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숭산 산행기
아침에 일어나 창을 여니 예보에 없던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산행 준비를 하다 배낭에 우비를 더 챙겨 넣었다. 이동에는 불편하지만 이번에 가뭄을 걱정하던 터라 반갑게 여겨졌다. 오늘은 예산 덕숭산에서 대한건축사등산동호회 행사가 있는 날이다. 얼마전 이번 행선지가 덕숭산으로 정해진 소식을 접하며 신청을 하면서 작은 설렘이 일었다. 그 산에 바로 수덕사가 있기 때문이다. 이번엔 산행 행사에 앞서 수덕사를 들르는 것이 더 큰 의미로 다가왔다.
6시 55분 교대역 2번 출구에 도착해 버스에 올라타며 일행과 인사를 나눴다. 그런데 잠시 후 차를 잘못 탔다며 뒤 차로 옮겨 타라고 했다. 일행이 어리둥절해하며 옮겨타다가 좌석이 더 편안하다며 만족해했다. 7시 20분 출발 때쯤 비가 거의 그치고 있었다. 준비한 우산은 쓰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출발 후 손원태 서울등산동호회회장과 석정훈 서울건축사회 회장 등이 인사말을 했다. 미리 양해를 구한 약장사가 열심히 약을 팔았으나 신청하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것 같았다.
8시 5분 오산 휴게소에 들러 잠시 쉬고 다시 출발했다. 그 곳은 새로 생긴 평택 화성 고속화 도로를 만들면서 들어선 것 같다고 했다. 기사분이 그 도로에서 국도로 이어가려는 것 같았다. 가는 차 안에서 손회장이 이번에는 제대로 건축 약을 팔거라며 마이크를 나에게 전해주어서 오늘 가는 수덕사 대웅전에 대해 잠시 설명을 했다.
한국건축사에서 가장 중요한 건물을 꼽으라면 나는 망설이지 않고 부석사 무량수전과 수덕사 대웅전을 꼽는다. 물론 배치 및 자연과의 조화에 따른 건축적 가치와는 별개의 문제이다. 부석사 무량수전은 외부로 표출되는 한국 전통미의 특질을 가장 빼어나게 갖추고 있어 한국전통건축미의 대명사처럼 꼽히는 곳이며 일반인들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전통 건축의 구법의 완결성은 수덕사 대웅전이 더 빼어나다.
차가 덕산으로 접어들어 윤봉길의사 기념관 앞을 지났다. 동쪽에 예산, 남쪽에 홍성, 서쪽에 서산, 북쪽에 당진이 둘러서 있는 이 지역은 서해로 돌출한 태안반도에 속하는데 충청지역의 주 지형을 이루는 금북 정맥 및 내륙 지역으로부터 외곽으로 벗어난 지역성에 의해 늘 탈속한 별천지 같은 느낌이 드는 곳이다. 전에 그러한 지리적 분위기를 느끼기 위해 덕숭산 북쪽의 가야산에서 개심사가 있는 상황봉까지 혼자서 종주한 적이 있다. 오늘 가는 덕산의 덕숭산에는 수덕사가 있고, 이웃한 서산에에는 산벗꽃 필무렵 지인들에게 가장 권하고 싶은 개심사가 있으며, 그 가까이 백제의 미소로 유명한 마애여래삼존상(국보제84호)과 화엄 십찰의 하나인 보원사지 등이 널려 있어, 불교 고적지의 인상도 크게 와 닿는다.
다행히 도로가 막히지 않아서 9시 45분 수덕사 주차장에 도착했다. 좌석과 천막이 즐비하게 쳐진 행사장이 준비되어 있었다. 서울지역 표지가 적힌 곳으로 가면서 경기, 충북 등지에서 온 회원들을 만나 인사를 나눴다. 잠시 동안 전국 각지서 출발한 지역회원들이 속속 도착하여 장마에 냇물이 불어나듯 인원이 불어나고 있었다. 석종구 대한건축사등산동호회장과 가운데로 모여서 사진을 찍자고 했다. 하지만 앞에 축대가 있어 전체 화각이 나올 것 같지 않았다. 그 옆에서 올해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uia 총회 행사 기념 티셔츠를 나눠주어 갈아입었다.
