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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론다 |
투우라는 스포츠의 출생지
론다의 플라사 데 토로스는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투우라는 경기가 처음 시작된 곳이다. 론다의 산악 지형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 플라사 데 토로스는 스페인에서 가장 오래된 투우장이다. 1754년에서 1784년까지 지어졌으며 최초의 '코리다', 즉 투우 경기는 1785년에 열렸다. 이 투우장에는 5천 명 이상의 관객이 입장할 수 있으며 지금도 때때로 투우 경기를 개최하곤 한다. 이 곳에는 투우 박물관도 있는데, 이 박물관과 호세 마르틴 데 안데우엘라가 설계한 웅장한 신고전주의 건물인 투우장은 꼭 방문해 볼 만한 곳이다.
인간과 황소를 겨루게 한다는 구경거리는 6세기에 기원한 것으로 추측되며, 이러한 경기가 몇 세기에 걸쳐 발달하여 투우라는 이름의 격식을 갖춘 의식이 되었다. 론다의 토레로, 즉 투우사들은 투우장이 그러했듯이 투우라는 스포츠가 발전해 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처음에는 로마의 원형 극장이 경기에 알맞은 장소로 종종 사용되었기 때문에 투우장은 둥근 형태를 띠게 되었다. 그러나 사각형 광장에서 투우가 벌어지는 일도 있었으므로 사각형 경기장도 있기는 하다.
론다 투우장은 오직 투우만을 위해 지어진 최초의 건물 중 하나이다. 론다의 전설적인 투우사들의 솜씨로 투우장도 인기를 누렸고, 현재 흔하게 볼 수 있는 둥근 형태의 경기장도 여기서 채택되었다. 18세기의 투우사들 중 뛰어난 이로는 론다의 로메로 가문을 들 수 있는데, 이들은 3대에 걸쳐 일류 투우사들을 배출해 왔다.
이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페드로 로메로 마르티네스는 투우사 경력 동안 약 6천 마리의 황소를 죽였으며 매번 털끝 하나 다치지 않은 채 유유히 경기장 밖으로 걸어 나왔다. 당시로는 혁신적이었던, 마치 발레와도 같은 그의 투우 스타일은 여러 세대에 걸친 투우사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그의 할아버지인 프란시스코는 예전에는 투우사들이 한쪽 팔에 걸치곤 했던 '물레타'라는 붉은 천을 스틱에 달아 흔드는 방식을 도입하여 '론다 파'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게 된 투우 스타일에 큰 영향을 주었던 인물이다.
오르도네스 가문도 로메로 가문과 함께 양대 명문 투우 가문으로 꼽힌다.
"투우는 예술가가 죽음의 위험에 처하는 유일한 예술이다."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
스페인 유명 투우사의 산실인
론다(Ronda)의
신시가에 있는
투우장
[ 1785년에 이 곳에서 열린 투우 게임이
스페인 역사상 최초의 투우 경기다.]
스페인 유명 투우사의 산실인
론다(Ronda)의
신시가에 있는
투우장 앞에 있는
투우 동상
스페인 유명 투우사의 산실인
론다(Ronda)의
신시가에 있는
투우장 앞에 있는
유료 마차
스페인 유명 투우사의 산실인
론다(Ronda)의
신시가에 있는
투우장 앞에 있는
투우사 조각상
스페인 유명 투우사의 산실인
론다(Ronda)의
신시가에 있는
투우장 앞에 있는
투우 동상
스페인 유명 투우사의 산실인
론다(Ronda)의
신시가에 있는
투우장 앞에 있는
투우 동상
스페인 유명 투우사의 산실인
론다(Ronda)의
신시가에 있는
투우장 앞의
전설적인 투우사 안토니오 오르도네스의
동상
스페인 유명 투우사의 산실 - 론다(Ronda)의 투우장
거대한 협곡을 가로 지르는 누에보 다리의 웅장함과 광활한 대자연을 향연을 만끽할 수 있는 론다는 스페인 남부의 매력을 고스란히 담은 도시다.
