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2월 22일(수), 맑음
하던 일이 12월 20일(월) 끝났다.
거제 친구 기현과 약속한 대로 거제로 향했다.
오랜만의 여행으로 기분이 좋다. 거가대교를 이용하는 게 장목면 가기엔 편하다.
장흥사 지장보살시왕탱(경남 유형문화재 제454호)
장흥사(장목면 장목리)에 들렸다.
장흥사 대웅전은 천막이다. 지장보살시왕탱를 보호할 전각은 한창 짓고 있다.
문화재를 보지는 못했으나 동지라고 팥죽은 공양 받았다.
장목진 객사(경남 유형문화재 제189호/장목면 장목리)
조선시대 거제부엔 7진(수군 주둔지)이 있었다. 그 중에 한 곳이 장목진이며 이 객사는 언제 지어졌는지 알 수 없다.
1785년(정조 9) 다른 곳에 있던 것을 이곳으로 옮겼다는 기록은 있다. 1802년(순조 2) 다시 고쳐 지었다.
장목 앞바다
장문포 왜성(경남 문화재자료 제273호)
장목을 장문포라 하였던 모양이다. 장문포 건너 송진포에도 왜성이 있다.
이곳 안내문엔 장문포(場門浦)라 표기하고 있다. 장목진 객사 현판은 장문포(長門浦)라고 적혀 있다. 한자가 다르다.
성벽의 흔적을 따라 올라갔지만 나무에 가려 시원한 경치는 구경할 수 없었다.
거제 하청 북사지(경남 기념물 제209호/ 하청면 하계리)
절 터에 가보진 못했다. 안내문은 광청사 입구에 있다.
「북사지는 앵산 중턱에 있다. 북사에 대한 명확한 기록은 없다.
북사 범종에 '중국 요나라 태평 6년(1026)'에 만들었다는 명문이 있다.
고려 현종 17년(1026)에 북사가 세워졌거나 이보다 앞서 있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이 범종은 고려 공민왕 7년(1374) 왜구가 침입, 약탈, 현재 일본 좌하현 혜월사에 일본 중요 문화재로 등록·관리하고 있다.
북사가 언제 폐사되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구전에 따르면 절에 빈대가 많아서 망했다고 한다.
북사는 옛날 경남 4대 사찰로써 해인사, 통도사, 범어사와 함께 대규모였던 것으로 전하고 있다.」
안내문이나 인터넷 검색하여 얻은 내용이다.
현재 절 터엔 금당 주춧돌 등이 있다고 한다.
산의 지형을 봤을 때 북사의 규모를 해인사나 통도사, 범어사 등 버금가는 것으로 느낄 수 없다.
광청사 일을 하는 보살은 절 터를 다른 곳으로 가르쳐 준다. 정상 부근이며 사적지 표시가 없어 찾기가 어렵다고 한다.
주차를 하고 20분 정도 걸어들어가야 있다고 하였지만 절 터는 이 안내문 위쪽에 있는 것 같다.
북사 절 터에서 옮겨온 부도(승탑), 광청사 극락전 뒤편에 있다. 4면에 글씨가 있지만 마모가 심하여 읽기가 어렵다.
승탑 고려시대 것으로 보인다.(전적으로 내 의견)
약수터에 주차하고 500~600m를 걸었다. 광청사에서 내려 오면서 본 경치, 칠천도가 눈에 보이고 칠천대교가 보인다.
멀리 보이는 뾰족한 봉우리는 진해 시루봉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오후 1시 경부터 장흥사, 장목진 객사, 광청사 등을 돌고나니 오후 4시.
오늘 만 보를 걷기 위하여 하청 앞바다로 나왔다. 칠천도와 칠천대교, 멀리 진해의 산들이 보인다.
연초고등학교 주위에 텃밭이 있다.
기현의 고향은 양산이지만 처갓집은 연초면이다. 거제 삼성조선에 다니면서 아내를 만난 것 같다.
오후 5시가 조금 지난 시간에 텃밭 농막에서 만났다. 기현의 부인도 같이 있었다.
둔덕면에 홀로 사는 고교동기 영재한테 가자고 한다. 기현의 부인이 삼겹살, 김치 등을 챙겨준다.
영재란 동기는 오래 전에 이혼하고 홀로 지내고 있다. 자식은 딸만 있고 36세로 결혼하여 남편과 베트남이 있다고 한다.
