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아의 죽음과 해원(解寃)
불교를 깊이 신봉하는 한 쌍의 젊은 부부가 있는데, 신자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행복한 불자가정을 이루었다. 결혼 후 두 사람의 생활은 즐거움이 충만하였으며, 계를 지키고 독경하며 수행에 정진하였다.
아내인 종홍(鍾紅)보다 일찍 결혼한 몇 명의 여자친구들은 『지장경』과 「관세음보살보문품」을 꾸준히 염송하며, 아울러 가족들에게 살생하여 보신하는 것을 금하였기 때문에 다들 예쁘고 귀여운 아기를 낳았다. 이들 아기의 공통된 특징은 키우는 과정에서 영리하고 잘 웃으며, 거의 울지 않으며 병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들 부부도 아기를 임신한 후 아기를 위하여 『지장경』을 염송하면서 선근이 깊은 아기를 낳게 되기를 기원하였다.
임신 기간 내내 아내는 입덧이 매우 심했다. 메스껍고 구토하며, 몸이 붓고 좌골신경통이 생겼고, 음식 맛도 모르겠고 밤에 잠도 편히 못 자고 하면서 처음으로 엄마가 되는 고통을 다 맛보았다. 하지만 낳기 전에 마지막 임신검사까지 줄곧 태아는 모든 게 정상이어서 위안을 받았다.
출산 예정일은 정월 초하루, 이것은 더욱 전 가족을 기쁘게 하였다. 납월 30일 집집마다 모두 모여 설 떡을 먹고 폭죽소리가 대지에 울려 퍼졌다. 아내의 뱃속 아기도 특별히 힘을 주며 발로 찼다. 시어머니가 “이 아기는 아마 마음이 급한가 보다. 빨리 나와 폭죽을 터뜨리고 싶은가봐.”라고 말하자 모두 웃음꽃이 피었다.
그러나 세상일은 무상한가 보다. 아이는 태어날 때 ‘탯줄이 목을 감아’ 죽은 것이다. 죽은 때가 설 하루 전날 저녁이었다. 태아가 움직인 후 온 가족이 행복의 동경 속에 빠져있을 때 죽은 것이다. 아기가 죽었다는 소식은 그야말로 청천벽력이었다. 그들 부부의 곤혹과 고통은 물론이고, 나도 그 소식을 듣고 이해할 수 없었다. 그들 부부의 일 때문에 나는 그 해의 설날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해산하는 방문 앞을 지키고 있던 아빠 맹위(孟偉)는 아기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엄마는 아들의 체온을 영원히 느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몸부림쳤다.
나는 무슨 말로 위로해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왜 하늘은 이렇게 경건하고 정성스러운 불제자에게 이와 같은 횡액을 만나게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 일은 그들이 불교를 믿지 않는 부모와 친척들에게 ‘불교를 믿는 것은 미신이다’라는 구실까지 주게 되었고, 크게 보면 그들 부부의 도심(道心)을 잃게 할 가능성도 있었다. 그 때문에 나는 묘법 노스님에게 급히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스님은 이 소식을 듣고 결코 애석해하는 반마디의 말씀도 하지 않으시고 직설적으로 “좋아, 잘 됐어!” 하고 말하셨다. 예상을 벗어난 말씀이셨다. 아울러 맹위의 할아버지가 도살장의 백정을 하면서 많은 돼지를 죽인 적이 없느냐고 알아보라고 하셨다.
스님은 또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이번에 태에 든 신식은 특별히 빚을 받으러 온 원수이다. 따라서 그가 태에 들면서부터 산모를 괴롭히며 가족들에게 편안한 생활을 하지 못하게 하였다. 그러나 그들 부부가 성심으로 염불하며 아침, 저녁으로 예불을 지속하자 그 태아는 점점 불법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특히 『지장경』은 그를 대신하여 숙세의 업장을 없애게 하였으며, 그로 하여금 진실한 이익을 얻게 하였다. 맹위의 할아버지에 대한 원한을 소멸하면서 다시는 자손들에게 보복하기를 원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면 왜 출산 때 죽었느냐? 그것은 첫째 모자의 인연이 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둘째 그가 경법(經法) 듣기를 좋아하였기 때문에 최후까지 머물다가 간 것이다. 그는 지금 이미 천계(天界)로 수행하러 올라갔으며, 다시는 인간세계에 와서 원수를 찾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들 부부가 불경을 염송하지 않았더라면 그 아이는 반드시 죽지 않았을 것이다. 그 집안에 태어나서 성장함에 따라 그들 가족에게 많은 고통을 주면서 최후에는 그 애의 손에 패가망신하게 될 운명이었다. 따라서 아이의 죽음은 겉으로 보기에는 큰 재앙이나 사실은 화(禍)로 인하여 복을 얻은 셈이다. 그러니 기쁘고 축하할 일이지.”
나는 스님의 말씀을 듣고 난 후 깜짝 놀랐다. 즉시 비통에 빠져있는 아기 아빠에게 사실을 확인해 보았다. 알고 보니 확실히 그런 일이 있었다. 그의 할아버지는 살아계실 때 정말로 돼지 잡는 일을 하였으며, 죽기 전 이상한 병에 걸려 죽었다고 한다. 가족들이 할아버지를 묶어 놓지 않으면 쉬지 않고 주먹으로 두드렸으며, 그래야 그의 몸이 편안해졌다. 그분은 죽을 때 매우 고통스러워하였으며 또한 보기에도 흉측스러웠단다(이 일은 아직까지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야기한 적이 없으며, 이 일 또한 그로 하여금 불교를 열심히 공부하게 한 원인이기도 하단다).
그분의 몇몇 자녀도 모두 병으로 고생하였다. 맹위의 부친은 허리디스크에 걸려 고생했으며, 큰아버지는 반신불수가 되어 누워서 10년을 지냈다고 한다. 맹위의 대에 이르러 그의 형은 사십도 못 되어 정신이 이상하여 하루종일 이것저것 의심하고 다른 사람이 뒤에서 그를 욕한다고 생각하여 직장에 출근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맹위와 그의 누나는 앞뒤로 척추디스크를 앓았으며, 누나는 수술을 해도 완치되지 않았다.
묘법 노스님은 또 말씀하시기를 “만약 맹위가 불법을 배우며 채식을 하고 불력(佛力)의 가피에 의지하지 않았더라면, 그는 결혼하면 안 되며, 설령 결혼하더라도 자식이 없을 운명이다. 왜냐하면 그의 집안은 살생의 업이 매우 중하여 후대 자손들이 몰락하고 병이 많을 것으로 정해졌다.”
스님의 법어는 마치 한바탕 때맞춰 내리는 단비와 같이 여러 사람의 마음에 삿된 불을 껐으며, 모든 사람의 의혹을 해소하였다. 더욱이 맹위와 종홍 부부는 슬픔이 기쁨으로 바뀌었으며, 부부는 지금 더욱 용맹 정진하고 있다. 나는 그들 부부의 노력이 헛되지 않고 제불 보살께서 그들을 가호하여 빠른 시일 내에 귀한 자식을 낳게 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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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노 수행자의 참회(懺悔)
어느 날 오후 스승 묘법 스님께서 자리에 막 앉자마자 머리가 회백색인 노인 한 분이 앞으로 와 꿇어앉아 입도 열기 전에 눈물을 비같이 흘리면서 말을 하지 못하였다. 여러 사람이 위로하여 간신히 마음을 안정시킨 후 자기의 문제를 이야기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때로는 슬프게 때로는 분한 듯 이야기하면서 내심으로부터 진정한 참회를 분출하는 것 같아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 중 눈물을 글썽이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그가 말하였다.
그는 아내와 아들, 딸과 함께 불법을 배우는 길에 들어서고부터 일체의 비린내가 나는 음식을 끊었으며, 여가시간을 모두 홍법이생(弘法利生 : 법을 널리 알리고 중생을 이롭게 하는 일)과 송경(誦經)하면서 보내며, 스스로는 정진을 열심히 한다고 생각하였다.
불법을 배우기 전에 산 비디오는 단지 몇 개의 테이프만 볼 뿐 지금까지 10년이 지나도 다시는 보지 않았으며, 텔레비전은 중앙TV의 뉴스 외의 오락프로그램은 기본적으로 보지 않는다. 불법을 배우면 가족에게 가져오는 이점이 매우 많으며, 근 10년이 되어도 아직 별다른 사고가 발생한 적이 없으며, 최대의 이점은 전 가족이 병에 걸리지 않는 것이라 하였다. 불교신자와 함께 모여 있을 때 자기는 항상 불법을 배우고 채식을 하는 이점을 이야기하며 부처님에 대하여 믿음과 공경심이 충만하다고 하였다.
작년에 의사가 그에게 말하기를 “10년 동안 고기를 먹지 않으면 영양결핍이 되며, 자신이 병이 없다고 생각해도 병이 없는 것이 아니니, 병원에 가서 혈액검사를 하여 세 가지 항목에 문제가 없으면 우리들도 당신을 따라 채식하며 염불하겠습니다.”라고 하였다.
같은 수행자들의 격려하에 그는 20원을 들여 세 가지 항목을 검사하였다. 검사결과표를 들고 검사원에게 물었다.
“혈액이 문제가 있습니까?”
“문제가 있습니다. 이 사람은 올해 60세인데 혈액은 오히려 이, 삼십 세 연령의 혈액이니 정상이 아니죠.”
이 말을 듣고 그는 처음에는 멍하다가 뒤이어 웃었다. 그는 검사결과를 수행자들에게 알리면서 말하기를 “육식하는 사람의 표준에 따르면 나의 혈액은 당연히 비정상입니다. 혈액의 청춘화는 좋은 일이 아닙니까? 10년 동안 술, 담배, 비린내 나는 음식을 입에 대지 않았기 때문에 나의 혈액은 정화되었으니 이 수치는 정상이라고 생각할 수 없죠. 언제 신생아의 표준에 도달하면 정상이라 부를지! 따라서 우리들이 채식하는 것은 바로 자기의 혈액을 정화시켜 노인을 아이로 돌아가게 하며, 소박하고 참됨으로 돌아가게 하며, 금생의 이 몸이 병의 고통을 받지 않게 하여 자기의 유한한 인생을 더욱 아름답게 살게 합니다.”
노인은 지금까지의 일을 열거한 후 갑자기 또 눈물을 흘리면서 최근 자기 집에 불어닥친 한바탕의 재난을 이야기하였다. 그가 애지중지하는 딸이 갑자기 연 이틀 간 음식을 먹으면 구토를 하여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해보니 예기치 않게 위암이었다. 즉시 수술을 해보았으나 이미 확산되어 종양을 제거할 수 없다고 하며,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서는 단지 식도를 바꿀 수밖에 없는데, 이건 음식을 먹는 문제를 잠시 해결할 뿐이며, 이후 악화되면 길어야 반년의 시간밖에 안 남았다고 한다.
이것은 그야말로 머리를 한방 얻어맞은 격으로 온 가족은 매일 눈물로 지새우며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고 있단다. 의사가 말하기를, 딸의 병은 섭취하는 것은 적고 해야 할 일은 많아 피로가 누적되어 병이 생겼으며, 너무 힘에 부칠 정도로 몸을 사용한 것이 원인이라고 한다.
그 노 거사는 의심쩍어 하며 말하였다.
“『지장경』에 이르기를 지장보살의 형상에 예배하고 『지장경』을 염송하는 사람은 ‘가택이 평안하고’ ‘수명이 늘며’ ‘질병에 걸리지 않고’ ‘모든 횡액이 소멸되며’ ‘악업이 소멸되는’ 등의 좋은 과보를 얻게 된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내가 『지장경』과 각종 경전을 이렇게 여러 해 동안 독송했는데도 왜 이러한 큰 어려움을 만나게 되었습니까?
