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유진영_ 필자와 부랄친구로 지겹게 국민학교 중삐리 고삐리를 거쳐 공부잘하고 똑똑한 필자는 대홍익유니버시티에 입학.. 유진영군은 저기 저기 어디야 여하튼 건대공예과에 입학하였으니...
쩝.. 지난 일천구백구십팔년 지겨운 쉐이... 필자와 같은회사에 취직 아무것도 모르고 뺑이치다 촌놈들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느끼고 퇴사 유진영군은 모벤쳐회사 디자인팀장으로 역임 말이 팀장이니 부하직원이 하나도 없는 팀장이였음... 그러다 모벤쳐회사 퇴사... 프리랜서로 지내고 있음.. (가수 공연 포스터를 주로 만들고 있음)
동기중에 최초로 내년에 장가를 갈 예정이며...
담에 권순일 _ 필자와 고삐리때 3학년때 같은반.. 그전의 경력은 잘 모르나.. 여동생이 하나 있으며 그 여동생은 현재 홍대 대학원에 재학중이라 함.. 뻥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듬
현재 호주에서 유학하다가 한국에 체류 하다 모대학에서 어드민을 받아내 다시 유학행.. 장차 씨에프감독이 되기위한 프로세스를 밟고 있으며... 어쩌구 저쩌구...
담에 박인호 _ 그림 그린 사이에 가장 차분하며 촌 냄새가 전혀 나지 않으며..
홍대 산업공예과 졸업해서리.. 유수의 가구회사 디자이너로 연뽕 빵빵..
게중에 젤로다 안정적인 사회생활을 하고 있음..출근전에 수영도 하고 헬쓰도 다니고.. 우리중에 유일하게 레져란걸 즐기고 살고 있는 녀석으로 사료됨..
필자 부모님과 박인호 라는 친구 부모님과 아는 사이라 함..
이상 뭐 이렇습니다..
여하튼 그 5명중 우연히 디강(디자인강사) 작업실에서 그 홍대에 들어간 윤종민이란 녀석을 만날 수 있었다..
그에 대한 라이벌 의식은 전혀 없었지만.. 우연히 만난 그는 이미 고삐리때 필자가 알던 그가 아니였다..
풍겨나오는 냄새 (된장냄새-_-) 옷맵시.. 청바지에 묻은 이상한 물감색, 더군다나 생각도 못해던 커리큘럼..
등등이 인간 최환혁이의 둘도 없는 자존심을 건들인 것이다..
미팅을 하나해도 그지역 대삐리들 (이대 연대 언니들)언니들이랑 미팅을 했지만. 필자는 듣도 보도 못한 성북구에 자리매김 하고 있는 전문대 언니들과 미팅을 햇고.. 알코올을 하나 먹어도 녀석을 홍대앞 클럽에서 먹었으며 필자는 노각다 형님들 옆자리에서 무조건 싸고 푸짐한 안주에다 물을 타든..상관없이 양 많은 호프만을 고수했다.. 으.....
몰려드는.. 쪽팔림.. 참을수 없는.. 창피함.. 이런것들이.. 대학을 그만두게 된 원동력(최초의 원동력은 산디가 언니들이지만..)
이 되었다. 그때가 약 5월즈음..
필자는 필자의 그림실력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에 언제나 스탠바이 큐 상태 인지라.. 잠시 유흥생활을 접했으니..
그 유흥생활의 시작이 방배동 삐끼 였던 것이다..
1993년 삐끼란 직업도 없을거니와 유일하게 방배동만이 그 삐끼라는 직업이 있었다..
주변 아파트 단지에 둘러싸인 방배동 카페골목(이하 방카라 함..) 은 언제 주변 파출소의 경계대상 이었다..
애피소드를 잠시 소개하면 1994년 어느 여름 어느 새벽 필자는 방카 패밀리레스토랑 코코스 앞 난간에 기대서 말보로 미듀엄을 빡빡 피고 있을때 깍두기 그랜저가 필자의 앞에 잠시 정차 하는 것이였다.
#그랜져 조수석 창문이 내려간다...
#새벽녁 눈다래끼가 났는지.. 선글라스를 낀 20대 초반 언니가 다바꼬를 물고 잇다...그리고 잠시후 내게 뜨거운 시선을 날린다..
그녀 : 오빠 타..
