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배의 섬 비진도-5

[나나]

                                                        (가덕 휴게소)

여기는 가덕휴게소, 거가대교가 생기면서 따라 생긴 휴게소인데,

전국 각지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지 휴일마다 북새통,

쉴 새 없이 몰려드는 관광버스들로 인하여 주차장도 대만원,

진입로는 물론 인도에까지 차량들이 늘어서 있으니,

어느 틈으로 빠져 나와야 전망대로 가고,

어느 구멍으로 들어가야 화장실이 있는지,

또 어리벙벙하다.

                                                  (2층 전망대로 올라가는 계단)

경험상 여자들이 와글거리며 소란한 곳은 화장실,

남녀 손잡고 두리번두리번 서성대는 곳은 스낵코너,

왁자지껄 우스갯소리 터져 나오는 곳은 벤치가 있는 쉼터,

몽글몽글 담배연기 하늘로 솔솔 피어나는 곳은 전망 좋은 곳이다.

그런데 이 휴게소는 그게 들어맞지 않는 곳이다.

휴게소 자체가 필수로 들리는 관광코스에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쉴 새 없이 몰려오기 때문에,

휴게소 전체가 와글와글, 복닥복닥 소란한 곳이다.

나의 방랑 30년의 경험이 들어맞지 않는 곳이다.   

                                                   (2층 전망대에서 내려가는 줄)

이야! 대단하다, 대단해!

물론 남해바다 푸른 물과 아름다운 거가대교의 멋진 풍경은 두말하면 잔소리,

그런데 그것보다 더 아름답고 멋지고 활기 넘치는 풍경이 하나 더 있는데,

바로 거가대교를 보겠다고 달려 나온 관광객들의 모습이다.

각양각색의 모습으로 웃고 떠들며 즐기는 모습이 구경거리이다.

                                               (바다를 빙 둘러 전망대)

문만 열면 바다가 보이는 바다의 도시 부산에 살면서도 항상 바다가 신기한 나,

나도 저 알록달록한 사람들의 틈에 끼어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며 탄성을 지른다.

가슴이 출렁 내려앉는 허기를 느끼며 "야아! 너무 좋다"

짧은 머리에 더 이상 나의 감정을 알릴 수 있는 단어는 생각나지 않는다.

가슴이 답답하고 머리가 복잡한 그대들이여 그냥 한번 와 보시라.

                                                      (빨간 등대와 낚시 배)

저 가덕도 앞 바다에 낚시가 그렇게 잘된다고 한다.

배를 타고 나가서 미끼만 던지면 무슨 고기든 한 바구니 낚는단다.

그래서 저 가덕도 앞 바다는 항상 낚싯배들이 둥둥 떠 있다.

바다에 점점이 떠 있는 낚싯배가 또 한 폭의 그림이다.

                                                         (바다 산책로)

                                        (가족끼리 또는 친구들과 기념사진촬영)

                         (휴식공원, 여기서 휴식도 취하며 도시락을 먹기도 하고)

                              (위에서 뛰어내리고 밑에서 받는 것 같은 모습인데...)

저건 또 뭐꼬?

하나는 거꾸로 하나는 바로 서서 무슨 행동인가를 취하고 있는데,

작품의 제목도 설명도 보이지 않아 의미도 모르고 그냥 사진만 꾹떡 찍어왔다.

하늘에서 바다를 향하여 펄쩍 뛰어내릴 자세를 취하고 있으니 긴장감 있어 좋다.

그렇게 바다를 감상하고 다시 타고 왔던 버스로 찾아가는데,

참 내! 또 실눈을 뜨고 이마에 갈매기를 그리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내가 타고 온 버스가 보여야 말이지,

차 넘버가 몇 번이고 이름이 무엇이며 색깔이 어떤 색이라고 외우고 있으면 뭐하노?

전부 같은 숫자로 보이고 이름도 비슷비슷하고 색깔도 다 똑 같은 색으로 보이는데.

광장에 빽빽하게 주차되어 있는 차를 찾는 일도 보통 일이 아니다.

                                                            (침매터널)

거대한 함체(콘크리트 구조물) 18개를 바다 속에 가라앉힌 뒤 연결하여 만든,

바다 수심이 최고 48m인 곳에 건설된 세계 최초의 침매터널이라고 하는데,

실제 느끼기엔 그냥 여느 터널과 다름없는 터널일 뿐이다.

