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미읍성에서 2.2km 이동한 위치 이곳에서 가파른 오름막을 100m 오르면
쉬어갈 수 있는 팔각정자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위 이정표와 동일 합니다
간혹 힘이 들때면 한 두잔의 막걸리 힘으로 걸으신다는 오기택 형님께선
오늘도 막걸리 힘이신가 가파른 오름막도 거뜬히 오르십니다
조망을 즐기며 목을 축이던 정자쉼터에서 자리를 털고 일어나 개심사로 향합니다
팔각정자쉼터에서 개심사까지 3.4km는 평탄한 산길이라 힐링 코스로 여겨지던군요
걷다보면 이렇게 잡풀과 억새가 진로를 훼방 놓기도 하지만 그것도 잠시일뿐~
곧 달라진 숲길을 걷다가~
뻥 뚫린 산길을 만나게 되지요
조금 전 쉬었던 정자쉼터에서 300m 이동한 위치 입니다
정자쉼터에서 평탄한 산길을 걷고 걸으니,
사랑을 듬뿍듬뿍 나눠준다는 심장마크가 겹겹히 쌓여 있는 곳이랍니다
크~
가야산 입니다. 합천해인사에 위치한 가야산이 아니고,
서산시 해미면과 예산군 덕산면 경계선에 솟아 있는 가야산이랍니다.
높이가 장장 678.2m나 된답니다. 무지무지하게 높지요.
관악산(632.2m) 보다 더 높고, 서울 남산 265.2m 보단 2.5배 더 높아요
여기는 가을향기 짙어진 단풍철이라 하여도 그 정취를 조금도 느낄 수 없을것 같아요
이젠 산길에서 임도로 이어지는군요
장승 부부가 서있는 사이를 지납니다
장승 곁에 세워진 이정표에 정자쉼터에서 500m 진행한 지점이라 알려줍니다
왔던길 뒤돌아 봤드니 아까 장승부부를 지나올 때 환하게 웃고 있드니만 아직도 환한 모습으로 웃고 있네요
서산휴게소도 앵글에 담아 보고~
임도 1.0km를 걸었습니다
해미읍성에서 3.8km 진행한 위치 입니다. 이젠 개심사를 1.9km 남겨두었습니다
1km를 걸었던 임도에 연결된 또 다른 임도를 걷고 있습니다
풀섶에 무수히 떨어저 있던 알밤을 주었던 곳을 지나니 산길은 끝이 납니다
산속 숲길이 끝나고 700m 남겨둔 개심사 입니다
개심사 500m 남았다는 이정표 곁의 장승은 너무 노쇄하였습니다
아까 임도에서 봤었지요
환하게 웃고 있던 싱싱한 젊은 장승로 교체하여야 할것 같습니다. 시설물 담당자는 관심을 가져주십시요
개심사 입구~
상점에는 호두, 사과대추, 건고추, 감, 밤, 호박고구마 등으로 올해도 풍성한 가을의 결실을 알리고 있습니다
아하~ 늙은호박 3개도 있구요, 얼음 열매도 있군요
요로분 얼음 열매 아시죠?
위성 사진으로 개심사를 살펴보고~
일주문 앞 먹거리 상점들~
ㅁ
이젠 개심사에서 돌계단을 지나 보원사지로 진행 합니다
개심사에서 전망대까지 700m 입니다. 전망대는 금북정맥 마루금상에 있습니다
전망대에 이르기전 팔각정자 쉼터가 있습니다
개심사에서 팔각정자 쉼터까지 거리는 400m 입니다. 팔각정자까진 가파른 오르막이 계속이어지는 구간 입니다
팔각정자 쉼터부턴 보원사지까진 눌루~랄라 힐링할 수 있는 구간으로, 일정 구간은 금북정맥 마루금과 함께하며
아라메길1코스는 보원사지까지 같은 구간이랍니다
현재 시간 정오 54분 입니다. 팔각정자끼지 가파른 오름막 몇 분 소요될까??
개심사 언저리를 출발합니다
산신각을 지납니다.
두 손 합장하여 소원빌던 돌탑에서 잠시 쉬어 갑니다
개심사에서 가파른 오름막을 올라 산능선에 위치한 팔각정자 쉼터 입니다
조망이 전혀없는 쉼터 입니다. 현재시간 오후 1시 19분 개심사에서 25분 걸렸군요.
팔각정자 쉼터에서 보원사지까 1.7km 거리이며, 개심사 언저리 이정표에서 보았던 전망대는
이곳 정자쉼터에서 일락산쪽으로 300m를 더 가야하는군요
팔각정자 쉼터 주변에 자료가될만한것을 앵글에 담고 보원사지로 출발합니다
산능선의 팔각정자 쉼터에서~
보원사지를 600m 남겨둔 위치에서~
보원사지 600m 남겨둔 위치~
지선3코스 마루금에서 바라본 보원사지
백제 때 창건돼 고려 초 크게 번창하고 조선시대까지 법통을 이어왔던 폐사지 보원사지는 절에 대한 역사를
알 수 있는 사지(寺誌)나 사적기(事蹟記) 등의 문헌기록이 전혀 전하지 않으며
현재 넓은 절터만이 남아 있다.
