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지(60갑자)의 기원
10간과 12지의 최소공배수인 60으로 구성되는 갑자, 을축, 병인,...의 60갑자(간지)는 누가 언제부터 사용하기 시작했을까?
연도에 붙이는 60갑자를 歲次, 달에 붙이는 것을 月建, 날짜에 붙이는 것은 日辰이라 한다.
日辰이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매우 오래전부터인 것 같다.
전설상의 夏왕조의 왕명에 干과 支가 보이고 있고, 商왕조 후기인 帝乙시대의 갑골문상에 이미 완전한 형태의 60갑자가 새겨져 있는 것으로 보아 늦어도 商대에는 干支를 일진으로 사용하였음이 분명하다.
그러면 최초로 간지가 사용된 것은 언제부터일까?
이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기록들이 전한다.
話說黃帝時期,妖怪四出,又有蚩尤作亂,弄至民不聊生,黃帝因此而討伐蚩尤,與蚩尤在涿鹿這個地方大戰,士兵死傷無數,血流百里,黃帝為求戰事盡早結束,決定齋戒沐浴,設壇祭天禮地,求天神之指示幫助,這時,天上降十干「甲、乙、丙、丁、戊、己、庚、辛、壬、癸。」及十二支「子、丑、寅、卯、辰、巳、午、未、申、酉、戌、亥。」黃帝乃將十干圓形布象成天(圓形主天),而將十二支方形布象成地(方形主地),而黃帝借這十干十二支陣,破蚩尤亂軍,至於如何借十干十二支陣破敗蚩尤,至今仍是一個秘密。但由此開始十干被稱為十天干、十二支被稱為十二地支。後來,又有大撓氏,為後人而擔憂,概嘆黃帝也須借助十干十二支之力方能破敗惡煞,這惡煞當然包括蚩尤,萬一後世再出現惡煞,如何處理之,便將十天干及十二地支,配成六十組,以定年份月份日子時辰,所以,以後的中國年份都是以干支名之,如甲子年、乙丑年、丙寅年、丁卯年……。[송나라 徐子平의 淵海子平- 정확한 원문인지는 미확인]
祛疑說八卦未畫數泯於理自天出河圖而後有先天之八卦先天之數由是出焉故大撓氏作六十甲子亦以一二三四五而定火土金木水之數聖賢立法未有不參於理本於數者也今世之所謂驛馬者先天三合數也先天寅七午九而戌五合數二十有一故自子順至申凡二十有一而為火局之驛馬亥卯未之數四六與八合為十八故自子順至巳凡十八而為木局之驛馬木火陽局也從子一陽而順轉金水陰局也從午一陰而逆行故申子辰之數七九與五合為二十有一故自午逆至寅凡二十有一而為水局之驛馬巳酉丑之數四六與八合為十八故自午逆至亥凡十有八而為金局之驛馬此驛馬之法所由立也 [고금도서집성理學彙編學行典 理數部雜錄(제44권)]
古之人論數也, 曰「物生而後有象, 象而後有滋, 滋而後有數」. 然則天地初形, 人物既著, 則筭數之事生矣. 記稱大橈作甲子[一], 隸首作數[二]. 二者既立, 以比日表[三], 以管萬事. 夫一、十、百、千、萬, 所同用也;律、度、量、衡、曆, 其別用也. 故體有長短, 檢以度[四];物有多少, 受以量[五];量有輕重, 平以權衡[六];聲有清濁, 協以律呂;三光運行, 紀以曆數:然後幽隱之情, 精微之變, 可得而綜也[七].
[一]呂氏春秋曰:「黃帝師大橈.」博物記曰:「容成氏造曆, 黃帝臣也.」月令章句:「大橈探五行之情, 占斗綱所建, 於是始作甲乙以名日, 謂之幹, 作子丑以名(日)[月], 謂之枝, 枝幹相配, 以成六旬.」
[二]博物記曰:「隸首, 黃帝之臣.」一說, 隸首, 善筭者也. [後漢書 志第一 律歷上 律準 候氣]
위들 기록에 따르면, 태초에 黃帝대에 치우를 평정하는 과정에서 10간과 12지가 고안되었고 이를 황제의 신하였던 大撓氏(또는 大橈氏)가 60갑자로 조합하여 사용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전설에 따르면 황제는 갑자년 갑자월 갑자일에 즉위하였다).
일진으로서의 간지는 이렇게 오래된 듯하나, 연대에 간지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상대적으로 훨씬 후대의 일이다.
다음과 같은 자료가 있다.
古人不以甲子名歲自王莽下書言始建國五年歲在壽星倉龍癸酉...天鳳七年歲在大梁倉龍庚辰是 始變古原古人之法以歲星定太歲之所舍星有超辰則太歲亦與俱超故不可以甲子名歲也東漢以來步 曆家廢超辰之法乃以甲子紀年以便推算[存眞]
즉, 후한시대부터 曆法家들이 연대에 간지를 쓰기 시작한 것이 그 시초이다.後漢 章帝元和二年(CE85년),전국에 令을 내려 간지를 紀年에 쓰게 한 것이다.
前漢 武帝이전에 이미 간지를 紀年에 썼다는 주장도 있으나, 실제로는 간지와 유사한 太歲紀年을 쓴 것으로, 태세(목성)의 위치를 가지고 紀年을 표시한 것이고-목성을 歲星이란 한 이유- 간지는 단지 12辰을 표기하는 데 쓰였을 뿐이다(목성이 지나는 천구를 균등히 12등분한 것이 12辰이다. 이를 12次라고도 했다).
[예를 들면, 漢王劉邦元年(前206年,乙未)은 漢書·律曆志에는“歲在大棣(鶉首),名曰敦牂,太歲在午”라 하여 太歲紀年이 干支紀年에 비해 1年늦으며 秦王政八年(前239年,壬戌)은 呂氏春秋·序意에는 “維秦八年,歲在涒灘。”涒灘,太歲在申。이라 하여 太歲紀年이 干支紀年에 비해 2年 늦다]
목성은 11.862년에 天球를 1회전하므로 84년간은 7.08회 도는 데, 그 기간동안 12辰은 7회 반복되므로 그 차이 0.08x 11.862 = 약 1회만큼 辰이 앞서게 되어 84년간에 85辰이 있게 된다(이 것을 超辰法이라 한다. x년만에 1辰이 초과되는가 하는 것은 간단한 산수로, x =12x/11.86 -1에서 x= 84.7이 구해진다) .
顓頊曆으로 前漢 武帝太初元年(BCE104年)은 太歲가 丙子에 있었는 데, 太初曆은 초진법을 써서 丁丑으로 하였지만, 成帝末年에 劉歆이 三統曆을 개정하면서 太初元年을 丙子로 다시 고치고 太始二年(BCE95年)을 乙酉에서 丙戌로 고치면서 초진법이 사라지게 되어 이후 태세기년과 간지기년이 태시2년부터 일치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