좋은 옷이라도 만들며 어떻겠느냐 라는 말에 요네코 부인은 ꡒ아이들도 많고 사명도 다 하지 못했다ꡓ며 전과 다름없는 검소한 생활을 계속했다. 마음이 차분하다고 할까, 뜻 없는 돋보임을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자식들도 성장하고 여유가 생기게 되니 부인은 가족위원회의 회원으로서 가정문제의 조성에 임하는 등 사회활동에 참가한다. 어떤 사람에게나 진심과 실천으로 대하며 기쁨으로 사람들을 위해 모든 힘을 다했다. 그 인품은 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았고 문혁(文革 - 문화혁명)의 바람은 명예학장에게도 몰아쳤으나 부인을 비판하는 대자보(大字報)는 한 장도 없었다.
소 명예학장은 ꡒ언동(言動)에 조심하자. 나도 보통 노동자이다. 거만해서는 안 된다ꡓ고 항상 자기 자신에게 주의를 환기시켰다. 이것도 동료나 학생과 대화할 때 큰 소리로 하는 것을 때때로 부인이 주의를 준 것이 계기가 됐다.
소 명예학장의 자계(自戒)의 말에도 있듯이 청년부 제군에게 특히 말해 두고 싶은 것은 아무리 지위가 높아져도 권위적으로 된다든가 거만하고 교만한 인간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언제나 겸허하고 성실하며 진실한 언동을 하는 사람은 역시 빛나고 있다.
학회본부의 어느 부회장은 신입직원에게도 반드시 ꡐ씨ꡑ를 붙여 부르고 있다. 그것은 상대를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의 표현이며, 그 부회장은 좋은 인품으로 인해 후배들로부터 존경을 받으며, 사람들도 그의 주위에 모인다.
오래전 이야기인데 어느 간부가 자기 옆에 있던 사람을 교만한 태도로 막 불러댔다. 그것을 듣고 있던 고(故) 고이즈미(小泉) 전(前)참의회의장이 ꡒ그렇게 거만하게 불러 대는 일은 하지 마시오. 자네도 자신의 힘만으로 지금의 입장이 된 것이 아니지 않소. 그 사람도 훌륭한 청년부원이다. ꡐ군(君)ꡑ 정도는 붙여서 부르는 것이 어떤가ꡓ라고 반성을 촉구한 적이 있었다.
지위라든가 입장은 임시적인 것이며 갈아 입을 수 있는 양복같은 것이다. 반드시 그 사람의 인격의 위대함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그것을 자기가 자못 훌륭해진 것처럼 착각하여 사람을 내려다보거나 경멸하는 것은 본말전도(本末轉倒)인 것이다.
나도 수많은 간부를 보아 왔는데 권위적이며 교만한 마음에 사로잡히는 순간부터 그 사람의 성장은 멈추고 만다. 그리고 결국은 가장 인간적인 세계인 신심의 세계에 있지 못하고 반역을 하거나 퇴전하고 떠나 버렸다.
요네코 부인은 평범한 한 주부였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자기의 역할, 사명을 위해 철두철미하게 끝까지 살아왔던 사람이다. 남편이나 가족 그리고 지역의 사람들에게 여성다운 세밀한 눈과 마음으로 '가장 인간다운 삶의 모습'을 관철한 생애였다고 생각한다.
나는 여기에서 비록 평범하더라도 인간답게 살아가는 신앙자로서의 삶의 자세와 통하는 점이 있다고 느껴짐을 금할 수가 없다. 명예학장 부부의 8명의 자녀들은 모두가 훌륭히 성장하여 각 분야에서 활약중이다.
마키구치(牧口) 초대회장의 부인은 1956년 9월 18일에 돌아가셨으며 금년으로 33주기를 맞이한다. 그 학회장(學會葬)에는 약 3천 명이 참석했는데 도다(戶田) 선생님은 부인에게 속삭이듯이 조사(弔辭)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도 옆에서 들었다.
- 돌이켜 보건대 1944년에 선생님이 돌아가셨을 때의 그 모습을 제가 감옥에서 돌아와서 듣고 실로 인생에 있어서 사람의 마음은 의지하기 어려움을 느끼고 울었습니다. 원하옵건대 나의 힘이 자라는 한 또한 당신께서 살아 계실 때 선생님을 보내드렸다고 듣고 있습니다만 오늘 당신을 보내드리는 창가학회는 적어도 저의 일생을 건 하나의 기록입니다.(중략) 만일 (마키구치 선생님을) 만나시면 죠세이(城聖)는 마음을 다 바쳐 선생님의 뒤를 이어 싸우고 있다고 말씀드려 주시기 바랍니다 - 라고.
나도 도다 선생님의 이 말씀을 절대로 잊을 수가 없다. 이 광포에의 결의로 맺어진 유대야말로 ꡐ창가가족ꡑ이며 ꡐ동지ꡑ이고 ꡐ전우(戰友)ꡑ의 모습이다. 인생의 ꡐ사제(師弟)ꡑ의 강한 유대이기도 하다. 나도 오늘까지 이 결의로 싸워 왔다. 그것은 도다 선생님의 심정이 나의 가슴속에서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야기는 되돌아가서 소 씨는 금혼식(金婚式)을 맞이하여 수십 년에 걸쳐 자기를 받들어 준 요네코 부인에의 감사의 표시로 시를 읊었다.