그리고 또 제 아내가 말하기를 ‘만약 불법을 배우지 않았더라면 딸이 이런 병에 걸리지 않았을텐데.’ 하고, 불교를 믿지 않는 친척, 이웃들은 사방에서 이상한 말을 해대며, 심지어 저의 견고한 신심을 흔들어놓으려고 합니다. 스님, 저는 무슨 업을 지어 이런 악보를 받게 되었습니까?”
노스님은 넓은 의자에 앉아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조용히 듣고 계셨다. 노 거사가 묻자 천천히 대답하였다.
“부처님은 진어자(眞語者)며, 실어자(實語者)며, 불망어자(不妄語者)로서 결코 사람을 속이는 거짓말은 하시지 않습니다. 그럼 왜 당신 집에 갑작스럽게 이러한 큰 어려움이 있게 되었느냐? 이것은 당신 자신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당신이 방금 이야기한 것과 같이 딸이 피로가 누적되어 병이 생긴 것 외에 당신 혼자 불법 속으로 비집고 들어가서 나오지 못하여 불법과 세간법이 근본적으로 차별이 없는 것을 알지 못하며, 당신은 오히려 불법을 세간법과 대립시켰습니다.
당신은 한편으로는 불법을 다른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소개하여 법을 듣고 이익을 얻게 하며, 심지어 많은 사람들이 이고득락(離苦得樂)하게 합니다. 이것은 매우 좋습니다.
그러나 또한 한편으로는 불법을 몸을 얽어매는 밧줄로 여겨서 아내와 자녀를 (불법으로) 꽁꽁 묶어 속박하기 시작하였으며, 심지어 아내와 딸이 외출할 때 화장품을 사용하는 것까지 책망하며, 자녀가 가끔 유행하는 음악을 듣는 것도 금지하고, 당신이 정한 금기를 그들이 범하면 크게 훈계하고 엄하게 꾸짖습니다. 만약 이때 약간이라도 불복하면 당신의 음성은 8도까지 높이 올라가고, 펄쩍 뛰며 노발대발하면서 자기를 한 점 오차가 없는 불교 속의 법관, 호법과 근위병으로 여기며, 마치 천하에 오직 자기만이 진정한 불법을 배우는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만약 불교사원 내에서 여법하지 못한 일을 들으면 늘 마음에 두고 온갖 비평을 해 댑니다. 비록 당신이 바른 지견이 있을지라도 눈에 들어오는 것은 모두 시비분별이며 곳곳에 모두 외도(外道)만이 보입니다. 세상 모든 것이 인과임을 알려면 수행인은 진실로 세간의 잘못은 보지 말아야 합니다. 당신이 만약 시비를 분별하는 지견을 가지고 있으면 자기 마음에 먼저 마(魔)가 들게 되어 마의 경계로 들어가게 됩니다. 진정으로 외부의 마를 알게 되면 두려울 게 아무것도 없으며, 마를 당신의 성불을 돕는 선지식으로 삼아야 합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전생에 인욕선인으로 계실 때 가리왕에 의하여 신체가 잘려도 아상(我相), 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 수자상(壽者相)이 없었기 때문에 원한심을 내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장래 자기가 성불한 후 제일 먼저 가리왕을 제도하겠다고 발원하였습니다. 이것이 부처님의 지견이며, 도량이며, 경계입니다.
당신이 처자식에게 화를 내면 그들이 받는 스트레스를 압니까? 그들은 당신에게 억눌려 마음속 분노를 풀지 못하여 마음이 답답해집니다. 그리고 당신의 이러한 무명(無明)의 화는 바깥 사회에서 안 좋은 일이 많아질수록 더욱 왕성해졌으며, 가족은 화를 푸는 대상이 되었습니다. 이대로 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지금의 당신은 양면의 얼굴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 면은 아내와 자식을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는 좋은 남편, 좋은 아버지의 얼굴이며, 다른 한 면은 험상궂은 얼굴을 한 마(魔)에 홀린 사람입니다. 당신은 자신의 마음가짐과 가정을 다시 창조해야 합니다.
지금 딸의 병이 위중하니 당신은 자기의 잘못은 반성하지 않고 도리어 불보살이 당신을 돕지 않는다고 원망심을 일으킵니다. 불보살이 아무리 큰 신통을 가지고 있다 해도 당신의 업력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세계에서 가장 좋은 자동차 정비기술을 보유하고 있을지라도 당신이 제멋대로 못 쓰게 망친 자동차는 수리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당신의 딸은 매우 강하고 좋은 사람이며, 업무상 일 처리를 완벽하게 하려고 합니다. 따라서 그녀는 자기 체력의 한계를 초과하여 일을 하며, 심지어는 밥 먹는 것도 자주 잊어버립니다. 자기가 가지고 온 채식용 도시락은 호기심 많은 동료들이 다투어 맛보니, 정작 자기는 배불리 먹지도 못하며 바깥 식당 음식은 먹기를 꺼립니다. 저녁에 집에 오면 시장기를 넘겨 먹고 싶지 않게 되며, 이렇게 오랜 시간을 지나니 위가 상하여 병이 된 것입니다. 위에 통증이 있어도 업무 열정에 묻혀 느끼지 못하게 되었으며, 병이 깊이 들게 되었을 때 병원에 가보니 이미 늦은 것입니다. 내가 말하는 상황이 맞습니까? 당신은 여전히 불보살을 탓하고만 있겠습니까?”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신도들은 노스님의 법문에 빨려 들어가 가르침을 청한 노 거사를 잊은 것 같았다. 스님의 말을 듣고 옆 눈으로 보니 그는 눈물로 옷을 적시고 있었다. 스님의 물음에 그는 비로소 정신을 차리며 힘없이 말하였다.
“스님, 제 딸이 설마 구제될 수 없는 것은 아니겠죠? 제발 비오니 딸을 구해주십시오. 딸은 아직 한창 때입니다.”
“당신은 아직 내가 말한 정황이 맞는지 안 맞는지 답하지 않았습니다.”
“전부 맞습니다. 저는 정말로 불법 속으로 뚫고 들어가서는 나오지 못했습니다. 제가 애지중지하는 딸을 해쳤습니다. 딸이 만약 가버리면 저도 살고 싶지 않습니다.”
“당신이 죽으면 당신 부인도 살 수 없습니다. 부인의 뱃속에도 10년 전 당신으로 하여금 만져보게 한 딱딱한 덩어리가 있지 않습니까? 맞죠!”
이 말을 듣고 노거사는 대경실색하였다. 갑자기 큰 울음소리를 내면서 무릎을 꿇고 두 손으로 자기의 머리를 치며 비통한 말투로 말하였다.
“관세음보살님! 제가 지은 죄이오니 딸 대신 제가 죽게 해주십시오. 제가 무간지옥에 들어가 영원히 나오지 못하더라도 좋으니 딸의 생명과 바꾸게 해주십시오.
관세음보살님! 현숙한 제 아내에게도 미안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녀는 10년 전 저보고 자기의 뱃속에 있는 딱딱한 덩어리를 만져보게 한 적이 있는데, 그것을 지금껏 생각하지 못해 아내의 생명을 앗아가게 되었으니, 저는 정말로 어리석습니다. 저는 스스로 한 점 착오도 없는 정확한 사람으로 생각하고 일찍이 ‘나를 지도할 사람은 아직 태어나지 않았다’는 말까지 한 적이 있습니다. 한번이 아닙니다. 저는 몹시도 오만 방자하였습니다. 엉…엉….
저는 아직도 제가 좋은 남편, 좋은 아버지라고 생각해 왔는데 알고 보니 그들을 해치는 마귀였습니다. …아…아!
제 아내는 30년 동안 줄곧 부창부수(夫唱婦隨)하는 현모양처입니다.… 제가 불교를 배우면 그녀가 따라하고, 제가 채식을 하면 비록 마음속으로는 원하지 않아도 저를 따라 여러 해를 채식만 하였습니다. 나중에 제가 방을 따로 사용하여 음욕을 끊으려고 제안하자 바로 동의해 주었습니다. 아직까지 저는 다른 사람의 정감을 생각하지 않았으니, 그녀도 오욕칠정을 가진 사람인데….
저는 줄곧 제가 매우 정진을 잘하는 것으로 생각해왔습니다. 오늘에야 비로소 알았습니다. 지금까지는 이게 어디 불법을 배우는 것이었습니까? 그야말로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주는 마귀였습니다. 단지 자기만 돌아보는 이기적인 사람이었으니, 저는 육십 년을 헛살았습니다. 아… 아…. ”
나는 옛날에 할머니, 어머니들이 울면서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어본 적은 있으나 그날 평생 처음으로 60세 된 남자가 울면서 참회하는 소리를 들어보았다. 만약 진심으로 하는 참회가 아니라면 어떻게 이렇게 자기의 체면을 돌보지 않겠는가! 응접실 한편에서 여신도들의 우는 소리가 들렸으며, 흐느끼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이 때 스님은 다만 단정히 앉아 두 눈을 가볍게 감고 움직이지 않음을 발견하였다. 나는 갑자기 의문이 솟구쳤다. ‘이렇게 감동적인 장면에서 스님은 어째서 조금도 동요하지 않으신가? 앉아있지만 그래도 이미 무엇을 간파하고 계실 거야.’
홀연히 스님께서 입을 여셨다. 여전히 눈은 크게 뜨지 않은 채. 비록 음성은 크지 않았지만 즉시 여러 사람의 울음소리와 흐느낌은 멈추었다.
“나는 당신 딸이 반드시 죽는다고 말하지 않았어요. 당신은 어째서 딸의 생명을 구할 방법을 묻지 않습니까?”
아?! _ 응접실의 공기가 응결되었다. _ 쥐 죽은 듯이 고요하였다. 법을 청한 노 거사는 갑자기 스님의 발 아래 무릎을 꿇고 연달아 절하였다. 같이 있던 사람들도 모두 꿇어앉았다. 스님은 마치 이 감동적인 모습을 보지 못한 듯 여전히 조용하고 천천히 말하였다.
“불법은 묘법(妙法)이며, 모든 것은 오직 마음이 지어낸 것입니다. 마음은 당신을 지옥에 빠뜨리기도 하고, 마음은 당신을 성불하게도 하며, 마음은 당신에게 병이 들어 죽게도 하며, 마음은 당신에게 한빙(寒氷)을 녹이게 하며, 위기를 벗어나 편안하게 하기도 합니다. 「대비주(大悲呪)」는 만능의 양약이며, 팔만사천 가지의 질병을 낫게 합니다. 다만 진실한 참회를 해야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당신의 딸이 좋아지면 여전히 성깔을 부릴 것입니까?”
“결코 아닙니다. 다시는 성깔을 부리지 않겠습니다. 저는 새롭게 올바른 사람이 되겠습니다.”
“맞습니다. 성불을 하려면 먼저 올바른 사람이 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모든 중생에게 자비희사(慈悲喜捨)하시며, 대각자(大覺者)이시며, 무상의 지혜와 신통을 갖추고 계신 분입니다. 그러나 그분은 제자에게 화를 내어 질책하지 않습니다. 부처님이 설하는 법은 당신으로 하여금 이치를 밝히게
도리를 이해한 후에 일상생활에서 일을 하는 가운데 불법을 실천하면, 이것을 ‘명리즉사(明理卽事)’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예상치 못하는 많은 일들을 만나게 되는데, 당신은 이치에 밝기 때문에, 즉 이미 불법을 이해하기 때문에 당신은 경계에 흔들리지 않고 여법하게 일을 처리할 수 있으며, 이 과정에서 불법의 정확함을 검증하는 것이 바로 명리즉사(明理卽事)입니다.
