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은 그런 거 아녜요 / 조춘호 (경인지부)
어릴 적 내 별명은 ‘왜 쟁반’이었다.
“우리 춘호는 왜 쟁반, 헤벌이야. 호호호.”
할머니가 말씀하셨던 기억이 또렷하다. 일본쟁반처럼 크고 둥근 얼굴에다 벙글벙글 웃기까지 잘해서 붙은 별명이었다.
사람들은 두상이 커서 머리가 좋다고 하였다. 그래선지 초등학교 입학 후 내 학교 성적표에는 늘 1등이라고 적혀 있었다. 큰 얼굴에 박힌 눈코입이 과히 밉잖게 생겼고 쌍꺼풀 눈에다 눈썹까지도 숱이 많고 까맸다. 거기에 어머니 흰 피부를 유전으로 받았다.
“춘호 눈썹에는 호랭이가 새끼 치겄다. 그런데다 살성은 또 백옥이여.”
동네 P할머니는 나를 볼 때마다 칭찬했다. 그뿐 아니고 귀와 코엔 밥이 붙었다 했다. 그래서인지 어렸을 때부터 ‘달덩이같이 예쁘다.’ 소리를 심심찮게 들었다. 그러니 내가 예쁜 줄만 알았지 두상이 큰 것을 그리 큰 흠결로 여기지 않았다.
그런데 점점 나이가 들면서 큰 머리가 좋은 것만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운동회 때 꼭 써야 하는 모자를 고를 때도 쉽지 않았다.
“어, 이것도 안 맞네. 얘들아, 어디 큰 것 좀 있나 찾아줘 봐.”
“넌 왜 그렇게 머리가 크니?”
“우리 조씨 가문은 머리가 다 커!”
유전을 핑계 삼았지만 그 말은 사실이었다. 동생은 물론 숙부, 사촌들 두상도 큰 편이다. 그래서인지 큰 얼굴이 당연한 듯 주눅 들어본 적은 없었다.
심지어 초등학교 6학년 때는 어린이 잡지 표지에 둥글넓적 예쁘게 생긴 여학생 모델 사진을 보면서 나도 서울에 살았더라면, 모델 한번 해 본다 하잖았을까?’ 거울을 이리저리 보며 혼자 자만을 떨어본 적도 있었다.
그 후 여학교, 교육대학을 거쳐 교단에 섰을 때도, 정년퇴직한 이 나이에도 ‘인물 없다.’란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오히려 잠이 많은 나에게 “미인은 잠이 많대요.” 은근히 추켜 세워주는 말도 듣곤 했다. 그러다 보니 큰 얼굴이 화두가 되면 나는 넉살스럽게 우스갯소리를 한다.
“나는 그대들보다 화장품이 두 배로 들어요. 마스크 시트 팩? 얼굴을 반만 덮다 말지.”
그러면 모두 깔깔대긴 했지만 얼굴 크다고 상처 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하필 그 상처를 주는 사람이….
나는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 단 한 번의 연애를 하고 결혼했다. 눈에 콩깍지가 끼어서인지 몰라도 남편은 그 시절 톱 탤런트였던 하희라, 채시라보다 내가 더 예쁘다고 했다. 45년이 지난 지금에도 세 며느리에게 그런 말을 한다. 그런 그가 나이 60 중반에 들면서부터 이상한 말을 했다.
“당신 입이 왜 그렇게 작아? 입이 너무 작아서 우스워….”
처음 듣는 말이었다. 그냥 남편을 빤히 쳐다보았다.
‘정말 그런가?’
화장대 앞에서 입을 딱 물고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어? 꽉 다문 입은 그의 말대로 큰 얼굴에 비해 좀 작은 것 같기도 했다. 다시 입을 째지도록 크게 벌려 보았다. 눈 밑에 주름 잡힐 정도로 더, 더 크게 벌렸다. ‘흥, 이렇게 큰 입을 작다고? 절대로 작은 건 아니야!’ 심지어는 혼자 탄 엘리베이터 거울 앞에서도 입을 키웠다. 그러다 다시 오므리며 음악 시간 발성 연습하듯이 ‘아~이~우~에~오.’를 반복했다. 정말 가관이었다. 하지만 결국은 생긴 그대로!