10시 집결지를 출발해 산행을 시작했다. 들머리에서 옆쪽에 있던 울산의 이경태 회원을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가는 길목에 늘어선 상가 골목을 지나는 동안 길 양 옆에 늘어선 음식점에 각종 메뉴가 여기저기 적혀 있고 길가에 펴논 진열대에는 산나물 및 약재와 각종 술 등이 즐비하게 놓여 있었다. 상가를 지나 우측 2시 방향으로 접어들어 바로 앞쪽에 있는 일주문을 지나다 서울 회원들과 단체 사진을 찍었다.
그 안쪽 왼편에 전통건축양식으로 새로 지은 찻집이 있고 우측에는 만공의 법손으로 3대 덕숭총림 방장을 지낸 원담 스님 부도가 놓여 있다. 거기서 안쪽으로 조금 들어선 곳에도 그 부도와 모양이 비스한 부도가 하나 더 놓여 있는데 부도에 새겨진 글씨의 원을 그냥 동그라미로 새겨 놓아서 해학이 풍겨진다.
10시 17분 매표소 앞 두 번째 일주문을 통과해 경내로 들어섰다. 수덕사는 백제 위덕왕(554~597) 재위시에 지명법사가 사비성 북쪽에 창건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곳 경내 및 절터에서 발견된 백제 와당이 그 창건 설을 뒷받침한다. 백제에 처음 불교가 들어온 것이 384년이니 그로부터 역 200년이 지난 시기로서 우리나라 불교사 전체로 보아 아주 초창기에 건립된 유서 깊은 사찰이라고 할 수 있다.
수덕사는 현재 대한불교 조계종의 8대 총림가운데 하나로 운영되고 있다. 총림은 선원과 강원, 율원 및 염불원을 설립해 운영하면서 선‧교‧율을 겸비하고 학덕과 수행이 높은 본분종사인 방장의 지도하에 스님들이 모여 수행하는 종합 수행 도량인데, 1962년 통합종단 출범 이후 해인사를 시작으로 통도사, 송광사, 수덕사, 백양사 등 5대 총림을 지정 운영해 왔으며 지난 2012년 범어사, 동화사, 쌍계사가 추가 지정돼 8대 총림으로 늘어났다.
수덕사가 그처럼 한국불교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 데는 근대의 고승으로 꼽히는 경허선사와 법맥을 이은 만공선사의 업적에 힘입은 바가 크다. 즉 두 선사가 머물면서 선풍을 드날림으로서 오늘날 한국 불교가 선불교의 흐름을 이루는데 중심 역할을 했다.
경허(鏡虛, 1849년 ~ 1912년)선사는 한국 근현대 불교를 개창한 대선사로 성은 송(宋)씨이고 이름은 동욱(東旭)이다. 7세에 수원 청계사 계허스님에게 출가하였다. 경허는 연암산 천장암의 작은 방에서 1년 반동안 치열한 참선을 한 끝에 확철대오(確哲大悟)하게 되고 "사방을 둘러 보아도 사람이 없구나"라고 시작하는 오도송을 지었다. 그리고 그 천장암에서 경허의 '삼월(三月)'로 불리는 수월스님과 혜월스님과 만공스님이 출가하여 함께 수행하게 되는데 이들 역시 근현대 한국 불교계를 대표하는 선승들이다.
달마대사 같은 중국 선종의 선사들의 일화가 전해지듯이 경허와 만공, 두 선사와 관련된 일화도 많이 알려지고 있다. 두 스님이 한 여름에 길을 가다 급히 물이 불어난 개울을 만났다. 거기서 아름다운 미인 하나가 개울을 건너지 못하고 안절부절하자 스승이 등을 내밀어 업고 건넜다. 그러자 제자는 작정한 듯이 방금 그 행동은 불제자로서 이해하기 어렵다고 하면서 스승에게 버럭 화를 내니 스승이 대답했다. “나는 그 여인을 개울가에 내려 두고 왔는데 너는 아직도 업고 있느냐?...” 옛날 교과서에 두 스님 이야기로 실린 내용인데 실제 경허선사와 만공스님의 일화중 하나라고 한다. 경허선사는 개심사, 수덕사를 비롯해 전국의 수많은 사찰들을 돌아다니며 무애행(無碍行)을 했다. 그런데 술을 많이 마셔서 그가 머문 수덕사를 술독사라고 불렀다고도 한다.