화를 내는 것은 수행인의 큰 금기이며, 화가 공덕의 숲을 태운다는 것이 결코 헛된 말이 아닙니다. 만약 이러한 나쁜 성질을 못 고치면 매일 많은 경전을 독송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법을 전파하여 불법을 배우게 하여도 당신 자신은 삼계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화를 내는 것은 본래 무명(無明)의 표현이며, 무명은 바로 불법을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당신 자신이 불법을 이해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원만하게 사람을 제도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날과 같은 시대에 젊은 남자와 여자가 단지 정지(正知), 정견(正見)을 갖고 오계를 지키며, 십선을 닦고 심지어 장기간 채식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어려우며 귀한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출가승에 대한 계율을 재가자에게 강요한다면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것은 마치 새싹이 빨리 자라지 않는다고 억지로 뽑아 자라게 하는 것과 같아 그들로 하여금 불법을 배우게 하기는커녕 불법에서 멀리 도망가게 할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불법을 ‘공경하나 멀리하는(敬而遠之)’ 괴물로 변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육조 혜능 대사께서 말하시기를 ‘만약 세간을 떠나 깨달음과 성불의 길을 찾는다면 토끼의 머리에서 뿔을 찾는 것과 같이 영원히 찾을 수 없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딸이 외출할 때 약간의 화장을 하고 예쁜 옷을 입고, 혹은 유행하는 음악을 듣는 것은 단지 내용이 건전한 것이면 모두 유익한 것이며, 반드시 하루 24시간 염불만 해야 비로소 정진하는 것은 아닙니다. 불법을 알고 자기의 언행을 규범에 맞게 제어할 수 있는 것도 바로 염불입니다. 세간에서 생활하면서 각종의 일에 직면하여 명리즉사(明理卽事)하고 취사선택할 수 있는 법안을 가지고, ‘머무름 없이 그 마음을 내면(應無所住而生其心)’ 되는 것이며, 매일 저녁 잠자기 전에 40분 정도 시간을 내어 염불 혹은 송주(誦呪)하면, 정심(淨心)이 되어 하루의 피로를 풀 수 있으며, 이것으로 매일 저녁의 과제를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좋습니다. 우리는 우주의 진실된 모습을 이해하였습니다. 이건 바로 간파하는 것입니다. 간파했으면 놓아버려야 합니다(放下). 만약 간파하고도 놓지 못하면 당신은 간파하지 못한 속인보다 더욱 부자유스럽습니다. 왜냐하면 당신 마음속에는 세간의 팔만사천의 번뇌 외에 또 하나의 불법이 누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여러분은 일체를 모두 놓아버리세요. 그러면 대자유를 얻을 것입니다.
자기 신변의 당신과 인연이 있는 모든 사람을 소중히 여기십시오. 우리 불제자는 동물에 대해서도 자비심을 일으키는데, 하물며 어찌 자기의 가족을 해칠 수 있겠습니까?
당신 자신은 언제부터 불교를 믿게 되었습니까? 언제부터 계를 지니게 되었습니까? 어떤 거사는 불교를 믿은 지 몇 십 년이 되어도 지금껏 아직 삼정육(三淨肉)이라면서 고기를 먹고 있지 않습니까? 이것은 무슨 옳고 그름을 따질 것이 없으며, 단지 시기의 문제입니다. 기연(機緣)이 도달하면 물이 흘러 자연히 도랑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한 가족이 식탁에 앉아 고기 먹고 술 마시는 사람이 있으며, 채식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한 식탁 두 제도, 이게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은 본래 한 식탁 다제도(一腋多制)인 것입니다. 육조 대사도 특수한 시기에 여러 해를 고기탕에 담근 채소를 먹었습니다. 그 채소에는 고기맛이 물들지 않았습니까? 그런 일들이 결코 육조 스님이 일대의 조사(祖師)가 되는 데 영향을 주지 않았습니다. 불법을 제대로 이해하게 되면 스스로 불법 위에 서서 함부로 이래라 저래라 하는 불교의 경찰이 되지 않습니다. 악한 과보가 형성되면 후회해도 늦습니다.
천주교와 기독교도 박애를 중시하는데 이것도 불교의 관점입니다. 우리들은 불보살의 박애심으로 중생을 감화시켜 불법의 대문으로 들어가게 해야 하며, 투쟁과 꾸짖음, 비난의 방법을 사용해서는 안됩니다.
좋습니다. 이분의 딸이 위험에서 벗어나 편안하게 되기를 도와주고 싶은 분들은 내일 오전 8시 대웅전에서 『대비참(大悲懺)』 일곱 번을 절하면서 법계중생에게 회향할 것입니다. 당신은 딸에게 내일 집에서 『지장보살본원경』을 독송하게 하여 병이 완전히 나을 때까지 지속하라고 하세요. 이후 그녀는 『지장경』을 전심으로 염송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신은 내일 『대비참』을 한 후 『양황보참』 3번을 해야 할 것이며, 참회시 심혈을 기울여 절해야 합니다. 당신이 조금 전에 그렇게 하는 것이 참된 참회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무슨 참회나 송주를 해도 소용없을 것입니다. 마음에 깊이 간직하여 명심하고 심금을 울려야 비로소 천지가 감동할 것입니다. 여러 거사님! 이런 공덕 짓기를 원하지 않으십니까?”
“원합니다.” 하는 소리가 방안을 울렸다.
스님은 아이와 같이 천진스럽게 웃었다. 연륜을 가득 담은 스님의 얼굴 모습은 마치 봄날의 활짝 핀 연꽃같이 사람들을 감동시키며, 사람들에게 잠시도 눈을 떼지 못하게 하였다. 제자들은 모두 노스님이 허망한 말씀을 하시지 않는 것을 알기 때문에 단지 그분의 말씀대로 따라하면 이고득락하지 못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믿는다. 법문을 마치기 전 스님께서 게송 한 수를 읊으셨다.
“공(空)은 색(色)이며 색은 공이니,
불법의 묘용은 무궁하구나.
몸으로 실천하여 사람을 일깨우기 위하여
보살은 항상 고해 가운데 몸을 나타내네.
만약 성불하려면 먼저 올바른 사람이 되어야
자기도 제도하고 남도 제도하고 중생도 제도하네.
항상 미륵보살의 웃는 모습을 배우고
마음을 열어야 진허공계를 포용할 수 있네.
말도 타지 않고 소도 타지 않는 것처럼
서두르지도 않고 느리지도 않는 게 가장 적당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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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 가르친 죄
태원(太原)시의 한 젊은 부부가 아들을 낳았는데, 이미 두 살이 되었는데도 걸을 줄을 모르며, 말하는 것도 발음이 명확하지 못하였다. 의사는 이 아이가 가벼운 뇌성마비를 앓고 있다고 진단하였다. 부부는 매우 초조한 나머지 나에게 부탁하여 묘법 노스님께 가르침을 청해왔다.
노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아이의 전생은 지방에서 명성이 있는 글을 가르치는 선생으로서 시서(詩書)를 많이 읽었다. 그곳의 적지 않은 사람이 불법(佛法)에 대하여 흥미를 느껴 그 선생에게 생사관과 육도윤회의 문제에 대하여 가르침을 청하였다. 그는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불교가 가르치는 것은 모두 허망한 것들이며, 공자님의 말을 인용하여 ‘생(生)을 알지 못하는데 어찌 죽음을 알겠는가?’ 하면서 자기의 관점을 주장하였다.
이렇게 하여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 불법을 배우는 길을 가지 못하게 막았으며, 불법을 배울 기회를 잃게 하였다. 그 선생은 깊이 알지도 못하면서 독단적으로 다른 사람의 지혜 계발을 막았기 때문에 죽은 후 여러 생 동안 돼지로 떨어졌다.
한편 이 아이의 부모는 돼지고기를 매우 좋아하였으며, 더욱이 돼지머리고기를 맛있게 먹곤 하였다. 그들은 전생에 훈장이었던 이 돼지가 도살된 후 삶은 돼지머리를 사와서 먹게 되었다. 악연은 성숙되어 그들이 낳은 이 아이가 바로 전생에 훈장이었던 돼지가 생을 바꾸어 태어난 것이다.
이것은 글 가르치는 훈장이 마땅히 받아야 할 과보인 동시에 아이 부모가 돼지머리고기를 즐겨 먹은 과보이기도 한 것이다. 이 업보를 바꾸려면 그들은 고기 먹는 죄업을 참회해야 하며 아울러 채식으로 바꾸어야 한다.
그리고 글 가르치던 훈장을 대신하여 참회해야 하며 『지장보살본원경』을 독송하면서 그 아이(전생의 훈장)가 잘못 인도했던 많은 사람들에게 회향해야 할 것이다. 또한 돼지를 위하여 지장경을 독송하여 천도해야 할 것이다. 그들이 병원치료, 단련과 함께 이대로 따라하기만 한다면 아이는 점점 좋아져서 몸이 정상으로 돌아올 것이며 장래 생활도 스스로 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노스님의 가르침을 사실 그대로 전달해 주자 아이의 부친은 당시 아이의 할아버지가 고기회사에서 일했으며, 하부기관에 도살장이 있었다고 말하였다. 그 집은 신선한 돼지고기를 매우 좋아하였으며 또한 그와 아내가 가장 즐겨먹는 것이 바로 돼지머리고기라고 하였다. 현재의 과보가 자기 아이의 몸에 닥친 것은 정말로 자작자수(自作自受)이며, 애당초 그렇게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하고 후회하였다.
아이의 모친은 눈물을 흘리면서 스님의 분부대로 틀림없이 실천하여 반드시 아이의 병을 고치겠다고 말하였다. 그들이 끈기를 가지고 지속하여 번뇌가 보리(菩提)로 변하기를 기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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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표사에서의 삼귀의(三歸依), 오계(五戒) 법문
삼귀의는 상호 장엄한 부처님께 귀의하며, 바른 불법에 귀의하며, 청정한 복전인 스님께 귀의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부처님을 모범으로 삼아 고난의 중생을 구제하며, 모든 중생을 이롭게 돕고, 유정(有情)을 즐겁고 편안하게 돕는 것을 말합니다. 불경의 가르침에 따라 바른 길, 정법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경을 많이 읽어야 합니다. 경은 길입니다. 스님을 모범으로 삼아 욕념과 감정을 놓아버리고 청정한 길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삼보(三寶)라는 것은, 깨달음은 부처님이며, 바름은 법이며, 깨끗함은 승입니다. 자성삼보를 보게 되면 깨달아 미혹하지 않고, 바르고 삿되지 않으며, 깨끗하여 오염되지 않으니 곧 모든 삼신불을 보게 됩니다. 사람마다 성불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단지 일념이 바꿔지느냐에 달려 있지요. 일념이 일어나면 망상집착에 전도되지 않으니 곧 부처입니다. 그밖에 아무것도 없어요. 얼마나 신묘합니까!
우리 범부는 망정(妄情)을 자아로 여기니 생각 생각이 생멸합니다. 하지만 망정이 없고 일념이 직심(直心)이면 생각 생각이 명료하지요. 혼침하지 않고 들뜨지 않으니 12시 중 출입하고 행동함에 바로 왔다 바로 가고, 천둥소리를 들어도 머무름이 없으니 이 사람은 선 자리에서 성불할 수 있음을 보증합니다.
눈썹이 한번 움직이면 조사가(祖師家)의 규칙을 범하는 것입니다. 만약 능히 할 수 있으면 바로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낸다(應無所住而生其心).”는 것입니다. 만약 할 수 없으면 입을 떼지 말아야 합니다. 하지만 한 올의 털로 천강(千江)의 달을 건져 올리는 것을 보면 친척이 아니라도 친척입니다. 귀의했다고 해서 바로 불자는 아니에요. 하지만 한 필로 서방극락세계를 그릴 수 있으면 친척이 오는 것이 아니라도 친척인 것입니다.
부처님은 이미 성불한 부처님이며, 우리는 아직 성불하지 못한 부처이며, 모든 사람은 성불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불경을 배워야 하며 스님을 스승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에서 이르기를 스님은 인천(人天)의 복전이며 스님을 만나게 되면 반드시 예배, 공양, 청법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태만한 스님과 태만한 부처는 같은 죄인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현재 출가하는 사람은 매우 적으니, 우리는 반드시 스님을 공경해야 합니다. 정법이 흥하려면 삼보 중 하나라도 부족해서는 안 됩니다. 한 사람이 출가하는 것도 매우 어려운데, 우리 사중 제자는 단결하여 부처님의 가업을 전해가야 하며, 후대인의 의지처가 없어져서는 안 됩니다. 스님의 모습이 좋으면 부처를 믿는 사람이 저절로 많아질 것이며, 출가하는 사람도 저절로 늘어날 것입니다. 스님이 적다는 것은 불법이 쇠미하다는 상징이에요. 스님이 되고 나서 나는 스님의 어려움을 알게 되었습니다. 모두들 스님이 말하는 것이 다 옳지 않더라도 스님을 공격해서는 안 됩니다. 출가를 선택하는 것은 바로 불법에 대한 믿음이 있다는 것이니 우리는 마땅히 기뻐해야 옳습니다.
