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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 앨범을 발표하는 콘서트에 선 유상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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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병순 |
"꽃이 필 땐~ 몰랐었던 그 여인의 사~랑을…"로 시작하는 노래, 바로 <그 여인>이다.
유상록이라는 가수를 세상에 알렸던 노래이기도 하다. 귀에 익숙한 멜로디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그런데 사실 그의 이름 석 자만 생소했을 뿐 유상록이란 가수는 이전부터 대중에게 익숙한 그룹의 멤버였다.
유씨는 1979년 제1회 'MBC FM 강변 축제'(현 'MBC 강변 가요제')를 통해 <젊은 미소>로 데뷔한 '건아들'의 2기 리드기타 겸 보컬이다. 건아들은 아직도 멤버 중 세 명이 남아 라이브 카페를 열고 활동하고 있다.
당시 군 문제 등 여러 가지 이유로 그룹을 떠났던 유씨도 라이브 무대를 통해 세상과 꾸준히 소통해오고 있다. 휴게소 거리 콘서트도 마다하지 않는다. 격주로 토요일 오후 3시면 경부선 안성휴게소(하행선)에서 그를 볼 수 있다.
안성휴게소에선 '격주 콘서트'... 노래로 번 돈 전액 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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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미로운 노래와 함께한 팬들과의 흥겨운 만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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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병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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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한 계기로 그의 근황을 알게 되어 지난 16일에 이어 25일, 두 번에 걸쳐 그를 만났다.
16일에는 오랜만에 새 앨범을 발표해 팬들과 만난 송파구민회관 대기실에서 얼굴을 마주했고 25일엔 한 보호시설에서였다.
록 가수였던 그가 솔로 활동을 하면서 포크송에 크로스 오버로 변신을 꾀한 세미 트로트를 감미롭게 들려주는 모습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기도 했지만, 그를 만나고 싶었던 중요한 이유는 다른 데 있다. 바로 유씨가 8년간 남모르게 사회 구석구석에 따뜻한 도움의 손길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유씨는 공연 진행 중 쉬는 틈을 이용해 간간이 인터뷰에 응했다.
그런 그를 두고 작곡가인 손창수 교수는 "유씨를 인터뷰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나를 붙잡고 물어보는 게 나을 것"이라며 "저 사람은 자기 자신을 포장할 줄 모른다, 방송 출연 기회가 숱하게 많았어도 묵묵히 자기 고집만으로 사는 사람"이라고 '훈수'를 뒀다.
손 교수는 "(유상록은) 여느 가수들처럼 이름을 알리기 위해 여기 저기 기웃거리지도 않을 뿐더러 남에게 사정 얘기하는 것을 무척이나 꺼린다"며 "오랫동안 지켜봤지만 아직도 쉽게 납득이 안 된다"고 혀를 내둘렀다.
10년 넘게 유씨의 로드 매니저를 하고 있다는 이승영씨도 "자기 자신과 주위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봉사에만 매달리는 그를 이해할 수 없어 한 때는 그의 곁을 잠시 비켜 있었다"며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그의 순수한 열정을 모른 체 할 수 없어 백기를 들고 말았다"고 귀띔했다.
사회 봉사활동에 대한 얘기가 듣고 싶어 왔다는 필자의 말에 유씨는 "내가 유일하게 잘할 수 있는 것이 노래"라며 "많은 부를 축적해서 그늘진 곳을 돌보면 좋겠지만 그것보다는 내가 현재 가진 능력으로 그들에게 다가서고 아픔을 나눌 수 있는 게 더 좋다"고 수줍게 말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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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상록씨가 5년째 후원하고 있는 '나눔의 동산'. 비록 조립식 건물이지만 소외된 이웃들의 소중한 보금자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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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병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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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독거노인을 위한 콘서트를 비롯해 대학 축제, 고속도로 휴게소, 야외무대 등 라이브 콘서트로 얻은 수입의 전액을 소외계층을 위한 복지 기금으로 써왔다. 대표적인 기관이 독거노인, 장애인 보호시설인 춘천 '나눔의 동산'이다.