만공(滿空, 1871년 - 1946년) 선사는 본관은 여산(礪山)으로, 본명은 도암(道巖)이며 법명은 월면(月面), 만공은 법호(法號)이고 한국 현대 불교의 대선사로, 석가모니 이래 제76대 조사이다. “조선과 일제 강점기의 승려이자 독립운동가로서 조선총독부의 불교정책에 정면으로 반대하여 조선 불교를 지키려 하였다으며, 선불교를 크게 중흥시켜 현대 한국불교계에 큰 법맥을 형성하였다. 그는 이론과 사변을 배제하고 무심의 태도로 화두를 구할 것을 강조하고 간화선(看話禪)의 수행과 보급에 노력하였으며 제자들에게 무자화두에 전념할 것을 가르쳤다.” 고 전해진다. 1940년대에는 덕숭산 수덕사에 머무르며 선불교의 진흥을 위해 힘쓰다가 1946년 예산 전월사에서 입적했는데, 1946년 어느 날 저녁, 공양을 들고 난 스님은 거울 앞에 앉아 "이 사람 만공, 자네와 나는 70여년을 동고동락했는데 오늘이 마지막일세. 그 동안 수고했네"라는 말을 남기고 열반에 들었다고 한다.
수덕사는 한국 불교사에서 선풍(仙風)이 휘날린 의미뿐 아니라 근현대 예술가들과 인연이 많은 곳이기도 하다. 여류 수필가였던 일엽스님이 스님이 되어 수덕사에 머물면서 견성암(환희대)에서 ‘청춘을 불사르고’ 라는 책을 쓴 일화가 유명하며, 수덕사 입구의 수덕여관은 우리나라 최초의 여류화가 나혜석이 친구인 일엽을 찾아와 머물며 말년을 보내기도 했던 곳이다. 그 후 수덕여관은 이응노 화백이 파리에서 귀국해 살았는데 마당의 한편 바위에 그림 글씨가 새겨져 있다.
다시 대웅전을 한 바퀴 돌며 돌아보다 경내를 나와 계곡 옆 산길로 올랐다. 경내에 머무는 동안 대부분 앞서 갔는지 통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길을 잘 못 들어 아까 일행이 가고 있던 큰 길로 내려가 견성암 쪽으로 올라가다 보니 반대편에서 전북 회원들이 내려오며 길을 잘 못 들어섰다고 했다. 가까이 다가와 보니 앞쪽에 오던 최만규 건축사와 가족 등이 아는 분들이어서 인사를 나눴다. 다른 분에게 물어보니 개울 길로 가라고 해서 길을 돌아 정상으로 오르는 등산로로 접어들었다. 군데군데 계단을 만들어 놓은 길에 거친 바위돌이 포장로처럼 깔려 있었다. 경사지지만 이 산 자체가 그리 높지 않아서 별로 힘은 들지 않을 것 같았다.
잠시 오르다 좌측으로 꺽여지는 곳을 지나다 경남의 신종복 회원을 만났다. 전국의 산을 다 다닐 만큼 산을 좋아하고 한결 변함없이 반듯하고 자상한 성품을 지니신 분인데 얼굴을 보기전 내가 백두대간 종주기를 올릴 때부터 댓글로 교감해왔다. 그 분이 점봉산을 지나 한계령으로 내려갔던 산행기에 “망대암산 그 험한 길을 허기진 채로 지나셨다니” 하는 댓글이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 때는 정말 배고프고 지친 상태에서 혼자 가도 가도 끝이 없게 느껴지는 그 험한 길을 벗어나고픈 심정이 절실했었다.
그에게 이따 다시 보자고 하며 앞서 오름길을 걸었다. 얼마 전까지 연록 빛깔로 싱그러움을 띠던 나뭇잎들이 어느덧 짙푸르게 변해가고 있었다. 그리고 숲은 짙은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그처럼 나무들만 무성해지는 게 아니라 그 안에서 살아가는 모든 생물들이 모두 성체(成體)로 변해가며 각자 생장과 번식의 과정 속에 변해가고 있었다. 땀 냄새를 맡은 하루살이가 성가시게 쫓아오며 날아다니기도 했다.