고인이 말하기를, 집안의 안 좋은 일은 밖에 알리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을 옳지 않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만약 당신이 생사의 난관에 봉착하게 되면 세상사람 모두 착한 사람이며 은인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부처님은 배고픔을 시현하여 우리들에게 알려주셨지요. 도심을 발하기 위해서는 자기의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하는데, 다른 사람의 옳고 그름을 어떻게 놓지 못하겠습니까? 이렇게 하면 세간에는 잘못이 없는 것입니다.
나는 모든 대덕, 장로들에게 깊이 바랍니다. 이들 가련한 스님들을 도와서 그들에게 한 그릇 밥이라도 배불리 먹이기를. 우리 모두도 헛되이 출가해서는 안 됩니다. 젊은 승려들의 성장에 관심을 가지고, 또한 연로한 스님들에 대해서는 부모처럼 돌봐드려야 합니다. 스님이 어려우면 우리들은 더욱 그들이 난관을 극복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그들이 옷과 음식이 부족하지 않도록 하여 불가의 따뜻함을 얻도록 하면 이것이 바로 한집안 사람과 같은 것이지요.
사람이 이 세간에 태어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반드시 시간을 다잡아 수행해야 하며, 죽음이 도래할 것을 철저히 생각하고 소식이 있기를 기다려야 합니다. 집에 앉아 태평히 책을 읽고 신문 보는 것은 출가인의 일이 아닙니다. 도심을 발하여 염불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화엄경, 능엄경, 법화경, 금강경 등 대승경전을 독송해야 부처님의 일대시교가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이것은 왕생에 영향을 주지 않으며 마음에 걸리는 것이 없으면 바로 인간의 호시절이지요. 망상이 어디로 가면 마음도 그 곳으로 쫓아가나 몸은 따라갈 수 없는 것입니다. 앉아서 공부하는 데는 다리를 단련하여 신체를 잘 보호해야 마음이 편안하며 도가 융성해져서 공부가 상응할 수 있습니다.
문제가 있으면 선지식에게 가서 묻고 선지식을 찾지 못하였으면 『능엄경』에서 그 해답을 찾으면 됩니다. 만약 이해가 잘 되지 않으면 한편으로 경문을 억념하면서 한편으로 절하면 3일이 되지 않아 저절로 마음이 열리게 됩니다.
진정한 묘법은 말로 할 수 없는 것이며 핵심적인 것은 구경(究竟)을 말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묘법을 이해하려면 스스로 닦아 스스로 자신의 미타를 얻어야 합니다. 만약 점검해 줄 사람이 없으면 모든 경계를 떠나면 자연히 몸을 돌이킬 때가 있을 것입니다. 불문(佛門)을 한번 밟으면 불가인(佛家人)이니 법복을 입을 수 있으며, 법복을 입고 부처님께 절하면 비로소 위의가 있게 됩니다.
삼귀의에 대한 설명은 여기까지 하고 다음에는 오계에 관하여 설명하겠습니다. 오계는 아시는 바와 같이 살생하지 않으며, 도둑질하지 않으며, 사음하지 않으며, 거짓말하지 않으며, 술을 마시지 않는 것입니다.
계는 부처님의 바른 영(令)이며, 불법의 수명이며 부처님의 사리요, 금강보검입니다. 모든 종파를 막론하고 계를 지녀야 합니다. 염불은 계를 지키는 기초 위에서 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지계를 염불의 기초 위에 하는 것이 아님을 명백하게 이해해야 합니다. 계가 없으면 아무 것도 논할 수 없으며, 계·정·혜는 하나라도 빠뜨릴 수 없습니다. 계는 잘 지켜야 합니다. 당신이 무슨 계를 받았든지 간에 그 계를 잘 지켜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하든지 관계없이 다른 사람은 모두 응신이라 생각하고 오직 내가 삼악도에서 왔으니 만약 다시 수행을 잘 하지 못해서 다시 삼악도로 돌아가게 된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계에 관하여 이야기를 하니, 방금 발심한 사람은 약간은 두려워하는데 겁내지 마십시오. 청정한 계를 지키면 무량무변의 공덕이 있습니다. 만약 오계만 청정하게 지킬 수 있어도 현재의 몸으로 성불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살생계입니다.
계는 잘 받아서 잘 보호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중요한 것은 계를 잘 보호하는 것입니다. 나는 이렇게 하니, 여러분은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길을 갈 때 머리를 들지 않고 발 아래를 잘 살핍니다. 살생하는 소리를 들을 때는 머리를 들지 않고 마음속으로 묵념합니다.
‘나무 불! 진심(嗔心)을 내지 말고 돌아가라, 돌아가라, 돌아가면 끝난다. 무생(無生) 국토에 왕생하기를 빈다.’
직접 자기 손으로 죽이지 말 것이며, 다른 사람을 시켜서도 죽이지 말아야 합니다. 만약 살생하는 것을 보았을 때는 마음속으로 묵념합니다.
‘나무 불! 목숨의 빚에 대한 원한을 풀 것이며, 진한심을 내지 말고 청정한 불국토에 왕생하기를 빈다.’
길에서 죽은 동물 등을 보게 되면 관여하지 말고 이 몸이 그에게 고통을 받게 하였으니 길을 가는 데 고통스럽다고 하며, 마음속으로 묵념하기를,
‘나무 불! 신식(神識)은 주(主)가 없으니 청정하게 안주하고 안락국토에 왕생하기를….’
살아있는 것을 보았을 때는 구제해 주어야 합니다. 길가 한쪽에 놓고 마음으로 묵념하기를,
‘나무 불! 탐심을 놓으세요. 무우(無憂)국토에 왕생하기를….’
만약 재가자가 채식을 한다면 채식할 조건이 안 되더라도 먹지 말아야 합니다. 이미 죽은 것을 사 가지고 왔을 때는, 요리할 때 마음속으로 묵념하기를 ‘나무 불! 몸은 사대로 이루어져 있으며, 형상은 환화(幻化)에 속하니, 무구(無垢)국토에 왕생하기를….’
살아있는 것을 사와서 죽이면 안 됩니다. 만약 조심하지 않아 동물을 다치게 했을 경우 이렇게 묵념합니다.
‘나무 불! 마음을 내지 말고, 마음을 내면 죄가 생기니, 극락정토에 왕생하기를….’
가장 좋은 것은 채식하며 죽이지 않고, 육식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만약 이미 채식을 하는데도 고기 먹고 싶은 마음이 그치지 않으면, 매일 아침 지장보살 멸정업진언을 21번 외우고, 불전에 올린 물 한잔을 마십니다.
두 번째는 도둑질을 하지 않는 계입니다.
이 계는 전문적으로 남의 물건을 훔치는 것을 금할 것이며, 육근이 도둑질하지 않게 막고 공부하게 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어떠한 물건도 주인이 동의하지 않은 것은 움직일 수 없으며, 하물며 가서 훔치는 것은 더 말할 것이 없습니다. 다른 사람이 내 물건을 보고 좋다고 하면 그에게 주면 됩니다. 다음은 본인이 계를 지키는 방법이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나는 물건이 별로 없는 사람입니다.
눈의 도적을 막아야 합니다. 나는 고개를 들지 않으며, 여인을 바로 보지 않으며, 좌우로 살피지 않고 갑자기 뒤를 보지 않으며, 위를 보지 않으며, 멀리 보지 않고 5m 정도를 보며, 텔레비전을 보지 않고 신문 잡지를 보지 않습니다. 이렇게 하여 눈의 도적을 꽉 잡습니다.
귀의 도적을 막아야 합니다. 한쪽 귀로 들은 것은 한쪽 귀로 흘리며, 노래(불교음악 포함)를 듣지 않으며, 음악을 듣지 않습니다. 좋고 나쁜 것을 듣게 되면 하하 하고 웃어넘깁니다. 여인의 노랫소리와 웃음소리를 듣지 않고 귀의 도적을 잘 살펴 번뇌가 생기지 않게 합니다. 일심으로 청정한 염불소리를 듣습니다.
코의 도적을 막아야 합니다. 의식적으로 향기로운 냄새를 맡지 않으며 불향이라도 맡지 않습니다.
혀의 도적을 막아야 합니다. 공부하는 사람은 깨, 향유, 향채(香菜), 고추, 조미료, 오신채 등을 먹지 않거나 적게 먹는 게 가장 좋습니다. 이들 물질은 사람으로 하여금 생각을 격렬하게 자극시킵니다.
몸의 도적을 막아야 합니다. 부드러우며 꽉 끼는 옷을 입지 않으며, 부드러운 좌석 또는 침대에 앉거나 자지 않고 정신집중이 되지 않거나 실념하는 것을 방비합니다. 정말로 공부하려면 일체를 모두 방비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공부는 할 수 없습니다.
뜻의 도적을 방비해야 합니다. 만나는 모든 인연에 제2념을 막는데, 만약 악념을 막지 못하면 마음이 크게 혼란해져서 염불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심란하면 「반야심경」 혹은 「대비주(大悲呪)」를 여러 번 외우며, 마음이 안정되면 다시 염불합니다.
만약 무엇이라도 염할 수 없을 지경이면 멈추고 불전에 올린 청정수 석 잔을 아침에 한 잔, 정오에 한 잔을 마시고, 저녁의 한 잔은 창 밖에 쏟으며 묵념합니다. ‘모든 중생의 번뇌를 끊게 하시고 청정 안온하게 하소서.’ 이후 「대비주」를 한 번 외웁니다. 그러면 3일이 지나지 않아 마음이 안정되며, 의념이 밖으로 나가지 않습니다. 이렇게 염불하면 착실하게 할 수 있습니다. 만약 치료하기 어려운 병이 있으면 무슨 약이든 먹기 전에 그 약을 불전에 태우는데, 먹을 약의 양만큼 약사여래부처님 전에 태웁니다. 세 개의 기름등을 밝히고 기름을 더할 때마다 묵념합니다.
‘저와 모든 중생이 몸과 입과 마음을 청정히 하여 모든 부처님에게 공양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면 병은 곧 낫습니다.
이것은 육근이 육진의 도적에 대한 방비로서 마음의 혼란을 막을 수 있으며, 부처님이 말씀하신 모든 법은 다 마음을 치료하기 위한 것입니다. 일체의 마음이 없으면 어찌 일체의 법을 쓸 수 있겠습니까?
세 번째는 사음(邪淫)하지 않는 계입니다.
재가불자가 사음하지 않는 것은 바로 부부 이외의 사람과는 성관계를 맺지 않는 것입니다. 이 점 모두 잘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마음에 대하여 말하면 매우 어렵습니다. 욕계중생은 욕념으로 인하여 생하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이 중음(中陰)에서 태에 들 때 남자를 생각하는 사람은 얼굴을 밖으로 향하고, 여자를 생각하는 사람은 얼굴을 안으로 향합니다. 태에 드는 것은 성욕으로 인하여 그런 것이며, 성욕은 또 업감(業感)으로 인하여 이루어지며, 무명(無明)이 이곳에 있으니, 자기도 잘 알지 못하며 주재할 수가 없습니다.
홍진세상에 태어난 이 중에 어떤 남자가 장부인가. 무명이 오면 모두 괴롭습니다. 『능엄경』에서 말하기를 음심(淫心)을 제거하지 못하면 생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하였는데, 매우 중요한 법문입니다.