침매터널이라고 하니 침매터널인가 보다. 라고 생각할 뿐이지,

바닷물이 보이나, 바깥세상이 보이나, 그저 기분만 신기하다.

                                                             (거가대교)

그 이름도 유명한 세계최초의 터널 가덕 침매터널을 통과하여 거가대교로 나왔다.

거가대교가 그렇게 아름답다고 하는데 달리는 차안에서 휘익 스치며 보니 별로,

어릴 때 많이 감아 보았던 하얀 명주실이 하늘에서 가닥가닥 풀려 나오는 것 같다.

높은 산에 올라가서 보던지, 다리 위를 직접 걸어가면서 보면 모를까,

달리는 차 안에서 느끼는 감정은 참 기술도 좋다는 감탄과 들뜨는 기분뿐이다.

                                                              (서대)

두 달 전 까지만 해도 창원 마산 진동 고성을 거쳐 통영으로 왔는데,

거가대교가 생기는 바람에 가덕도에서 바로 거제 통영으로 와버렸다.

남들은 빨리 와서 참 좋다고 하는데 나는 그렇지도 않다.

여행이라는 것이 유유자적, 보고 듣고 느끼며 즐기는 것이 여행이지,

번개처럼 왔다가 번개처럼 달려가는 것은 여행이 아니고 일이다.

항상 지나치며 보던 창원시의 반듯한 모습과 초라한 마산시의 모습,

무조건 정체를 일으키는 마(魔)의 구간 진동을 거치지 않으니 좀 섭섭하다.

                                                               (가자미)

동양의 나폴리 통영에서 잠깐 쉬었다 간단다.

바다는 바다지만 부산의 바다와는 또 다른 바다 통영,

내리자마자 바로 내 눈에 띈 것은 햇빛에 잘 말려놓은 생선이다.

처음 보는 것도 아닌데 볼 때마다 왜 그리 신기한지 몰라?

유심히 쳐다보고 사진도 찍고 그리고 살짝 만져보기도 했다.

                                                               (갈치)

어떻게 잡은 건지 알지는 못해도 먹긴 많이 먹어본 고기인지라,

요건 서대, 요건 가자미, 요건 갈치 하면서 혼자 신기해하고 있는데,

같은 버스를 탄 한 여인이 갈치를 보고 "그건 장어야 장어" 라고 한다.

뭐 장어? 갈치처럼 생긴 장어도 있어? 신품종이야?

                                                                  (거북선)

통영 동호항에 정박하고 있는 이 거북선은,

88 서울 올림픽경기 때 성화봉송을 한 거북선으로,

올림픽경기가 끝난 후 서울시에서 통영시에 기증한 것이다.

실제 운행이 가능하며, 행사가 있거나 필요로 하는 곳이면 어디든지 간다.

거북선 안으로 들어가 노도 저어보고, 포도 쏘아보고, 장군의 옷도 입어볼 수 있다.

즉, 거북선 체험을 할 수 있으며, 관람시간은 정해져 있으나 관람료는 무료이다.

처음은 아니지만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지나칠 수는 없잖아.

또 들어가서 노도 저어보고, 포도 쏘아보고, 장군의 옷도 입어보고,

어설프게나마 장군의 흉내를 내며 거북선체험을 했다.

그런데 사람들은 전부 거북선에 대하여 도가 터졌나?

실물의 거북선은 처음이라고 하면서도 거들떠보지도 않네,

여기까지 와서 그냥 가면 섭섭하지도 않은가?

                                                          (통영 중앙시장)

전국에서 회가 가장 싱싱하고 맛있고  싸다고 소문난 통영 활어시장이다.

연화도, 욕지도, 비진도 등, 섬으로 나갈 때는 꼭 이 시장을 거쳐 가는데,

마음뿐 시간이 모자라 활어시장이란 간판만 힐끔 쳐다보고 지나치기만 했다.

그런데 오늘은 직접 시장을 둘러보고 회를 사가지고 갈 시간을 준다고 한다.

다른 때와 달리 정기 여객선을 이용하지 않고 낚싯배를 대절했기 때문이란다.