앵화시절애정심(櫻花時節愛情深)
만리초초공도임(萬里 共度臨)
불관홍안첨백발(不管紅顔添白髮)
금혼가일귀어금(金婚佳日貴於金)
(벚꽃 피는 시절 애정은 깊어
멀리 만리를 함께 건너와서
홍안(紅顔 - 처의 얼굴)에 백발이 곁드는 것도 개의치 않고
금혼(金婚)의 가일(佳日)은 금보다도 귀하다)
또한 소 씨는 돌아간 부인을 그리는 글을 다음과 같이 맺고 있다. ꡒ나는 지금 ꡐ마음에 살아 있다ꡑ라는 말을 깊이 음미하고 있다. ...... 수십 년을 서로 도와 살아 온 처(妻)는 잊을 수가 없다. 밤이 되면 언제나 나와 말을 주고 받던 요네코의 모습을 몽상(夢想)한다. 요네코의 독사진을 언제나 몸에 지니고 있다. 나와 함께 구내(構內)를 산책하고 교단에서 수업을 하며 인민대회당에서의 회의에 참석하는 ......ꡓ
큰 목적을 위해 고락을 함께 해 온 부부. 인생의 만리길을 넘고 넘어 깊고 아름답게 강한 유대로 맺어 온 부부. 그 역사야말로 틀림없이 황금의 빛을 비춰 간다. 그런데 함께 대목적(大目的)위에 선 부부의 모습에는 아름다운 광채가 있다. 사명(使命)에 사는 그 모습이야말로 영원에 걸쳐 맺어진 ꡐ혼(魂)의 동지(同志)ꡑ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제군은 젊고 인생은 길다. 긴 인생에는 각양각색의 고통이나 즐거움, 슬픔이나 고뇌가 있는 것은 당연하다. 하물며 ꡐ대원(大願)ꡑ에 살아가려는 제군에게는 다른 사람의 배(培)의 고난과 고뇌가 있을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ꡐ번뇌즉보리(煩惱卽菩提)ꡑ의 신심이다. 고뇌와 고통을 인생의 큰 도약대로 하면서 어떤 일이 있어도 최후까지 살아가야 한다. 그리고 일보 일보 전진해 주기를 바란다. 눈앞의 고난에 못 견디어 후퇴하는 따위의 비겁자, 패배자로만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도 젊은 제군은 무엇에 들뜨거나 꿈만을 쫓아 덧없는 안일(安逸)과 향락에 취한 인생을 걸어서는 안 된다. 남들이 놀고 있을 때라도 묘법이라는 확고한 법칙 위에 서서 삼세(三世)에 걸친 행복의 토대를 열심히 구축해 주기 바란다. 그것을 위한 ꡐ오늘ꡑ이며 ꡐ내일ꡑ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바이다.(대박수)
생각해 보면, 순조로운 때는 좋았으나 한 때 나의 회장 사임(辭任)의 기미가 보이자 각양각색의 움직임이 시작됐다. 사람의 마음이란 무서운 것이다. 나도 많은 사람에게 기만당하여 함정에 빠지고 속고 고통을 받았다. 또는 내가 몸이 좋지 않다는 것을 들었을 때는 은혜를 원수로 갚는다는 것과 같이 스스로의 악업(惡業)은 제쳐놓고 비방 중상을 계속하는 자도 나타났다.
사람의 마음이란 때와 함께 격심하게 변화하는 것이다. 이것은 어서(御書)에도 말씀이 있으며 도다(戶田) 선생님도 종종 말씀하셨는데 이렇게까지 처절한 것인가, 하고 실감할 수 있었다.
여하튼 ꡐ불법(佛法)은 승부(勝負)ꡑ이다. 나는 그런 여러 장해(障害)들과 싸워 모두 승리했다. 제군들도 신심의 위에서 절대로 져서는 안 된다. 한 번 지면 그것은 인생의 패배일 뿐만 아니라 ꡐ영원한 패배ꡑ에 통하고 만다. 영원한 승리자가 되기 위해서도 이 신심에 있어서 단호히 져서는 안 된다.
고령사회를 생각한다(제2회) 1997년 8월
키신저와 비스마르크
SGI회장: 그 후에도 키신저 박사와 몇 번인가 만났습니다. 긴급한 국제정세부터 인생철학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대화하여 드디어 대담집도 출판되었습니다.
박사가 노후의 삶과 죽음을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이야기하게 됐을 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던 것이 인상에 남습니다.
ꡒ나는 독일의 수상인 비스마르크의 말에 대해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결혼생활 50년인 부인이 앞서 갔지만 그 임종의 순간에 비스마르크는 ꡐ이제 막 시작했을 뿐인데 벌써 끝나는구나ꡑ고 말했습니다. 나는 그것이 인생의 엄함이며 누구도 이 엄함과 맞설 수 없다고 느꼈습니다.ꡓ
마쓰오카: 비스마르크의 결혼생활은 50주년이라고 합니다만 선생님과 사모님도 올 5월 3일로 결혼 45주년을 맞으셨습니다. 나중에 5년 뒤면 금혼식을 맞이합니다.
SGI회장: 도다(戶田) 선생님이 제2대회장에 취임하신 지 꼭 1년째인 날에 본래 성대한 축하총회를 했어야 할텐데 도다 선생님은 오히려 그 날을 우리들의 결혼식으로 정해 주시고 그 해는 본부총회를 하지 않았습니다. 이 스승의 엄애(嚴愛) 깊은 은혜는 한시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마쓰오카: 8년전 어떤 여성잡지의 신년호에서 선생님께서 편집장의 인터뷰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편집장 - 결혼 37주년이 되셨다고 들었습니다. 만나 뵙고 사모님의 따스한 인품을 느꼈습니다. 여태까지를 돌아보고 사모님께 감사장을 드린다면 글귀에 어떤 말을 쓸까요?