나와는 전공한 과가 다르고 졸업 후에도 모임을 통해 만난 적이 없어 낯설기도 하지만 고교동기란 이유로 서먹함이 없다.
잠은 기현이와 영재집에서 잤다.
2021년 12월 23일(목), 맑음
평소보다 일찍 잠에 들었다. 7시쯤 일어났다.
8시쯤 영재가 와서 아침을 챙겨준다. 이런저런 이야기로 아침 시간이 즐거웠다.
영재와 사회 친구가 9시 넘어서 왔다. 그와도 여러 이야기를 나누다가 10시10분 경이 일어났다.
오랜만에 만나 친구에게 하룻밤 신세를 졌다. 고마운 일이다.
거제여자상업고등학교(거제면) 뒤편에 반곡서원과 세진암이 이웃하여 있다.
반곡서원
1704년(숙종 30) 우암 송시열(尤菴 宋時烈) 선생을 기리기 위하여 지방 유림에서 창건하였다.
죽천 김진규(竹泉 金鎭圭), 몽와 김창집(夢窩 金昌集), 단암 민진원(丹巖 閔鎭遠), 삼호 이중협(三湖 李重協),
계산 김수근(谿山 金洙根) 등 추가 배향하고 있다.
우암 선생은 교과서에서 배웠지만 추가 배향한 인물들에 대하여 나는 아는 바가 없다.
이 분들을 검색하여 공부해야할 숙제가 생겼다.
반곡서원은 예전에도 들린 적이 있다. 풍상이 느껴지는 서원 건물은 아니다.
동재와 서재, 성리학의 이상을 담은 당호가 있지 않고 동재, 서재라고 현판이 걸려있다.
반곡서원유허비
사당인 우암사, 위패만 있는 것이 아니고 우암 선생의 초상화가 있다. 문틈으로 제대로 본 것은 아니다.
동록당은 추사 김정희 선생이 군자라고 칭송한 동록 정혼성(東麓 鄭渾性, 1779~1843) 선생을 모신 곳이다.
옥산성(玉山城/경남 기념물 제10호)
세진암 뒤편에 정자가 보인다. 기현이 그곳에 가고파한다.
옥산성은 수정봉(148m) 주위에 성벽을 쌓았다.
세진암 우측 임도를 따라 올라가거나 거제 성당 뒤편으로 올라갈 수 있다. 700~800m쯤 될까?
사방이 탁 틔여서 경치를 구경하기에는 정말 좋다.
계룡산, 좌측 봉우리가 정상이다.
성 안의 식수를 저장한 수조같다.
거제 앞바다(거제면 서정리 등). 멀리 보이는 곳은 통영 한산섬 같기도 하다. 산방산도 보인다.
거제 동부면 방향이다.
하산은 다른 길을 택하였다.
거제성당도 오래된 것 같다. 십자가 있는 건물은 대리석으로 지었다.
반곡서원에 와서 다시 세진암에 들렸다. 옥산성 가기 전 세진암은 재를 올리고 있었다.
세진암 목조여래삼존불좌상(경남 문화재자료 제325호)을 볼 수 있었다.
거제향교(경남 유형문화재 제206호/거제면 서정리)
향교는 국가가 세운 학교이다.
일정한 곳에 주차하고 걷는 게 좋겠다. 향교와 관아, 반곡서원 등이 반경 1km 안이다.
공자상
명륜당, 공부하는 강당이다.
대성전, 대성은 공자를 의미한다. 대웅은 석가모니를 의미하듯이.
공자와 중국의 성현, 신라 이후 조선의 성현 등을 모신 사당이다.
거제현 관아(巨濟縣 官衙, 사적 제484호/거제면 동상리)
수령이 사무는 보던 동헌은 현재 거제면사무소가 차지하고 있다.
하급관리가 공무를 보던 질청은 문이 잠겨져 있다.
손님을 모셨던 기성관은 개방하고 있다.
기성관
송덕비군, 철로 만든 송덕비를 보기는 쉽지 않다.
송덕비 중 하나, 상석의 용모양이 재미있다. 여의주를 가운데 두고 서로 먹겠다고 다투는 모양일까?
질청, 담 넘어 보이는 건물을 촬영하였다.
혜양사(동부면) /혜양사 완호작 불화 일괄(경남 문화재자료 제451호)
승려 완호가 그린 불화 일괄을 보기 위하여 동부면에 있는 혜양사로 왔다.