야호~ ! 횡재 만났다.

아무리 통영 중앙시장의 회가 싱싱하고 맛있고 싸다고 해도,

회 한 점 먹으려고 시간들이고 돈 들여서 통영까지 오겠는가?

나 같으면 차라리 안 먹고 말지 그렇게는 못한다.

그런데 이렇게 특별히 시간을 내어 주었으니 횡재 아닌가?

완전 땡 잡았다. 경상도 말로 기분 대낄이다.

우와! 많다.

싱싱한 횟감이 시장에 주욱 늘렸네!

어떤 놈으로 한 마리 골라서 회를 쳐볼까?

까만 고기를 한 마리 잡아서 회를 칠까?

빨간 고기를 한 마리 잡아서 회를 칠까?

노란 고기를 한 마리 잡아서 회를 칠까?

세 마리 다 잡아서 회를 쳐버릴까?

광어, 방어, 숭어, 도다리, 우럭, 게르치, 다금바리 등,

이름도 수없이 들어보고 먹기도 수없이 먹어보았는데,

막상 내 눈으로 직접 보고 골라서 사가려고 하니,

에구, 너무 힘들어, 너무 어려워, 갈등 생긴다고.

펄펄 살아서 숨 쉬는 여러 가지 모양의 고기들이 너무도 신기해

이놈 저놈 요리조리 들여다보며 구경하다가 시간만 흘려보내고,

집합시간 임박해서야 마음이 급해가지고 허둥지둥,

정확한 이름은 몰라도 보기는 다 봐야 되겠다 싶어서,

줄무늬 고기야, 너 번지수를 잘못 찾은 건 아니니?

다른 고기들은 다 무리지어 있는데 너만 혼자야?

고기야, 너는 이름이 뭐니?

여태껏 이름도 모르고 많이도 먹었구나.

고기야 넌 또 이름이 뭐야?

통째로 모셔오면 이름도 금방 알 수 있으련만,

항상 뼈대 다 추려내고 살만 도려내어 집으로 가져오니,

형체도 없는 너를 보고 어떻게 이름을 알겠니?

이름도 모르고 먹기만 먹어 대서 정말 미안하다 고기야.

히히, 너의 이름은 확실히 알고 있단다. 기운 센 장어라고.

어릴 적 어머니께서 기운이 좀 딸린다 싶으면 네놈을  사와서 고았거든,

덕분에 다른 고기에 비하여 제일 많이 먹은 고기가 아닌가 싶어.

그런데 생긴 모양이 뱀을 닮아 내손으로 직접 해먹을 수는 없단다.

요놈은 개불이라고, 쫄깃쫄깃 참 맛이 있다고 하는데,

요놈도 생긴 모양이 뱀 사촌이라 알고는 못 먹어,

쫑쫑 썰어서 다른 고기에 살짝 섞어서 주면 모를까. 

요놈도 생으로는 잘 못 먹어,

목구멍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을 것 같아서.

대신 야채와 섞어서 볶음으로 요리해 먹으면 아주 끝내준다고,

출출할 때 낙지볶음에 소주 한잔하면 그날의 피로가 싹 가신다고,

그리고 또 부산에 낙지볶음이 얼마나 유명해, 못 먹을 리가 없지.

요놈은 생으로 먹기보다 김장김치 담글 때 제일 많이 넣어서 먹지,

다시가 너무 진해 나 같은 나물체질이 먹기에는 좀 닝닝하더라고,

예전에 비하면 그래도 잘 먹는 편이지만 그래도 생으로는 좀 곤란해. 

꽁지가 톡 튀어나온 것이 촉새같이 생겼는데 흔한 종류는 아닌 것 같다.

개펄에서 캐온 건지, 깊은 바다 속에서 건져 올린 건지?

아무튼 저렇게 큰 조개는 그리 쉽게 보이는 조개는 아니다.

요놈도 마찬가지, 사촌간인가?

바다가 신기한 나에게는 바다에서 나는 모든 것이 신기하다.

이름은 모르지만 요렇게 생긴것은 흙을 긁어모을 때 좋은데,

어릴 적 소꿉놀이할 때 쌀(흙)담는 그릇으로 많이 사용한 것 같은데,

그게 요거였는지 정확히는 모르겠네.

