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블루』
곡비哭婢 10인의 시인들이 부르는 희망가
_문학동인 볼륨 강봉덕 김성백 문현숙 박진형 배세복 손석호 송용탁 이령 최규리 최재훈
_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21년 《코로나19, 예술로 기록》 공모사업 선정 제작
큐브의 방
세계에서 가장 작은 방으로 유배됩니다
사실 혼자 살아가는 방식을 익히려다
자꾸만 깊은 곳으로 옮겨왔습니다
홀로 지내기엔 조금 쓸쓸하지만
당신과 등을 맞대고 있어 대화가 없습니다
서로를 이해하려고 눈을 들여다볼 필요가 없지만
서로가 한통속이란 걸 말하고 싶어 울타리를 만듭니다
울타리 속에 함께 갇혀 있지만
우린 만날 수 없습니다 방들은 1인용입니다
당신은 동쪽을 바라다보지만
나는 서쪽의 풍경을 바라보며 당신을 생각합니다
먼 세계를 바라보려고 머리에 창문을 만듭니다
가끔 창문에 부딪히는 새들의 소식을 듣고 있지만
한 주에 한 번씩 문을 열고 새들을 기다립니다
가로세로 돌려진 방은 큐브의 세계처럼 서로를 알 수 없어
당신의 하루가 나의 한 달과 같습니다
사각의 방은 당신의 생각과 닮아
난 당신을 찾으려고 미로 같은 길을 헤맵니다
가까이 있어도 당신의 손을 잡을 수 없는 작은, 방
에 갇혀 있습니다. 언젠가 가로세로 돌아가다
하나의 완벽한 커다란 방이 만들어질 때까지
당신과 집요한 동거를 계속해야 합니다
강봉덕 2006 머니투데이 경제신춘문예 등단, 시집 『화분 사이의 식사』
단골집
지금, 당신의 단골집은 안녕하실까요
노을이 붉은 신호등을 켠다. 한 집 건너 한 집 빼곡하게 들어앉은 가게마다 흔들리는 불빛, 골목과 골목 저 건너 전신주 아래 한자리에서 몇 십 년 성황당처럼 앉아있는 단골가게, 간판 한 번 바꾼 일 없는 찾는 물건이 없을 때가 더 잦은 좁아터진 점방, 시장가는 발을 멈추게 한 것은 봄여름 가을 겨울, 철마다 다른 모습의 푸성귀들, 젊은 부부, 그들의 부모님이 손수 심고 다독이며 농사지은 햇양파, 햇감자, 햇고추, 햇밤, 한여름 머리 위 땡볕을 고스란히 제 안에 품은 햇, 것, 들,
얼마 전,
태양초를 달라는 말에 부부는
-미안합니다. 어머님이 연로해서 더는 농사를 지을 수가 없네요
-점방을 닫아야 할 것 같아요
없는 것을 떠올리는 대신 이미 가진 것을 잃는 일
더 좋은 일이 생기는 것 아니라 더 나쁜 일이 안 생기는 것
손쉽게 행복을 얻는 공식이다
문현숙_ 2018 월간문학 등단
송화 필 무렵
구구구 산비둘기
자맥질하는 오후
창문 활짝 열어젖히니
송홧가루 후-
곳곳에 들러붙는다
교실 온통 숲이 된다
뻐꾸기 날아와
머리 위 집 짓고
개개비가 알을 품는다
갑자기 책가방이 창문 밖으로 뛰쳐나가고
책상과 걸상이 스프링되어
허공으로 아이들 튀어오른다
선생님 이리 오세요
뒤뚱뒤뚱 날지 못한다
넥타이를 푸세요
양복 벗는다 안경 던진다 회초리 부러뜨린다
어어어 날아간다
얘들아 내가 날아가!
선생님!
부르는 소리에 뒤돌아보니
아이들 모두 송홧가루처럼
책상에 착 붙어있다
개화기 잊은 아이들 찰딱
마스크에 달라붙어 있다
배세복_2014 광주일보 신춘문예 등단. 시집 『몬드리안의 담요』 『목화밭 목화밭』
첫댓글 끝날 듯 끝나지 않는 동거...
이제 그만 끝내고 싶은 우리들.....
다들 그런 맘이 아닐까요.
지나갈꺼라는 희망조차 지칠즈음
그래도...봄이 왔네요.
'청소하는 사람'이란 닉네임이 구성지네요.
이렇게 좋은 시편이 담긴 문학동인지가 있었군요. 저도 사서 읽고 싶네요^^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파랑새님
두 손 모아
깊은 감사드립니다.
부족한 글에 관심 가져주심에^^
아름다운 봄날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