지금 많은 수행자들은 음심을 대치하는 데 방법이 없으니 매우 고통스러워하지요. 마음으로 다음과 같이 묵념합니다. ‘저와 모든 중생이 몸에 음란한 습관이 없고, 마음에 음란한 생각이 없게 되어 감로의 관정(灌頂)으로 청량하고 자재하게 되기를 비옵니다.’
그리고 마음으로 관상하기를 머리 위에 백의대사 관세음보살께서 깨끗한 감로수를 폭포처럼 쏟아 부어 내 몸을 목욕시키니 더할 나위 없이 상쾌하다고 생각하는데, 이 방법이 매우 효과가 좋습니다.
재가불자는 음습이 있어 홍진세상을 아직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부부관계를 가진 자가 도심을 발하고 또한 부부가 화목하기 위해서는 성생활에 만족해야 합니다. 만약 보살계를 받았으면 십재일(十齋日)에는 (부부관계를) 피해야 합니다. 성관계를 맺을 때 마음으로 묵념하기를
‘대자대비하신 관세음보살께 귀의하오니, 원컨대 저와 모든 중생이 몸에 음욕의 즐거움이 없고 마음에 음심이 없게 되며, 버드나무 정수(淨水)를 모든 속진에 뿌려 불꽃이 홍련(紅蓮)으로 변하기를 비옵니다.’
또 마음으로 관상하기를 ‘백의관세음보살께서 버드나무 가지와 병을 잡고 버드나무 가지를 공중에 뿌려 무수한 연꽃으로 변화되는 것을 생각한다.’ 한편으로 관상하며 한편으로 관세음보살을 묵념합니다. 이렇게 하면 음욕이 없어지게 될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남녀의 모습이 있으나 마음에는 남녀의 형상이 없으니, 부부가 불교를 믿는 것 때문에 화목하지 못할 것을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몸은 홍진세상에 태어났으나 마음은 홍진세상에 물들지 않네.
혼탁한 고해 속에 태어났으나 마음이 청정한 사람이 되었네.
네 번째는 거짓말하지 않는 계입니다.
말을 함에 있어 반드시 더하지도 말고 빼지도 말 것이며, 이렇게 시간이 오래 되면 자연히 선정이 생깁니다. 중생을 이롭게 하기 위해서는 방편으로 거짓말을 할 수 있습니다.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토끼를 죽이려고 쫓아가는데 오계를 받은 당신에게 토끼가 어디로 도망갔는지 방향을 물을 때에는 토끼를 살리기 위해서는 부득이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토끼를 쫓는 자와 토끼와는 인과의 빚이 있으니 잘못 말하면 인과를 그르치게 됩니다. 이때 당신은 다음과 같이 묵념합니다.
‘모든 중생이 서로 해치지 않고 서로 얽히게 하지 않고 그들의 원결(寃結)이 풀어지기를!’
뒤이어 토끼를 쫓는 자에게 방편으로 거짓말을 해주어 그들의 죽음의 빚이 풀어지게 하며, 장래 수명이 다하여 자연적으로 죽게 되면 토끼는 어떤 사람도 원망하지 않게 됩니다. 방편으로 거짓말을 하는 것은 중생을 제도하기 위한 것이지, 자기를 위해서 하면 안 됩니다. 모두 반드시 주의해야 합니다.
다섯 번째는 술을 마시지 않는 계입니다.
술에 대해서는 마시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아야 합니다. 무능한 사람은 술 마시는 장애가 모두 큰데 하물며 유능한 사람이겠습니까. 많은 영웅호걸들이 술을 많이 마셔 타락하니 반드시 술을 끊어야 합니다.
술은 난세의 영웅호걸들로 하여금
우쭐거리며 본성을 어지럽게 하고 색마가 되게 하네.
마음이 함부로 날뛰며 주재함이 없으니
어떤 영웅 남자가 대장부인가!
부처님의 계를 받아 부처님의 지위로 들어가려면 반드시 오계의 옷을 걸쳐야 합니다. 우리들이 불보살과 같이 자비로 중생을 보살피려면 큰일, 작은 일 모두 남이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하며 자기가 곳곳에서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모두 기뻐하게 되며 부처님이 우리를 보아도 더욱 기뻐하게 됩니다. 우리들이 불보살의 사업으로 중생을 제도하여 다 함께 상적광토로 돌아가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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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들의 하소연
1994년 나는 여전히 외딴집 단독주택의 독채에 거주하고 있었다. 그 해 가을, 우리 집에는 화초가 여전히 무성하였다. 대문을 들어서면 좌측 첫 방이 나의 서재 겸 응접실이었고, 창 밖에 한 그루의 고무나무를 놓아두었으며, 창 안쪽에는 글씨를 새긴 대와 오른쪽 화분서가 위에는 청수(淸秀)한 문죽(文竹) 화분을 놓아두었다.
그 날 오후 중학교에 다니는 아들이 수업이 없어 점심을 먹은 후 자기 방에 숙제하러 들어갔다. 그리고 나는 침실에서 경서를 보며 묘법 노스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네 시 무렵 초인종이 울려 마중을 나가서 스님과 시자를 서재로 모셨다. 16세 된 아들은 스님께 인사를 드린 후 계속 그의 숙제를 하였다. 자리에 앉으신 후 노스님께서는 “네 발에서 냄새가 많이 나지 않니?” 하고 아들에게 물었다.
아들은 얼굴을 붉히면서 “제 발은 12, 3세 때부터 냄새가 나기 시작하였는데 아무리 씻어도 소용이 없어요. 방금 아버지가 30여 분 전에 저에게 문을 열고 통풍을 하라고 해서 그렇게 했는데도 스님께서는 냄새를 맡으셨군요? 정말 죄송합니다. 제 방으로 가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스님은 웃으면서 제지하며 말하기를 “내가 무슨 냄새를 맡은 게 아니란다. 방금 네가 나에게 인사할 때 너희 집 모든 나무의 정령들이 나에게로 달려와 정례하더구나. 또 방안에 있는 이 문죽이 나에게 너의 잘못을 고자질하는데, 너는 오후 내내 작은 장난감을 가지고 놀면서 숙제도 많이 하지 않고, 무엇보다 너의 발 냄새가 너무 심해서 문죽이 그 냄새에 질식해 죽을 것 같다고 말하더구나.”
스님의 말을 듣고 아들은 놀라 눈만 크게 뜬 채 말을 못했다. 얼굴이 붉어진 채 난처한 듯 나를 쳐다보았다. 내가 나무랄까봐 두려워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나는 웃으며 스님께 말씀드렸다.
“얘는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그랬습니다. 학교에서 부모회의를 할 때 선생님이 말하기를, ‘그는 수업할 때 단정히 앉아 열심히 듣는 것 같으나 선생이 세 번 소리내어 불러도 듣지 못한다’고 해서, 제가 아무리 가르쳐도 고치질 못합니다. 그나마 그것은 성적이 좋아 넘어갑니다만 이 발 냄새는 맞바람이 불면 더욱 지독하니, 무슨 방법이 없겠습니까?”
내가 위와 같이 말할 때 스님은 줄곧 가늘게 두 눈을 감고 계시다가 잠시 후 말씀하셨다.
“당신 집의 고무나무가 방금 문죽을 위로하며 말하기를, 문죽을 도와줄 수 있다고 하네. 나보고 자네에게 일러주라고 하는데, 노랗게 물든 고무나무 잎 20근을 가공하여 아들에게 사용하게 하면 발 냄새가 좋아질 것이라고 하는군(고무나무의 피해를 없게 하기 위하여 상세한 제작방법은 생략하니 이해 바람).”
비록 『지장경』에서 수목(樹木), 화초(花草)도 모두 신(神)이 있다고 말하신 적이 있지만, 식물들이 대화할 수 있다는 것을 듣고 호기심이 일어났다.
“스님이 보신 고무나무와 문죽은 어떤 모습을 하고 스님과 대화하였습니까?”
“고무나무는 녹색의 옛날 복장을 입은 성년의 형상이며, 문죽은 녹색 적삼을 입고 있은 청수(淸秀)한 모습으로 머리에 공자 띠를 두른 소년의 모습이었네. 자네 정원의 꽃들은 여자 애들의 모습이 많았으며, 입고 있는 의복이 화려하고 아름다웠네. 이 모든 것은 환각이며 단지 의사를 전달하는 방법이며, 이것이 대자연의 오묘함이라네. 『반야심경』에서 말하기를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 수상행식역부여시(受想行識亦復如是)’라고 하지 않나, 따라서 집착할 필요는 없네.”
나는 여전히 집착하듯 물었다.
“기왕 식물도 신식(神識)을 가지고 있다면 제가 만약 잎을 자른다면 그것도 아픔을 느낄 게 아닙니까?”
“그렇지. 방금 고무나무가 자네에게 일러주라고 말하기를, 잎을 자른 후 화분 속의 흙으로 상처에 발라주면 곧 통증이 멎는다고 하네. 그 나무는 이미 자네를 따라 경을 읽고 불법을 배우고 있으며, 그리고 잎을 닦을 때 물 속에 술을 타지 말라고 하면서 자기도 계를 지키려고 한다네. 그 나무가 문죽을 돕기 위해서 잎을 주는 것은 보시의 정신을 따르는 것이며, 그들도 자네가 평소 잘 보살펴 주는 데 대하여 보답하는 것이니, 따라서 고통도 기꺼이 원한다고 하는군.”
나는 스님의 말씀을 듣고 난 후 매우 감동되어 이러한 정보가 정확하다는 것을 더욱 믿게 되었다. 이전에 친구가 나에게 일러주기를 고무나무는 술을 좋아한다고 해서 매주 고무나무 잎을 닦을 때 물 속에 백주(白酒)를 타서 닦아주니 더욱 왕성히 잘 자랐다. 스님의 이런 법문을 들으면서 갑자기 신문지상에 소개된 글이 생각났다. 꽃도 좋아하고 싫어함이 있으며, 무슨 꽃과 무슨 꽃을 같이 있게 하면 성장이 빠르고 어떤 나무들을 같이 놓아두면 성장이 좋지 않다고 하였다.
몇 년 전 신문지상에 보도된 것으로 기억하는데, 어떤 과학자가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삼림이 큰 화재를 만났을 때 어떤 기기(機器)는 불에 타는 수목이 내지르는 비명소리를 느낄 수 있다고 하였다. 아울러 불이 난 소식을 신속하게 다른 나무들에게 보낼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화재가 없을 때 측정해 보면 기기는 매우 조용히 작동한다고 한다. 원래 나무들도 인류와 기타 동물들처럼 육욕칠정(六欲七情)을 가지고 있다.
그 날부터 나는 『능엄경』에서 이야기한 “양이 죽어 사람이 되고, 사람이 죽어 양이 되며, 초목이 죽어 사람이 되고 사람이 죽어 초목이 되는” 도리에 대하여 더욱 큰 믿음이 생겼다. 부처님께서 “청정비구와 여러 보살은 길을 걸어갈 때 살아있는 풀을 밟지 않는데, 어찌 손으로 뽑을 수 있으며, 중생의 고기와 피를 취하여 배를 채우는 것을 어찌 대비(大悲)라고 할 수 있겠느냐.”는 도리에 대하여 이해하게 되었다.
그 날 저녁 고무나무가 일러준 방법대로 약을 만든 후 아들의 발에 바르니 예상외로 냄새가 나지 않았다. 이것은 신화나 전설 같은 일로서 진실로 우리 집에서 일어난 일이다.