지정면적 102,886㎡(31,123평)이다. 1㎡(제곱미터)는 0.3023평
현재 절터에는
◈ 5층석탑(보물 제104호)
◈ 당간지주(보물 제103호)
◈ 석조(보물 제102호)
◈ 법인국사보승탑(法印國師寶乘塔:보물 제105호)
◈ 법인국사보승탑비(法印國師寶乘塔碑:보물 제106호)가 남아 있다.
보원사지석조는 커다란 화강석 큰돌의 내부를 파내어 물을 부어 쓰도록 만든 돌그룻이다
거대한 화강암의 내부를 파내어서 조성한 직사각형의 석조로서 통일신라시대의 일반적 양식을 따랐으며
하나의 돌로 조성하였으며 밑바닥은 평평하 바닥의 한쪽에 구멍을 뚫어 배수구를 만들었다.
외곽 길이 3.5m, 너비 1.8m, 높이 0.9m이다.
보원사지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석조물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102호로 지정되었다.
보원사지 당간지주(보물 제103호)는 기도(祈禱)나 불교의식 때 부처와 보살의 성덕을 표시하는 기(旗)의 깃대를
지탱하기 위하여 세운 두 개의 받침대이다
보원사지에서 출토된 통일신라시대의 철조여래좌상은 국립중앙박물관에 모셔저 있기 때문에
2014년 5월 새롭게 조성하여 현 보원사 법당에 모셨다
보원사지 법인국사탑(보물 제105호)
법인국사 탄문의 사리를 모시기 위한 부도탑이다. 법인국사(900~975)는
968년에 광종으로부터 왕사에 봉해졌고 974년 국살 책봉되었다
975년에 보원사로 돌아와 입적함에 따랖부도를 만들어 사리를 안치하였다
보원사지 법인국사탑비(보물 제106호)
법인국사 탄무의 생애가 기록되어 있다. 임금 경종의 지시로978년에 세워졌다
귀부, 비신, 이수가 완전하게 남아있는 보기드믄 대형 비이다
귀부: 거북 모양으로만든 비석의 받침돌
비신 : 비문을 새긴비석의 몸체
이수 : 뿔 없는 용의 모양을아로새긴 비석의 머릿돌(좌)
고려 5대왕 경종 : (출생 : 955년 사망 : 981년) (재위 : 975년 ~ 981년)
보원사지 법인국사탑(보물 제105호)(우)
보원사지 오층석탑(보물 제104호) 그리고
보원사지에서 출토된 고려시대의 철불좌상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보원사지 오층석탑(보물 제104호)
1968년 석탑 해체 보수시 4층 탑신부에서 사리장엄구(사리를 봉안하는 일체의 장치)가 발견되었다
오늘은 불기2567(2023년 10월 14일 보원사 수륙재라 한다.
수륙재는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 고혼들과 바다와 육지를 아직도 헤매이고 있는 고혼들을 위하여 나라에서
올리는 재인데, 우리 나라에서 수륙재가 행하여진 것은 고려 때부터이다. 광종(고려 제4대왕) 때에
때때로 성대히 열린 바 있었는데 970년(광종 21)에 갈양사(葛陽寺)에서 개설된 수륙도량이 그 최초의 예이다.
요즘은 주로 사찰의 주재로 행사가 많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불교에서 물과 육지를 헤매는 영혼과 아귀(餓鬼)를
달래고 위로하기 위해 불법을 강설하고 음식을 베푸는 종교의례라 한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영산회상을 상징하는 괘불을 법당에서 모셔 나와 괘불대에 모신
보원사 수륙대제 괘불은 수덕사 괘불인 비로자나부처님이심
수륙대재 때 많은 대중들 앞에 모습을 드러네시어 환희로운 영산 회상 당시의 모습을 펼침
나로서는 처음으로 접해보는 불교 행사가 궁금하였다
오른쪽 3분에게 다가가 여쭤보았드니 범당 건립을 위한 행사라고 거듭 알려준다
보원사지는 절에 대한 역사를 알 수 있는 사지(寺誌)나 사적기(事蹟記) 등의 문헌기록이 전혀 전하지 않는다 하니
복원은 어려울것이고 법당을 새로 짓는다는것일까
종무소에서 또 여쭤봤다. 법당을 짓기 위한 천일 기도라 한다
종무소에서 얻어온 안내 책자이다.
법당을 짓기 위한 천일 기도와 수륙재가 같은 것일까? 맹탕인 신도에게 문의한것이 잘못일까?
파일 용량이 사진을 100장까지만 올릴 수 있어서 3부으로 갑니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멋진 여행기입니다.
보원사지에 대해 많은 자료 감사합니다.
지나가기 바빠서 들여다보지 못했는데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