세비야, 그라나다, 말라가 등 스페인 여행의 주요도시와도 접근성이 좋은 론다는 도시 자체가 크지 않아 대중교통을 이용할 필요는 없다. 이정표를 따라 비르헨 데 라 파스 거리 (Virgen de la Paz)를 걷다 보면 금세 주요 관광지에 다다를 수 있다.
안달루시아 특유의 하얗고 우아한 빛을 내는 건물 외벽으로 눈길을 사로 잡는 론다의 투우장(PLAZA DE TOROS)은 오랜 역사 동안 수많은 유명 투우사를 배출하였다. 때문에 투우장은 오랫동안 현지인들과 여행객들로부터 사랑을 받아왔다.
'무레타'라고 불리는 빨간 천을 흔들면서 창과 칼로 소를 대적하는 형태를 띈 근대 투우의 창시자이자 전설적인 투우사인 프란시스코 로메로 역시 론다 출신이다.
현재는 실제 투우 경기가 있는 날은 드문 편이지만 경기가 없는 날에도 입장료를 투우장 내부 관람을 할 수 있다. 투우장 내에 있는 박물관에서는 투우사의 사진과 의상 등이 전시돼 있어 투우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투우장에서 신시가 방향으로 조금만 걸어가면 론다의 상징이자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누에보 다리와 절벽위의 하얀 집들을 볼 수 있다. 많은 여행객들이 작은 도시인 론다를 방문하는 이유는 바로 누에보 다리를 보기 위해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누에보 다리는 신시가와 구시가를 연결하는 2개의 다리 중 하나로 높이가 100m 되는 협곡 사이에 돌을 쌓아 건축하였다고 한다. 누에보 다리를 비롯한 주위의 전망대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까마득히 내려다 보이는 협곡으로 빠져들 것만 같아 아찔하지만 론다의 광활한 대평원과 눈부신 절경이 펼쳐져 아찔함을 잊게 한다.
론다 파라도르는 누에보 다리와 타호 계곡, 대평원을 바라볼 수 있어 절벽 주위로 하얀 레스토랑과 숙소가 다수 자리하고 있다.
론다의 둘러보느라 지쳤다면 소코로 광장 (Plaza del socorro)으로 가자. 투우장과 파라도르의 맞은편 거리 안쪽에 위치한 소코로 광장은 현지인들과 여행객들의 휴식처이다. 광장을 주변으로 노천 레스토랑과 상점이 들어서 있어 한가로운 여유를 즐길 수 있다.
스페인 유명 투우사의 산실인
론다(Ronda)의
신시가에 있는
투우장 앞의
전설적인 투우사 안토니오 오르도네스의 아들로서
역시 전설적인 투우사였던
카예타노 오르도네스의
동상
스페인 투우사의 양대 명문 가문인
로메로 가문과 오르도네스 가문
18세기의 투우사들 중 뛰어난 이로는 론다의 로메로 가문을 들 수 있는데, 이들은 3대에 걸쳐 일류 투우사들을 배출해 왔다.
이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페드로 로메로 마르티네스는 투우사 경력 동안 약 6천 마리의 황소를 죽였으며 매번 털끝 하나 다치지 않은 채 유유히 경기장 밖으로 걸어 나왔다. 당시로는 혁신적이었던, 마치 발레와도 같은 그의 투우 스타일은 여러 세대에 걸친 투우사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그의 할아버지인 프란시스코는 예전에는 투우사들이 한쪽 팔에 걸치곤 했던 '물레타'라는 붉은 천을 스틱에 달아 흔드는 방식을 도입하여 '론다 파'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게 된 투우 스타일에 큰 영향을 주었던 인물이다.
오르도네스 가문도 로메로 가문과 함께 양대 명문 투우 가문으로 꼽힌다.
론다(Ronda)의 신시가
론다(Ronda)의 신시가
론다의 3개 다리 중 가장 늦게 완공되어
'새로운 다리'라는 뜻의 이름이 붙여진
누에보 다리에서
서정님
론도의 신시가와 구시가를 연결해 주는
누에보 다리에서 바라본
론도 구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