이에 따라 나는 이시진(李時珍), 손사막(孫思邈) 등 신의(神醫)가 그렇게 많은 약초의 약성을 이해하여 『본초강목』, 『천금방(千金方)』을 써서 세상을 구하고 사람을 구제하는 양방(良方)을 내놓게 된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분들이야말로 보살이 다시 인간세상을 구하기 위하여 오신 것이며, 높고 깊은 예측할 수 없는 지혜를 지니고 수많은 풀과 의사소통할 수 있어 인류에게 이로움을 준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 가족은 고의로 식물을 해치지 않겠다고 다짐했으며, 심지어 길가의 작은 풀도 함부로 밟지 않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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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신 아버지가 제도를 구하다
모 병원의 황씨라는 의사가 갑자기 이상한 병을 앓게 되었다. 날이 어두워지면 두 눈이 초점을 잃고 멍하니 바라보면서 말도 하지 않고 잠도 자지 않으며, 주먹으로 치고 발로 차고 하다가 날이 새면 다시 정상으로 돌아오곤 하였다. 여섯 분의 전문가에게 진찰을 받아보았으나 모두 속수무책이었다. 그의 아내가 당시 유행하던 기공치료를 받아보게 하려고 하였으나 황 의사가 믿지 않아 아예 가지 않았다.
그 후 황 의사의 아내는 열성적인 이 선생을 만났는데, 이 선생이 우리 집에서 묘법 노스님을 뵌 적이 있었기 때문에 황씨 아내에게 묘법 노스님에게 그녀의 남편을 보여 볼 것을 제의하였다.
그녀는 기공조차도 믿지 않는 남편이 스님을 뵈러 갈 리가 없다고 하였다. 황 의사는 그 모든 것을 미신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아내는 집으로 돌아와 시험삼아 남편에게 스님 이야기를 하였는데, 생각지도 않게 황 의사가 두 눈을 부릅뜨고 급하게 묻기를 “당신 무슨 스님이라고 했지?”라고 하였다. 아내가 묘법 스님이라고 하자, 그는 한시도 기다릴 수 없다는 듯이 이 선생이라는 분께 연락하여 노스님을 만나 뵙겠다고 이야기하라고 하였다.
며칠 후 나와 이 선생은 황 의사 부부를 모시고 차를 타고 오대산으로 가서 노스님을 찾아 뵙게 되었다. 내가 사전에 스님께 전화를 했기 때문에 스님은 미리 준비하고 계셨다.
“당신 부친은 돌아가셨습니까?”
황 의사의 아내가 대신 대답하였다.
“돌아가신 지 2년 정도 되었습니다.”
스님이 물었다.
“남편에게 두 분의 형님이 있지요? 그리고 시아버님이 당신 남편을 가장 좋아하셨죠!”
이윽고 날이 어두워지자 황 의사는 두 눈이 멍하니 되면서 줄곧 말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내가 대답하였다.
“스님 말씀대로입니다. 시댁은 농촌이었는데, 그이가 군대에서 전역할 때 도시로 와서 살게 되었지요. 어릴 때부터 시아버님은 남편을 가장 좋아했습니다.”
“시아버님이 생전에 살생의 업이 비교적 중하여 돌아가신 뒤 악도에 떨어져 고생하고 있습니다. 아들에게 불연(佛緣)이 있어 자기를 구해 줄 수 있음을 알고 일찍부터 꿈을 통하여 구원을 요청하였으나 그는 도리어 믿지 않았습니다. 고해를 벗어나기 위하여 부득이 몸에 붙는 방법을 택하여 그를 핍박하여 불문(佛門)에 도움을 구하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그의 지금 눈빛은 비교적 정상이지요?”라고 스님은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게 말하였다.
모두들 황 의사를 다시 보니 그의 얼굴에는 홍조가 퍼져 있으며 두 눈은 더 이상 멍해지지 않았다.
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먼저 불전에 가서 예불하고 기다리세요. 내일 지장전에 천도위패를 세우고 스님들의 독경의 힘을 빌려 도우면 그의 부친은 이고득락할 것입니다.”
갑자기 황 의사는 묘법 노스님 앞에 꿇어앉아 부끄러워하면서 결연히 말하기를 “스승으로 모시겠습니다. 저를 받아 주십시오.”
그 아내는 그 말을 듣고 초조해하며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 지 몰랐다. 스님은 미소를 지으며 “좋습니다. 당신은 불문의 재가제자가 되었습니다.”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황씨 아내에게 재가제자가 무엇인지 설명하자 그녀는 그제서야 한숨을 돌렸다. 그녀는 혹시 남편이 출가하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한 것이다. 스님과 작별을 고한 후 우리들은 가지고 온 공양품을 불전에 올리고 함께 예불을 드렸다. 절 밖 초대소에서 하루 밤을 잤는데, 반년 이상을 고생한 황 의사는 마침내 편안한 잠을 자게 되었다.
현재 황 의사는 재가 수행자가 되었다. 다른 사람들이 그를 칭찬할 때마다 말이 적은 그는 얼굴을 붉히면서 한결같이 말하기를 “나는 이번에 화(禍)로써 복을 얻은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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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남(海南)에서 독사에게 물리다
나는 출가 이후 해남 복산(福山)으로 왔다. 어느 날 고향 사람이 바나나를 심는 것을 보고, “당신을 도와드리겠습니다. 노임은 받지 않을 것이며 식사도 신경 쓸 필요가 없습니다. 단지 바나나만 먹을 수 있으면 됩니다.”라고 말하였다.
해남은 바나나가 많으며 버리는 것도 다 먹지 못할 지경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인가와 멀리 떨어진 곳에 오두막을 세우고 『금강경』을 공부하면서 다리를 단련하였으며, 낮에는 바나나 밭에서 일하였다.
6월은 매우 더웠다. 어느 날 저녁 11시가 넘어 약간 혼침에 빠져서 일어나 얼굴을 씻으려 맨발로 바나나 밭으로 가는 도중 마치 가시에 할퀸 것같이 다리가 얼얼한 것을 느꼈다. 발 밑을 보니 한 마리의 회색 빛 독사가 내 발에 밟혀 나를 향해 공격하여 왔다. 나는 다리를 들어 뛰었고, 독사가 뒤쫓아왔다. 흙길에 도착하니 독사는 더 이상 따라오지 않았으며 그제서야 비로소 독사에 물려 발이 찢어진 것을 의식하게 되었다.
초막으로 돌아왔다. 사람들에게 들은 바에 따르면 뱀에 물렸을 땐 물린 데를 칼로 베야 한다는데, 이렇게 어두운 밤에 어떻게 할까? 맞아, 발을 칼로 째자. 목숨을 보전하는 것이 중요하지! 나는 곧 바나나 자르는 칼을 꺼냈다. 하지만 차마 벨 수가 없었다. 끈으로 대퇴부를 나무막대기에 묶은 후 이를 악물고 스스로를 격려하였다. 목숨이 중요하다. 그래서 칼로 베기 시작하였는데 너무 깊게 베었다. 갑자기 떠오른 생각이 ‘피를 너무 많이 흘려도 죽는다. 베는 것을 그만 두자.’
나는 크게 놀라 눈물이 흘러내렸다. 부처님! 제가 뱀에게 목숨을 빚졌습니다. 그러나 저는 도심(道心)을 발하려고 합니다. 『금강경』의 문구가 생각났다. 부처님의 전생시절, 인욕 선인으로 수행하실 때 가리왕에게 몸이 잘리면서도 진한심을 내지 않았다. 나는 곧 묵념하였다. ‘뱀아! 내 마음에는 독이 없다. 나는 너에게 원망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는다. 내가 수행을 완성하면 먼저 너를 제도할게!’라고 생각하며 앉아서 보니 상처 난 발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나는 공중을 향하여 말하였다.
“고통을 구제하시는 관세음보살님! 저는 어릴 때 줄곧 당신께 절했습니다. 저는 살아야 합니다. 제가 해야 할 일을 아직 완성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어떻게 부모님을 대할 수 있겠습니까?”
슬퍼서 울었으나 나중에는 지각이 없었다. 며칠이 지났는지 모르지만 깨어났다. 모기가 물어 몸은 군데군데 붉어져 있었으며 땅에 흘러내린 피는 모두 검게 되었으며, 발에는 뼈가 드러나 있었다. 그 위에 파리가 가득 떨어져 죽어 있었다. 독에 감염된 것이다.
가까스로 살아나게 된 나는 발을 질질 끌어 물가로 갔다. 발을 물에 담그고 썩은 살은 칼로 도려내고 뼈를 깨끗이 씻었으며, 옷을 오려 상처 부위를 감싸서 묶었다. 불행 중 다행이라는 생각에 기뻤다. 발이 남아있게 되었으니. 하지만 상처에서 계속 누런 물이 흘러내리고 온 몸에서 열이 났다. 고온의 6월에… 자살을 할까 생각하였다. 그만두자. 너무 고통스러우니. 안 돼. 중생을 널리 제도해야 하니. 정말 인간지옥이 따로 없었지만 또한 살아야 한다. 나는 7일을 굶기 시작하였다. 7일 후 예상외로 많이 좋아졌다. 이번의 재난을 넘긴 후 나는 해남을 떠나 종남산(宗南山)으로 왔다.
● 종남산에서 야생 독초를 먹고 중독되다
해남(海南)에서 내지로 돌아와 혼자 몸으로 종남산으로 들어갔다. 인간세상과 멀리 떨어진 산 계곡에서 생활하면서 야생초, 송진, 나무껍질, 황정 등을 먹으면서 지냈다. 매일 동물들과 왕래하였는데 그들은 나를 해치지 않았고 나도 매우 자유로웠다.
2년여를 지난 어느 날 하루는 황색의 작은 야생초를 먹었는데 수분이 매우 많았다. 대략 열 몇 입을 먹고 나서 혀가 마비되는 것을 느끼고는 그 야생초에 독이 있음을 알아차렸다. 곧 목이 뻣뻣해지고 입도 움직이기가 어려웠다. 물을 마시려고 하였으나 이미 늦었다. 곧 지각을 잃게 되었다. 단지 무수한 천녀가 꽃을 뿌리면서 웃으면서 나에게로 와 나를 둘러싸고 도는 것이 보일 뿐이었다.
나는 머리도 들지 못하고 무엇이 보여도 보지 않았다. 마음으로 생각하기를 무엇하러 여기 왔나. 마음으로 생각하면서 눈을 뜨니 꿈을 꾼 것과 같았다. 위로는 토하고 아래로 설사한 누른 물을 보고 나는 비로소 방금 마치 죽은 것과 같은 상태와 같음을 알아차렸으며, 아무 것도 분명하지 않았다. 이번의 중독으로 위장이 상해서 할 수 없이 물만 마시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러니 점차 위가 좋아졌다. 도의 마음을 발한 수행자들에게 알려드리려고 한다. 도심을 발한 후 절대로 조급해 하지 말아야 하며, 먼 길을 천천히 가야 한다. 단지 가기만 하면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두려운 것은 가지 않는 것이다.
● 법문사(法門寺)에서 향을 올리다
법문사는 본사 석가모니 부처님의 정골(頂骨)사리를 모신 보배로운 성지로서 섬서성(陜西省) 부풍현(扶風縣)에 있다. 이때 징관(澄觀) 노스님이 주지로 계셨다. 나는 이곳에서부터 향을 올리고자 이른 아침 삼의와 바루를 수습하고, 높고 높은 사리탑 아래에서 여러 해 동안의 서원을 석가모니 부처님께 고하였다.
제1원 : 허공법계 일체의 보살, 연각, 성문이 부처를 이루지 못하면 나는 정각을 취하지 않겠습니다.
제2원 : 일체의 하늘과 인간, 아수라가 만약 부처를 이루지 못하면 나는 정각을 취하지 않겠습니다.
제3원 : 일체의 축생, 아귀, 지옥 등의 중생이 성불하지 못하면 나는 정각을 취하지 않겠습니다.
제4원 : 일체의 중생이 선을 억념하고 편안하게 되기를 원하며, 유정에게 널리 방편을 베풀어 안락하게 되기를 원합니다.
제5원 : 일체 중생이 나의 모습을 보거나 나의 이름을 들으면 모두 보리심을 발하고 구경에 안락을 얻게 되기를 원합니다.
제6원 : 나에게 귀의하는 일체 중생이 만약 성불하지 못하면 나는 정각을 취하지 않겠습니다.
제7원 : 일체의 복과 즐거움, 수명, 재물을 일체의 중생에게 널리 보시하기를 원하며, 중생의 모든 고난을 내 한 사람이 대신 받기를 원합니다.
