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놀이터>/구연식
나의 유년 시절에 우리 마을은 50여 가구가 사는 큰 동네였지만, 마을 모정(茅亭)은커녕 어린이 놀이터도 없었다. 시골집 왼쪽 언덕 위에 작은 산소는 널찍하고 가운데에 아담한 둥근 봉분이 있어 아이들 놀이터로는 안성맞춤이었다. 그래서 그곳 잔디와 봉분은 언제나 짓궂은 애들 때문에 허옇게 맨땅이 드러나 있었다. 특히 봉분 위에 동네 아이들이 올라앉아 있으면 아버지와 큰아버지는 고함을 치며 놀지 못하게 했다.
아이들은 망부석을 끌어안거나 밀치기로 힘겨루기를 하여 망부석은 허리를 곧게 펴지 못하고 기우뚱하게 서 있어 큰 안전사고를 예고했다. 상석은 사금파리 뾰쪽한 곳으로 긁어 고누판을 그려 놓아서 잘 지워지지 않았다. 어릴 때 아버지로부터 할아버지 산소이니 누구도 봉분에 올라가면 안 된다고 너무 많이 들었다. 조금 나이가 들어서 알고 보니 아버지의 할아버지 나에게는 증조할아버지 산소였다. 내가 낳고 자랐던 우리 집 뒷산은 마을의 당산 격인 주산(主山)이며 우리 종중의 종산(宗山)이다. 봄에는 진달래와 개나리 그리고 산 벚꽃이 피어 그런대로 봄의 정취를 느낄 수 있었다. 산소 주변에는 통통하게 알밴 삘기가 그리고 보라색 꿀풀꽃이 지천으로 널려있어 주전부리로 많이도 먹었다.
여름에는 아름드리 상수리나무들이 우거져 매미들의 쉼터가 되어 시원한 그늘과 바람을 제공해 주었다. 그리고 여름방학이 끝날 무렵 방학 숙제용 곤충채집을 했는데 그중에서 참나무 진을 먹고사는 사슴벌레와 풍뎅이를 손쉽게 잡았다. 가을이면 가장 일찍 단풍이 들어 떨어진 개옻나무 잎이 빨간 멍석을 깔아 놓은 듯 넓은 곳에는 상수리가 떨어져 낙엽과 열매로 허무와 보람의 대조를 보여주었다. 비탈진 끝 움푹 페인 곳에는 상수리가 포도송이처럼 모여 있어 손쉽게 주워서 껍질을 벗기고 큰 항아리 물에 담가 떫은맛을 제거하여 어머니는 묵을 쑤어 주었다. 여름날 할아버지 상석은 태양에 얼마나 데워졌는지 살짝 앉아보면 엉덩이가 기분 좋게 따끈하여 친구들과 조잘거리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었다. 어느 아주머니는 하고많은 곳 제쳐두고 시망스럽게도 호박고지를 뜨끈한 상석에다 말려서 놀이터를 빼앗겨 짜증도 났었다. 이렇게 시골집 뒷산은 조상님들의 선영인 동시에 나에게는 어린 시절 추억의 장소로 상석에 사금파리로 긁어놓은 고누판처럼 지워지지 않는다,
옛날에는 인가를 멀리하여 풍수지리에 적합한 장소를 명당으로 정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현대 명당의 개념은 사시사철 남녀노소가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곳 즉, 접근성의 물리적 지형으로 본다. 자손이면 언제나 쉽게 찾아볼 수 있고 자연재해에 피해가 없는 양지바른 곳이면 명당으로 간주하고 싶다. 아무리 좋은 명당이라도 교통이 불편하고 첩첩산중에 있어 찾아뵙지 못하면 별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증조할아버지 산소는 피붙이가 아닌 순진하고 때 묻지 않은 어린이들은 물론 마을 청소년들 놀이터였다. 때로는 처녀와 총각의 밀애 장소였기에 가히 선견지명이 있는 현대적 의미의 명당이라고 자부해 본다. 증조부 산소 위 50여 m에는 윗분 조상님들의 합동 선영이 자리하고 있다. 몇 년 동안 벼르다가 올해 윤달에는 증조부님의 산소를 이장했다. 동네 사람이면 누구나 한 가지 이상의 추억이 서린 장소를 지워버렸다고 생각하니 증손(曾孫)이면서 마을의 일원인 나로서 마음이 찝찔했다.
이제는 그렇게 노심초사하던 망부석도 치워졌다. 아이들이 올라가서 멀리뛰기를 하거나 쿵쿵 뛰어 경망스럽게 여겼던 산소도 이장되었다. 낮에는 상석에서 고누두기를 밤에는 따끈하게 엉덩이를 데웠던 상석도 없어졌다. 그 시절의 친구들은 수십 년 전에 뿔뿔이 헤어져서 알 수 없다. 하루아침에 불도저의 거센 힘으로 130여 년 추억의 마을 놀이터가 사라졌다.
생각 같아서는 그 산소 자리에 작은 어린이 놀이터를 만들고 싶지만, 지금처럼 편리한 문화시설과 안전성 등 가성비를 따지는 영특한 어린이들에게 디지털 시대에 석기시대 놀이기구를 권하는 것 같아 그것도 어설픈 생각인 것 같다. 그렇다고 노인 헬스장도 마음과 현실에는 거리가 있는 것 같다. 그곳에 그냥 쉼터의 장소를 마련하여 중심에는 고향을 대표하는 토종 들국화를 심고 언저리에는 코스모스를 심어 아린 가슴을 다독거려 주고 싶다. 언덕배기에는 넓적한 큰 돌을 괴어 놓아 오고 가는 길손들 쉬어가게 하고 싶다.
증조할아버지는 마을 사람들에게 좋은 쉼터를 주셨는데 후손들은 그것을 지워 버렸다. 증조할아버지는 새집으로 모셔 드려 좋으나 추억은 땅속에 묻혀 버리고 폐허에는 잡초만 무성할 것 같아 그것이 서러울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