선생님 - 그것은 가장 어려운 질문입니다.(웃음) 아내는 내게 인생의 반려자이며 때로는 간호사이고 어머니와 같기도 하며 딸과 같고 누이와 같습니다. 무엇보다 최고의 전우(戰友)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를 든다면 ꡐ미소상ꡑ 일까요?(중략)
우선 금혼식(2002년 5월 3일)을 두 사람이 건강하게 맞이하는 것입니다. ꡐ상ꡑ이라는 문면(文面)은 그 때까지의 숙제로 남겨두겠습니다.(웃음)
다음 세상, 또 다음 세상에도 잘 부탁한다
사사키: 그리고 편집장이 ꡒ한 마디로 어떻습니까?ꡓ라고 하자 선생님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셨습니다. ꡒ음, 나의 진실을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은 아내이고 아내의 성실함과 부지런함을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은 나라고 생각합니다. 아내와의 결혼은 내 인생에 둘도 없는 행운이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ꡐ다시 태어나면 다음 세상에도 또 다음 세상에도 영원히 잘 부탁한다ꡑ는 것이겠지요. ꡒ
감사장이 아니라 위임장이 되어 버립니다만.(웃음)
SGI회장: 예리한 질문을 계속 던지는 여성 편집장으로 추격의 손을 늦추지 않았습니다.
마쓰오카: 부탁드립니다만 이번 연재에서 테마에 따라서는 각각의 전문 분야의 손님을 맞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의 손님으로 부디 사모님도 등장하신다면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SGI회장: 본인의 사정도 있고 계속 진행되는 걸 봐서 다시 생각해 봅시다. 제군이 어떻게 생각할지 여러 가지 요망도 있고......
사사키: 독자 여러분도 그 실현을 위해 응원 부탁드리겠습니다.
라이너스 폴링 박사와의 대화(네 번째 만남)
1993년 3월
회장 : 박사의 사모님에 대해 여쭈어 보아도 괜찮겠습니까. 박사의 업적은 대단히 유명합니다만, 사모님에 대해서는 일본에서도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박사가 가장 사랑하시는 사모님을 잃으셨을 때의 기분을 생각해 엄숙한 마음으로 여쭙겠습니다만, 사모님은 어떤 병으로 돌아가셨습니까.
박사 : 위암입니다. 일본에서는 발생율이 높은 병입니다만, 미국에서는 그렇게 많지는 않습니다.
아내는 수술을 받고 위의 일부를 도려내어, 일단은 회복도 순조로워 5년간 수명을 연장했습니다. 그러나 5년후 재발해 그 때는 이미 손쓰기에 늦은 때였습니다.(1981년 12월 서거)
아내를 잃은 후, 나는 고독한 '은자(隱者)'와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물론 아이들이나 손자, 동료들과는 만났습니다만, 나에게는 이제 인간과 관계할 필요가 없어진 듯이 생각되었던 것입니다.
회장 : 그 비통한 심정을 알겠습니다. 그런데 사모님과는 어떻게 만나셨습니까.
박사 : (웃는 얼굴로) 매우 흥미로운 질문이군요.(웃음) 왜냐하면 나는 젊은 사람들에게 자주 이렇게 말합니다.
ꡒ젊은 남성이 젊은 여성에게 흥미를 갖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그러나 자신은 한평생, 이 사람과 함께 있고 싶다고 정말로 생각하고 있는지 어떤지, 주위를 둘러보면서 잘 생각해 보세요.(웃음) 그리고 최종적으로 결심했다면 결혼해서 함께 행복한 인생을 걸어가세요ꡓ라고.
회장 : 귀중한 어드바이스입니다.
박사 : 단, 나 자신의 경우는 조금 달랐습니다.(웃음)
나는 20세 무렵, 오레곤 농과대학(현 오레곤 주립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습니다. 그 마지막 시기에 25명의 여성의 클레스에서 화학 강의를 했는데, 그 중에 한 사람 특히 우수하고, 또한 아름다운 여성이 있었습니다.
ꡐ내가 선택한ꡑ 그 여성이 아내였습니다만, 실은 내쪽이 그녀에게 ꡐ선택받은ꡑ 것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았습니다.(웃음) 결혼하고 나서 3, 40년 후의 일로 됩니다만, 내가 그 증거를 잡은 (웃음) 일을 말씀드리죠.
어느 날, 나의 아내가 강연회의 강사로서 초청 받아 토론토(캐나다)로 갔습니다. X염색체(인간의 성별(性別)에 관련된 염색체의 하나)에 대한 강연이었는데, 그녀는 일면은 '과학자'로서, 일면은 '여성' 입장에서 말한 것 같습니다.
강연이 끝나자, 청중 가운데 한 사람의 여성이 아내에게 와서 말하기를 "대단히 훌륭한 강연입니다만, 한 가지 불만이 있습니다. 당신은 페미니스트(여권론자)라고 들었습니다만, 겉의 간판은 '미세스 라이너스 폴링'(라이너스 폴링 부인)으로 되어 있습니다. 어째서 ꡐ자기 자신의 이름ꡑ으로 바꾸지 않는 것입니까ꡓ라고.
회장 : 정경이 눈에 보이는 듯합니다.
박사 : 그 의견에 대해 아내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ꡒ나는 시골 농장에서 태어나, 에바 헬렌 밀러라는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이 이름은 스스로 선택한 것은 아닙니다. 아기인 나에게 붙여진 것입니다. 그러나 ꡐ미세스 라이너스 폴링ꡑ은 내가 ꡐ스스로 선택한ꡑ이름인 것입니다."
ꡐ나의 인생의 승리는 아내의 승리ꡑ
아내의 영향으로 ꡐ평화ꡑ에 눈을
회장 : 사모님의 따뜻한 인품, 기지 그리고 강한 부부애가 배어 나온 이야기입니다. 박사가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셨을 때의 스피치는 대단히 유명합니다. 오슬로(노르웨이)에서 수상하신 직후, 차속에서인가 호텔에서인 사모님과 두 분만 계셨을 때 어떤 대화를 하셨습니까.