제8원 : 이 생에서 일체 지를 이루고 널리 법을 펴는 데 장애가 없으며, 중생을 이롭게 하는 데 장애가 없기를 원합니다.
제9원 : 이 생에서 탁발하고 걸식하며 야외생활을 하겠습니다.
제10원 : 나와 일체 중생이 신, 구, 의가 청정하여 일체 제불에게 공양하기를 원합니다.
제11원 : 나와 일체 중생이 지장보살의 본원공덕을 수지하여 이고득락(離苦得樂)하며, 영원히 다시는 고통에 빠지지 않기를 원합니다.
제12원 : 몸과 마음으로 본존 지장보살마하살에게 공양하며, 세세생생 미래 겁이 다하도록 지장보살을 따르며, 일체 중생을 위하여 널리 방편을 갖춰 모두 안락하게 하며, 함께 상적광토(常寂光土)로 돌아가기를 원합니다.
자비하신 인천(人天)의 스승님, 당신은 항상 상적광(常寂光) 속에 계시면서 제자 묘림(墓林)을 위하여 증명이 되어 주십시오.
나는 말을 마치고 나서 오체투지하고 정례하였다. 이때 동쪽에서 태양이 떠오르면서 탑의 꼭대기를 비추었으며 상서로운 빛이 눈부시게 빛났다. 순식간에 마치 전체 사원이 나의 마음을 따라 떨리는 것 같았다. 이어서 배향하면서 일보, 이보, 삼보 후 절을 하였다. 몸을 아래로 굽히니 발 아래의 대지가 진동하였다. 온몸이 절할 때 대지는 무한히 연장되었다. 이때 몸도 따라 연장되었다. 나는 저절로 격정이 솟구쳤다.
대지여, 어머니여! 당신의 무한함은 수없이 많은 중생을 기릅니다. 우리들은 진정으로 당신의 은덕에 보답코자 합니다. 나와 일체 중생은 모두 무한히 당신에게 봉헌하여 일체 중생을 평안하게 하기를 원합니다. 비록 우리들의 몸은 대지와 동체가 될 수 없지만 우리들의 마음은 대지와 같이 묵묵히 우리와 같은 뿌리인 모든 중생을 윤택하게 하려고 합니다.
시방의 모든 부처님이시여! 제자 묘림은 비록 대지의 일체 중생을 천백 억 화신(化身)으로 제도할 수 없지만, 나의 방편으로 법계의 모든 유정을 안위할 것이며, 나의 피와 땀을 대지에 뿌릴 것이며, 나의 발자국을 모든 촌락에 남기려고 합니다. 정법이 오래 머물며 함께 상적광토에 나기를 원합니다.
종소리에 따라 배향도 장엄하게 진행되었다. 첫 번째인 법문사 대면옥불에는 지하에 18층 지옥이 있는데, 나는 곧바로 절하면서 내려갔다. 어떤 남자 거사가 나에게 말하기를 어제 오후 5시에 와불(臥佛)이 방광하였다고 한다. 또 한 분의 여자가 말하기를 그 빛이 매우 컸다고 한다.
나는 그들의 말을 듣고 대답하지 않았으나 속으로 기뻤다. 내가 어제 오후 5시에 법문사에 도착하였으니 이것은 부처님의 나에 대한 가피였다. 당시 서안 와룡사의 일범(一凡) 법사는 함께 기뻐하였으며 이번의 배향은 반드시 성공할 것을 예시하였다. 정오에 여섯 번째 집에 탁발하였으며 약간의 음식을 얻어먹었다. 먹고 난 후 계속 앞으로 삼보일배 하면서 나아갔다.
● 관음보살이 사람을 시켜 밥을 보내다
무공(武功)이라는 지역에 도달하였을 때 첫째 날 탁발하였으나 밥을 얻지 못하였다. 둘째 날 점심 때 여전히 일곱 집에서 탁발하였으나 공양이 없어 단지 굶는 수밖에 없었다. 날이 어두워지려 할 때 어느 촌에 들어갔다.
절하면서 가다가 칠순 노인 한 분을 만났는데, 나에게 예배하면서 말하였다.
“스님, 저는 오후 내내 스님을 기다렸습니다.”
내가 무엇 때문이냐고 묻자 그녀가 말하기를,
“어제 밤 꿈에 관음보살이 세 번이나 나타나 제게 말하기를 ‘내일 오후 승려 한 분이 당신 집 앞을 지나갈 테니 당신은 문을 열어 그에게 하루 밤 휴식하게 하고 식사를 대접하시오.’라고 하여서 계속 기다렸습니다.”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그 집에 들어서자 침상이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내가 앉으니 그녀가 말하였다.
“국수를 준비하러 갈 테니 쉬십시오.”
잠시 후 국수를 들고 들어왔다. 이틀을 굶었으니 관음보살께서 사람을 시켜 밥을 보내 온 것에 대해 감사하였다. 다 먹은 후 노보살이 어떻게 염불하면 되는가 하고 묻기에 내 방법을 간단하게 이야기해 주었다.
“적게 말하고 많이 염불할 것이며, 밥을 적게 먹고 과일을 많이 먹으며, 적게 눕고 많이 앉으며, 적게 잠자고 정신을 많이 차릴 것이며, 병이 없어지려면 많이 절하십시오. 이것이 바로 비결입니다.”
● 진령(秦嶺) 고개에서 기한(飢寒)을 참다
황혼 무렵 태양은 붉은 빛을 남김없이 비추고 있었다. 이미 닷새 동안 먹지 못한 나는 진령 고개에서 아주 힘겹게 절하고 있었다. 이때는 이미 음력 10월 초파일이었으니 뼛속을 스며드는 차가운 바람은 마치 칼로 살을 도려내는 것같이 고통스러웠다. 단지 절하며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앞뒤로 인가는 보이지 않고 날은 점점 어두워져 왔다. 마치 죽음의 그림자가 다가오는 것 같은 일종의 공포감이 밀려왔다. 바람은 크게 불었고, 작은 쌀알 같은 눈은 바람의 힘을 빌려 내 몸을 때렸다. 그것은 마치 돌멩이로 때리는 것 같은 아픔이 느껴졌다.
그 때 ‘만약 밥을 조금 먹어 에너지가 생기면 지탱할 수 있으련만.’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멀리서 불빛이 날아왔다. 놀라움, 기쁨이 교차했다. 차량이 지나가면서 먹을 것을 주면… 조금 후 승용차 한 대가 보이더니 멀리서 여자의 말소리가 들렸다.
“맨발을 한 스님 한 분이 눈길에서 절을 하고 있네.”
내가 손을 드니 차가 멈춰 섰다. 어둠 속에서 운전사가 말하였다.
“뭘 봐. 미친 사람이군!”
여자가 말하였다.
“그렇게 안 보여. 내가 보기엔 좋은 사람 같아.”
남자가 말하였다.
“온전한 사람이 누가 절하면서 산길을 가. 이런 날 얼어죽으려고 작정한 사람이지.”
여자가 말하였다.
“우리 그를 산 밖에까지 모셔다 줍시다.”
“당신은 무엇이든 하려고 해. 미친 사람도 태워 줘!”
차가 가속을 시작하자 여자가 말하였다.
“정말 가련해….”
차가 떠나가는 것을 보면서 나는 줄곧 그 곳에 멍하니 서 있다가 갑자기 입가가 짭짤한 것을 느끼고, 비로소 내가 눈물을 흘렸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배가 고파 운 게 아니라 산의 동물들도 나에게 먹을 것을 보내주는데, 사람이 어찌 이럴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나는 다시 생각을 돌려 ‘그만두자, 인연을 따르자’ 하고 생각하였다.
나는 계속하여 절하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이때 날은 이미 크게 어두워졌으며 길도 분간할 수 없었다. 눈은 점점 크게 내리며 큰 바람은 눈송이를 집어 휙휙 소리를 내며 불어대어 서 있기도 힘들어 할 수 없이 길가 바위 밑을 찾았다. 잠시 후 뼈를 쪼개는 것같이 차가웠고, 약간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먹을 것이 있으면 좋아질 것 같았다.
무엇을 먹어야 하나? 위로 보니 캄캄한 하늘이요, 아래는 큰 눈으로 몸이 흰 눈사람이 된 것 같았다. 배고픔과 추위가 함께 엄습하였다. 삼의(三衣)를 머리에 걸친 채 하는 수 없이 두 무릎을 가슴으로 안고 몸을 작게 웅크렸다. 스스로 잠자면 안 된다고 계속 각성시켰다.
한바탕의 배고픔이 또 몰려왔다. 어떻게 하나? 몸 옆의 나뭇가지를 꺾어 입에 넣어 씹었다. 이때는 손을 움직이기가 어려웠고, 입도 움직이기가 쉽지 않았으며, 몸은 조금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나는 죽음이 또 한번 찾아왔음을 느꼈다. 그만두자. 놓아버리자! 이 몸뚱이를 집착하는 고통을 놓아버리자!
시방의 모든 부처님이시여! 제자 묘림은 지금의 배고픔과 추위를 바꿀 힘이 없습니다. 단지 기도할 뿐입니다. 내생에 다시 인간세상에 와서 배향의 서원을 이루게 해주십시오.
안녕, 아들이 일찍 돌아오기를 기대하는 부모님! 안녕, 모든 친척들이여! 인연이 있으면 내생에 다시 만나기를….
기도 중 나는 지각을 잃었다.
갑자기 눈앞에 자상한 노스님이 출현하여 나에게 말하기를 “수도인은 자기를 고통스럽게 하면 안 된다.”라는 말을 마치고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놀라서 깨어났다. 이때 큰 눈이 나를 덮고 있었다. 이것이 꿈인지 현실인지 알지 못하였다. 발버둥치면서 기어 나와서 내가 여전히 살아있음을 알아차렸다. 죽지 않았어. 죽지 않았어! 나는 살았어! 이때 태양이 내리비춰 나에게 고함칠 힘이 있게 하였다.
“나는 죽지 않았다. 모든 친척들이여!”
나는 눈 속에서 삼의를 꺼내 수습한 후 눈을 조금 먹었다. 기억하기를 ‘저녁에 부처님이 와서 나를 구한 것인가. 아니야. 마치 은거한 성스러운 스님 같았어. 맞아. 성스러운 스님이야.’
고인이 말하기를 “팔백 조사(祖師)가 종남산을 진동하고 십만 사자(獅子)가 진령에서 외친다.”고 하였다. 성승(聖僧)_은인. 어디에 가서 찾지? 비록 망망한 숲 속, 험준한 숭산(崇山)일지라도, 아무리 어렵더라도 생명을 구해준 은인을 찾으려고 하였다. 성승은 반드시 나를 보호하여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실 거야.
● 숭산(崇山) 준령에서 은인을 만나다
차가운 바람이 뼈를 찌르는 진령 고갯마루에서 이미 9일 동안 양식을 먹지 못하고 나무껍질을 씹으며 맨발로 눈 속을 다니면서 큰 산, 작은 산, 산골짜기, 바위 밑으로 은인을 찾아 다녔다.
은인이시여, 당신은 어디에 있습니까? 설마 저를 만나볼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시겠죠? 저는 당신을 매우 만나고 싶습니다.
희디 흰 큰 산을 바라보면서 울기 시작하였다. 안 돼. 반드시 찾아야 해! 그렇게 숲 속을 뚫고 들어가서 머리를 들어보니 한 마리 흑곰이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경악했다. 곰도 사람을 잡아먹는다고 하고, 호랑이보다 더 사납다고 한다. 나는 깊은 산 속에 살 때의 경험을 생각하여 거짓으로 죽은 체하고 드러누웠다. 곰은 내 주위를 몇 바퀴 돌더니 소리를 지르면서 떠나갔다.
나는 큰산을 따라 위로 찾아갔으며 높은 산꼭대기까지 갔다. 아래를 보니 길게 이어진 작은 산들이 보였다. 작은 산으로 내려가 아래를 보고 매우 놀랐다. 사람이 보이는 게 아닌가! 발 밑을 돌볼 겨를도 없이 날듯이 뛰어내려 갔다.