‘내가 이렇게 비정상이란 말인가.’
마음에 해결해야 할 짐을 진 것 같았으나 도리가 없었다.
“입이 왜 그렇게 작아, 작아…, 우스워, 우스워….”몇 달이 지나도록 귓가를 맴돌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서서히 사라졌다.
그런데 또 어느 날이다. 식사를 마치고 식탁에 마주 앉아 대화할 때였다. 갑자기 내 얼굴을 바짝 쳐다보며 처음 발견했다는 듯이 말했다.
“당신 얼굴이 고모네 언니와 영락없이 닮았네.”
내게는 고모 한 분이 계셨다. 고모 역시 조 씨라서인지 유전으로 두상 큰 딸을 낳으셨다. 그 언니는 얼굴만 큰 게 아니고 키마저 작고 뚱뚱했다. 펑퍼짐한 얼굴에는 항상 웃음이 넘쳐흘러 모두가 좋아했지만 누가 봐도 예쁘게 생겼다고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런데 그 언니와 영락없이 닮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쩌라구요? 닮았으면 어쩌라구우!”
“그냥 그렇다는 얘기야. 그런데 똑 닮았어.”
남편은 천연덕스럽게 한 번 더 강조하기까지 했다. 너무 큰 내 얼굴이 밉고 보기 싫어졌다는 뜻이 틀림없었다. 도대체 하희라, 채시라는 어디로 갔는지…. 그 후로도 몇 번인가 “고모네 언니와 똑같다”를 반복하던 남편은 내 가슴에 또 하나 옹이만 박아 주고 제풀에 시들해졌다. 나 역시 응크지근하게 괴롭히던 불쾌감이 큰 얼굴에 작은 입술을 말했던 그때처럼 세월이 약이라고 한풀 꺾이고 있었다.
그 후 한동안 지난 어느 날이다. 소파에 앉아 TV를 보며 주전부리를 하고 있을 때였다.
“당신 똥배가 장난이 아니야!”
나는 발끈해서 대뜸 쏘아붙였다.
“어디서 날씬녀만 보고 살았어요? 장난이 아니면 날 더러 어쩌라고!”
내 나이에 이만하면 과히 비만도 아니고 날씬한 친구들과 비교해도 과체중 정도로 괜찮다고 여기고 있는데 장난이 아닌 몸매라니! 장난 아니라고? 나이답지 않게 쓰는 속어도 거슬렸다. 밉다고 하는데 기분 좋을 여자가 세상에 어디 있나.
그래도 그는 내 불룩하게 나온 배를 쳐다보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다가 예상 밖의 내 반응에 놀랐는지 달래듯 말했다.
“운동을 하지 않아 그래. 당신 생활 스타일을 고쳐봐.”
원래 운동하고는 담을 쌓고 지내는 터에다 운동할 시간 있으면 잠을 자겠다는 주의여서 반박은 못 했다. 그렇지만 상한 자존심에 다시 쏘아붙였다.
“정말로 뚱뚱한 사람 보면 기절하겠네.”
20년 전 동료 교사가 떠올랐다. 그녀는 커피 타임 때 울먹이며 남편이 자신더러 뚱뚱하다 했다고 하소연했다. ‘뭘 그런 걸 가지고 저러나……?’ 의아했었는데 이제는 내가 그 꼴이 되었다.
남녀가 처음 사랑할 때는 곰보 흉터가 사랑의 옹달샘이요, 다래끼마저 진주알로 보인다고 하잖나. 이 사람 눈에도 처음에는 하희라 채시라보다 예쁘게 보이던 내가 강산이 네 번 바뀌고 다섯 번 바뀌는 세월을 살다 보니 초심을 잃어버린 게 분명했다. 찬송가 가사에도 있듯 ‘사랑 없는 연고’, 그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게 어찌 우리 부부뿐일까. 어느 부부든 대개가 그럴 거라며 마음을 추슬렀다. 그렇지만 내 상한 마음은 여전히 치유되지 않았다.