박사 : (곰곰히 생각하며) - 아내는 자기 스스로 만족감을 맛보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나도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ꡐ세계평화ꡑ에 관심을 갖고, 그를 위해 일하게 된 것은 그녀 덕분입니다. 그 일에 의해 내가 노벨 평화상을 받은 것은 간접적으로 그녀가 성공한 것으로 되는 셈입니다.
회장 : 훌륭한 말씀입니다. 사모님은 훌륭하게 승리하셨습니다. 부부일체의 승리입니다.
ꡐ세계를 이해하는 마음ꡑ을 가르친 아버지
박사 : 결혼 후, 아내는 내가 가능한 한 ꡐ생산적ꡑ이고 ꡐ효과적ꡑ으로 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생활이나 아이들의 일로 나를 번거롭게 하지 않도록 일체를 맡아 주었습니다. 덕분에 나는 모든 시간을 연구에 몰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아이들도 아내의 그러한 생각을 알아주었던 것 같습니다. 아이들에게 있어서도 ꡐ좋은 어머니ꡑ였습니다.
제13회 전국부인부간부회 1990년 09월
박사는 자신의 생애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네 명의 스승을 들고 계셨는데, 그 중 한 사람은 박사의 부인이었다.
대담집의 도처에 9년 전에 돌아가신 에바 부인에 대한 깊은 ꡐ애정ꡑ과 ꡐ신뢰ꡑ와 ꡐ존경ꡑ이 엿보이고 있다.
박사는 진지하게 말씀하시고 계신다.
ꡒ나에 대한 칭찬의 말을 받을 자격은 아내에게 있는 것입니다. 어쨌든 오랫동안 세계평화를 위해 내가 일할 수 있게 고무해 주고 격려해 준 사람은 아내이기 때문에ꡓ라고. 평화를 위한 ꡐ전우(戰友)ꡑ이며 ꡐ동지ꡑ였던 박사와 부인과의 아름답고도 존귀한 마음의 연대가 (가슴에)와 닿는 한 마디이다.
박사는 70년쯤 전의 젊은 날의 부인과의 만남을, 그리운 듯이 또한 즐거운 듯이 회고하고 계셨다.
부인은 농가의 12남매 중 10번째였다. 두 사람의 결혼은 박사가 22세, 부인은 19세 때이다. 부인은 박사가 젊어서 대학의 교단에 섰을 때 가르친 학생(여학생)이었다.
결혼식도 20명 정도의, 조촐한 출발이었다고 한다. 최근의 결혼식은 차츰, 돈을 들여 화려한 것으로 되고 있는 듯하다. 그것은 자유지만 인생의 최후가 가장 중요한 것이다. 결혼식을 겉치레로 화려하게 했다고 해서 절대로 인생의 진실한 행복이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보잘것없는 결혼식이었던 사람 쪽이 인생의 총마무리에 빛나는 모습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다.
결혼은 서로 사랑하는 두 사람의, 행복한 인생으로의 새로운 출발이다. 친한 사람들이 진심으로 축복해 주시는 것이라면, 그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여러 가지 사정도 있겠지만, 결코 화려하게 할 필요는 없으며, 또 다른 사람의 결혼식을 부러워하는 일 따위는 전혀 필요가 없다.
폴링 부인은 결혼한 후에도, 박사를 선생님으로 삼아 ꡐ개인수업ꡑ을 받으면서 열심히 공부했다.
배움의 인생 - 이것은 아름다운 것이다. 얼마 전에 만난 멕시코, 과나화토대학의 에르난데스 전(前)총장부인도 10명의 자식을 모두 대학까지 보내(그 중 8명은 모두 졸업) 훌륭하게 키워 오셨다. 그리고 58세가 되신 지금도 두 분이서 일본어 공부를 시작하셨다고 한다.
에르난데스 전(前)총장은 창대생(創大生)을, 다음과 같이 격려해 주셨다.
ꡒ배움의 때라는 것은 시간과 더불어 가치가 나온다. 평생 계속 배우는 데에 인간으로서, 보다 나은 인간으로서 ꡐ자신의 문제ꡑ ꡐ가족의 문제ꡑ ꡐ인류의 문제ꡑ를 해결해 가는 인간이 될 수 있다ꡓ라고.
그런 의미에서 부인부 여러분이 ꡐ문화철학대학교ꡑ를 개설하여, 여러 가지 분야의 일을 배우고 계시는 것은 참으로 훌륭하다.
그 중에서도 이 불법을 진지하게 구하고 배워가는 일이 얼마나 존귀한가. 얼마나 존귀한 가치 있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학회는 최고의 인생의 삶의 방법을 창출해 내어 그것을 현실에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참된 올바른 길이며 시대의 선단(先端)인 것이다.
그런데 이야기는 폴링 부인의 일로 되돌아가지만, 에바 부인은 언제나 상쾌한 미소를 잃지 않고 유머가 넘치는 명랑한 여성이었던 것 같다. 저 아인슈타인 박사도 에바 부인의 일을 매우 마음에 들어했다고 들었다.
77세로 돌아가실 때까지 부인은 네 명의 자녀에게 좋은 어머니이며 15명의 손자에게는 좋은 할머니였다. 세 명의 증손에게도 깊은 애정을 쏟으셨다. 에바 부인은 대학에서 영양학을 배웠으며, 그다지 건강하지 못했던 박사를 위해서 충분히 음식을 연구하여 박사의 건강을 지탱했다고 한다.
