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리포트]중국 내수 시장으로 가는 석세스 포인트 1 | |
Special Report1 중국 내수 시장으로 가는 석세스 포인트 성공 유전자를 가진 기업들
‘경기도 파주의 호프집 주인 김 사장과 쓰촨성 오지 농촌의 왕(王) 선생’. 아무리 생각해도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그러나 수천 km 떨어져 있는 이들은 지금 한국과 중국의 경제 역학관계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그 관계를 추적해 보자.
writing 한우덕 중앙일보 중국연구소 수석연구원(기자) woodyhan@joongang.co.kr
왕(王) 선생은 최근 컬러 TV 한 대를 들여놓았다. 1천9백 위안(약 36만 원), 20인치 LCD TV였다. 그가 TV를 살 수 있었던 것은 중국 정부가 시행하고 있는 ‘농촌가전보급(家電下鄕)’ 덕택이다. 농민들이 TV, 냉장고, 휴대전화 등 저가 가전.정보기기를 살 때 판매가의 13%를 정부에서 지원받는 정책이다. 이 정책을 안 왕 선생은 10년 이상 사용한 ‘배불뚝이(볼록 모니터) TV’를 바꾼 것이다.
왕 선생과 같은 농민들이 대거 가전제품 매장으로 달려들면서 가전제품 소비가 크게 늘었다. ‘가전하향’ 정책이 본격 시행된 올 1~4월 동안 팔린 저가 가전제품만 68억 위안(1조 2천648억 원)에 달한다. 중국 가전제품업체들은 싱글벙글하며 공장을 풀가동하고 있다. 문제는 부품이다. 특히 LCD 모니터가 부족했다.
파주 김 사장의 호프집을 보자. 이 가게는 LG디스플레이 공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이 공장 직원과 그 가족들이 단골이다. 그런데 요즘 LG디스플레이 공장 가동률이 100%다. 남들은 불경기에 죽겠다고 난리인데 이 공장만은 ‘쌩쌩’ 돌아간다. 보너스도 두둑하다. 당연히 호프집을 찾는 손님도 늘었다.
“LG디스플레이 주도 아래 설립된 IPS(In-Plane Switching)연합의 8개 TV 세트업체에 5개의 중국 로컬 업체가 포함돼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 중국 로컬 TV 업체의 수요 물량 중 거의 절반을 LG디스플레이가 공급하고 있습니다. 중국 정부가 시행하고 있는 가전하향이 공장 가동률을 끌어올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LG디스플레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결국 쓰촨성의 왕 선생과 파주의 김 사장은 ‘가전하향’ 정책으로 묶여 있었던 셈이다. 중국 내수 시장의 작은 변화가 우리나라 산업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정도로 양국 관계는 커플링(Coupling)돼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중국 내수 시장이 경제위기의 돌파구로 인식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럼 중국 내수 시장에 진출만 하면 모두 성공하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천만의 말씀’이라고 일침을 놓는다. ‘중국 비즈니스에 기적은 없다(No miracle in Chinese business)’는 얘기다. 중국에서 성공한 기업에는 독특한 ‘성공 인자’가 있다.
첫째는 역시 유통망이다. 중국 건설장비 시장의 강자로 자리 잡은 두산인프라코어가 대표적인 예다. 이 회사는 지난 3월 2천17대의 굴삭기를 팔아 시장점유율 17.2%를 기록했다. 이는 16.7%였던 지난해보다 늘어난 것으로 굳건하게 시장점유율 1위를 지키고 있다.
두산은 제품 생산에서 판매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산둥성 옌타이에 있는 본사가 직접 관리한다. 전국에 12개 지사(지사장은 대부분 한국인)를 두고, 그 지사 아래에 38개의 직영 대리점(대부분 중국인)과 3백 개 영업 거점을 운영하고 있다. 본사-지사-직영 대리점 등으로 연결되는 네트워크다. 강우규 총경리(법인장)는 “직영 대리점 사장들은 대부분 10여 년 동안 함께해온 중국인들”이라며 “이들은 오히려 두산 직원보다 충성도가 더 높고, 영업 방침을 잘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10여 년간 막대한 자금을 들여 구축한 유통망이 경제위기를 맞아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는 상생(相生)의 파트너십을 구축하라는 것이다. 특히 한국 기업 간의 제휴가 필요하다.