사찰은 근래 조성한 것 같으나 주변을 시원하게 조성하였다.
기현은 여름철에 이곳으로 시민들이 많이 놀러온다고 한다.
관음전이나 본전 등 건물이 크지만 안을 들려다 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기현과 두런거리는 소리를 듣고 나이든 승려가 나온다.
불화를 보러 왔다고 하니 대뜸 한 마디 하신다.
"그걸 뭐하러 봐! 절에 왔으면 부처님한테 절을 해야지. 문화재 보러 오는 놈들은 다 도둑놈이야!"
졸지에 도둑놈이 되어버렸다.
한 마디로 끝난 게 아니다. 10여 분을 서서 그의 말을 들어야 했다.
신앙을 가져라. 나라마다 대통령을 한 사람들은 다 신앙인이었다.
신앙이 없으면 흥청망청, 음욕에 빠져산다.
불화는 큰절(해인사)에 있다고 한다. 문화재 그게 뭐라고 보러다니지 말고 신앙심을 가져라 한다.
기현과 내 마음은 그리 편한 게 아니지만 나이든 승려가 말씀을 하시니 다소곳할 수밖에.
부처에게 절을 하든말든 그건 본인의 마음이다.
신앙을 갔든말든 그것도 본인의 마음이고 본인이 결정할 일이다.
무엇이든 강요하여서는 안 된다. 일방적으로 이렇게 말씀하는 것도 '꼰대'란 말을 듣기 십상이다.
영은사(일운면 지세포리)/ 거제 외포리 석조여래좌상(경남 유형문화재 제455호)
조용한 사찰이다. 영은사 앞마당에서 본 지세포이다.
외포리는 장목면이다. 그곳에 방치된 석불을 이곳에 봉안하였을 것이다.
총명사(장승포동/전통사찰)
산 중턱에 어지럽게 앉은 있는 사찰이다.
절에서 보는 경치는 일품이지만 절 터가 좁다.
예념미타도량참법(경남 유형문화재 제592호), 조선시대 제작한 불교서적이다. 볼 수는 없었다.
장승포 총명사에 나와 '아주동 삼층석탑(경남 문화재 자료 제33호)'을 찾아나섰다.
내비게이션을 이용하였지만 그 장소에 석탑이 보이질 않는다.
찾는 것을 체념하고 신현에서 기현을 내려주고 나는 사등면 신광사로 향했다. 오후 3시 30분 경이다.
신광사로 향하는 길에 널린 현수막, 동리 사람들은 수목장을 반대한다. 왜?
신광사(사등면 오량리)
신광사 마당에서 본 경치, 멀리 보이는 산은 고성군 거류산일까?
신광사 터는 널찍하다. 이곳에 깜끔하게 절집을 짓는다면 오가는 사람들이 잠시 쉬어갈 수 있겠다.
오량리 석조여래좌상(경남 유형문화재 제48호)
인공 석굴에 봉안한 석불, 안면은 많이 마모가 되었다.
고성 회화면에 있는 대학동기 오권에게 폰을 하였다.
사람을 만나는 중이라고 문자가 온다. 오랜만의 만남을 체념하였다.
고성읍을 지날쯤 본 저녁놀이다.
오늘 돌아다닌다고 점심을 건넜다.
배가 고프다. 마산 진동으로 들어왔다. 간짜장이 먹고 싶다.
전화가 온다. 오권이다. 대우조선에서 협력사 회의가 있었다고 한다. 6시가 넘었다.
차를 돌려 거제로 갈 수는 없다. 오권은 거제 장목면 송진포가 고향이고 지금은 신현에 살지만 직장은 고성이다.
다음을 기약하고 잠시 쉬었다. 창원터널이 조금 한산할 시간이 될 때까지.
거제도는 섬이란 한계가 있다. 또한 서울과는 거리가 멀다.
딱히 내세울 문화재는 없다. 사찰 또한 규모가 큰 곳도 없다.
사찰이나 유교 등 관련된 문화재가 손가락을 꼽을 정도이다.
자연경관이 아름다운 곳이다.
*거제 여러 사찰을 돌았다. 전통사찰은 세진암과 총명사 두 곳이다.
다른 사찰은 문화재를 보관하고 있다. 이 사찰들에 대한 기록은 '절을 찾아서'에 올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