내가 폴링 박사에게 ꡐ좋아하는 음식은ꡑ이라고 물었을 때, 박사는 맨 먼저 아내가 손수 만든 사와크림(생크림을 발효시킨 것) 케익을 드셨다.
이런 가정적인 측면과 함께 부인은 신념의 행동을 관철하는 ꡐ강한 사람ꡑ ꡐ현명한 사람ꡑ 그리고 '지지 않는 사람'이었다.
폴링 박사는 이런 에피소드를 담담하게 이야기해 주셨다.
- 그것은 일본과 미국의 전쟁중의 이야기이다.
어떤 사람으로부터 에바 부인에게 일본계 청년을 정원사로 고용해 달라는 의뢰가 있었다. 전시중인지라, 실업(失業)도 많았던 시대의 일이다. ꡐ개인의 인권ꡑ을 무엇보다도 소중히 생각하고 있던 부인은, 청년이 일본계라는 것에 관계없이, 이 의뢰에 쾌히 응했다.
그런데 그날 밤, 당장 폴링가(家)의 차고에는 "미국인이 죽어가고 있는데, 폴링은 '일본인'을 소중히 하고 있다"라는 낙서가 페인트로 크게 쓰여 있었던 것이다.
이 사건은 신문에도 보도되어 박사 부부에게는 협박편지도 몇 통 배달되었다. 악평도 꽤 들은 것 같다. 그러나 박사와 부인은 그래도 그 일본계 청년을 해고하지 않고, 계속 보호했던 것이다.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인간에게는 끝까지 살아나갈 권리가 있는 것이니까'라고. 이렇게 박사 부부에게는 만사에 일관된 시원시원한 신념의 행동이 있다.(박수)
사람들의 편견에 의한 협박이나, 악의에 찬 평가 ―. 이제까지 나도 여러 가지로 중상(中傷)을 받고, 악의의 평판을 들어 왔다.
그러나 그것들의 본질은 정법유포의 발전의 모습에 대한 질투임에 틀림없다. 대성인은 일본국을, 일천제(一闡提; 정법불신의 중생)가 낳아서 넓혀놓은 나라라고 부르고 있다. 정법비방의 사람들은, 마음 속은 ꡐ감옥ꡑ처럼 불신과 증오로 닫혀져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런 악의의 중상(中傷)에 농락되어, 신심의 대도(大道)를 물러서는 것은 생명의 패배를 의미한다. 오히려 그런 저차원의 중상이나 악평은, 도리어 위대한 정의의 '증명'이 된다. 어서를 배독하면 광포의 올바른 수행에는 ꡐ삼류의 강적ꡑ ꡐ삼장사마ꡑ가 반드시 발생한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전시(戰時)중에 폴링 부부는 장남을 전장(戰場)에 보냈다. 그런 경험을 가진 어머니로서의 마음을 다해 에바 부인은 전후(戰後), 남편과 함께 평화를 위한 활동을 개시한다.
ꡒ자식을 괴롭힌 전쟁을 두 번 다시 일어나게 해서는 안 된다ꡓ ꡒ평화를 위해서 싸우자ꡓ라고 결의하고 핵병기 폐절을 위한 활동에 일어선다. ꡐ핵의 힘ꡑ에 대한 ꡐ정신의 힘ꡑ의 싸움 ―. 부부는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부지런하게도 일심동체로 새로운 사명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존귀한 무상(無償)의 행동을 계속하는 부부에게 불합리한 압박이 가해졌다.
1950년으로부터 수년 간 미국에서는 맥카시 선풍(맥카시 상원의원들에 의한 공산주의를 비롯한 사상. 언론에 대한 탄압)이 폭풍우처럼 불었다.
그런 가운데서 폴링 박사는 몇 번이나 취조를 받고, 외국에도 갈 수 없도록 여권도 몰수당했다. 또 대학에서는 학과장직을 해임당하고 급여(給與)도 감액(減額). 그리고 연구실을 내놓도록 강요당한 것이다.
- 대담에서는 이 이야기를 특히 상세하게 말씀하시고 계시지만, 여기서는 생략하기로 한다.
이런 속에서도 어째서 박사가 정의의 신념을 계속 관철할 수 있었던 것일까.
박사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ꡒ(핵병기 반대의 입장을 취한다고 하는) 결단을 촉구하는 결정적인 계기는, 아내로부터 변치 않는 존경을 받고 싶다고 하는 나의 소원이었습니다ꡓ라고 -. 부부는 평화에 대한 강한 ꡐ동지애ꡑ로 맺어져 있었던 것이다.(대박수)
정말로 부부간에 있어서 ꡐ여성은 활ꡑ ꡐ남성은 화살ꡑ이다. 여성이 의연한 자세라면 남성도 용감하게 인생의 궤도를 올바르게 나아갈 수 있다. 반대로 여성이 의지가 꺾여 버리면 남성도 타락해 버린다.
신앙의 세계에 있어서도 신심이 훌륭한 장년은, 그 이상으로 신심 강성한 부인이 떠받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반대로 배신자, 퇴전자의 경우는 부인의 신심도 약하고 광포의 활동을 피하고 있거나 또한 겉치레에 빠져서 세간적인 허영에 사로잡히고 있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라고 해도 좋다.
그런 의미에서 부인부 여러분의 사명은 참으로 중대하다. 이것은 이 40년 동안, 많은 분들의 신심의 모습을 보아 온 나의 결론이다. 아무쪼록 현명하고도 의연한 신심을 관철하는, 부인부 한분 한분이기를 바란다.(대박수)
제32회 본부간부회․제3회 전국장년부간부회
1990년 8월
사랑하는 두 사람이 결혼했다. 이제 그것으로 됐다(웃음)라고 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결혼한 후 어떻게 하는가. 그것이 두 사람에게 있어서는 중요한 것이다.