하여튼 저렇게 생긴 건 땅갑치라고 부르며 흙이나 가루 등,

긁어모으고 그것을 담아두는 도구로 많이 썼다. 

요건 확실히 안다. 바지락이라고.

아마 요 바지락이 안 들어가는 요리는 거의 없을 것이다.

바지락탕, 바지락미역국, 바지락된장국, 바지락칼국수, 바지락전,

바지락비빔밥, 바지락떡국, 바지락시금치무침, 바지락초무침 등,

내가 좋아하는 미더덕, 특히 미더덕찜.

요 미더덕은 마산에서 제일 많이 생산된다.

마산가면 아구찜과 더불어 미더덕찜이 아주 유명하다.

4월 달인가? 마산 진동이라는 곳에 가면 미더덕축제도 열린다.

향이 얼마나 상큼한지 밥맛없을 때 먹으면 대번에 밥맛이 확 돌아온다.

주로 요리를 해서 먹지만 나는 생것 그대로 먹는다. 향이 너무 좋아서.

이 우렁쉥이 역시 참 많이 먹었다.

아버지께서 장에만 가면 사와서 나누어 먹은 것 같다.

미더덕과 같이 향이 얼마나 상큼한지 몰라. 밥맛없을 때 먹으면 직방이다.

색깔도 예쁘고 맛도 있고 향도 좋아 많은 사람들이 즐겨 먹는 우렁쉥이,

다른 횟감과 달리 우물거릴 필요 없이 바로 한 무더기 샀다.

반으로 착 갈라 알만 쏙 빼내어 내장에 칼집 넣어 바닷물에 살랑살랑,

민첩한 아주머니 금방 장만하여 비닐봉투에 넣어준다.

우렁쉥이 한 무더기 사고 이렇게 기분이 좋을까?

비진도 선유대정상에서 아주 아주 맛있게 잘 먹었다.

우렁쉥이의 향긋한 향이 온 산을 뒤덮었다.

정말 꿀맛이었다.

                                                         (통영 동호항)

그렇게 자유 시간 30분을 다 보내고 동호항을 떠나 대절선이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간다.

통영 중앙시장, 동호항 거북선, 또 언제 기회가 될지 모르지만 그때까지 안녕.

                                                    (낚시배 타는 곳)

꼬불꼬불 바다를 돌고 돌아서 강태공들이 들락거리는 물가로 왔다.

같은 통영 땅 바닷가이지만 거기와 여기는 공기부터 좀 다르다.

전망 좋은 곳엔 모두 펜션이 자리하고 세월을 낚는 이들이 줄을 잇는다.

나도 언제 낚싯대 드리우고 1박2일의 즐거움을 맛보고 싶다.

그런데 금방 온다고 한 배는 왜 아직도 아니 올까?

금방 온다고 했으면 금방 올 것이지, 또 어디다 한눈을 팔고 있을까?

금방이라고 한 그 금방의 시간을 가늠할 수가 없으니 답답하기도 하고,

배고픈데 밥이나 먹자며 준비해온 주먹밥을 쥐고 다니면서 먹으니,

좀 이상해 보였나? 사람들은 나를 외계인으로 착각을 한다.

"그냥 주먹밥이야 주먹밥, 별똥이 아니고 주먹밥이라고"

                                               (우렁쉥이 건져 올리는 작업)

배가 올 때까지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우렁쉥이 양식장을 발견했다.

우렁쉥이는 저 먼 바다에서만 양식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다.

바로 육지 가까운 곳, 사람이 가장 드나들기 편리한 곳에 있었다.

마침 우렁쉥이 따기 작업 중이라 우렁쉥이 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육지의 촌놈, 바다에서 행해지는 모든 것이 신기하다.

 

저렇게 기계의 힘으로 건져 올린 우렁쉥이를,

아주머니들이 하나하나 떼어 내어 일부는 수산시장으로,

일부는 이렇게 알만 떼어 내어 시장 또는 우렁쉥이 젓갈공장으로 간다.

우렁쉥이 따기 작업을 하는 건 처음 본다.

그렇게 바다마을을 많이 다녔어도 이런 기회는 없었는데,

약속을 지키지 않은 배 때문에 이런 귀한 것도 다 보는 행운을 얻었다.