‘아무리 못생겨도 그렇지, 이렇게 기를 죽여도 되는 거야?’
서서히 잊혀가던 가슴에 박힌 옹이의 아픔이 다시 용수철이 되어 툭툭 튀었다.
얼마 전 읽은 ‘아내가 우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김인기 씨의 수필 중 한 대목도 생각났다.
제 콧대가 낮다는 아내의 불만에도 나는 칭찬했다.
“그대 얼굴에는 그 코가 가장 잘 어울립니다.”
얼굴에 기미나 주근깨가 낀다는 불평에도 칭찬했다.
“갓바위 부처님을 생각해보세요.”
그런 소리 듣고 우는 아내에게 우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벽창호 같은 남편이 따로 없구나, 라는 생각에 며칠 동안 뿌루퉁하고 지냈다. 그런 날 보며 마음이 편치 않은가 보았다.
“별것도 아닌 걸 가지고 왜 그래. 그냥 흘려 넘겨 버려!”
“별것 아니라고요? 그럼 뭐가 별건 데요?”
그러고 있는 터에 큰아들이 식구를 데리고 주말에 왔다. 아들 셋 중 유독 날 닮아 두상이 크고 넓적한 얼굴에다 배까지 나온 큰아들. 다짜고짜 큰소리로 외쳤다.
“야, 큰 애야, 사람들이 네 얼굴 크다고! 배불뚝이라고 그러지? 나 닮아 그렇다고 하지?”
어리벙벙하는 아들에게 나는 아군이나 만난 듯 남편에게서 상처받은 말을 좔좔 읊어 내렸다.
“아이구, 엄마! 아버지하고 한두 해 사셨어요? 45년이나 사셨으면서 참.”
오히려 엄마가 문제라는 듯 말하자, 남편은 때를 만난 듯 ‘그게 말이다’ 하며 말을 이으려 하였다. 그러나 아버지의 변명 역시 들으려 하지 않았다.
“아버지도 잘하신 건 아니네요.”
이때 며느리가 조심스럽게 한마디 거들었다.
“아버님, 여자들은 그런 거 아녜요. 저 같아도 기분 나빴겠어요.”
“……?”
“저도 저번에 잘못 나와 싫은 제 사진을 아범이 카톡에 올려서 화가 났었어요.”
그 말이 내겐 다소나마 시원했다. 그러나 시아버지는 며느리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눈빛으로 갸우뚱하더니 허허 웃기만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토록 화내고 기죽을 일은 아닐 수도 있었는데 그게 왜 그렇게 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아니야, “여자들은 그런 거 아녜요.” 며느리 말처럼 다음에라도 또 그럴 것이다.
언젠가 영국의 83세 할머니가 “나도 여자다.”라며 콧대를 높이고 가슴을 성형했다는 사실이 세계적인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요즘 우리나라 성형외과 의사들도 노인정의 할머니들을 찾아간다는 말이 새삼스러울 것도 없이 주억거려진다. 이렇듯 미의 추구는 노소 불문, 동서고금 여자의 DNA다. 그러니 다음에라도 또 그럴 수 있음이 당연지사 아닐까?
애초에 조물주는 남녀 인간을 달리 만드셨다. 그래서 원래, 여자들은 그런 게 아니다.
첫댓글 일반적으로 태양인들이 목이 굵고 얼굴도 큰 편이죠.
조물주가 다 이유가 있어 유전적으로 독립된 특징을 살려주셨으리라 믿습니다.
이를 테면... 외형에 맞는 다아니믹함 이라든지 아님 흔히 말하는 핵인싸 라든지
태양인들이 주변에 사람이 많은 것을 보았을 때 이 또한 장점이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