나눔의 동산은 춘천댐을 지나 화천방향의 집다리골 휴양림 너머 깊은 산자락에 있는 조그마한 마을에 있다. 현재의 원장이 지난 92년 사재를 털어 소외계층을 돌보고자 세운 오두막에서 시작됐다.
지금은 7세부터 97세까지의 오갈 곳 없는 어린이, 독거노인, 정신지체 장애인 등 46명이 살고 있다. 그러나 지방자치단체의 정식 후원을 받지는 못하는 곳이다. 휴양지 근처에 자리한 덕분에 여행객들이나 우연히 걸음한 익명의 독지가들의 도움으로 그나마 지금의 번듯한 건물을 갖출 수 있게 됐다.
유씨는 벌써 5년째 이곳을 후원하고 있다.
유상록 "세상에 알려지는 것 달갑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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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상록씨를 보자 달려드는 '나눔의 동산' 원생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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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병순 |
나눔의 동산을 비롯해 8년간 소외계층을 돌봐온 유씨는 한사코 자신의 활동이 알려지는 걸 마다했다.
유씨는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언론을 등에 업고 조명되는 것이 그리 달갑지 않다, 조용히 내가 하고자 하는 일에만 열중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돈을 많이 모아 그들을 풍족하게 도와주면 좋겠지만 사람 마음은 모르는 거다, 많은 부를 축적하게 되면 그때는 내 자신이 또 어떻게 변해 있을지 모른다"고 덧붙였다.
유씨는 아동 학대 사건으로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수경사 사건에 대해서는 "떠올리기도 싫다"고 손사래를 쳤다. 유씨는 거리콘서트 수익 전액을 현금으로 수경사에 보내는 등 수년간 수경사를 후원해 왔다.
유씨는 "그 사건 때문에 마음이 아프다, 하지만 세상을 많이 배울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오히려 다행"이라며 "세상이 모두 내 마음 같지만은 않더라"라고 토로했다.
이어 유씨는 "사건 이후 지금은 수익금 전액을 쌀, 생필품 등 그곳에서 필요로 하는 물건으로 대체해 후원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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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원물품을 나르는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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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병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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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마디 말문을 열었을 뿐 유씨는 말을 극도로 아꼈다. 남모르게 해온 봉사가 필자 때문에 세상에 알려지는 것을 몹시 난처해 했다.
필자도 지난 해까지 한 시설을 찾다가 이런 저런 사정을 핑계로 활동을 중단했다. 주위에 생색내지 않고 한결같은 마음으로 소신을 굽히지 않는 유씨를 보고 있자니 내 자신이 부끄럽기 짝이 없다.
25일 유씨와 함께 나눔의 동산을 찾았다. 나눔의 동산 사람들은 유씨를 보자 너도나도 달려든다. 유씨가 해맑은 미소를 지었다. 내가 본 그의 모습은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옆집 아저씨나 너그러운 형의 얼굴이었다. 새삼 그가 다르게 보였다. |
첫댓글 대단하십니다. 정말 훌륭하고 존경스럽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대중들로 하여금 많은 사랑받으시고 봉사활동도 지속되시길...
존경합니다..글구 사랑합니다..
오랫만에 들렀네요... 창에 계신 남경님 많이 반갑습니다. 새해에도 늘 행운이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_()_
선행이라는게 쉽지않은데 박수을보냅니다~~~~~~좋은일많이 생기기을바랍니다
정말로 존경합니다,,그맘이 언제나변합이없길바랭ㅅ..건강도 챙기면서 하시길바래요^^
숨어서 세상을 비추는 님이 있기에 우리는 이 어지랍고 고달픈 세상을 억지로라도 버티는 것입니다. 사랑 해요.
그여인은 무지 좋아하는 `펜 그속에 사랑이 잇어 누구에게 간다한는건 `역쉬 사랑이 아니면 할수 읍는 거겟죠` `마음이 이쁜 사람은 언제 어디서나 사랑받고` ` 도 같이 온답니다` `늘 행복 하세요` ```
정말 대단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