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성에서 길을 잃다 / 조정숙
1. 자금성 관광에 나섰다. 38도의 무더위 속에서 2시간 이상 계속 걸어야 한다는 가이드의 말이 실감 났다. 천안문 앞에 도착하고 보니 인민대회당, 국가박물관, 인민영웅기념비 등 TV에서 보던 낯익은 광경이 다가왔다.
2. 이른 아침 시간이었지만 천안문 광장이 비좁게 여겨질 만큼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야말로 사람이 더 구경거리였다. 중국 각 지방에서 가족, 학생, 단체로 관광 온 사람들을 보니 저 인파를 뚫고 자금성에 들어갈 일이 걱정스러웠다. 과거에는 황제가 살던 궁이라 아무나 들어갈 수 없던 곳이다. 하지만 지금은 사람이 너무 많아 쉽게 들어갈 수가 없다.
3. 겨우 인파를 뚫고 자금성으로 들어섰다. 영화에서 본 장면들이 오버랩 되면서 사진으로 담아보고 싶었지만 사람이 많아 제대로 찍을 수가 없다. 가이드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잃어버리면 찾기 힘들다고 전이나 궁을 볼 때마다 인원을 확인했다. 800여 채의 건물과 9,999개의 방이 있으니 그럴 수밖에.
4. 황제즉위식이나 혼례, 명절 등의 주요 행사가 이루어졌던 태화전을 배경으로 단체사진을 찍었다. 다른 궁전이 있었지만 많은 사람으로 볼 수가 없어 가이드의 설명으로 대신했다. 가이드의 말을 듣고 인원을 점검하는데 한 사람이 없다. 몇 번을 확인해도 보이질 않았다.
5. 미로 같은 궁전 속에서 눈 깜짝할 사이에 일행 한 사람을 놓쳤다. 수많은 사람들 중에 같은 옷을 입은 사람은 단체로 온 어린이들뿐이고 어른들은 각양각색으로 다른데 찾을 수가 없었다. 전화를 해도 시끄러워서인지 받지 않았다. 가이드가 소낙비 같은 땀을 흘려가며 주의를 줬건만 어디에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6. 자금성에는 오로지 궁과 전 사람들뿐이다. 만약 일행을 놓쳤을 경우에는 태극기를 보고 찾아오라고 태극기를 길잡이 깃발로 가져왔다. 수많은 깃발 중에 태극기도 하나뿐이었다. 하지만 어느 인파 속에 섞여 있는지 오십 개의 눈과 태극기만 목을 빼고 기다렸다.
7.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니 가지가지다. 그중 특이한 것은 엄마와 아이가 손목에 줄을 착용해 잃어버리지 않게 연결하고 다니는 것이 보였다. 우리도 저 줄을 사서 어린이처럼 모두 엮어 따라다녀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하면서 한바탕 웃었다. 가이드와 인솔자 선생님이 몇 번의 통화 끝에 그분과 연결이 되어 있는 곳을 알았고 찾게 되었다.
8. 그는 일행을 잃고 입구와 출구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고 했다. 십 분이 지나고, 삼 십 여분이 흘러도 우리 일행 중 누구도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일행을 잃었을 땐 제자리에 가만히 있어야 한다는 말만 기억났단다. 우리가 나타나기를 얼마나 기다렸을까? 가이드를 만났을 땐 구세주를 만난 기분이었으리라.
9. 자금성은 명나라 3대 황제인 영락제부터 청나라 마지막 황제인 선통제까지 24명의 황제가 기거한 궁이다. 중국과 동아시아 정치, 문화의 한가운데였고 세계의 중심을 자처하기도 했던 곳이다. 황제가 문무 대신과 종사를 다루던 곳인 동시에, 또한 고관대작에서 하급 관료, 환관, 내시, 궁녀, 장인, 궁궐수위병 등 여러 사람들의 직장이자 생활 터전이었다. 그들은 금단의 궁에서 엄격한 법률을 지키며, 서로 관계를 맺고 자신의 길을 살았다.
10. 나무와 흙, 화장실이 없는 자금성이다. 황제도 살아가는 길이 불안했던가 보다. 나무가 없는 것은 황제를 보호하기 위해서란다. 외부 침입자가 들어올 경우에는 숨을 곳이 없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황제를 지키기 위한 보호 장치가 군데군데 있었다. 궁궐 주변으로 높은 성벽을, 성벽 주변으로 땅을 깊게 파서 해자를 만들어 땅 밑으로 침입하는 것까지 막았다. 자객의 암살, 내란과 반란에 시달려 온 왕족들의 위태로운 모습을 반영한 것 같아 그 화려함과 큰 궁전 이면에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11. 자금성에서 청나라를 반세기 가까이 지배하며 권력을 쥔 서태후는 궁녀가 머리를 빗길 때 머리카락 한 올만 빠져도 죽였다고 했다. 이동 변기 청소를 소홀히 해서 냄새가 조금 나도 시종을 죽였다고 하니 끔찍했다. 시기심과 야수적 탐욕에 눈이 멀어 보통 사람이라면 상상도 하지 못할 악행과 패륜을 저질렀다. 본인의 잘못을 덮으려고 수많은 사람을 죽였다. 짐승 같은 행동을 거침없이 하며 정치를 했던 서태후도 길을 잃기는 만찬가지다. 언제 죽을지 모를 불안에 떨며 불행하게 살지 않았을까?
12. 인생길은 미로 같은 길이다. 지나온 길은 되돌아갈 수도 없다. 나도 살아오면서 길을 잃고 헤맨 적이 여러 번 있었다. 버거운 무게를 지고 사는 삶에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때도 있었다. 갈림길이 나오면 선택이 두려웠고 고빗사위 길은 허덕거렸다. 일 분이 일 년 같은 시간, 불안과 공포로 앞길을 예측 못 할 때도 있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길이다.
13. 자금성에서 살았던 다양한 인물들은 살면서 언제 안개가 낄지, 태풍이 몰아칠지 알 수 없는 길에서 헤맸을 것이다. 길을 잃으면 길을 찾아 헤맨다. 망연자실 넋 놓고 앉아 있을 수도 없다. 그러나 더 큰 불행은 길을 잃은 줄 모르고 무작정 가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