만공이 조성했다고 하는 미륵불상을 지나 10시 52분 만공탑에 도착했다. 현대 수덕사를 대표하는 인물인 만공스님은 경허선사를 따라 젊은 날에 만행을 하다가 말년에는 덕숭총림의 방장으로서 수덕사에 머물고 잠시 마곡사의 주지를 할 때를 제외하고는 줄 곧 지금의 만공탑이 있는 자리에 암자를 두고 머무셨다고 한다. 그만큼 의미 있는 장소인데 그 앞에 정갈하게 닦인 마당이 둘러친 숲 그늘로 시원함을 자아냈다. 사람들이 그 그늘 끝에서 그늘의 시원함에 빠진 듯 일렬로 놓인 의자에 길게 앉아 있었다. 울산 회원들이 앞쪽 마당에 자리를 펴고 잠시 쉬며 도란도란 예기 꽃을 피웠다. 모두 편안하고 즐거운 모습이었다.
거기서 아까 입구서 만난 이경태 회원이 먼저 올라와 있다 막걸리를 권했다. 우리나라 대간과 정맥 종주를 모두 했고 전국 방방곡곡의 산을 누빈 그는 내가 2010년 낙동정맥 단독 종주를 할 때 경주쪽으로 진입하면서 전화로 길을 물어보기도 했고 내가 올린 산행기에 늘 댓글로 인사를 나눠온 분인데, 문득 함께 찍은 사진을 남기고 싶어 만공탑 앞에 서서 사진을 부탁했다.
그 곳을 지나 10시 57분 그 조금 위에 있는 정혜사를 지났다. 정면 좌측에 거칠게 쪼개진 화강석을 쌓아올린 축대가 있고 우측에는 큰 바위가 일곽을 요지부동하게 둘러치고 있었다. 그리고 중앙 부근엔 그 너머 건물의 지붕 모서리 부분의 추녀와 선자연이 한복을 단장한 옷맵시처럼 올려다 보였다. 규모가 별도의 작은 사찰만한 그 곳은 창건 설화와도 관계가 있다.
수덕사에는 다음과 같은 창건설화가 전해온다. 홍주마을에 사는 수덕이란 훌륭한 가문의 도령이 있었는데 그가 어느 날 사냥을 나갔다가 사냥터의 먼발치에서 한 낭자를 보고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집에 돌아와 곧 상사병에 걸린 도령은 수소문한 결과 그 낭자가 건너 마을에 혼자 사는 덕숭낭자라는 것을 알게 되어 청혼을 했으나 여러 번 거절당했다. 수덕도령의 끈질긴 청혼으로 마침내 덕숭낭자는 자기 집 근처에 절을 하나 지어 줄 것을 조건으로 청혼을 허락하였고 수덕 도령은 기쁜 마음으로 절을 짓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탐욕스런 마음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에 절을 완성하는 순간 불이 나서 모두 소실되었다. 다시 목욕재계하고 예배 후 절을 지었으나 이따금 떠오르는 낭자의 생각 때문에 다시 불이 나서 완성하지 못했다. 그 후 낭자는 어쩔 수 없이 결혼을 했으나 수덕도령이 손을 대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이를 참지 못한 수덕도령이 덕숭낭자를 강제로 끌어안는 순간 뇌성벽력이 일면서 낭자는 어디론가 가 버리고 낭자의 한 쪽 버선만이 쥐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자리는 바위로 뱐하고 옆에는 버선 모양의 하연 꽃이 피어 있었다. 이 꽃을 버선꽃이라 한다. 그 낭자는 관음보살의 화신이었으며 이후 수덕사는 수덕도령의 이름을 따고 산은 덕숭낭자의 이름을 따서 덕숭산이라 하여 덕숭산 수덕사라 하였다는 전설이다. 그리고 수덕 도령은 정혜사에 머물며 수도를 했다고 한다.
다시 길을 올랐다. 길가에 세우진 표지에 수덕사 0.98km, 정상 0.91km로 나타나 있었다. 다시 좀 더 가다보니 저 위로 능선 너머 파란 하늘이 숲 틈으로 언뜻 보이는 것 같았다. 잠시 후 그 트여보이던 지점에 오르니 북쪽으로 가야산이 훤출이 트여 보였다. 가야산 인근에는 천자지묘의 명당으로 유명한 남연군묘가 있다. 다시 정상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거기서 정상이 그리 멀지 않은 것 같았다. 하지만 위쪽까지 경사지 너덜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계속 올라가는 동안 앞장서 왔던 일행들과 충북의 오긍균 전 대한건축사등산동호회 회장을 만났다. 오래전 충북 회원들과 칠갑산과 북한산 교차 초대 산행을 하면서 친분이 두터워지게 되었다.