가족의 접촉에 있어서도 가령 남편이 귀가했을 때 ꡐ다녀왔어요ꡑ ꡐ아, 그래요ꡑ(큰웃음)하고 만다면 그 뿐이다. 귀가 후, 어떻게 일가의 단란한 한때를 만드는가 이다.
우리들의 활동에 있어서도 ꡐ친구를 입신시킬 수 있었다. 이젠 됐다ꡑ고 해서는 안 된다. 입신한 친구를 어떻게 훌륭하게 육성해 가는가. 그것이 중요하다.
결혼에 대하여
마사코는 갑자기 도다 곁으로 다가가서 작은 소리로 말했다.
ꡒ선생님ꡓ
ꡒ왜그래ꡓ
그녀는 입을 다물고 좀처럼 말하지 않는다.
도다는 상냥하게 말했다.
ꡒ말해 봐, 무엇이든 들어줄께ꡓ
ꡒ선생님….., 저는 도쿄로 나가고 싶어요ꡓ
ꡒ어째서?….., 아 결혼 문제인가ꡓ
마사코는 엉겁결에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도다가 이미 간파해 버린 것이다. 가슴속으로 놀랬다.
ꡒ초조해져서는 안돼.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ꡓ
도다는 짧게 한마디 했다.
ꡒ그렇지만 선생님, 저는 소개(疏開)해 온지 이제 3년이나 됩니다. 말은 여러 번 있었습니다만 전부 틀렸어요. 무엇보다도 이런 산속에서 나에게 맞는 사람을 찾을 수 있을 리가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무래도 도쿄로 나가고 싶습니다.ꡓ
그녀의 말에는 굳은 결의가 담겨 있는 듯 했다. 마사코로서는 당시 많은 여성과 같이 전쟁이 혼기를 늦추고 있었던 것이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그녀는 나스의 산골에 있지 않으면 안되었다. 적령기는 신속하게 도망치는 것 같이 생각됐다. 그녀는 어느덧 초조해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ꡒ도쿄에만 가면 좋은 상대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보지? ꡓ
ꡒ그렇게 생각합니다만
ꡒ찾을 수 없다. 초조해져서는 안돼. 불행하게 될 뿐이야.ꡓ
그녀는 실망의 빛을 띄며 고개를 떨어뜨렸다.
ꡒ정확하게 신심을 해봐요. 속았다고 생각해도 좋으니, 멋진 신심을 관철해봐요. 산골에 있든 도시에 있든 당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훌륭한 사람을 꼭 만날 수 있다. 어떤 순서로 그렇게 될지 그것은 모른다. 그러나 반드시 그렇게 된다. 장소가 문제가 아니야, 신심이야. 그렇지 않으면 어본존님은 거짓이야.ꡓ
도다의 지도는 언제나 장소에 관계없이 형식에 치우지지 않았다. 사람에 따라서는 자신의 일생을 좌우할 수 없는 문제로 지도를 받고 있는 것이다. 그 순간의 감정론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지도를 하면 인생을 그르치게 하고 만다. 그래서 도다는 끊임없이 묘법을 근간으로 동요하지 않는 신심의 입장에서 목숨을 걸고 임했다.
ꡒ걱정할 것 조금도 없어. 신심으로 자기의 숙명을 크게 열어나가는 것이다. 내가 계속 돌봐 주겠다. 절대로 초조해져서는 안돼요ꡓ
그는 엄격한 어조로 말했다. 마사코는 깊이 수긍하며 납득했다. 도다는 마사코의 손을 잡고 상냥한 아버지처럼 타일렀다.
ꡒ힘을 내야 해. 비굴해져서는 안돼. 나스에서 마음껏 뛰어요. 신심으로 말이야ꡓ
그녀는 어느덧 눈물 짖고 있었다.
인간혁명 2권 기산하(幾山河) 중에서
ꡒ저는 여기에서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습니다. 스위스 분으로 결혼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들이 그것을 어떻게 생각할지 알 수 없습니다. ꡓ
ꡒ결국 고민하시는 것이 결혼문제로군요. 결혼에 대해서는 결코 조급하게 서둘 일이 아닙니다. 당신 자신이 한평생 함께 살아도 후회가 없는 사람인지, 이 사람을 신뢰하며 서로 사랑해 갈 수 있는지를 냉정하게 생각한 후 결정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상대의 인품은 어떤지, 생활습관이나 언어의 차이를 초월하여 함께 살아갈 수 있는지, 또 신조나 가치관에 있어서도 부부로서 서로 이해할 수 있는지, 특히 아드님의 일이나 경제적인 문제 등을 숙고해서 ꡐ이 사람과 함께 라면 무슨 일이 있더라도 열심히 살아갈 수 있다ꡑ 고 생각되면 결단을 내려도 되겠지요. 그리고 아드님과 만날 수 없는 상태라면 편지를 통해서라도 솔직하게 대화해 보는 것입니다.
다만 한가지 중요한 것은 결혼하면 행복하게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확실히 결혼하면 일시적으로는 행복하다고 느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긴 인생에는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 없습니다. 결혼으로 인해 고통스럽고 괴로워 해야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행복한 결혼생활을 할 수 있는가 없는가는 그 후 부부의 노력여하로 결정됩니다.
또 결혼하여 환경이 바뀌었다고 해서 자기의 숙명이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어디에서 누구와 살아도 병의 숙명이 있다면 병으로 고생하지 않으면 안되며 경제고의 숙명이 있으면 경제고로 괴로워 해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그 숙업을 어떻게 타개해 가는가가 중요합니다. 그리고 어떤 고뇌에도 지지 말고 당당하게 극복해 갈 수 있는 생명력을 키워 가는 것입니다. 그 원천이 신심입니다. 그러므로 행복하게 되는지 어떤지, 그 거울은 신심에 있습니다.