보았다. 보았다. 생명을 구한 은인이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매우 감격하여 배고픔과 추위는 흔적조차 없을 정도였다. 풀밭을 따라 절을 하며 건너갔다. 나는 은사가 나를 향하여 걸어오고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이미 여러 해를 부모와 가족간의 내왕이 없었다. 이때 나는 잃어버린 아들이 어머니 곁으로 돌아온 것같이 스스로 억제하지 못하고 큰소리로 울기 시작하였다. 한편으로 울고 한편으로 절하면서 은인을 맞이하였다. 은사는 나를 부축하면서 “됐어. 울지 마라.”
정신을 차리고 보니 바로 성스러운 스님의 모습이었다. 은백색의 눈썹이 아래로 내려와 수염과 같이 있었다. 높은 이마와 평평한 얼굴, 정말로 위엄이 있었다. 나는 정신을 집중하였다. 일체에 대하여 기억을 상실한 듯 의념이 없었으며 생각이 없었다. 삼보일배로 바위에 쌓아올린 오두막으로 들어가니 안에는 단지 나무막대기로 만든 선상(禪床)만이 있었다.
은사(隱師)가 말하였다. “진령은 사람을 얼려 죽인다. 너는 그것을 아느냐? 가지 말고 여기 머물러라.”
나는 그 말을 듣고 매우 기뻤다. 마침 참학하고자 하였다. 내가 말하였다. “은사여! 저는 출가 이래 밖에서만 다녀 배운 게 없으며 무익한 고통만 받았습니다.”
은사가 말하였다.
“승려의 삼의를 입는 것이 쉬운 게 아니며, 입을 수 있는 것은 더욱 대단한 일이야. 도심을 발하는 것은 매우 어렵지. 부처님이 『대반야경』을 설하실 때 여러 부처의 어머니인 문수보살로 하여금 대문을 지키게 하였지. 무엇 때문인가? 바로 천마외도가 듣는 것을 두려워해서지. 그래서 문수보살이 와서 문을 걸었지. 우리의 공부는 신(神)이 모르고 귀(鬼)가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비로소 도에 들어갈 수 있어. 겨울 결제를 여기서 하지. 앉게!”
이렇게 하여 나는 동안거를 지내기 시작하였다.
● 은인에게 절하여 스승으로 모시다
이번 겨울결제 때 은사(恩師)는 줄곧 선정 중에 있었으니 내가 어찌 따라갈 수 있겠나. 도중에 배가 고팠다. 식사는 산 속의 말린 야채를 물에 한번 담가 먹을 뿐이었다. 다행히 나는 (산에 사는) 기초가 되어 있어 그런 대로 견딜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았으면 산을 내려가는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어느 날 스님이 선정(禪定)에서 나왔다. 나는 매우 기뻐 급히 절을 하고 말하였다.
“은사님, 저에게 한 가지 청이 있습니다. 당신을 의지스승으로 모시고 싶습니다. 저를 받아 주십시오.”
은사는 줄곧 나를 바라보면서 한참 동안 말이 없다가 탄식하듯 말하였다.
“나는 출가 이래로 아직 제자를 받아들이지 않아 의지스승이 되어 본 적이 없어. 좋아! 너를 받아들이마.”
나는 너무나 기뻤다. 은사께서 말하였다.
“나는 어릴 때부터 부모가 없어 이웃에서 나를 길러주었지. 13세가 되었을 때 출가했어. 절의 스승은 나를 집 없는 아이로 여겼지. 하지만 나에게 아무것도 일러주지 않더군. 어떤 사람이 염불하는 것을 듣고 나도 따라 염불했지. 저녁에 다른 사람은 휴식해도 나는 쉬지 않고 불전을 돌며 염불했어. 염불을 십 몇 년 하니 한소식 했지. 그리하여 나는 절을 떠나게 되었어. 나는 허운(虛云) 노스님과 배향(拜香)하고 행각하면서 밖에서 많은 해를 다니면서 중화민국이 건국되기 전에 은거하여 지금에 이르렀어.”
내가 말했다.
“스님, 당신은 이미 삼신(三身)을 증득하였습니다. 왜 하산하여 널리 중생을 제도하지 않습니까?”
스님이 말하였다.
“지금은 게으른 자가 많아. 만약 정진하는 이를 만나게 되면 나는 하산할 거야.” 나는 그 말씀을 듣고 하산하여 (나를 구한 분은) 스님의 화신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부처님이 없는 게 아니라 우리들이 정진하지 않는 것이다. 열심히 정진하기만 하면 부처님은 항상 우리들 몸 곁에 계신다. 나는 또 청하였다.
“스승님, 당신은 저에게 어떤 길을 가야 할지를 가르쳐주십시오. 저에게 가야 할 수행방향이 있으면 저는 줄곧 행할 것입니다. 장래 좋은 소식이 있으면 부모님을 뵐 면목이 설 수 있을 것입니다.”
“좋아, 나에게 호흡오음염불법(呼吸五音念佛法)이 있어. 일천만 구(句)만 하면 반드시 극락에 왕생하게 될 것이다. 너에게 가르쳐 주마.”
나는 그 말씀을 듣고 이것은 우리 고난 중생들의 복이며, 반드시 행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승님은 염불, 반문(反聞 : 돌이켜 듣다), 반문(反問 : 돌이켜 의심하다)의 행을 자세히 나에게 전해 주셨다. 구체적인 내용은 뒷면에서 설명할 것이다.
● 초당사(草堂寺)에서 한번 앉아 삼일이 지나다
종남산 아래의 초당사에서부터 절하기 시작하였는데 도중에 긴 과수원 길이 있었다. 저녁에 매우 추웠고 바람이 많이 불었다. 나는 다만 안정을 취하였다. 내가 느끼기에 방금 앉았는데 어떤 사람이 나를 흔들어 눈을 떠보니 주위에 많은 사람이 둘러싸고 있었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일어나요. 앉은 지 이미 3일이나 되었어요.”
나는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시계를 보니 오후 세 시가 넘었다. 내가 앉은 채 선정에 들었음을 알아차렸다. 급히 몸을 일으켜 행장을 수습하여 절하면서 나아갔다.
그 땐 정말로 위험하였다. 다행히 그 곳에는 동물이 적었다. 오대산(五台山)을 배향할 때 다리 아래에 앉아 정에 들었는데, 한 마리 산돼지가 내 품으로 뛰어 들어와 오른손 새끼손가락을 물렸었다. 눈을 떠보니 앉은 지 며칠이 지나간 것을 알았다.
여기에서 모든 사람들에게 좌선할 때 안전에 주의할 것을 권한다. 지켜줄 사람이 있으면 가장 좋다. 남녀를 막론하고 정좌할 때에는 마른 수건으로 국부를 덮어 풍한을 방비해야 한다. 남자는 또 수건으로 허리를 감아야 한다. 그러면 장시간 앉아도 병이 생기지 않는다. 여인은 반가부좌를 하는 것이 가장 좋으며, 생리상에도 좋아 병이 생기지 않으며 왕생의 품위에도 영향을 주지 않는다. 앉을 때 발등을 곧게 펴 좌복 위에 놓고 발 중심이 위로 향하도록 하면 혈액순환이 잘 되며 다리에도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시작할 때에는 다리가 아프지만 어려운 고비를 넘겨야 한다. 아픈 것을 겁내지 않으면 조금 지나 마비가 되는데 움직이지 말고 손으로 무릎을 문지르면 일반적으로는 잘 통한다. 이와 같이 앉을 수 있으면 번뇌가 적어지며, 자연히 청정해진다. 모두들 겁내지 말아야 한다. 항상 좌선하는 사람은 음식을 담백하게 먹고 적당하게 조절해야 한다.
경에 이르기를 “무량의 청정 지혜는 선정으로부터 생긴다.”고 하였다. 이렇게 왕생하면 비로소 파악되는 것이 있다. “어떻게 왕생해도 모두 괜찮다.”는 감언이설을 배우지 말아야 한다. 앉아서 왕생해야지 얼굴을 하늘로 보고 왕생하면 위의가 없지 않은가.
● 마천령(摩天嶺)에서 동안거를 보내다
시간은 이미 동안거 시작 무렵이 되었다. 종남산 풍곡 마천령 바위 밑으로 와서 산에 들어올 때 어떤 신도가 보시한 세 근의 국수와 물이 새는 알루미늄 냄비를 내려놓았다. 나는 구멍 난 냄비를 황토로 때우고 나서 하늘이 보이는 바위 밑에 걸었다. 두 개의 긴 막대기를 묶어 침상을 만들어 별빛 아래에 앉아 폭포 소리에 따라 리듬 있게 호흡에 맞춰 오음염불을 하였다. 낮에 산에서 찾은 아직 눈에 묻히지 않은 야생채소와 나뭇가지, 솔잎 등을 냄비에 넣어 끓여 먹었다.
그 해에는 눈이 특히 많이 내렸다. 눈이 내릴 때는 삼의를 머리 위에 덮어썼다. 열심히 공부하다 보니 어느새 봄이 왔다. 납월 이십팔일, 그때 산 아래 절에서 출가하려는 여신도가 나를 생각하여 한 그릇의 음식을 몰래 가져왔다. 나는 문제가 있음을 걱정하며 그녀에게 물었다.
“당신이 나에게 음식을 가져왔는데, 당신 스님이 알고 있습니까?”
그녀가 말했다.
“모릅니다.”
내가 말했다.
“거사님, 이것은 승물(僧物)을 훔친 죄를 범하게 됩니다. 가져가세요. 나는 안 먹겠습니다.”
그녀가 말했다.
“아침에 스님이 나가시면서 저보고 음식을 만들어 먹으라고 했습니다. 제가 먹지 않고 스님에게 가져온 것입니다.”
내가 말했다.
“이렇게 합시다. 스님께 마땅히 말해야 합니다.”
그녀는 수긍을 하면서 음식을 바루 안에 담았다.
다음날 나는 북방의 풍속에 따라 음식을 부처님께 공양을 올린 후 산 위에서 산신, 토지신에게 공양하였다. 공양을 올린 후 나는 아직 얼지 않은 음식은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하산 길에 눈이 얼어 막대기로 눈길을 찔러보니 견고하였다.
그러나 누가 알았으리오. 딱딱한 눈 위를 한번 밟자 그만 푹 빠져버렸다. 바루를 쥔 채 산비탈을 굴러 내려가다가 바루도 놓쳐버렸다. 다행히 나무에 걸려 멈춰 섰다. 눈이 쌓인 땅이라 얼굴은 나무에 긁혀 찢어졌으나 그리 큰 상처는 입지 않았다. 나무를 잡고 일어나니 몸은 온통 눈으로 뒤덮였다. 급히 옷을 벗어 나무에 치대어 털어 냈다. 그 후 푹푹 빠지는 적설을 밟고 산비탈을 따라 바루를 찾아 내려갔다. 바루의 음식은 산비탈에 흩어졌으나 다행히 이미 부처님께 공양을 올린 뒤라 위안이 되었다. 곧바로 산 아래로 내려와서야 빈 바루는 풀로 가득 찬 것을 보게 되었다. 이때 나는 정말 견디기 어려웠다. 빈 바루를 보면서 어찌할 도리 없이 일어나서 참죽나무 껍질을 벗겼다. 바위 숙소로 돌아와 보니 갈 때 붙인 불은 아직도 타고 있었다.
나는 냄비에 물을 더 부어 나무껍질을 삶기 시작하였다. 마음은 망연히 망망한 큰산을 바라보았다. 이때 머리 위에서 황색 빛이 북쪽에서 남쪽으로 날아가는 것을 보고 나는 비로소 배향을 시작해야겠다고 의식하였다.
첫댓글 주신 글 감사드립니다 청안하시며.
성불하소서 !_()_()_
감사히 보고 갑니다...
우바이님 성불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