오르다 보니 정상이 저 앞에 보였다. 덕숭산은 가야산 아래쪽에 섬처럼 따로 떨어져 있는데 이 산에는 수덕사와 그에 부속된 암자가 여기저기 널려 있어서 전체가 마치 산 전체가 수덕사 영역 같은 느낌이 드는 곳이다. 오르는 길에 진주에서 활동하는 이춘식 건축사를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그분은 사모님과 함께 전국의 산을 오르신 분이다. 정상 바로 전 길가에서 경남지역 회원들이 둘러 앉아 쉬는 모습이 보였다. 낙동정맥 종주 마칠 때 그 지역 회장으로 마중을 나와 뒤풀이를 해준 김진수 전 회장과 이철식 건축사를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다른 경남 지역 회원들과도 인사를 나누고 다시 정상 쪽으로 향했다.
11시 11분 덕숭산 정상(495M)에 도착했다. 정상석에서 사진을 찍으려는 회원들이 줄을 서고 있었다. 사진을 찍고 주변을 돌아보니 각 지역에서 오신 회원들이 도란도란 둘러 앉아 즐거운 점심식사를 하고 있었다. 산 정상을 오른 다음 여유로운 마음으로 함께 온 일행과 점심을 먹는 즐거움은 참 각별하고 소중한 시간일 것 같았다.
정상석 밑을 지나다 충북건축사회 회원들과 인사를 나눴다. 훈남의 인상인 이진희 건축사와 얼굴이 마주치자 음식을 권했다. 더 건강하고 젊어진 인상이었다. 아들이 ROTC장교로 복무중인데 제대가 일주일 남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저 쪽에 있던 부인에게 아들이 어릴 적 산행 때 글씨를 써준 분이라며 인사를 나누게 했다. 주위에 있던 공유성, 한재희, 임재상 충북건축사회 사무총장 등 낮 익은 분들과도 다시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벌써 그 사이 지난 세월의 흐름이 느껴졌다. 그 옆 쪽에서는 제주 회원들이 모여 음식을 먹으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백두대간 종주를 함께 한 채한배 건축사가 다가오며 인사를 건넸다. 그는 몇 해 전 서울에서 제주로 지역을 옮겼다. 그리고 서울 회원들의 한라산 등반때 반갑게 맞아준 김경복 건축사 등과도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그 주위에 서울 회원들이 두 곳으로 나뉘어 자리를 잡고 도란도란 음식을 나눠 먹고 있었고, 그 옆에서는 경기 회원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산정기를 쏘이며 전국 각지에 사는 회원들과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소중한 문화재도 다시 돌아보는 날이 되었다.
스케치할 곳을 두리번거리며 찾아보다 내려다보이는 수덕사가 안겨 있는 산세와 그 앞으로 삶터가 어우러진 풍경을 그렸다. 고찰을 품은 산세의 탈속함과 소박한 생을 의지하는 농촌 마을의 풍경이 조화롭게 느껴졌다. 그동안 그린 그림들은 대부분 올려다보는 풍경이었는데 산에서 멀리 보이는 삶터를 펼쳐 그리며 펼쳐보다 보니 새로운 느낌이 들었다. 스케치를 하는 동안 전북에서 온 백종남 건축사님이 뒤에서 보고 인사를 건네다 비닐에 싼 사과를 한 개 주었다. 스케치를 마치고 돌아서니 대부분 하산을 하고 한가한 분위기였다. 정상석 부근에서 경북 일부 회원들만 남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인사를 하니 안주만 남고 술이 떨어졌다고 해서 배낭에서 막걸리와 소주 팩을 꺼내 나눠 마셨다.
1시에 집결지에서 행사를 하기로 되어 있는데 지체되어 빠른 걸음으로 올라온 길로 되돌아 내려왔다. 1시 8분 다시 수덕사에 도착하니 전남 회원들이 대웅전을 배경으로 단체 사진을 찍고 있었다.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던 분에게 내가 찍어 줄 테니 함께 서라며 셔터를 누르고 보니 셀프 작동이 되고 있어서 나도 함께 사진을 찍었다.