행복이라는 것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의 생명 속에 있습니다. 우리들의 흉중에 행복의 다이아몬드가 행복의 대궁전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일이 있더라도 신심근본으로 자기 생명을 연마해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위의 친구분들에게도 불법을 가르치며 모두를 행복하게 해 주십시오. 그것이 당신의 사명입니다.
ꡒ하지만 저 같은 사람도 남을 행복하게 해 갈 수 있을까요. ꡒ
ꡒ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누구보다도 행복해 질 수 있으며 모두를 행복하게 해가는 최고의 자격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것이 불법의 원리입니다. ꡒ
신인간혁명 5권 2장 환희 中에서
ꡒ선생님 행복한 결혼이라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ꡓ
ꡒ그것은 결혼해 보면 제일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결혼해 보고 불행한가 행복한가 자신이 알 수 있지 않습니까?ꡓ
간단명료한 도다의 답변에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온후한 여자부 간부는 그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ꡒ아니에요, 선생님, 우리들은 결혼하지 않으면 행복해 질 수 없다는 것입니까. 결혼해서 불행하게 된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어쨌든 행복하게 되기 위해서 결혼하는 것입니다. 행복한 결혼이라는 것은 어떤 결혼을 말하는 것입니까?ꡓ
도다는 그녀의 얼굴을 가만히 보고 있더니 갑자기 알았다는 듯이 말했다.
ꡒ당신은 지금 연애하고 있군요?ꡓ
ꡒ그런가, 중요한 일입니다. 여성에게 있어서 결혼은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것을 적당히 생각한다면 여자부원의 자격이 없다고 해도 좋습니다. 그러나 욕심에 눈이 어두워져선 안됩니다. 결혼에 가장 중요한 요인을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ꡓ
ꡒ그것은 애정입니다.ꡓ
한 구석에서 씩씩한 소리가 들여왔다.
ꡒ애정이 틀림없긴 하지만, 이 애정이라는 것이 무척 성가신 문제입니다. 이치가 아니라 ꡐ좋아한다ꡑ는 감정을 어디까지 관철시킬 수 있는가가 문제입니다. 예를 들면 남편이 정신이상자나 죄수가 됐다고 합시다. 그래도 변함없이 끝까지 사랑하는 그것이 여자의 인생이 아닌가 하고 생각합니다. 그런 애정을 바쳐도 후회하지 않을 남성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성은 애정제일이지만 남성은 다릅니다. 남자는 명예나 지위나 일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생활을 책임지겠다는 자각도 있고, 거기에 삶의 보람도 느끼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자신의 명예를 희생하는 사람은 적습니다. 여기에 남녀의 본질적인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ꡓ
ꡒ선생님, 그렇다면 불공평하지 않습니까. 여자쪽이 손해인데요.ꡓ
장난기가 있는 여자부가 갑자기 끼어 들어 도다에게 물었다.
ꡒ남녀간의 일이란 손이냐 득이냐를 가지고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있습니다. 어쩔 수 없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나는 남자이기 때문에 잘 알고 있습니다. 손해라고 생각되면 우선 여성이 뜻하는 대로 남편을 끝까지 사랑하고, 또한 명예도 지위도 가질 수 있는 인생을 남편으로 하여금 걷게 하면 되지 않을까요. 그러기 위해서는 단지 애정만 있으면 가능하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을 위해서도 결국 신심을 근본으로 열심히 살아가는 길 밖에 없습니다. 어본존을 수지한 인생은 그러한 모든 것을 양립시켜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남편을 그렇게 할 수 없는 부인이라면 도리가 없지 않겠습니까.
결혼생활의 행, 불행도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ꡓ
도다가 이렇게 힘주어 말하고 있을 때 비교적 나이가 있는 한 여성이 손을 들고 말했다.
ꡒ선생님, 결혼은 꼭 해야 하는 것입니까? 저는 지금 이대로 광선유포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그것으로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 일생을 집중시킬 수 있는 일이 있는 이상 구태여 번거로운 결혼 같은 것을 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만.ꡓ
ꡒ저도 결혼하고 싶지 않습니다. 기요하라 가쓰 선생님처럼 독신으로 살고 싶습니다. 그 대신에 무엇보다도 광선유포를 위해 몰두하는 혁명아의 인생을 보내고 싶습니다.
ꡒ기요하라 여사가 이상의 여성인가. 놀라운 사실이군. 여자부 속에 남성 거부당이 있는지 몰랐다.ꡓ
도다는 큰 소리로 웃었다.
ꡒ표준이 기요하라 가쓰인가. 그녀는 천명에 한 사람 정도로 여간해서 나오지 않는 여성입니다. 기요하라는 특별합니다. 표준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ꡓ
ꡒ그렇지만 선생님, 연애하거나 결혼하면서 퇴전하는 사람이 상당히 많습니다. 퇴전까지는 하지 않더라도 결혼하고 부인부로 가면 여자부 때와는 달리 남편이다 아이들이다 하며 활동이 둔해져 신심이 나태해진 사람도 있습니다. 결혼을 하게 되면 지금처럼 열심히 신심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합니다만.ꡓ
그녀들은 신심문제를 생각하며 결혼에 대해 대단히 불안해 하고 있었다. 그리고 결혼거부까지 생각하기에 이르자 더욱 불안해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도다는 그것을 알고 웃지 않을 수 없었다.
ꡒ여러분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광선유포가 마치 여성을 중성(中性)으로 만드는 것 같군요. 불법은 최고유일의 도리를 설하고 있는 것입니다. 중성이 되기 위해서 신심하는 것은 아닙니다. 가장 자연스럽고 강하게 살기 위한 신심입니다. 남성은 남성으로서 여성은 여성으로서 최고의 생명력을 빛내며 인생의 행복을 만끽하기 위해 신심에 면려하는 것입니다.