2009년은 밀폐용기 제조업체인 락앤락에 각별한 해다. 중국 매출액이 국내 매출액을 넘어서는 해이기 때문이다. 세계 경제위기가 본격화 된 지난해 10월 이후에도 매출 증가 추세는 이어지고 있다. 락앤락이 불과 4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중국 가정의 주방을 파고들 수 있었던 힘은 TV 홈쇼핑업체인 동방CJ와의 제휴에 있다. 락앤락이 중국 시장 공략에 나선 것은 2004년 초. 마침 출범한 동방CJ의 ‘홈쇼핑 전파’를 타기로 했다. 수익성은 따질 계제가 아니었다. 중국 시장에서 유통망과 브랜드 이미지 상승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기 때문이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류근윤 상하이 법인 영업부장은 “방송 첫해 10만 위안을 웃돌았던 매출액이 이듬해 57만 위안으로 급증할 만큼 빠르게 시장을 파고들었다”며 “진출 2년 반 만에 밀폐용기 분야의 최고 브랜드로 꼽히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락앤락이 홈쇼핑에 안주한 것은 아니다. 방송을 통해 브랜드를 알린 후에는 오프라인 유통매장 확보에 더 힘을 쏟았다. 2004~2005년 락앤락의 중국 매출액에서 홈쇼핑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80%. 그러나 지금은 20%에도 미치지 않는다. 이제 락앤락은 중국 시장에서 완전히 자리를 잡아 동방CJ라는 ‘인큐베이터’를 벗어날 때가 된 것이다. CJ홈쇼핑으로서도 대만족이다. 락앤락 제품 판매로 고급 주방용품 분야를 개척했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업종의 한국 기업이 뭉쳐(聯) 중국 시장에 진출한 모범 사례다.
락앤락의 파트너 동방CJ 역시 승승장구하고 있다. 이 회사의 지난해 매출액은 16억 위안(약 3천2백 억 원). 중국의 내로라하는 백화점이 모두 포진하고 있는 상하이 유통 업계에서 당당히 3위에 올랐다. 이 회사의 김흥수 사장은 “다른 유통 업체들은 지난해 말부터 매출액 급감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동방CJ는 올 1~2월 56%의 신장세를 보였다”며 “경쟁력 있는 한국 제품에 ‘중국 진출의 고속도로’를 깔아주겠다”고 말했다.
셋째는 한국의 멋과 맛, 솜씨(기술)로 무장하라는 것이다. 저(低)기술 제품이나 저급 서비스로 중국 시장을 뚫겠다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기술(서비스) 경쟁력은 기본이라는 얘기다. 중국 내수 시장 공략에 성공한 기업들은 모두 한국 특유의 멋과 맛, 솜씨로 무장한 업체들이다.
상하이의 고급 쇼핑센터 ‘강화이(港淮) 백화점’에 입점한 한국 캐주얼 스포츠 브랜드인 EXR 매장. 청바지에 붙은 가격표를 보니 1천430위안(약 29만 원)이라고 쓰여 있다. 중국 대졸 신입사원 월급의 절반을 웃도는 값이다. 이웃 리바이스 매장의 최고급 청바지(980위안)보다 50% 정도 비싸다. 원장석 EXR 상하이 법인장은 “경쟁 브랜드에 비해 50~100% 비싸지만 판매량은 오히려 그들을 능가한다”며 “톡톡 튀는 한국 패션 디자인이 중국 젊은이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중국 진출 5년 만에 직영 매장 1백 개, 연 매출액 2억 4천만 위안(약 450억 원)의 중견 패션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EXR뿐만 아니다. 이랜드, 온앤온, W닷 등 한국 패션이 중국 내수 시장을 파고들고 있다. 라네즈.이자녹스. 등 화장품, 초코파이.신라면 등 식품 브랜드도 선전하고 있다. 한국의 멋과 맛이 승리한 것이다.
서비스는 기술이 뒷받침 됐을 때 빛나게 마련이다. 지난 3월 26일 선전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09년 국제 반도체전시회’. 이곳에서 만난 박해강 크로스반도체 사장은 한껏 부풀어 있었다. 말레이시아계 화교 기업인 유엘텍과 250만 달러의 연구.개발(R&D) 투자 유치 계약을 체결한 것. 박 사장은 “유엘텍은 중국에 생산시설 및 유통망을 갖고 있다”며 “크로스반도체가 개발한 스마트카드를 중국에서 생산, 현지에서 판매하는 식의 비즈니스 협력이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기술력이 있기에 가능했던 얘기다.
10년을 내다본 유통망, 상생의 파트너십, 그리고 한국의 멋과 솜씨를 살린 기술력. 중국 내수 시장 진출의 핵심 키워드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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