수덕사는 불교사적 의미 뿐 아니라 한국건축사에서도 매우 중요한 곳이다. 수덕사 대웅전은 1308년 지어진 건물로 한국에서 연대가 확실한 가장 요래된 건축물인데 전통 건축물로서 가장 빼어난 구조형식적 균형감각과 완결성을 갖추고 있다. 내외부 기둥은 배흘림이 뚜렷하고 대들보의 단면은 항아리 형태이며, 다른 곳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우미량을 갖추고 있다. 그리고 공포는 쇠서의 맵시가 매우 우아한 형태를 갖추고 있고 소로의 하부는 곡면으로 깎고 굽받침을 두었다. 맛배 지붕 형식의 그 건물은 기둥 및 보 등의 결구 모습과 화반 등이 측변에 그대로 노출되어 자세히 살펴 볼 수 있는데 응력의 세기에 따른 부재의 굵기의 변화와 역학적 흐름을 따라 균형을 이루도록 섬세하게 가공한 공예적 맵시와 형상에 감탄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 특별한 가치가 덜 알려진 듯하다.
오늘 산행에서 수덕사를 들르는 것에 각별한 마음을 갖고 임하면서 대웅전의 모습을 꼭 그려두고 싶었던 터라 그 앞쪽 우측에 놓인 청련당 기단석에 걸터앉아 대웅전을 스케치 했다. 전체적인 균형감과 기단 및 상세한 부분의 이미지까지 소중한 문화재의 인상을 나타내려다 보니 금세 시간이 지나갔다. 박철민 서울건축사등산동호회 사무총장이 식사가 끝나간다며 전화가 와서 서둘러 마무리 하고 급히 버스로 갔다. 3시 출발 예정인데 2시 37분이었다. 출입문 쪽에서 예기를 나누던 황인걸 건축사 등이 식사를 못해서 어떻게 하느냐고 했다. 그래도 아까 산에서 회원들과 인사를 하며 술과 안주 등을 먹어서 그리 배가 고프지는 않았다.
자리에 앉으니 옆 자리에 앉은 황선배님께서 오늘 행사로 일행 모두에게 나눠준 타올과 컵 등을 건네주었다. 해가 긴 여름철 햇살이 수그러들지 않은 시각이라 여유로움이 느껴졌다. 2시 42분 서울로 출발해 덕숭산 언저리 갔던 길로 돌아나왔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논에서 벼가 한여름 태양 볕을 받으며 포기를 벌려가고 있었다. 올라오는 차 안에서 “내려서 당구 한게임 할 사람들” 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차 안을 돌아보니 회원들의 얼굴에 즐거움이 가득해 보였다.
(20170610)
첫댓글 이렇게 기행문으로 첨부터 마무리까지 올리시기까지 의 수고로움이 엿보입니다 .
김석환님이시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ㅎ 제가 이 상황이었다면 일일이 메모해 가면서 산행하였을텐데 안봐도 비디오일듯 ㅋ 수덕사의 역사 까지 기재해 주시고 ..거기에 빠른 터치로 스케치하시면서 ~~ 정말 대단하십니다 ^^
안녕하세요? 이번에 제가 의미 있게 생각하는 곳이라 좀더 자세히 쓰게 되었습니다.~
좋은 사진 작품 계속 올려주셔서 잘 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서산에 가끔 내려가는데 내려가면 수덕사 입구에 산채정식 먹으러 일부러 들리는 수덕사입니다.
가긴 갔어도 자세히 보지못해 놓쳤던 부분들까지 김석환님의 세세한 글과 사진을 통해 배웁니다.ㅎ
저에게도 낯이 익어 더욱 반가운 예산 수덕사 산행.....
즐겁게 감상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지기님은 어디든 다 아시니 안가보신데가 없으실듯 합니다.^^ 그만큼 평소 여행을 좋아하실 것 같고, 다녀오신 곳들을 멋지게 올려주셔서 잘 보고 있습니다.
늘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햐~~대단하셔요~
저는 독수리라 이렇게 치려면 하루 종일 쳐야될거예요~~
섬세하게 스케치하듯~~
섬세하게 올려주신 글 ~~
너무 감사한 마음으로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제가 건축 전공자이다 보니까 오래전부터 많이 접해온 곳이고 또 학생들을 인솔하며 현장 강의도 한 자료들이 있어 좀 수월하게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늘 건강하시기 바랍니댜.~
수덕사뒤 덕숭산 정말 아름다운 산입니다.
김석환 산우님 화이팅!
안녕하세요? 평소 올려주시는 영상에서 항상 대단한 능력이 느껴집니다. 그리고 거칠것 없는 자유인처럼 등산이나 낚시, 여행을 다니시는 모습이 멋지십니다.
늘 건강하시기 바랍니다.