필자 : 어버버버..거시기 저요..(두리번 두리번 절대 나에게 말할거라곤 생각치 못했다..)
그녀: 응 (다짜고짜 반말이다.. 촌놈인 난 그 반말이 너무 싫었다. 입을 찢어버리고 싶었다..그치만.. 지금은 보자마자 반말하는 언니들이 젤로 사랑스럽다..)
그렇다 필자가 앉아 있던 그 장소는 방카에서 껄떡대는 언니들을 위한 장소였으며 또한 껄떡거리는 언니들과 함께 하고픈 오빠듣들의 자리였다.. (-_-)
필자 : 아니요 하숙집 아줌마가 빨리 들어오라는대요.. -_-
그녀 : 오빠 강촌갈껀대.. 심심해 같이 가자..
필자 : 아니요 밤이 늦었어요. 그리고 눈에 다래끼가 심한가보죠.. 그래도 운전할때는 전방시야가 눈에 잘들어와야 하니..선글라스를 벗어야 해요..
그녀:-_-
그녀는 피고 있던 말로로 다바꼬를 공중3회전을 시키면서 중앙선에 착지하기 전에 그자릴 떠난 것이다..
그랫던 것이다.. 필자의 순진 무궁함.. 떼묻지 않은 고귀한 숨결을 들을수 있는 대목이였다..
그렇다. 필자는 일천구백구십사년까지만 해도
언제나 대한민국사회가 병들지 않고 따뜻하기 만을 바라는 미소년인 것이다..-_-
방카는 늘 언니들로 붐볐으며..(1993년 외국 쇼프로에 등장할것같은 옷을 입고 방카에 등장하는 언니들도 많았다.. 빠진 눈, 빠진 턱 집어 넣느라 정신이 없었다..그리고 늘 주머니엔 침을 닦기 위한 손수건 역시 늘 준비하고 다녔다..) 지금은 아니지만.. 그때만 해도 승용차가 아닌 일반 택시는 접근 조차 하지 못한 방카였다..
짜자잔.. 이거리에서 삐끼란 걸 하게 되었다.. 1993년 대한민국 초창기 방카 삐끼는 현재 신촌에서 볼수 있는 그런 양아리 삐끼가 아니였다.. 호스트는 한단계는 아래였지만.. 어쨌든.. 지성과 미모를 겸비한 필자같은 이들만이 엄격한 심사를 거쳐(-_-)
될수 있는 직종이엿다... 기본급이외에 주어지는 수당역시 훌륭하였으며.. 가끔.. 언니들과 사랑에 빠지는 선배삐끼들도 있으며.. 언니들과 음주가무를 많이 도와주곤 하는 괜찮은 직종이였다..
대한민국 사회자체가 워낙에 인력사회인지라.. 그런 분위기는 금방 없어졌다. 여기 저기 방카를 제외한 다른 지역 역시 삐끼들이 등장하게되고.. 소위 개나소나 업주들이 너도나도 삐끼를 고용하면서 바야흐로 대한민국 밤문화에 삐끼 춘추전국시대가 열리며..
더이상 방배동 삐끼가 대한민국 언니들에게 줄수 있는 메리트는 없어져간 것이다..
센소늄의 디자인이 가격경쟁력을 상실한 것과 일맥상통하다고나 할까..
어쨌던.. 방카 삐끼생활을 뒤로하고.. 필자는 1993년 가을부터 다시 입시를 준비하게 되니..
자신감 충전 100은 어디까지나 나의 생각일뿐..
홍익대 귀신붙은 애들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필자 역시 열심히 그렸지만.. 음주가무의 생활을 대학 붙으면서 부터 한 필자와 홍대귀신 붙은녀석들과 게임이 되질 않았다..
더군다나 필자는 명일동(서울에 논이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명일동..)에서 그림을 그린것이다. 왜? 장학생 시켜준다니까..
그러다 말은 태어나면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태어나면 한양으로 가고 미대를 가려면 홍대앞을 가야한다는.. 혹자의 말을 들어 필자는 입시 막판을 남겨두고 홍대앞으로 미술학원을 옮기게 되고..
미소년 최환혁을 경계하는.. 오빠들 사이에서 적응하지 못하며 인생의 첫패배 (재수해서 떨어짐..)를 맛보게 되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