남성의 흉내를 내는 여성이 되기 위해서도 아니며, 하물며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별할 수 없는 인간이 되기 위한 것도 아닐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나가 적령기가 되면 결혼하는 것은 극히 자연적인 이법(理法)입니다. 다만 적령기가 되었다고 하는 것만으로 적당하게 결혼해서는 안된다고 나는 말하고 싶을 뿐입니다.
오늘 밤은 햇병아리 여성 혁명가가 많은데 지금까지의 역사적인 혁명여성을 잘 봐요. 거의가 결혼해서 훌륭한 부인이 되고 어머니가 된 사람들입니다. 하물며 최고의 진리를 설한 불법을 신봉하는 여성이 결혼 거부자가 된다면 나는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런 혁명아는 필요없습니다.
어떻게 해서 그런 편파적인 생각을 갖게 되었을까?
앞서 말한 결혼으로 활동이 둔해졌다는 여자부원도 좀더 관용을 가지고 보지 않으면 안됩니다. 학회의 뜰에서 자라난 사람들이 아닙니까. 안심하시오. 좀더 긴 안목으로 지켜봐 줘야 합니다.
나의 날개 밑에서 자란 사람들입니다. 결국에는 각자에게 어울리는 꽃을 반드시 피울 것입니다. 그것이 어본존을 신봉하는 굉장한 힘입니다.ꡓ
ꡒ이 중에는 연애를 하고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연애의 즐거움은 천계입니다. 그래서 낮은 것입니다.
연인끼리 목숨을 버리는 정사(情死) 같은 것은 천계의 지옥계입니다. 결코 저 세상에서 함께 할 수 있는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생명은 영원하며 엄합니다. 영원히 지옥계에서 고통 받는 것입니다. 연애를 하면, 서로 인격을 향상시켜 가지 않으면 안됩니다.
남자의 뒤를 쫓아가는 얕은 연애를 해서도 안됩니다. 내 뒤를 따라오세요 라는 정도의 기개를 가질 때 비로소 진정한 근대여성입니다. 어쨌든 그 전에 신행학에 면려해서 자기 생명에 반석 같은 복운을 쌓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자연히 훌륭한 상대도 발견할 수 있고 모든 사람으로부터 축복 받는 결혼도 할 수 있습니다. 요컨대 자신의 복운에 의해 결정됩니다.
젊은 시절의 연애는 남자를 보는 눈이 없어 위험한 면이 있습니다. 10명중에서 제일이라고 생각해도 20명, 30명 속에 들어가 보면 더 좋은 사람이 있습니다. 또 백 명 중에서는 어떤가 하면, 그 사람이 꼭 제일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다시 다른 훌륭한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이 좋아집니다. 그러므로 너무 젊었을 때 천박한 연애를 하는 것을 나는 찬성할 수 없습니다.
사랑은 일생에 한 번 생명을 걸고 하면 됩니다. 정열은 소가 침을 흘리는 듯한 그런 것이 아닙니다.
남자는 알몸으로 놓고 보지 않으면 그 위대함을 모릅니다. 지위나 재산이나 학력 따위로 평가하는 것은 무서운 일입니다. 좋은 양복을 입고 좋은 자리에 있어도 참으로 남자다운 남성이 도대체 몇 사람이나 있을까. 지위, 재산, 학력, 개인적인 감정 등을 전부 제쳐 놓고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모든 허식을 남자로부터 제거하고 보지 않으면 진가를 모릅니다. 모든 것을 벗어 던진 그 남자 속에 무엇이 있는가를 밝혀 가는 것입니다.
젊었을 때는 연애에 눈이 어두워져 그것이 보이지 않을 경우도 있습니다. 이럴 때는 누군가 존경하는 선배와 의논하면 됩니다. 여러분들을 진정으로 생각하고 있는 부모의 의견도 존중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의 나이 때는 단지 좋아하는 사람과 만나면 필시 행복해진다고 생각할 테지만 인생은 깁니다. 뜻하지 않은 쓰라린 고생도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남편과는 사이가 좋아도 예를 들어 소아마비 자식이 태어날 경우도 있습니다. 긴 인생에 있어서 애정 외길로 산다는 것도 힘든 일입니다.
행복을 느끼기 보다 불행이 많다고 느껴지는 것이 인생의 실정인지도 모릅니다. 행복한 결혼은 뭐니뭐니 해도 긴 인생을 어떻게 보내는가라는 문제입니다. 행복은 자신의 신심으로 만드는 것이라면 결혼도 이 일점에 귀착한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하면 긴 인생을 어떤 일이 있어도 한 남성과 함께, 같은 위대한 목적을 가지고 걸을 수 있는 것에 결혼의 진정한 행복이 있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이것을 할 수 있는가 없는가, 상대인 남성을 깊이 간파하고 나서 자신에게도 되물어본 후에 결정하기 바랍니다.ꡓ
인간혁명 7권 날개 밑
ꡒ내가 말하는 것을 믿을 수 없는 사람은 지금 곧 이 방에서 나가시오. 특별히 내가 애원해서 따라오게 할 필요는 없습니다. 나를 믿고 무슨 일이 있어도 함께 싸워가는 자의 모임이 학회 최대의 기본자세입니다. 이 방에 들어오면 나의 이 기개에 감응해 주기 바랍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너무도 잘 읽었습니다. ^-----------^
감사합니다 ^^
잘 읽었습닏. 감사합니다~ ^^
저에게 꼭 필요한, 정말 어디에서도 들을수 없는 지도였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