아까는 약속을 지키지 않아 속이 좀 상하기도 했는데, 오히려 감사하다.

아무튼 신기한 우렁쉥이 따는 작업을 보게 되어 매우 기쁘다.

드디어 우리를 태워 갈 촉새가 왔다.

(촉새:배 앞 부분이 꼭 촉새처럼 생겼다하여 필자가 붙인 이름)

선실 안으로 들어와 얌전하게 자리를 잡았다.

앉고 보니 선장의 지하 안방이고, 또 안면이 있는 부부와 마주 앉았다.

꼬장꼬장 때가 묻은 이불이며 베개, 옷가지 등이 비위에 거슬려, 

선실로 올라가 바깥쪽 벽에 기대서서 갈까 생각하다가,

잠깐이면 가는데 그걸 못 참아 왔다갔다 수선을 피우는 것 같아서,

속이 좀 불편하지만 그대로 꾹 참고 앉아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평소에 없던 이상한 현상이 벌어졌다.

입담도 없고, 인사성도 없고, 애교도 없고, 웃음도 없고,

무엇보다도 말 자체가 없는 무뚝뚝하기 짝이 없는 내가,

엉뚱하게도 마주 보고 앉은 여인에게 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

님의 남편, 살이 너무 많이 빠져서 그 좋은 인물 안타깝다고,

이야기는 계속되고, 옆에 앉은 이들은 미리 다 나가버렸다.

그러나 우리는, 배가 완전히 서면 나가자며 계속 살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배가 멈추지를 않는다. 시간이 다 됐는데도.

느낌이 이상하여 밖으로 나와 보니, 배는 이미 방향을 돌렸다.

같이 탔던 일행들 다 내려주고 왔던 곳으로 되돌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당황하여 다급한 목소리로, "차 세워요 차, 차 세워~, 빨리 차 세우란 말이야"

아니, 이건 차가 아니지, "촉새, 촉새, 촉새~, 촉새를 세워, 세우라고 하잖아"

아니야, 촉새는 나만의 암호잖아, 이게 뭐였지? 아! 맞다 배다 배, 고기 잡는 배.

"보소, 보소 선장아저씨, 빨리 배 세워요 배, 배를 세우라고 배" 

"여보시오 선장님요, 우리는 왜 안 내려주고 그냥 갑니까요?"

한참 후에 내가 배에서 내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안 유진,

매우 미안해하면서 "왜 어떻게 된 거냐"며 달려왔다.

둘이서 남의 신랑 살빠진 이야기에 내리는 줄도 몰랐다고 했더니,

유진, 너무도 어이가 없어서 말문을 닫아버렸다.

항상 남 먼저 타고 남 먼저 내리는 사람이 어찌 그런 일이 발생했냐고,

목 아프다고 불러도 대답도 잘 안하고 전화도 잘 안 받는 사람이,

어떻게 남의 신랑 살 빠진 이야기에 시간가는 줄 몰랐느냐고, 

아무리 생각해도 믿기지 않는다며 진짜냐고 묻고 또 묻는다.

그러나 그게 사실인데 우짜노?

이제부터는 나를 절대 믿지 못하겠단다.

혼자 내버려 둘 수도 없단다.

무전기를 하나 사서 채워야겠단다.

잘 따라오고 있는지, 먼눈팔고 있는지, 수시로 불러봐야 되겠단다. 

족쇄를 채워서 자신의 책임에서 벗어나야 되겠다는 것이다.

아무튼 무전기부터 한 세트 구입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마늘)

혼자서 키득키득, 아무리 생각해도 우스워 죽겠다.

단체산행을 왔으면 가이드의 진행에 귀를 기울이고 따라야지,

어떻게 사사로운 이야기에 내리는 곳도 잊어버리고 그럴까?

아무리 구실을 잡아 봐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이다.

태어나서 처음 당하는 일이다.

방랑 30년에 주야로 돌아다녀도 이런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리고 이렇게 많은 말을 해본 적도 처음이다.

신체의 일부를 잘라내 버리고 나니 기능도 잘려나간 모양이다.

아무튼 웃지 않을 수 없는 이상한 현상이었다.

                                                         (시금치)

아직은 이른 봄이라 비진도의 바닷가는 텅텅 비었고,

마늘이며 시금치, 두릅 등이 새파랗게 올라와 있다.

매일 보는 것들이고 아주 흔한 채소이지만,

농작물만 보면 아버지 생각나고 어머니 생각나서,

또 다가가서 처다 보고 만져보고 흙도 한번 긁어본다.

                                                           (비진암 동백꽃)

조금 전의 사건 때문에 웃느라 걸음을 제대로 못 걷겠다.

산이 흔들리도록 웃고, 웃고 또 웃는다. 

다른 때 같으면 돋아나는 새싹이며 물오른 나무, 야생화 등에 쏙 빠져,

그놈들 쳐다보느라 정신이 없을 텐데, 오늘은 웃는다고 모든 것이 멀어졌다.

참말로 우습다. 하하하

                                                 (동백나무 숲 오르막 길)

                                       (낙엽을 뚫고 나온 야생화, 이름이 뭘까?)

                              (떨어질듯 떨어지지 않고 버티는 그때 그 바위)

                              (삼백리 한려수도가 한눈에 보이는 전망좋은 곳)

                                               (비진도에서 본 비진도)

소나무 숲 반반한 바위에 앉아 비진도의 아름다움에 취했다.

참 좋다. 살아 있음을 감사하게 생각하는 순간이다.

땀 뻘뻘 흘리고 올라와 아래를 내려다보며 잠깐 신선이 되는 이 순간이,

나의 삶 중에서 가장 행복하고, 즐겁고, 재미있고, 그리고 감사하다.

단계, 단계 몇 단계를 거쳐서 여기까지 왔던가?

보배의 섬 비진도에서 쪽빛 바다 맑은 물을 바라보며 머리를 식히고,

정신을 차리고 마음을 가다듬어 다시 배타고 차타고 세속으로 돌아왔다.

가는 길도 멀었고, 기다림도 많았고, 우스운 일도 많았던 비진도 섬 산행이었다.

                                               2011년3월27일, 일요일, 맑음, 비진도(非珍島)

[실버들]

예,정말 후기 깔끔하게 정리 하셨네예..그날 동행했던 사람입니다.지금도 그 황홀한 환상의섬 비진도!!
눈에 아련하네요,이렇게 정성들여 글을 이쁘게 쓰셨는데 답글 달아 주는 님들이 없어 많이 아쉽습니다.
후기 보시는 님들이시여 꼬옥 답글 남겨 주시기를 부탁 드림니다. 그러면요 글쓰시는 분 마음이 더욱
좋아지는거 아시는지요?부탁합니다 나나님 정말 후기 잘보고 갑니다 다음기회에 동행 하겠습니다.

[나나]

봄이라 하지만 봄다운 봄은 아직도 조금 더 기다려야 되나 봅니다.
그날도 좀 쌀쌀했지요. 배 기다리면서 떨지는 않았는지요.
여러 곳을 다니다 보니 인내심을 요하는 부분도 많이 발생하고,
난데 없는 사건도 많이 터지고, 뜻밖의 행운이 떨어지는 날도 많이 생깁디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받아 들이는 사람의 마음에 있다는 사실,
오랜 방랑끝에 터득했다고 할까요, 비진도 섬산행은 즐거웠습니다.
이렇게 관심가져주는 사람이 생겨서 더욱 더 비진도 산행이 머리에 남아 있습니다.
오늘도 바람이 차네요, 감기 걸리지 않도록 유의하시고 다음에 또 만나요.

[나나]

후기를 남긴다는 게 그리 쉽지 않듯이,
남의 글에 관심을 가지고 댓글을 남긴다는 것 역시 쉽지는 않나 봅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부분만 골라서 읽는 사람도 있고,
절대 아닌 척 하며 자료만 쏙 빼가는 사람도 있고,
안 읽은 척 읽고 즐기는 사람도 있고,
무슨 말인가를 남기고 싶은데 말이 글로 되어 나오지 않아서 그냥 나가는 사람도 있고,
선생님이 독후감 쓰라 하면 어렵듯이 댓글자체가 어려운 사람도 있고,
그냥 잘 읽었습니다. 이러면 되는데 그건 또 안 되는가 봐요.
하여튼 저의 산행후기가 여러분의 산행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